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쓸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학습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한국어 교육은 이 뜨거운 열풍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가? 오랜 기간 미국 교육 현장에서 활동해 온 전문가로서, 이제는 주입식 문법 교육을 넘어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해법의 중심에 바로 ‘5C’가 있다. 5C는 미국외국어교사협회(ACTFL)가 제시하는 교육 모델로, 의사소통(Communication), 문화(Cultures), 연관성(Connections), 비교(Comparisons), 공동체(Communities)를 의미한다. 특히 이 중에서 의사소통과 문화는 한국어 교실을 더욱 역동적이고 깊이 있게 하는 두 개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이제는 문법을 암기하고 단어를 외우는 시대를 넘어, 살아있는 언어와 문화를 체험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ACTFL은 의사소통 능력을 세 가지 입체적인 방식으로 분류한다. 첫째, ‘상호적 의사소통(Interpersonal)’은 학생 간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이다. ‘내 소개하기’, ‘가족 소개하기’와 같이 짝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언어의 순발력과 유창성을 기르는 활동이 대표적이다. 둘째, ‘해석적 의사소통(Interpretive)’은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다. 가족사진을 보며 전체 학생들 앞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한국 요리 레시피를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텍스트와 이미지에 담긴 뜻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발표형 의사소통(Presentational)’은 준비된 내용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으로, 언어 능숙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행사에 부스를 마련해 직접 프로그램을 알리는 활동은 실질적인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최고의 무대로 평가받는다. 이런 활동은 학생들을 단순한 지식 수용자에서 벗어나, 언어를 사용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주체로 성장시킨다. 한국어 교육에서 문화는 더 이상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주재료다. 한국 문화를 가르친다고 할 때, 흔히 음식이나 전통 의상 같은 ‘물질적 문화’에만 머무르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문학, 미술, 음악 등 한국인의 가치관과 철학(가치관적 문화), 독특한 가족 관계와 사회 구조(사회적 문화), 그리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자연환경적 문화)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접근이 필수적이다. 물론 제한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이 모든 영역을 다루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K드라마 속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한국 사회를 엿보게 하고, K팝 가사에 담긴 시대정신을 함께 토론하는 수업을 상상해 보라. 학생들이 자신의 문화와 한국 문화를 비교하며 발표할 때, 한국어는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이 된다. K-콘텐츠의 성공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세계와의 ‘소통’과 문화적 ‘교감’의 결과였다. 우리의 한국어 교육 역시 5C라는 나침반을 들고 살아있는 소통의 장으로 나아갈 때, 제2, 제3의 BTS를 키워내는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수지 오 / 교육학박사·교육전문가오픈 업 한국어 컬처 한국어 교육 한국어 교실 의사소통 능력
2025.09.15. 19:03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 말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 겁니다. 외국어를 공부해서 남과 경쟁해야 하고,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면 힘이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통이 따르겠지요. 이때 심각해지는 감정이 바로 불안입니다. 언어를 배우거나 가르치는 데는 불안이 따르게 됩니다. 말할 때의 불안, 글 쓸 때의 불안. 들을 때의 불안 등은 학습자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불안과 긴장으로 실력 발휘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언어교육에서는 학습자, 교실의 불안에 관한 연구가 이어져 왔습니다. 연구 결과에 나타난 것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불안 덕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더 정확성을 기하게 되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적당한 불안은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불안에 관한 연구는 왠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불안에 관한 연구는 한쪽 날개에 불과합니다. 언어학습에는 불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불안 이전에 존재하는 즐거움의 요소가 있습니다. 미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은 불안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입니다. 따라서 불안 못지않게 연구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즐거움입니다. 교실에서의 즐거움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즐거움 척도도 개발하여야 합니다. 어떤 요소들이 즐거움의 원인이었는지를 밝히면 언어교육의 효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즐거움을 측정하는 도구의 개발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즐거움 척도의 개발은 긍정심리학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심리상태뿐 아니라 인간의 긍정적 심리상태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언어교육에 적용한 것입니다. 즐거움, 기쁨, 사랑, 행복, 감사 등의 긍정 감정이 언어교육에 어떤 효용을 주는지 엄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중요한 목적은 즐거움에 있습니다. 현재의 언어교육은 이 점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접근 방법을 긍정언어학이라고 부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언어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통역이나 번역이 인공지능을 통해 실시간으로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지는데 힘들게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하지만 언어교육은 의사소통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순간의 환희와 설렘이 공존합니다. 즐거움, 놀라움, 기쁨의 감정을 언어학습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즐거움의 측면에 집중을 둔 언어교육이 다른 날개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어 교육은 즐거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많은 학습자가 한국어를 취미로 배우기도 합니다.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입니다. 진학이나 취업이 목적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듣고, 배우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즐거움이 많습니다. 어쩌면 한국어 교육이 즐거움 관련 언어교육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인공지능 시대의 언어교육에 좋은 방향 제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어 학습자의 즐거움 척도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교육과 긍정심리학을 연계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한국어 공부가 즐겁기 바랍니다. 또한 교사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즐겁기 바랍니다. 교실에서 배우는 내용이 재미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재미있는 신나는 한국어 교실을 설계해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불안 한국어 교실 한국어 교육 한국어 공부
2025.03.30.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