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종교 담당 기자로 활동할 때였다. 당시 미주성시화운동본부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던 최문환 장로가 잠시 만나자고 했다. “오늘날 교회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데… 중앙일보가 울림 있는 기사를 좀 써줬으면 좋겠어.” 2017년은 개신교계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최 장로의 한마디 당부는 당시 본지가 미주성시화운동본부측과 함께 유럽 종교개혁 현장 방문기 특집 기사를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보도했던 계기가 됐다. 그는 교계에서 소위 ‘반골’ 기질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교계의 오점들을 무조건 덮고 가야 한다는 식도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하게 지적하면서도 비판의 근저에는 교계와 한인 사회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면면히 보면 최 장로는 항상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늘 인자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에는 역으로 기자가 부탁을 했다. 지난 2019년 최 장로의 삶을 토요 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LA로 왔다. 1978년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 LA 한인 사회의 변모를 지켜본 인물이다. 최 장로는 본래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인쇄 공장(에이스 커머셜)을 운영하며 돈도 벌만큼 벌었다. 은퇴 이후에는 미주성시화운동본부를 비롯해 월드미션대학교, 거리선교회,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종교 단체에서 주로 활동했다. 사업가로 활동했던 터라 종교와 사회를 함께 놓고 생각했다. 당시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한인타운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대형 트리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구상이 실현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당장은 어렵지만 교계와 한인 단체가 합심하면 언젠가는 한인타운에 대형 트리가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대형 트리를 세우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도 몰려들고, 그렇게 되면 한인타운 상권도 다시 생기가 돌 것이라며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열 손가락이 없었다. 그렇게 자주 만났어도 그 이유를 선뜻 묻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인터뷰를 빌려 사연을 물었다. 최 장로는 의외로 담담하게 과거를 들려줬다. 최 장로는 자신을 ‘금수저 출신’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과거 서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분이라며 유년 시절 유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했다. 집안과 학벌 모두 좋았던 그는 대학생 때부터 형광등 사업을 시작으로 봉제 공장까지 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최 장로는 손가락을 잃게 된 사건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했다. 인쇄 공장에서 닷새 밤을 새우며 일하다가 피곤한 탓에 잠깐 넘어졌고, 그 과정에서 재단기에 열 손가락 모두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도중 한인 단체나 교회들의 분쟁을 유심히 살펴보며, 결국 돈 때문에 잡음이 생기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손에 쥐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누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가 평소 한인 사회와 교계 단체 등에 끊임없이 기부해 온 이유다. 인터뷰 당시 최 장로는 아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름에 배어 있던 그의 미소가 비로소 가슴으로 와 닿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황혼을 지나는 길에서 한창 인생을 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성실’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하면서 허황된 꿈꾸지 말고, 충실하고 겸손하게 사는 게 가장 잘되는 길이야.” 그런 최 장로가 지난 6일 눈을 감았다. “손가락은 없지만 나누며 살고 있다”던 그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인 사회를 향하던 그의 미소 역시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떠났다. 1세대가 남긴 유산은 모두가 지켜내야 할 가치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어른 한인타운 한복판 한인타운 상권 한인 사회
2026.01.18. 18:00
2025년 LA 한인타운 경제는 회복과 침체가 동시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부동산 시장은 회복세를 보이고 아파트 개발은 이어졌지만,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팍팍한 현실과 씨름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8년간 한인타운 부동산 가격은 약 55% 이상 상승하며 LA카운티 평균과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올 상반기 금리 부담과 매물 부족으로 주춤했던 타운 부동산 시장은 하반기 들어 매매가 되살아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지역에 따라서는 매매 가격이 하락하거나 조정 국면을 보이기도 했다. 한인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금리 부담이 다소 완화되면서 그동안 시장에 나오지 않던 매물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연말로 갈수록 급격한 반등보다는 실수요와 투자 수요가 섞인 형태로 거래가 꾸준히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타운 부동산 시장이 급등이나 급락보다는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중·소규모 주상복합과 임대 아파트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저소득·중간소득층 대상의 주택 공급 확대는 LA시 주택 정책 기조와 맞물리며 한인타운을 점차 주거 복합 상권으로 재편하고 있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소비 기반을 키울 수 있는 요소지만 공급 확대가 즉각적인 상권 활성화로 연결된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부동산 회복세와 달리 한인타운 상권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요식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타운 상권은 1년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임대료 부담, 인건비 상승, 소비자 지출 위축이라는 삼중고는 자영업자들의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특히 식당, 세탁, 리커, 페인팅 등 주요 한인 업종은 고령화와 2세들의 전문직 선호로 후계자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해 영업을 축소하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업소들도 증가 추세다. 일부 소형 상가의 경우는 임대료가 여전히 높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이민 단속 강화라는 외부 변수가 타운 상권에 직격탄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이민 단속이 지난 6월 LA서 본격 시작된 이래 지속 확대되면서 한인타운 삶의 현장은 즉각적인 변화를 체감했다. 한 한인 자동차 수리업체의 경우 불법체류자 단속 우려로 타인종 숙련공이 출근을 꺼리면서 인력 공백이 발생했다. 급한 대로 외부에서 더 높은 임금을 주고 기술자를 데려왔지만, 숙련도가 떨어져 작업 품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오히려 고객 불만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을 겪었다. 인력난이 비용 상승과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 것이다. 식당가도 마찬가지였다. 한인타운 식당들은 라티노 종업원 감소뿐 아니라 라티노 고객 유입 자체가 줄어들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여파로 식재료 가격은 계속 올랐고 인력 부족 속에서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했다. 어쩔 수 없이 메뉴 가격을 인상하자 고물가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은 외식을 줄이기 시작했다.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고, 올리면 손님이 줄어드는 악순환 속에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졌다. 이민 정책 변화가 지역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인타운의 부동산 경기가 부분적으로 살아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경기 지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역 전체 경제의 완전한 회복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권 침체와 분리된 부동산 시장 회복세는 전체 경제 활력의 지표라기보다 불균형적 개선 신호에 가깝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함께 숨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타운 경제도 균형 있는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개발과 투자에 더해, 소상공인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실질적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인타운 경제는 체감되지 않는 성장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부동산 경기 한인타운 부동산 부동산 회복세 한인타운 상권
2025.12.22. 19:34
한인 사회와도 친숙한 네이트 홀든(사진) 전 LA시의원이 지난 7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인타운이 포함된 10지구 시의원을 4번이나 연임하며 한인타운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홀든 전 의원은 지난 1971년 케네스 한 전 LA카운티 수퍼바이저의 부비서실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가주 상원의원, LA시의원 등을 역임하며 30년 이상 공직에 몸담았다. 지난 1987년 LA시 10지구 시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이후, 한인 비즈니스 지원에 앞장섰다. 1990년대 초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한인 업주들을 위해 LA시의 주류 판매권 취득을 적극 지원했다. 당시 맥주와 와인에 한정돼 있던 주류 판매 허가증의 범위를 소주 등으로 확대하는 데도 앞장섰다. 또한 영업 시간을 자정에서 새벽 2시까지 연장해 타운 경기 활성화에 기여했다. 빌 로빈슨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WCKNC) 의장은 “홀든 전 의원은 한인들을 위해 주류 허가뿐 아니라 식당 영업 허가 취득 지원도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홀든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로빈슨 의장은 “서울국제공원, 피오피코-코리아타운 도서관 등 역시 그의 성과”라며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LA타임스도 홀든 전 의원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그가 한인타운 상권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그의 지원은 다수의 한인 업주가 그의 선거 캠페인을 적극 후원하게 계기가 되기도 했다”며 “지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홀든 전 의원이 받은 선거 후원금의 25%가 한인 유권자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이 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홀든 전 의원은 지난 1987년부터 2003년까지 LA시의원 4선에 성공했다. 가이 베넷 전 시의원과 함께 10지구 시의원으로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인물로 기록됐다. 스티브 강 LA시 공공사업위원회 의장은 “홀든 전 의원은 LA시의원 중 거의 처음으로 한인 보좌관(스티브 김)을 채용하기도 했다”며 “그는 한인 사회 정치력 신장에 큰 도움을 줬고, LA 지역 정치인 중 한인들의 민원을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 1929년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출생했다. 지난 1974년에는 가주 상원의원으로 금융기관의 인종·종교·성 차별을 금지하는 주택금융차별금지법 제정에 기여했으며,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생일을 공립학교에서 기념하도록 하는 법안에도 앞장섰다. 김경준 기자삶과 추억 la한인타운 활성화 한인타운 상권 상원의원 la시의원 한인타운 발전
2025.05.08. 22:53
LA한인타운 올림픽 길에 카페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올림픽 거리 양쪽으로 주상복합 건물이 속속 들어서면서 나타난 변화다. 〈그래픽 참조〉 개성을 살린 카페는 입소문 덕에 LA 도심 명소로 자리매김까지 했다. 한 달 전 올림픽 불러바드와 켄모어 애비뉴에 문을 연 카페 ‘메모리룩 커피’는 실내외 공간을 활용한 인테리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를 찾은 이들은 깔끔한 실내장식과 야외공간 활용에 높은 점수를 줬다. 커너 최 대표는 “이 자리가 원래 커피숍 퍼밋이 있던 자리라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새로운 개념의 카페를 시도해 봤다”며 “개업 한 달 지났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와서 당황스럽긴 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 대표가 비어 있던 자리에 카페를 차린 건 최근 한인타운 상권변화를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올림픽 거리에 카페가 별로 없었지만 최근 주거용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유동인구 증가를 기대해) 카페를 생각했다. 앞으로 한인타운 상권이 올림픽 거리부터 피코까지로 다시 활성화될 것 같다. 전망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인타운 올림픽 거리 주변에서는 주상복합 건물 프로젝트가 10건 이상 진행됐다. 거리 주변으로 완공된 신축 건물은 입주가 한창이다. 건물 1층에는 식당과 카페가 가장 먼저 입점하고 있다. 주디 리 부동산 에이전트는 “올림픽 거리는 조닝이 R4로 윌셔 거리처럼 고층건물을 지을 수는 없지만 건물 신축 때 다른 지역보다 아파트 유닛 수를 많이 넣을 수 있다”며 “한인타운 올림픽 거리는 LA다운타운, 10번과 110번 프리웨이와 가까워 주거지역으로 괜찮다. 현재 (입주민 위주) 상권이 형성되는 만큼 카페나 요식업소가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상권변화 분위기를 반영하듯 올림픽 불러바드 알링턴 애비뉴-후버스트리트 구간에만 카페 15곳 이상이 운영 중이다. 3~4곳은 문을 연 지 반년이 채 안 됐다. 특히 아만디 카페와 엠코 카페는 한인 포함 LA 주민 모두가 찾는 올림픽거리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두 카페 모두 넓은 주차공간을 확보했다. 커피 등 식음료 맛집, 만남의 장소 겸 휴식공간으로 소문나 타인종 비율이 높다. 주디 리 에이전트는 “올림픽 거리 신축 주상복합 세입자는 고소득인 여러 인종으로 구성돼 카페 등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올림픽 거리 상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이곳 상권이 제대로 활성화되려면 신축 중인 여러 건물 공사가 끝나고 입주민도 늘어야 한다. 부동산 업계는 섣부른 투자보다 향후 성장 가능성을 여러모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재 기자한인타운 올림픽 la한인타운 올림픽 올림픽 거리 한인타운 상권
2022.07.17.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