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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큰 어른을 떠나보내며

Los Angeles

2026.01.18 17:00 2026.01.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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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사회부장

장열 사회부장

9년 전, 종교 담당 기자로 활동할 때였다. 당시 미주성시화운동본부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던 최문환 장로가 잠시 만나자고 했다.
 
“오늘날 교회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데… 중앙일보가 울림 있는 기사를 좀 써줬으면 좋겠어.”
 
2017년은 개신교계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최 장로의 한마디 당부는 당시 본지가 미주성시화운동본부측과 함께 유럽 종교개혁 현장 방문기 특집 기사를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보도했던 계기가 됐다.
 
그는 교계에서 소위 ‘반골’ 기질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교계의 오점들을 무조건 덮고 가야 한다는 식도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하게 지적하면서도 비판의 근저에는 교계와 한인 사회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면면히 보면 최 장로는 항상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늘 인자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에는 역으로 기자가 부탁을 했다. 지난 2019년 최 장로의 삶을 토요 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LA로 왔다. 1978년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 LA 한인 사회의 변모를 지켜본 인물이다.
 
최 장로는 본래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인쇄 공장(에이스 커머셜)을 운영하며 돈도 벌만큼 벌었다. 은퇴 이후에는 미주성시화운동본부를 비롯해 월드미션대학교, 거리선교회,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종교 단체에서 주로 활동했다.
 
사업가로 활동했던 터라 종교와 사회를 함께 놓고 생각했다. 당시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한인타운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대형 트리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구상이 실현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당장은 어렵지만 교계와 한인 단체가 합심하면 언젠가는 한인타운에 대형 트리가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대형 트리를 세우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도 몰려들고, 그렇게 되면 한인타운 상권도 다시 생기가 돌 것이라며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열 손가락이 없었다. 그렇게 자주 만났어도 그 이유를 선뜻 묻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인터뷰를 빌려 사연을 물었다. 최 장로는 의외로 담담하게 과거를 들려줬다.
 
최 장로는 자신을 ‘금수저 출신’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과거 서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분이라며 유년 시절 유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했다. 집안과 학벌 모두 좋았던 그는 대학생 때부터 형광등 사업을 시작으로 봉제 공장까지 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최 장로는 손가락을 잃게 된 사건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했다. 인쇄 공장에서 닷새 밤을 새우며 일하다가 피곤한 탓에 잠깐 넘어졌고, 그 과정에서 재단기에 열 손가락 모두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도중 한인 단체나 교회들의 분쟁을 유심히 살펴보며, 결국 돈 때문에 잡음이 생기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손에 쥐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누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가 평소 한인 사회와 교계 단체 등에 끊임없이 기부해 온 이유다. 인터뷰 당시 최 장로는 아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름에 배어 있던 그의 미소가 비로소 가슴으로 와 닿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황혼을 지나는 길에서 한창 인생을 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성실’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하면서 허황된 꿈꾸지 말고, 충실하고 겸손하게 사는 게 가장 잘되는 길이야.”
 
그런 최 장로가 지난 6일 눈을 감았다. “손가락은 없지만 나누며 살고 있다”던 그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인 사회를 향하던 그의 미소 역시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떠났다. 1세대가 남긴 유산은 모두가 지켜내야 할 가치다.

장열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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