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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통념과의 싸움, 일반화의 덫

 #1   서울에서 미군으로 복무했던 남편은 직장인이던 한국인 아내와 만나 연예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들은 부부가 되어 미국으로 왔지만 한인사회에서 지내다 보면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된다고 털어놨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미군과 한국인 여성의 결혼을 통념이라는 선입견으로만 보고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매도하거나 멸시하는 시선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아픈 전쟁의 역사가 만들어낸 못난 생각이었으며, 이들 부부에게는 억울한 굴레였다.   한국어를 잘해 미대사관에서도 근무했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설사 그런 선입견을 깊게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 이런 시각을 일반화하는 것은 한두 명이면 충분해요. 그런 생각을 입에서 내뱉거나 행동으로 옮기면 그런 오해를 받게 되는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더 이상 생활하기 힘들어 집니다.”   이들 부부는 이후에도 한인들이 많은 곳에서는 항상 경계하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2   먹고 살기 힘들어져 부모가 가정을 포기하고, 남겨진 자신은 고아원에 지내다가 미국으로 입양됐다고 낸시(가명)는 믿어왔다. 70년대 한국은 어려운 곳이었고 사회 시스템은 어린 두 살 여자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기 버거웠을까.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돼 이제는 50이 다된 그가 최근에 발견한 사실은 그동안의 믿음을 여지없이 무너트렸다.     그는 길거리에서 사실상 납치됐으며, 부모에게 돌아갈 길이 있었음에도 입양 기관에 불법적으로 인계되어 조국을 떠나야 했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한국 가족으로부터 확인한 사실들이었다. 사회적 시스템의 허점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중 상당수는 모든 입양이 가난한 과거의 상징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입양은 부실했던 한국의 사회 시스템이 아이들을 내다버려 생긴 상채기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통념과의 싸움이 된다.   #3   밀워키 브루어스의 한 팬이 지난달 15일 경기 종료 후 약을 올리던 LA다저스 팬에게 ‘ICE(이민세관단속국)에 전화해’라고 말하는 바람에 야구장의 열기는 찬물을 맞아야 했다.   알고보니 영상을 찍은 사람은 참전 용사로 두 번의 전쟁에 파병된 ‘미국인’이었다.     인종차별의 역사와 개인적인 편견이 빚어내는 여러 촌극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해당 영상은 급속도로 퍼지며 공분을 불러왔다. 아무리 사회 시스템이 변해도 일부 미국인들 마음의 바닥에는 선민 의식이나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만여 팬들이 게임을 즐기는 야구장에서 단 한 명의 팬이 내놓은 발언으로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은 것이다. 해당 여성팬은 이후 직장도 잃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영상을 찍은 라틴계 남성은 “한 번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개념은 우리가 무심코 할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을 사전에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진정한 사안의 속살과 과학적 수치를 좀 더 들여다 보자는 취지다.   정보가 범람하고 전달의 속도는 매우 빨라졌고, 통념보다는 개인의 특징과 성향이 더욱 중시되는 세상이 됐다. 이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제도권 전통 언론과 학계의 연구도 의심하는 바람도 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구태의연한 선입견과 일반화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 더 큰 발전의 가능성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인성 / 경제부 부국장중앙칼럼 일반화 통념 싸움 일반화 선입견과 일반화 사회적 시스템

2025.11.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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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뉴욕의 최신 패션, 중고 명품

지난달 열린 뉴욕패션위크(NYFW) 봄·여름 컬렉션 주인공은 중고명품이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빈티지 옷이 패션 런웨이를 점령했다”고 전했다.   뉴욕패션위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행사 중 하나로 뉴욕에서 매년 2월과 9월 두 차례 열린다. 세계 4대 패션위크(뉴욕·런던·밀라노·파리) 중 가장 먼저 개최되며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다음 시즌 트렌드를 알리는 시작점 역할을 한다. 뉴욕패션위크에는 마이클 코어스, 캐롤리나 헤레라 등 세계적 브랜드뿐 아니라 신진 디자이너도 참여한다.   전 세계 패션 산업, 패션 에디터, 바이어 등에게 최신 패션 트렌드를 선보이는 무대에 중고품의 등장은 놀라운 일이다.   중고명품을 무대에 올린 주인공은 중고거래 플랫폼 이베이다. 이베이는 ‘엔드리스 런웨이’를 열고 중고 명품 및 디자이너 브랜드 아이템을 무대 중심에 세워 전통적인 패션쇼의 틀을 뒤집었다.     이베이의 등장은 요즘 패션 업계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팬데믹 이후 많은 브랜드가 런웨이를 대신해 버추얼 쇼로 디지털 전환을 하고 친환경 소재와 윤리적 생산 방식을 강조하는 브랜드도 급증했다.   이베이 ‘엔드리스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패션 트렌드가 응축된 새로운 디자인 대신 중고와 브랜드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과거 시즌의 대표 아이템을 착용해 무대에 섰고 관람자는 실시간으로 해당 아이템을 구매했다. 입고 버리는 패션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패션, 즉 순환 가능한 패션의 가능성을 제시한 순간이었다.   “새 옷보다 중고가 더 세련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세운 이 행사는 재판매 시장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패션쇼가 아니라 패션 산업 생태계(디자이너·리테일러·플랫폼· 소비자)의 관점에서 중고 및 순환 패션이 주류 패션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패션업계는 전통적으로 신제품 중심이었던 패션쇼 무대에 중고 제품이 등장하면서 순환경제 및 지속가능성이 강화되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올해 중고 패션 의류를 재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스레드업과 더리얼리얼의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디팝, 포시마크 등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중고 패션이 더는 낡은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이끄는 주체는 젊은 세대로 패션 시장의 판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이유로 중고를 샀다면 젊은층은 환경과 윤리를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소비로 찾고 있다.   Z세대가 주도하는 변화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패스트 패션의 환경오염에 대한 반발로 새 옷 대신 중고를 사는 게 더 윤리적이라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최근 인기인 패션 리세일 플랫폼인 디팝 사용자 90% 이상이 26세 이하로 지속가능성을 구매 이유로 꼽는다. 한정판·빈티지·리폼 제품 등 나만의 패션을 추구하는 것도 Z세대를 이끌고 있다.   경기침체 속 부업을 찾는 누구나 판매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중고품의 매력이다. 초기 자본이 필요 없어 부수입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간편한 결제·배송 시스템이 이용 장벽을 낮춘 것도 주효했다.   패션 업계는 새로운 친환경 마케팅으로 중고 시장을 포장하지만 지속가능한 옷장은 소비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임 있는 쇼핑은 트렌드를 좇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 품질 좋은 옷을 고르는 것이다.   패션의 순환은 소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자라와 H&M은 재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베이는 영국 마크앤스펜서와 협업해 반납 의류를 재판매하는 테이크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런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소비 습관이다. 가장 친환경적인 선택은 덜 사는 것이다. 소비자가 변하지 않으면 산업도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지속가능한 패션은 옷을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옷을 오래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뉴욕 패션 패션 트렌드 패션 런웨이 세계 패션

2025.10.2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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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필수품 자동차, 이제 사치품으로

영화나 미드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미국 생활을 199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에서 유학으로 시작했다.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 한동안은 전철과 버스를 타며 로컬 분위기와 일상을 익혔지만, 한국처럼 집 근처에 마트나 편의점이 없어 장을 보려면 멀리 떨어진 한인 마켓까지 다녀와야 했다. 양손 가득 짐을 든 채 버스를 수차례 갈아타고 다니면서 미국 생활에서 자동차는 선택이 아닌 생존 수단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시 차를 장만하려고 여러 딜러를 방문해 가격을 알아봤었는데 소형차는 1만2000~1만4000달러, 중형차는 1만8000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큰 아이가 학업과 일을 병행하게 되면서 차가 필요해져 저렴한 신차를 알아봤다. 2만 달러 이하 신차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고 소비자 리뷰가 좋은 소형차는 2만5000달러 전후, 중형차는 2만9000달러부터 시작했다. 지난 30년 사이 1만 달러 이상 오른 셈이다.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지난 9월 신차 평균 거래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5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팬데믹 당시 평균 가격이 4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었는데, 수년 만에 또 1만 달러가 오른 것이다. 첨단 기능 및 고급 편의 사양 장착이 늘고 하이브리드·전기차의 수요 증가가 주된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서민 입장에서는 그저 ‘감당하기 힘든 인상’일 뿐이다.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부담이 지난 수십년간 얼마나 커졌는지 궁금해 신차 가격과 소득 수준의 변화를 조사해 봤다.   평균 신차 가격이 2만 달러를 처음 돌파한 1998년에 중간 명목소득은 3만8887달러였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2년 신차 가격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소득은 5만1020달러였다. 신차 가격 상승률이 47.3%로 소득 증가율(31.2%)을 크게 상회했다.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등 외부 충격으로 소득이 정체되면서 자동차 구매 부담이 가장 컸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는 양상이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4만 달러 돌파까지 9년이 걸리는 동안, 소득이 39% 증가해 차량 가격 상승률(33.2%)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다소 회복된 시기다.   하지만 2021년부터 2025년까지는 신차 가격이 단 4년 9개월 만에 5만 달러를 돌파해 다시 소득 증가율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중간 소득이 7만780달러에서 8만5000달러(올해 추정치)로 20.1% 올랐지만, 신차 가격은 25.4%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실질적인 부담이 다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차 가격이 3만 달러일 경우, 가주 평균 오토론 이자율 7.5% 기준에 10% 다운페이, 60개월 할부로 구매하면 월 납부액은 544달러다. 하지만 5만 달러라면 같은 방식으로 월 907달러가 된다. 동일 조건으로 3년 리스를 할 경우도 3만 달러 차는 월 428달러, 5만 달러 차는 월 713달러로 큰 차이가 난다.   특히 가격 상승을 이끈 전기차의 평균 거래 가격은 5만8124달러로, 평균 4만9054달러인 개솔린 차량보다 9000달러 이상 비싸다. 친환경 전환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최신 기술 탑재와 제조 원가 상승이 전체 차량 가격을 끌어올리며 오히려 대다수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계, 출퇴근, 교육, 의료 접근을 위한 ‘필수 교통수단’으로 여겨져 온 자동차가 이제 구매, 유지 비용 부담으로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고급 소비재의 경계까지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신차 가격 상승세가 식료품·유틸리티·보험료·주거비 등 전방위 인플레이션과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니 서민들의 가계 재정은 한층 더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 생활의 필수품인 자동차 쇼핑이 부담보다는 설렘과 기쁨이 앞서던 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필수품 자동차 자동차 구매 소득 증가율 중간 명목소득

2025.10.2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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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롯데리아, 동네 버거집 이길수 있겠나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고 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지난 8월 풀러턴 지역에 화려하게 문을 열었던 롯데리아 미국 1호점이 그렇다.   한국의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이라 하기엔 요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개점 초기 매장 앞 긴 줄도 이제는 사라졌다. 이는 쉽게 끓었다 쉽게 식는 소셜미디어(SNS) 마케팅의 그늘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롯데리아는 개점 당시 인플루언서 등의 영향력을 앞세워 화제를 모았다. SNS에는 ‘한국식 버거 맛집’이라는 게시물이 잇따랐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눈에 띄게 매장을 찾는 고객 수도 줄었다. 인플루언서·SNS 중심 마케팅의 한계를 드러낸 결과다.  SNS 마케팅은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그만큼 빠르게 식을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인 수익 구조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약점도 드러냈다.   일례로 화장품 브랜드 ‘타르트 코스메틱스(Tarte Cosmetics)’의 두바이 인플루언서 여행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23년 1월 인기 뷰티 인플루언서 50여 명을 두바이로 초청해 고급 리조트 숙박·항공·선물 세트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해당 영상은 틱톡에서 1억 회 이상 조회됐지만, 곧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시성 마케팅”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후 SNS 팔로워 증가율도 둔화됐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보도에 따르면 화장품 대형 소매 체인 세포라(Sephora)에서의 매출마저 마케팅 이전 대비 8% 감소했다.   프리바이오틱 소다 브랜드 팝피(Poppi)의 사례도 소셜미디어(SNS) 마케팅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팝피는 지난 2024년 대형 인플루언서 수십 명에게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자판기를 광고 목적으로 보내, 이를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을 통해 공개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광고 직후 이 브랜드는 SNS에서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힙한 건강음료’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곧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비싼 자판기 선물로 인플루언서만 챙긴다”,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는 비판이 확산됐다.   결국 팝피는 인플루언서 중심 전략으로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브랜드의 진정성과 가치를 전달하는데는 실패했다. 실제 소비자 리뷰 플랫폼 ‘인플루엔스터(Influenster)’에서는 캠페인 이후 팝피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SNS 마케팅은 단기적으로 브랜드 인지도와 초기 구매 유도에는 효과적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케팅 분석기관 WARC는 오늘날 다수의 기업이 장기적인 전략보다 단기 노출 성과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NS를 통한 브랜드 노출이 반드시 재방문·충성도·상권 내 지속적인 수요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성과 측정의 불투명성도 문제다. 대부분의 마케팅이 ‘좋아요 수’나 ‘조회수’ ‘구독자 수’를 근거로 평가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매출 또는 고객 충성도와 직접적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분석업체 집폴은 브랜드 인식은 높일 수 있으나, 실제 구매 전환율은 1% 미만이라는 분석도 내놓은 바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를 재인지하는 것 조차 어려울 수 있다.   롯데리아 미국 1호점은 개점 초반 지역사회의 시선 보다 SNS에서의 화제성과 인플루언서 리뷰에 의존하며 주목을 끌려고 했다.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상권 정착을 위한 지역 언론과의 협력, 소비자를 위한 재방문 전략 설정, 품질 안정, 운영의 효율화가 병행되지 않다보니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지역 사회와 신뢰를 차근차근 쌓으려는 장기적 전략의 부재가 빚어낸 결과다.     수많은 노포 업주들이 왜 지역 사회에 보다 더 다가가려 하겠나. 자본을 앞세운 거대한 햄버거 체인이라도 화제성만으로는 수십년간 자리를 지킨 동네의 햄버거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롯데리아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롯데 버거집 화장품 브랜드 브랜드 이미지 과시성 마케팅

2025.10.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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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11·4 특별선거, OC의 선택은

가주의 연방하원 선거구 조정 여부를 묻는 ‘발의안 50’의 운명을 결정할 특별선거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일은 11월 4일이지만, 다수 유권자가 참여하는 우편투표는 한창 진행 중이다. 오렌지카운티 정가에선 이번 특별선거 결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가주 전체로 볼때는 민주당 강세가 확연하지만, OC 지역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세력이 엇비슷한 ‘퍼플 카운티’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가 내년 열릴 중간선거의 OC 유권자 표심 향방을 가늠할 풍향계가 될 것이란 전망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   21일 현재 OC 전체 유권자 190만8296명 가운데 민주당원은 36.3%(69만2158명)를, 공화당원은 34.1%(65만1299명)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당원 수에서 공화당을 앞선 것은 2019년 8월의 일이다. 당시 민주, 공화의 당원 수는 89명, 당원 비율은 불과 0.01% 차이였다. 오랜 기간 공화당의 아성이자 ‘레드(공화당 상징색) 카운티’로 통했던 OC에 파란색(민주당의 상징색) 물이 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 전후다.   현재 OC는 퍼플(보라색) 카운티로 통한다. 민주당이 소폭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각종 선거에서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민주, 공화 양당 후보가 비교적 고르게 당선되고 있어서다. 따라서 유권자가 특별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점치기 어렵다.   이번 특별선거는 발의안 50에 대한 가주 전체 유권자의 찬반 의사를 묻는 선거다. OC 유권자만을 대상으로 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간접적인 자료를 토대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간접적인 자료로 가장 적합해 보이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출마한 역대 대선 결과다. 2016년 선거 당시 오렌지카운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42.3%,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50.9%의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4년 뒤인 2020년, 재선에 도전한 트럼프 대통령은 44.4%,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53.5%의 표를 받았다.   두 차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8~9%p 차이로 밀렸던 트럼프 후보는 2024년 대선에서 격차를 큰 폭으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49.7% 득표율에 그쳤고, 트럼프 후보는 47.1%의 표를 얻으며 OC에서 치른 세 차례 대선 중 가장 나은 성과를 거뒀다.   OC의 발의안 50 주민투표 결과를 가늠하는 데 트럼프 대통령의 역대 대선 성적을 참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번 특별선거가 트럼프 대통령과 개빈 뉴섬 가주 지사,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리전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보도된 바처럼 이번 선거의 발단은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 의회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연방하원 의석을 최대 5개 늘릴 수 있도록 선거구를 조정한 것이다. 뉴섬 주지사는 이에 대항한다며 가주에서 민주당 의석 최대 5개를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발의안 50 특별선거를 주도했다.   특별선거 결과는 공화, 민주 양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뉴섬 주지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발의안 50이 부결될 경우, 공화당은 연방하원 다수당 지위 유지란 목표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텍사스에서 공화당 의석 5개를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선거구 조정을 마쳤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기반도 공고해진다.   반대로 발의안 50이 통과될 경우, 민주당은 내년 연방의회 구도를 바꾸기 위해 총력전을 펼 교두보를 점하게 된다. 민주당이 발의안 50 통과를 발판으로 중간선거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뉴섬 주지사는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   특별선거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의 최대 관심사가 될 내년 중간선거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정치 행보는 물론 차기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여러 함의를 지닌 가주 특별선거에서 퍼플 카운티인 OC의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특별선거 선택 이번 특별선거 가운데 민주당원 트럼프 대통령

2025.10.2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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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은퇴에도 나만의 티샷이 있다

골퍼라면 누구나 골프에 대한 자신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다. 스코어를 낮추기 위해 차곡차곡 노력해가는 것도 즐겁고 의미 있지만, 어떤 이들은 벗과 4시간 이상 대화하며 우애를 나누고, 새로운 동반자와 서로를 알아가는 매력에 골프를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주말골퍼라면 프로 골퍼를 따라 하는 전형적인 스윙이나 공략법도 중요하지만, 바로 자신만의 독특한 준비 동작, 스윙 예열, 퍼팅 라인 읽기 노하우 등이 골프의 매력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결국 모든 골퍼가 타이거 우즈나 로리 맥길로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춰 습득한 스윙과 스코어 관리방식이 필드에서 의미 있는 스코어로 돌아온다면 그 뿌듯함은 매우 클 것이다.   우리가 모두 언젠가 해야 하는 ‘은퇴’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인들이 자주 접하는 신문, 방송, 블로그와 SNS 등을 보다 보면 마냥 재단된 은퇴 시기와 방식을 소개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소셜연금 신청 시기, 메디케어 선택 사항, 은퇴 연금 인출, 상속과 양도의 방식 등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다.   은퇴 시기부터가 그렇다. 가장 많은 연금을 받고 가장 혜택이 많을 때 은퇴해야 한다고 권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지인 중에는 70세 중반이 넘어섰지만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보고 정기적으로 출장에 나서는 분이 있다. 건강이 허락하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목표를 정해 일해가는 것이 큰 기쁨이라는 설명을 듣게 된다. “내가 즐겁고 편하면 그것이 바로 은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선출직으로 일했던 한 한인 1세는 이미 메디케어를 시작한 지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후배들을 만나고 참여와 투표를 주창한다.   이제 좀 쉬어도 되는 연배가 아니냐는 질문에 솔직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래서 좀 쉬어보려고도 했는데 2~3개월 손주들보고 여행 다녀오니 다시 좀이 쑤셔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은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경계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부동산으로 성공해 사우스베이 저택에서 살던 한 지인도 경제 활동은 끝나도 ‘인생 활동’을 멈출 수 없다며 그림과 사진을 배워 늦깎이 예술가가 됐다. 관련된 모임에 나가 더 많은 이들과 만나고 배움을 이어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던 한 분은 60대 초반에 경제 활동을 중단하고 해외 봉사 길에 올랐다. 그는 쉽지는 않겠지만 힘겨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젊을 때의 각오를 드디어 실천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돈을 벌지 않으니 은퇴했다고 해야 하지만, 비영리 봉사를 시작해 또 다른 커리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참고로 각종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미국인들의 평균 은퇴 시기는 60~62세 사이다. 62세에 소셜연금을 조기 인출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민사회 한인들의 은퇴는 ‘정답이 없는’ 시대가 됐다. 은퇴의 시기와 방식, 성격과 조건은 모두에게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에는 모두 이유와 배경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누가 더 잘한 은퇴인지 판단하는 것도 무색하다. 각자의 상황과 조건에 맞춘 최선의 선택일 것이니 말이다.   간혹 티박스에서 멋지게 공을 날리고 그린 근처까지 잘 가서 버디나 파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 칩샷에서 생크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더블이나 트리플을 적기도 하는데, 은퇴도 마찬가지 아닐까. 잘 가꿔온 인생과 가족이어도 은퇴를 앞두고는 여러 불편함과 위기가 도사릴 수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해 불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내가 즐겁고 편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과 시기가 답이 아닐까. 은퇴한 한인들의 다양한 모습이 여러 경로로 잘 소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최인성 / 경제부 부국장중앙칼럼 은퇴 티샷 은퇴 시기 은퇴 인출 평균 은퇴

2025.10.0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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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애국심과 현실 사이, 한인들의 딜레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서류미비자부터 영주권자까지 강경 반이민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민권 취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고향 그리움, 뿌리와 정체성, 조국 사랑’ 등 정서적 이유로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던 한인 영주권자들이 하나 둘 시민권 신청에 나서고 있다.   “시민권을 신청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선 비슷한 내적갈등이 엿보인다. 한국 등 여러 나라 교육기관이 저학년 때부터 애국심을 강조한다. 그만큼 국적을 포기하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굳이 애국심을 들이밀지 않아도 된다. 이역만리 조국과 연결된 ‘마음속 탯줄’이라는 끈을 유지하려는 마음과 애착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단일(單一) 국적주의, 시민권을 신청하는 한인이 비슷한 내적갈등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 국적법(제 15조, 외국 국적 취득에 따른 국적상실)상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그 외국 국적을 취득한 때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 쉽게 말해 나의 조국 한국은 자국민이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순간, 내 나라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LA총영사관 민원업무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2500~3800여 명이 자발적 국적상실 신고를 했다. 한국 법무부가 처리한 최근 5년 동안 국적상실 건수는 매년 2만1000~2만5000명에 이른다.   2023년 기준 재외동포는 약 708만 명(외국 국적자 461만 명)이다. 지난 한 세기 사연 많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결과물이다.   재외동포청이 지난해 다산경제연구원에 의뢰한 ‘재외동포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의 영향 분석’에 따르면 재외동포 응답자 90%가 ‘복수국적 신청연령에 해당한다면 신청하겠다’고 답했다. 복수국적 신청 이유로는 ‘한국에서 사업, 투자 등 경제활동을 위해서’가 36.5%로 가장 높았다. 한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 정부와 국민이 꼭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복수국적 허용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40세로 낮추면 한국은 연간 7조6967억원 소비증가 등 총 12조4853억 원(약 85억 달러)의 생산 효과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 정치권은 복수국적 허용연령 완화 어려움으로 국민정서(권리만 행사, 복지 예산 증가 및 일자리 경쟁)를 꼽았다. 21세기 글로벌 시대,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700만 명 이상의 해외 인적자산을 ‘집토끼’로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한인 1.5~2세들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재외동포의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로 인한 경제·문화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복수국적 허용은 세계적 추세”라며 “인력부족 현상을 국내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면 경제가 파탄 난다. 복수국적 허용 문제가 이민정책에 포함됐고 결단을 내릴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제19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도 “(일제강점기) 임시정부를 돕고 독립자금을 마련한 동포들의 뜨거운 애국심이 있었기에 빼앗긴 빛을 되찾았다”면서 “동포사회의 염원인 복수국적 연령 하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복수국적을 폭넓게 허용하며 인적자산을 활용한다. 복수국적 허용은 시대적 흐름이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정서를 핑계 삼아 미온적 자세를 고집하기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서생적 문제인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실천할 때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애국심 딜레마 복수국적 신청연령 외국 국적자 재외동포 복수국적

2025.10.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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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소셜 연금 고갈 위기, 노후 대책은

1930년대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은행은 줄줄이 파산했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농부들은 땅을 잃고 도시로 떠돌았고 도시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실직자들로 넘쳐났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노인이었다. 당시에는 연금제도가 없어 일자리를 잃으면 소득이 끊겼다. 가족에게 얹혀살거나 자선단체 무료 급식소에 줄서야 했고 일부는 빈민원이라 불리던 공공 수용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늙었다는 이유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분노가 커졌고 정치권에는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국가는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며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1935년 8월 14일 제정된 사회보장법이다. 이 법은 미역사상 처음으로 연방정부가 국민의 노후 소득을 체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제도였다. 근로자가 일할 때 세금을 조금씩 내고 은퇴 후 그 돈으로 연금을 받는 방식이었다. ‘일한 만큼 늙어서도 보장받는다’는 개념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이었다.   반대도 있었다. “정부가 개인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대공황의 상처는 너무 깊었다. 대다수 국민은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동의했고 소셜 연금은 결국 안착했다.   1940년 첫 번째 연금 수령자는 아이다 메이 풀러였다. 당시 65세였던 그는 월 22.54달러를 받았다. 이후 1975년 100세가 될 때까지 총 2만2888달러 이상을 수령했는데 평생 세금으로 낸 돈은 약 24달러에 불과했다. 그가 매달 받은 수표는 “정부가 나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후 소셜 연금은 세대를 넘어 미국 사회의 기둥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1970년대 인플레이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 제도는 흔들림 없이 작동했고 수많은 노인을 빈곤에서 지켜냈다.   그러나 90년이 지난 지금 소셜 연금은 다시 구조적 한계와 마주하고 있다. 평균 수명은 80세에 육박하고 은퇴 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퇴직자는 급격히 늘면서 사회보장국(SSA)은 2034년이면 신탁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약 24% 자동 삭감 전망이 나오면서 급여세 인상, 은퇴 연령 상향 검토 등도 거론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노인이 여전히 연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셜 연금은 원래 근로소득의 일부만 대체하는 기초 안전망으로 설계됐다. 최근 생활비가 오르면서 노후에 소셜연금만으로 살기 빠듯해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노후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저축을 꺼내 쓰거나 은퇴연금을 조기 인출하는 경우도 흔하다. 관세 인상 같은 외부 요인이 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면 은퇴자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현실은 은퇴 준비 방식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최근 50대 이후에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해 파트타임이나 컨설팅 형태로 소득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면 매달 받는 금액이 많이 늘어나므로 은퇴 시점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에 도움이 된다.   자산 운용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예금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기 어렵다. 배당주, 인덱스 펀드, 리츠(REITs) 등 장기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자산에 눈을 돌려야 한다.   소셜 연금은 여전히 든든한 기둥이다. 그러나 그 하나만으로는 집을 지탱하기 어렵다. 커리어를 재설계해 더 오래 일할 준비를 하고, 자산을 다각화해 추가 소득원을 만들며, 건강을 관리해 의료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90년 전 세운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연금 고갈까지 남은 시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준비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연금 소셜 노후 소득 그후 소셜 은퇴 시점

2025.09.3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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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매일 205번 보는 중독, 시니어도 위험

얼마 전 프리웨이에서 후방 추돌 사고를 당해 물리치료를 받게 됐다. 병원에 가니 허리나 목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각종 물리치료 기기에 누워 회복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들 열이면 열, 모두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목디스크나 거북목 치료를 받는 이들조차 누워서 조그마한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스마트폰은 이제 마치 우리 몸의 한 부분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처럼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현상’은 개인의 습관 차원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 실제로 각종 조사 자료를 들여다보면 그 심각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올해 실시된 디멘드세이지 등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Z세대는 하루 평균 6시간 37분, 밀레니얼 세대는 5시간 57분을 스마트폰에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X세대는 4시간 44분, 베이비부머도 3시간 38분을 사용한다. 이 가운데 Z세대의 경우 하루 스크린 사용시간이 9시간을 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05차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집계돼 지난해 대비 46.3%가 늘었으며 57%가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을 자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놀라운 것은 테크 소외계층으로 여겨졌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디지털 의존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딕션리소스가 최근 59~77세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비율이 무려 50%에 달했고, 절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식사 중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70%나 됐으며 40%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불안하거나 불편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상당수가 디지털 중독과 유사한 행동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확산하는 배경엔 스트리밍 서비스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는 스마트폰 중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업 닐슨의 지난 6월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유튜브 시청 시간이 2년 새 106% 급증해 모든 연령층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유튜브는 이제 시니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됐으며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뒤를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루 6시간 이상 스크린을 보는 성인은 우울증 위험이 크다며 오락적 사용은 하루 2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스마트폰 중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지하지 못하는 과다 사용이다. 스마트폰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면서도 그 과정이 즐겁고 유익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특히 틱톡이나 릴스처럼 짧은 영상은 끊임없이 뇌를 자극해 스크롤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스마트폰 중독 탈출법을 찾아보니 스마트폰을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를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한다. 앱별 사용 시간을 확인하고 일정 시간 이후에는 자동으로 잠금이 걸리도록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아날로그 활동을 늘리는 일이다. 산책, 독서, 운동, 명상처럼 ‘느림’에 기반한 활동은 디지털 자극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의도적으로 ‘디지털 금식’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안하겠지만, 점차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신박한 해답은 없는 듯하다. 중독이든 습관이든 결국 결정은 각자의 몫이다.     스마트폰은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도, 피폐하게도 만들 수 있는 ‘양날의 검’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순간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는지 그리고 그 기기가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때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시니어 중독 스마트폰 중독 디지털 중독 이상 스마트폰

2025.09.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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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아리랑축제, 방랑부터 끝내야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축제인 ‘아리랑축제’ 개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산됐다. 아리랑축제를 주최하는 OC한인축제재단(회장 정철승, 이하 재단) 측은 최근 장소 확보에 실패, 축제를 열지 못한다고 밝혔다.   축제 장소 문제는 재단의 해묵은 골칫거리다. LA한인축제라고 하면 한인들은 서울국제공원을 떠올린다. 반면, 아리랑축제는 매년 장소 선정 문제로 고민해야 하고 때로는 아예 축제를 열지 못하고 있다. 확실하게 고정된 개최 장소 없이는 축제가 방랑객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아리랑축제는 2022년엔 가든그로브의 US메트로뱅크 몰 주차장에서, 2023년엔 역시 가든그로브의 가든그로브 공원에서 열렸다.   사실 재단 측은 공원보다는 쇼핑몰에서 축제를 여는 걸 선호한다. 몰은 관람객 접근은 물론 부스와 무대 설치, 청소, 경비 등이 용이하다. 전기와 물을 사용하기에도 편리하다. 장소 사용 관련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공원에서 축제를 열면 불편하다. 몰의 장점을 뒤집으면 공원의 단점이 된다. 시에 지불해야 할 공원 사용료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재단은 몰에서 축제를 열지 못하게 되면 공원 개최를 대안으로 삼았다.   지난 2011년 축제가 US메트로뱅크 몰 주차장을 벗어나 가든그로브의 빌리지 그린 공원에서 열렸던 주요인은 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입점 업체가 한 곳이라도 있으면 시 당국이 개최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이듬해인 2012년 축제는 다시 US메트로뱅크 몰에서 열렸다.     이후 또다시 입점 업체들을 설득하다 지친 재단 측은 2013년엔 아예 가든그로브를 떠나 부에나파크의 매콤보 쇼핑센터에서 축제를 열었다. 2014년 축제는 부에나파크의 맬번길 비치~알론드라 길 사이 도로를 막은 채 거리 축제 형식으로 열렸다. 재단 측은 당시 축제의 성과에 크게 만족했지만, 도로 통제에 따른 주민들의 민원으로 이후 다시는 거리에서 축제를 열지 못했다.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해 2015년 축제를 건너뛴 재단은 2016년 축제를 부에나파크 시청 주차장에서 열었다. 부에나파크의 다른 장소에 비해 신통치 않은 결과를 거두자, 재단은 새 장소를 알아본 끝에 2017년 더 소스 몰에서 축제를 개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고무된 재단은 2018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축제를 열었다. 이제야 마땅한 장소를 구했나 싶었지만, 2019년 축제는 다시 가든그로브로 돌아왔다. 더 소스 몰의 입점 업체와 쇼핑객이 늘면서 대규모 축제를 여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14년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점부터 최선이 아니라 차선, 또는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재단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 아리랑축제를 매년 차질없이 개최하려면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최선의 장소를 찾고, 그곳에서 계속 축제를 열어야 한다. 방랑에 종지부를 찍어야 축제의 질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축제는 가든그로브와 부에나파크, 두 도시에서만 열렸다. 한인이 밀집 거주하는 다른 도시에서 축제를 여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마침 정철승 재단 회장도 “내년엔 풀러턴이나 어바인에서 축제를 여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축제의 질적 향상도 꾀하길 바란다. 매년 비슷한 축제란 평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베트남계 커뮤니티와 함께 마련한 2023년 축제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을 동원했지만, 소통의 문제와 한국 특산물 벤더, 한식 판매 부스의 매출 부진이란 문제점을 남겼다.   오랜 기간, 오렌지카운티 한인들이 즐겨온 아리랑축제가 화려하게 부활하길 바란다. 그 선결 과제는 축제 개최 장소를 확보하고, 그 자리에서 지속해서 축제를 여는 것이다. 재단의 분발을 기대한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아리랑축제 방랑 반면 아리랑축제 가든그로브 공원 축제 개최

2025.09.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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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총기, 자기방어 대비라는 모순

20년 전 인디애나주 미샤와카라는 소도시에서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접했다. 낯선 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호기심은 커졌고, 한국에서 체험할 수 없던 여러 경험은 짜릿했다. 소방관으로 일하던 어학원 한 호스트 가장은 소방서에 초대해 영화로만 보던 큰 소방차를 직접 설명해 줬다.   그 소방관에게 “당신도 총을 가지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미국인이라면 다들 총기를 소유하지고 있지 않느냐라는 의도의 질문에 소방관은 눈빛이 변했다. “나는 총을 소유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총이 자기방어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총기를 집에 둠으로써 발생할 위험이 더 크다.”   그때 소방관의 진지했던 눈빛과 표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총이 흔하게 나왔기 때문에 그 위험을 가볍게 여겼던 내 경박함이 창피했다. 그 후 기자로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취재하면서 그 소방관의 말뜻을 이해하게 됐다.   10여 년 전 가디나 한 아파트 2층 현관에는 핏자국과 함께 알 수 없는 유기물이 흩뿌려져 있었다. 현장에서는 한인 남편이 아내를 총격 살해하고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형적인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 사건이었다. 남편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미궁에 빠졌지만, 가정불화로 추정됐다. 현관의 유기물은 총상에 의한 뇌수였다. 총격 사건 현장의 처참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살해 후 자살은 비극 중에서도 비극이다. 단순 자살이 남은 가족에게 평생 가슴 아픈 트라우마를 안긴다면, 살해 후 자살은 커뮤니티까지 비통함에 빠지게 한다.     최근 한인사회에서 가족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다시 반복돼 우려를 키운다. 가해자의 공통점은 가장이면서 총기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는 ‘자살’을 정신건강이 나빠진 극단적 부작용으로 본다.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를 겪으면 삶을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감정 기복은 반복되고 급기야 자살행동을 촉발한다.   특히 총기는 정신건강이 불안정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무기라고 한다. 정신건강전문의 수잔 정 박사는 “사람도 감정(변연계)에 지배되는 포유동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생리학적으로 이성(전두엽)은 25세가 되어야 정립된다. 분노에 휩싸일 때 총기가 옆에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가정불화, 우울증 징후가 보인다면 총기는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정 박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가족은 때로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을 내 의지대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총기 소유는 멀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때로 자기방어를 이유로, 만일의 사태에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총구가 거꾸로 본인과 가족에게 향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할 정도로 이성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주변에 이를 솔직히 털어놓고, 전문가에게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비극을 막는 첫걸음이다.   총기 소지 위험을 미리 차단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캘리포니아주는 2016년부터 ‘총기 폭력 제한 명령(GVRO·Gun Violence Restraining Order)’을 시행 중이다. 누군가 정신건강이 불안정하고 총기 폭력 가능성까지 보일 경우 법집행기관에 도움을 요청해 해당 인물의 총기 구매·접근·소지를 금지할 수 있다. GVRO(reducetherisk.ca.gov 참조)는 가족, 동거인, 직장 동료, 고용주, 학교 관계자, 친밀한 파트너 등 우려 대상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자기방어 총기 총기 소유 총기 폭력 총기 구매

2025.09.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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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삼중고에 갇힌 주택 시장

주택시장이 심각한 불안정에 빠져 있다. 팬데믹 이후 급등한 주택가격과 고금리, 기후위기발 보험료 폭탄이 삼중고로 겹치면서 시장이 교착 상태로 얼어붙고 있다.   거래는 급감했지만 매물은 줄지 않고 셀러들은 가격 인하 대신 아예 매물을 거둬들이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 건설사들은 인센티브 경쟁에 몰두하며 단기 처방에 나서고 있다. 또, 주택소유주들은 폭등한 보험료를 감당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플랜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주택시장은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상실한 채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거래되지 않은 매물을 시장에서 아예 거둬들이는 ‘디스리스팅(dislisting)’은 올해 들어 38%나 증가했다. 전년 대비 무려 48% 늘어났다. 이는 셀러들이 “이 가격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마이애미의 경우 매물 100건 당 59건이 철회되는 극단적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역 경제와 주택 수요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자 단기적인 버티기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집은 결국 시장 교착을 심화시킬 뿐이고 수요자와 공급자의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더욱 벌어지게 한다.   신규 주택 건설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형 주택건설 업체 레나는 주택가격의 13% 이상을 인센티브로 제공했고 KB홈과 디알호튼 역시 비슷한 혜택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수요 위축을 가린 시간 벌기 전략에 불과하다. 가격 인하와 혜택 경쟁은 단기적 매출 유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건설사의 체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낳는다.   보험료 문제는 주택시장을 뒤흔드는 또 다른 변수다. 평균 주택보험료는 연간 30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네브래스카는 8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토네이도, 산불, 가뭄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위험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대형 보험사들은 아예 주택보험 시장에서 철수했고 많은 주택소유주가 고가의 공적 보험 대체상품인 페어플랜에 의존하고 있다. 집 소유가 더는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 잠재적 재앙의 책임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주택시장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혼란 속에 트럼프 행정부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국가 주택 비상사태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 몇 주 내로 주택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시행할 것임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기준금리를 1% 수준으로 낮출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공급 확대를 위해 인허가 절차 간소화와 표준화도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조치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금리 인하가 단기적으로 거래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공급 부족과 가격 왜곡, 보험료 폭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6.56%로 하락해 10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높은 집값 탓에 구매 여력은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지금의 주택시장은 셀러, 건설사, 보험사 모두 각자의 이해를 지키며 버티기에 몰두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교착은 내 집 장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단순한 금리가 아니다. 팬데믹 시기에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집값과 집값은 반드시 오른다는 착시가 시장 전반을 왜곡시켰다. 이제는 가격 현실화, 규제 개혁, 보험 시스템 재설계 없이는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주택시장은 주택가격을 고수하는 셀러, 무리한 인센티브 경쟁에 내몰린 건설사, 그리고 보험료 폭탄에 신음하는 주택소유주라는 삼중고에 빠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강수를 두더라도 근본적 해결책은 구조적 개혁과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집값 불패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주택시장의 불안정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삼중고 주택 결과 주택시장 주택보험 시장 평균 주택보험료

2025.09.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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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전기차 지금이 구매 적기인가

지인이 카톡으로 이렇게 물어왔다. “주변에서 많이들 전기차를 추천하는데, 지금이라도 전기차를 사는 게 맞을까요?”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프로그램 종료일이 이달 말로  다가오면서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가격이 급등한 신차 구매가 부담되는 소비자들에게 7500불 크레딧 혜택은 결코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기 때문이다.   매일 장거리 통근을 해야 해 개스비 부담을 줄이고 반자율주행 기능이 절실한 입장에서 필자 역시 더 늦기 전에 전기차로 갈아타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기에 이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성형 AI 서비스인 퍼플렉시티, 챗GPT, 제미나이를 활용해 2025년형 현대 쏘나타 개솔린 모델, 도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그리고 테슬라 모델3 후륜 구동(RWD) 전기차를 비교해 봤다.   각 차량의 신차 가격(MSRP), 연료·전기 비용, 정비·유지비, 자동차 보험료 등을 바탕으로 3년, 5년, 10년 기준 총 소유비용(TCO)을 집계해 분석한 결과를 요청했다. 신차 가격은 옵션 및 세금 미포함으로 LA지역 개솔린 가격과 전기 요금을 반영했으며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30대 운전자가 매일 50마일씩 주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했다. 조사 결과 신차 가격을 포함한 3년간 총 소유비용은 쏘나타가 4만4376달러로 가장 낮았고 캠리 하이브리드 4만4497달러, 테슬라 모델3는 5만3953달러 순이었다.   5년 기준에서는 하이브리드 연비 차이 탓에 캠리가 5만5595달러로 쏘나타 5만7360달러, 모델3 6만3395달러보다 저렴했다.   10년 기준에서도 캠리가 8만4790달러로 가장 우수했고 모델3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비 덕분에 8만7700달러로 쏘나타 8만8070달러를 제쳤다.   비교 모델 중 MSRP가 가장 저렴한 쏘나타는 3년/3만6000마일 오일 교환 등 무상 정비가 제공되며 보험료와 감가상각이 상대적으로 낮아 초기 비용이 부담되는 이들에게 실속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2년/2만5000마일 오일 교환이 제공되는 캠리 하이브리드도 갤런당 50마일 연비로 연료비가 저렴하고 감가상각도 쏘나타보다 낮아 장기 운용 시에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의 결과는 전기차 세액공제 7500달러를 테슬라 모델3에 적용해 다시 계산하면 달라진다.   3년간 총 소유비용은 모델3가 여전히 4만6453달러로 쏘나타나 캠리보다 2000달러 전후 높지만 5년 기준으로 하면 5만5895달러로 쏘나타보다 1500달러 가까이 낮아졌다. 10년 누적 비용에서는 8만200달러로 캠리, 쏘나타보다 4500달러에서 8000달러가량 저렴해져 3개 모델 중 가장 비용 효율이 높은 차가 된다.   이달 안에 모델3를 구매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전기차가 가장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정하기 전 한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조건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가 유지비와 연료비 면에서 유리하다고 알려졌지만, 높은 초기 차량 가격과 감가상각률, 상대적으로 비싼 보험료를 고려하면 총 소유비용은 가장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델3의 5년 감가상각은 신차 가격의 50%에 달하는 1만9995달러로 쏘나타(45%, 1만1993달러) 캠리(38%, 1만792달러)보다 훨씬 높아 이를 반영하면 총 소유비용이 최대 1만6400여 달러까지 증가할 수 있다.   자동차 구매는 단순히 수치로만 결정할 수 없다. 얼마나, 언제까지, 어떤 조건에서 탈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개솔린차가, 또 다른 이에게는 전기차가 정답일 수 있다.   지난달부터 업체들이 무이자 할부에 캐시백까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고 전기차 판매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구매 또는 리스 프로그램이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황인 만큼 전기차 구매가 유리한 경우라면 서둘러 발품을 팔아볼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전기차 구매 전기차 구매 신차 구매 테슬라 모델3

2025.09.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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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코리아타운 역풍’, 담대히 대처해야

부에나파크 시가 26일 코리아타운 프리웨이 표지판 제막식을 열었다.   H마트를 비롯한 한인 업소가 다수 입점한 ‘빌리지 서클 온 비치 몰’에서 열린 제막식엔 조이스 안 시장을 비롯한 시의원들과 시 스태프, 지역 정치인, 비즈니스 업주 등이 참석했다.   이날 제막식으로 시의회가 지난 2023년 9월 26일 한인 업소가 밀집한 비치 불러바드의 오렌지소프~로즈크랜스 애비뉴 구간을 코리아타운으로 공식 지정한 이후 코리아타운을 널리 알리기 위해 벌여온 일련의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시의회는 2023년 10월 10일 더 소스 몰 1층 광장에서 비치 불러바드와 오렌지소프 애비뉴 교차로 코리아타운 표지판 제막식을 열었다. 이달 들어선 비치 불러바드의 디지털 빌보드를 이용한 코리아타운 홍보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전속결식 행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부에나파크 코리아타운을 알리기 위해 시 측이 꾸준히 노력해온 것은 인정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부에나파크에 ‘코리아타운 역풍’도 불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의 세기가 강하진 않지만, 그 존재는 부인할 수 없다. 부에나파크에 오래 거주해온 타인종 주민, 특히 소도시 시절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이들 중엔 날로 팽창하는 ‘코리아타운’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이도 있다.   조이스 안 시장에 따르면 한 타인종 주민은 “부에나파크에 한인이 너무 많다”며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주민 각자가 코리아타운에 대해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불만을 가진 주민을 규합하고, 이들의 한인과 코리아타운에 대한 반감을 증폭하려는 세력과 구체적 움직임이 있는지다.   코리아타운 프리웨이 표지판 설치를 위해 4만5000여 달러를 지출하는 안은 지난 5월 시의회에서 찬성 3표, 반대 2표로 통과됐다. 시의회가 지정한 코리아타운을 널리 알리자는데 2명의 시의원이 반대한 것이다.   안 시장이 관할하는 1지구 내 우정의 공원에 정자를 건립하는 안도 역풍을 맞고 있다. 시 당국은 애초에 우정의 공원에 시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과 그 나라 도시 상징물을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심지어 시의원들은 샌피드로 우정의 종각을 둘러보고 이와 유사한 정자 건립을 검토했다.   안 시장은 정자 건립을 포함한 우정의 공원 개선 프로젝트에 관한 주민 공청회도 열었다. 그 결과, 다수 주민은 공원에 국제 친선의 상징물을 건립하는 데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소수에 그쳤다.   그런데도 정자 건립을 두고 한인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일부 주민이 있다. 부에나파크의 한 타인종 주민은 안 시장에게 “당신은 한인을 대변하는가, 1지구 주민을 대변하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과거 오렌지카운티의 한인 시의원들이 한인 사회 관련 사안을 처리할 때, 자주 듣던 말이다.   내년 말 4년인 시의원 임기를 마치는 안 시장은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선거에서 안 시장에게 도전하려는 후보가 선거 승리를 위해 코리아타운 역풍을 부추길 수 있다.   대개 어떤 일을 추진하든 역풍은 불게 마련이다. 역풍이 불까 두려워서 할 일을 안 할 순 없다. 담대하게 대처하며 바람이 세지지 않도록 관리해 결국 순풍이 역풍을 압도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부에나파크 한인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먼저 한인사회에 호의적이고 도움을 주는 이와 역풍을 악용 내지 조장하려는 세력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우호 세력은 돕고 한인사회에 적대적인 이들에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각성한 유권자의 몰표는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부에나파크 코리아타운의 미래는 한인들이 담대하고 의연하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코리아타운 역풍 코리아타운 역풍 코리아타운 프리웨이 코리아타운 홍보

2025.08.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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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다음 타깃은 아시아계

70대 한인 노부부가 26년간의 LA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더 이상 미국에서 살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딸은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 부모의 사연을 공개하며 “아버지가 생계의 주수입원이었던 긱 드라이버(배달·차량 호출 등 단기 계약 운전) 일을 잃은 뒤 생활이 막막해졌고, 수개월 실직 끝에 귀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혹한 이민정책은 갈수록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미국을 떠난 불법체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추산이 나온다. 그 중 25만여 명은 강제추방, 나머지 75만 명은 불안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짐을 싸서 떠난 사람들이다. 한인 노부부의 선택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주목할 점은, 단속이 더 이상 중범죄자 불법체류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선거 유세에서 “불체자 1100만 명을 모두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출범 초기 행정부는 “중범자 불체자를 추방한다”고 발표했으나, 최근에는 “불법체류 자체가 범죄”라며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인 추방을 대놓고 강행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불체자는 멕시코 출신이 약 400만 명, 멕시코 외 중남미 출신이 216만 명에 달한다. 최근 단속이 라틴계 커뮤니티에 집중된 이유다. 하지만 아시아 출신 불체자도 약 100만 명에 이르고, 그 중 한국 출신은 17만3000 명으로 추정된다. 라틴계에 대한 대규모 단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 다음 차례가 아시아계가 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단속의 방식은 공포전략 그 자체다. 연방법원이 “인종·언어·직종·장소에 근거한 단속(인종 프로파일링)은 위헌”이라며 중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민단속국(ICE)은 홈디포 주차장, 세차장 등을 기습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라틴계 커뮤니티 길거리를 순찰하다가 불체자로 의심되면 바로 체포하는 ‘로빙 패트롤(Roving patrol)’도 등장했다. 심지어 이민법원 복도까지 들이닥쳐 불심검문하고 서류미비자들을 마구 체포한다. 체류 심사를 받으러 이민법원에 출두한 서류미비자들을 기습 체포하는 ‘코트 앰부쉬(Court ambush)’는 이제 낯설지 않은 장면이 되었다.   지난달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은 18세 이상 외국인은 영주권 카드나 외국인 합법체류 신분 증명서를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고 재차 공지했다. 이민 및 국적법 ‘INA 264(d)’에 따르면 영주권 미소지는 경범죄로 간주된다. 위반 시 최대 100달러 벌금, 30일 이하의 구금, 또는 두 가지 처벌이 동시에 부과될 수 있다. 사실상 불심검문을 예고한 것이다. 영주권 소지 의무는 오랫동안 사문화된 규정이었으나, 이를 다시 꺼내든 것은 길거리 단속을 합법화하려는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경범죄”라는 딱지를 붙여 위법 근거를 확보하고, 추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공포전략이 특정 인종·언어·직종·지역을 대상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라틴계 일용직 노동자가 몰리는 홈디포 주차장 단속이 단적인 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시아계가 밀집해 사는 지역이나 일터가 차기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중범죄자만 추방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트럼프의 공약은 “모두 추방”이었다. 다음은 공포의 칼끝이 아시아계로 향할 차례일 수 있다. 아시아 출신 불체자를 단속한다는 빌미로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로빙 패트롤’하고 불심검문할 수 있다.   한인사회는 대비해야 한다. 이민자 권익을 지키는 단체들과 손잡고, 인종 프로파일링과 무차별 단속에 맞서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포가 공동체를 침묵하게 만들 때, 역설적으로 무차별 단속은 더욱 쉬워진다. 아시아계 커뮤니티에서 불심검문이 일상이 되는 날이 올까 두렵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아시아계 타깃 라틴계 커뮤니티 대규모 단속 멕시코 출신

2025.08.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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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주빈국 한국이 들러리 된 축제

많은 소수계가 운집해 살고 있는 LA는 말 그대로 ‘끓는 솥(melting pot)’처럼 다양한 취향과 문화, 가치관이 뒤섞인 곳이다. 그래서 재미있고 신기한 곳이다.   때로는 공통분모에 협력하고, 종종 다른 생각과 접근으로 대치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다만 경험과 지혜를 동원해 서로를 잘 알리고, 갈등은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주 만나고, 보고, 부대끼는 것 아닌가.   남가주에서 이민 생활이 익어가면서 시청과 카운티 등 각급 기관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노라면 많은 소수계 커뮤니티가 적잖은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고 자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고 겪게 된다.   지난 7월12일 LA시 부서인 공원국 주관으로 LA 연꽃 축제(Lotus Festival)가 열렸다. 이 행사는 LA 다운타운 인근의 수많은 가족과 청소년들이 매년 방문해 즐기는 오래된 축제다.     중앙 무대에서는 30여 개 팀이 공연을 펼쳤는데 한국 관련 공연은 2~3팀이 전부였다. 물론 주빈국이 한국이라서 LA 문화원이 오프닝 행사 90분을 촘촘히 꾸몄다. 적잖은 돈과 노력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다. 많은 청소년과 공연팀들이 더운 날씨에 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12~13일 이틀 동안 중앙 무대에서는 어떤 공연들이 있었을까. 대부분은 중국계와 일본계, 태국과 필리핀계 공연이  중심축이 됐다.   꼭 무대 위 공연 숫자가 많아야만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주빈국이 한국이라는 생각을 하고 축제 현장을 찾은 시민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축제가 됐을 것이다. 시에서 매년 수십만 달러의 예산으로 마련하는 축제에 주빈국으로 초대되어도 정작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이다.     준비로 밤을 지새웠을 문화원 관계자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문화 공연에서 우리 커뮤니티의 역량이 더 커지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역시 시 정부가 지원하는 ‘다인(Dine) LA’에도 비슷한 생각이 남는다. 7월 25일부터 8월 8일까지 총 2주 동안 진행된 이 이벤트는 시민들이 더욱 다양한 외식을 통해 음식 문화를 알아가고 경기 활성화에도 일조한다는 것이 취지였다. 800여 개 참가 업체 중 한인 업체는 5~6곳에 불과했다. 참가비도 1000달러가량 내야 하고, 메뉴도 개발하고 자체 홍보도 해야 하니 일이 많아진다. 요즘처럼 직원들 쓰기도 힘든 시기에 번거롭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개별 업소가 각개전투식으로 참가한다면 힘겨울 수 있지만, 요식업 단체나 상공회의소에서 공동으로 준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한식 업소들이 따로 주제를 정하고 요일별로 각종 특색있는 한식을 맛보도록 지도도 만들고 필요한 공간에 안내한다면 어떨까. 참가 한인 업소들에 관련 내용을 한글과 영어로 홍보하는 전단도 만들어 배포하면 어떨까. 여기에 맞춰 한인 단체들과 모임들이 나서서 도움을 준다면 더 업계가 풍성하게 다인 LA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월드컵과 올림픽도 다가오고, 결국 더 많은 시민이 한식을 맛보고 즐길 기회인데 매년 우리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인사회가 우리 스스로 낸 세금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 정부가 관내 비즈니스에 주는 혜택이라면 반드시 누릴 수 있어야 맞지 않나.   결국 이런 노력은 기관들에도 한인사회가 매우 부지런하고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줄 것이며, 우리 2세들에게도 긍정적인 이미지로 돌아올 것이다. 최인성 / 경제부 부국장중앙칼럼 주빈국 들러리 축제 현장 문화 공연 문화원 관계자들

2025.08.1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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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시험대 오른 캘리포니아 드림

1960년대 더 마마스 앤 더 파파스의 히트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은 캘리포니아를 자유와 번영, 기회의 땅으로 노래했다.   추운 겨울 회색빛 도시에서 캘리포니아의 햇빛과 온화한 기후를 그리워하는 가사 속에는 현실을 넘어 더 나은 삶을 향한 보편적 열망이 담겨 있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의 서부 버전으로서 캘리포니아가 가진 상징성을 보여준다.   19세기 골드러시와 20세기 서부로 이주는 종종 문학에서 유토피아를 향한 끝없는 이동으로 묘사된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도 캘리포니아 드림의 연장선에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 속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그려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캘리포니아 드림은 새로운 시험대에 서 있다. 최근 몇 년간 테슬라, 오라클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이 텍사스,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으로 본사와 생산시설을 이전하고 있다. 8.84%의 높은 법인세, 전국 최고 수준인 13.3%의 소득세, 복잡한 환경·노동 규제가 기업 운영비를 크게 높이고 있는 영향이다.   가주민의 탈 캘리포니아도 심화하고 있다. 2023년 7월~2024년 7월 기준 인구 손실은 약 23만9600명이다. 높은 주택 비용 및 생활비, 세금 부담, 복잡한 규제, 원격 근무 확산 등이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이유다.   특히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생활비는 인재 유입을 제한하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이는 투자 위축, 고용 감소, 세수 축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디스인베스트먼트(disinvestment)’로 규정하며 캘리포니아의 장기적 경쟁력 약화를 경고하고 나섰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해 올해 캘리포니아는 자본 이득세, 법인세, 소득세 등 예산 수입 감소로 최소 100억~160억 달러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으로 다가온 2026년 월드컵과 2028년 LA 올림픽은 캘리포니아 경제에 새로운 모멘텀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월드컵 개최만으로도 12억 달러 규모의 경제 효과, LA카운티에서만 5억9400만 달러의 부가가치, 3억 달러 이상의 임금 증가와 세수 5000만 달러를 예상한다.   올림픽은 110억 달러 규모의 경제 파급 효과, 7만~8만 개의 일자리 창출, 대규모 인프라 개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하철 확장, 도심 재개발 등은 장기적으로 지역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단기 소비 중심으로 예산 초과, 일부 산업에 혜택 집중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또한 호텔노동자 임금 인상 조례와 같은 정책은 고용의 질은 보장하지만 숙박업체 운영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월드컵과 올림픽이 일시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는 있지만, 기술·제조업 등 캘리포니아 핵심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다. 대형 이벤트의 효과가 지속해서 지역경제에 기여하려면 ‘스포츠 레거시’ 전략이 필요하다.   대형 스포츠 행사 이후에도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소기업 참여를 확대해 혜택이 특정 대기업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설계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기업 유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법인세 및 규제 완화나 인력 유입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생활비 안정화가 필수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 드림이 희망과 낙관의 상징이었다면, 2025년의 캘리포니아는 이 꿈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시험대에 서 있다. 기업 친화적 환경과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없이는 ‘골든 스테이트’의 경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캘리포니아 시험대 캘리포니아 드림 현재 캘리포니아 올해 캘리포니아

2025.08.0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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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LA총영사관의 낡은 ‘K광고’ 바꿔야

LA 한인타운 윌셔 불러바드와 버몬트 애비뉴가 만나는 교차로. 늘 북적이는 이 거리에는 최근 K컬처 열풍을 반영하듯 다양한 한국 관련 광고물들이 걸려 있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의 거리 포스터가 담벼락을 가득 메우고, 그 위로는 진로 소주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콜라보 광고판이 지나가는 차량과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뒤편 LA총영사관 건물 상단에는 ‘Imagine your Korea’라는 문구가 새겨진 한국 관광 옥외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한인타운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던 사진들을 찾아보니 지난 2021년 7월에도 현재 홍보물과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최소 4년 이상 된 이 옥외 광고판은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볕 탓에 색이 바랬고 일부는 늘어지며 벗겨져 위태롭게 흘러내리고 있다. 한인타운의 최신 문화 콘텐츠 홍보물들과 대비돼 더 초라해 보인다.   지난 주말 열린 K콘이 성황을 이루는 등 K-팝은 물론, K-드라마, K-뷰티, 한식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케데헌에 나온 주제곡들이 빌보드 상위권에 오르고, 한국 관광 명예홍보대사 박보검이 출연한 ‘Imagine your Korea’ 유튜브 영상은 공개 일주일 만에 수천만 뷰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 수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작 ‘K타운’ 중심부이자 총영사관 건물에 설치된 한국 관광 홍보물이 흉물로 방치돼 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한국관광공사 LA지사에 문의한 결과 “훼손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해당 옥외 광고판의 관할권은 총영사관이 가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관광공사 측은 지난 4월 총영사관 측에 옥외 광고판용 최신 한국 관광 이미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예산 관련 이슈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예산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K열풍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가 걸린 문제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대형 디지털 광고를 내보내며 한국 관광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유명 제작자들을 투입해 한국 홍보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로 알리는 정성과 투자 지원에 비하면 LA 한복판, 그것도 ‘한류의 전초기지’인 K타운의 상황은 소극적이고 무책임해 보인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발상을 전환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패널 가격이 4년 전에 비하면 크게 낮아졌고, 시청각 효과도 뛰어나 광고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총영사관이 해당 옥외 광고판을 개보수하면서 디지털 광고판으로 업그레이드한다면, 관광공사의 영상 콘텐츠는 물론 넷플릭스·진로와 같은 민간 기업과 협업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산 확보와 LA시의 승인을 받아낼 수 있다면 수년째 낡고 해진 아날로그 빌보드를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 광고판은 단순한 홍보용이 아니다. 현지인은 물론 LA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 한류 팬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첫인상’이자 ‘문화의 창’이다.   축 늘어진 빛바랜 ‘Imagine your Korea’ 홍보물을 내걸고 ‘당신의 한국을 상상해 보라’고 하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연 이 모습이 지금 우리가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한국의 이미지일까.   총영사관과 관광공사는 예산, 관할권 탓만 하지 말고 공조에 나서 국익과 직결되는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한국 문화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절호의 시기에 작지만, 상징적인 이 광고판부터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낡고 해진 광고판을 걷어내고 ‘세계 혁신국가 1위’ 한국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디지털 창을 LA 한인타운 중심에 내걸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박낙희 경제부장중앙칼럼 la총영사관 광고 옥외 광고판용 한국관광공사 la지사 이매진 코리아 박낙희 한국 관광 Imagine your Korea LA

2025.08.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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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LA 불체 단속, 양면 다 봐야

천사의 도시가 위축되고 있다. 불법 체류자 단속 탓이다. 토드 라이언스 ICE 국장 대행은 최근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LA에 머물겠다고 했다.   정가의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올린다. 크리스틴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LA를 ‘mayhem(대혼란)’이란 단어에 빗댔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놈 장관에게 ‘거짓말쟁이’라며 맞받아쳤다.   LA타임스는 이러한 현실을 치고받는 싸움에 비유했다. 선과 악은 평소 논조대로 나뉜다. 묘사는 교묘하게 편향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마치 괴롭힘을 즐기기라도 하듯 LA를 겨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스 시장이 ‘(트럼프의) 주먹을 피하고 잽과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배스 시장은 단속 대상인 불체자를 “거리에서 납치되고, 주차장을 내달리며 쫓기는 이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이라고 말했다. 왼쪽으로 급격히 기운 LA에서는 이민 당국의 법 집행 행위가 마치 ‘게슈타포(Gestapo)’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다. 주지의 사실이다.   대체로 좌편향적인 주류 언론의 전반적인 보도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사안을 단면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 다른 면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입체적으로 보는 게 쉽지 않은 곳이 LA 아닌가.   이례적이다. 요즘 국토안보부(DHS)는 언론들의 기사를 정기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미디어가 잘 보도하지 않는 긍정적 결과도 알리고 있다.     독자에게 다른 면도 전달해야 하는 건 언론의 의무 중 하나다. 양면을 모두 전달하는 미디어가 드물다. 독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라도 몇 가지를 소개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CNN이 ‘체포된 이민자 중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민자는 10% 미만’(6월 16일)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당국은 ‘체포자 중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기소가 진행 중인 불체자는 70%’라며 이러한 보도 내용을 바로잡았다. 같은 날 가디언은 ‘인종 프로파일링, ICE는 LA에서 시민권자도 구금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DHS 측은 ‘피부색 때문에 법 집행 기관의 표적이 됐다는 주장은 역겹고 명백한 거짓말이다. 시민이 체포되는 이유는 법 집행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사실을 바로잡았다. 불법 체류가 이민법상 엄연히 위법임을 차치하더라도 ICE, DHS 등의 체포자 목록을 보면 강간, 소아성애, 살인, 마약, 중범 폭행 등 중범죄자가 수두룩하다.   유독 LA에서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단속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논평을 냈다.   빌 에세일리 연방 검사는 “피난처 도시법 때문에 법 집행 시 제약을 받는다”고 했다. 타주에서는 ICE 요원들이 각 카운티 구치소의 정보 등을 통해 직접 이민 신분을 심사할 수 있지만, 가주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밟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종종 범죄 전력이 없는 불체자도 체포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했다.   DHS 측은 급습시 충분한 수사 자료를 근거로 누구를 체포할지 이미 파악하고,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즉, 법적으로 이미 근거를 갖고 진행하는 단속이기 때문에 이를 방해할 경우 체포나 구금 등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상반기 전국 주요 30개 도시의 살인 사건(17%), 총기 폭행(21%), 성폭행·가중 폭행(10%), 차량 강탈(24%) 등 범죄 감소 ▶보호자 없이 국경을 넘은 아동 중 성매매 또는 밀수업자가 데리고 있던 아동 1만3000여 명 구출 ▶불법 월경 사례 93% 감소 ▶상반기 마약 압수량이 지난 한해 총량보다 많다는 점도 알렸다.   당국의 법집행을 막무가내식 단속으로 왜곡하고 특정 사례를 침소봉대하는 건 대중을 폭력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선동 행위일 뿐이다. 당국이 민주당 정치인들을 향해 “시민보다 범죄를 저지른 불체자를 미화하고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 되묻는 이유다.   당국의 항변이라 신뢰할 수 없는가. 같은 논리라면 주류 언론의 보도 내용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제대로 들려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는 시대다. 이념에 맞지 않아도 양면을 다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최소한 확증 편향을 피할 수 있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불체 단속 체포자 목록 이민 당국 배스 시장

2025.08.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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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나이를 잊은 ‘호모 에루디티오’

인간의 본질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 중 라틴어 ‘호모 에루디티오(Homo Eruditio)’가 있다. ‘배우는 인간’ 또는 ‘학습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능력과 욕구를 지닌 인간의 특징을 강조한 말이다.   호모 에루디티오의 특성을 잘 표현한 말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알려진 말인데,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딱히 알려진바 없다.   인간의 특징을 이처럼 잘 드러낸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사람은 태어나 숨을 다할 때까지 끝없이 뭔가를 배운다. 배우는 것을 아무리 싫어해도 부단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려면 새로운 정보를 머리에 입력해야 한다. 심지어 가만히 앉아 뉴스만 봐도 세상 돌아가는 걸 배우게 되고,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서도 뭔가를 깨닫게 된다. 좋든 싫든 배움은 사람의 숙명이다.   요즘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에선 시니어로 분류되는 호모 에루디티오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은퇴 후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시니어들은 때로는 놀이와 유희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된다. 창의성과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는 ‘호모 크레아투라(Homo Creatura)’가 되는 이도 있다.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유형의 기저엔 호모 에루디티오가 있다. 어떤 활동이든 새로운 걸 배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호모 에루디티오적 특징이 특히 시니어 집단에서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한인 교회들은 시니어 대학을 운영하며 음악, 미술, 영어, 컴퓨터와 스마트폰, 성경 공부 등 다양한 강좌를 제공한다. 한인 단체들도 시니어가 관심을 가질 법한 각종 세미나, 워크숍을 열고 있다.   마라톤, 배드민턴, 탁구, 라인댄스 동호회, 시와 수필 작법을 배우는 문학 동호회, 함께 노래하며 친목도 다지는 합창단 등도 은퇴한 시니어들을 주축으로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 각 분야 이슈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모임인 OC시사토론회는 시니어들의 호모 에루디티오적 특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주제의 포럼 시리즈를 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엔 ‘한국 근, 현대사 쟁점’이란 주제의 포럼 시리즈를 열었다. 8회에 걸쳐 진행된 포럼은 ‘조선은 안 망할 수 있었는가’, ‘독립운동은 효과가 있었는가’, ‘종교는 한국을 구원할 것인가’ 등 흔히 접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뤘다.   OC시사토론회는 지난 10일부터 ‘미래를 여는 창: 신생 기술’ 포럼 시리즈를 시작했다. 총 11회 열릴 포럼 주제엔 ‘양자 컴퓨팅과 양자 암호’, ‘블록체인’, ‘뇌-기계 연결과 뉴로테크’ 등 우리의 미래를 바꿔놓을 신기술이 대거 포함됐다.   서명룡 OC시사토론회 대표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통찰력을 기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적합할 만한 주제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이란 주제가 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신기술이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보이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OC시사토론회의 사례는 호모 에루디티오의 관심 분야가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를 잊고 배움에 몰두하는 호모 에루디티오들의 활동은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행복한 노년 생활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부각된 치매,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는 데 새로운 것을 배우며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하기 때문이다.   배워서 즐겁고 건강에도 좋다는데 호모 에루디티오로 사는 걸 마다할 이유도 없다. 공자도 2500여 년 전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했다. 나이를 잊고 배움에 몰두하는 호모 에루디티오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나이 호모 호모 루덴스 포럼 시리즈 시니어 집단

2025.07.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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