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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스틸 대사 지명자에 거는 기대

지난해 3월 큰 행사에 갔다가 누군가에게 꼬집힌 적이 있다. 막역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럴 이유가 있었나 보다.     외교 분야의 전·현직 인사들과 한인 정치인, 기업인들이 모인 이 행사에서 가장 큰 화두는 미셸 박 스틸 전 의원의 주한미국대사 하마평이었다. 스틸 전 의원이 대사에 지명된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하마평도 현실화에 큰 동력이 된 듯하다.     스틸 지명자가 참석했던 이 날 칵테일 모임에서도 그의 거취는 대화 소재로 급부상했다. 모두 “스틸 대사님, 서울 언제 가시나요?” “가족은 함께 가시나요?” 등의 인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스틸 전 의원은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너무 크게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 오히려 좋지 않아서, 조용히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최고입니다”라며 난처해 했다.   그룹 대화에 늦게 들어갔던 기자가 “한국 정부에 대한 코멘트도 곧 하시겠네요?”하고 농담을 건네자 짓궂다는 듯 스틸 지명자가 팔을 꼬집은 것이다.     그의 주한미대사 임명설은 2024년 11월 연방 하원의원 낙선 직후부터 나왔다.  300여 표 차이의 석패였던데다 연방하원에서 활동하던 한인 여성의원 트리오 중 한명이어서 한인 사회 안팎으로 아쉬움이 컸던 시기였다.   트럼프 정부는 공석 상태였던 주한미대사 자리를 대행 체제로 유지하다가 1년여 만에 스틸 전 의원을 지난주 공식 지명했다.  당연히 한인 사회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인사는 상징성과 현실 정치가 교차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이력을 자세히 보면 쉽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캘리포니아 조세형평위원회 위원과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를 거쳐 2020년 연방 하원에 당선됐으며, 2022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2024년 낙선으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과 국정 철학의 공유가 그를 주한 미 대사로 소환한 것이다.     그는 한인 사회에서 보면 ‘first of many(많은 것들을 처음으로 해낸 이)’ 인물로 기록된다. 1세 한인으로서의 공직들도 그렇고 이번 대사직도 마찬가지다.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그는 성 김 전 대사에 이어 두 번째 한인 주한미대사가 된다. 특히 한인 1세로서, 여성으로서 최초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크다.   축하 속에는 일부 걱정도 있는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접한 정치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일방적 외교 기조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그의 지명은 중국, 북한 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정책 메시지를 한국에 보다 명확히 전달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시에 정치 환경과 외교 현안이 복잡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그의 인준을 외교적 부담 요인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틸 지명자의 ‘한국적 배경’은 한국을 잘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대사의 역할은 특정 민족이나 배경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친한국적 입장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한미동맹의 강화와 양국 간의 이해를 돕는 몫의 일부는 이제 스틸 지명자의 것이다. 한인 사회도 분명히 기억할 것은 그가 미국 정부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며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리라는 것이다. 미국 이익의 확대가 그의 활동의 핵심이어야 한인 사회도 함께 빛날 것이다.     그의 다음 행보에서도 많은 ‘처음들’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최인성 / 경제부 국장중앙칼럼 지명자 스틸 스틸 지명자 스틸 대사님 주한미대사 임명설

2026.04.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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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다시 불붙은 미성년자 ‘전환치료’ 논쟁

고등학생 A 군은 상담사를 찾았다. 같은 성의 친구에게 끌리는 감정으로 혼란을 겪던 그는 신앙적 이유로 이러한 감정을 바꾸고 싶다고 털어놨다. 반면 B양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본인이 태어났을 때와 다른 성으로 살고 싶은 것인지 상담을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바꾸거나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상담치료를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라고 한다. 동성애나 양성애를 이성애로 바꾸거나, 성 정체성을 출생 당시 성별에 맞추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캘리포니아는 2012년 전국 최초로 전환치료를 금지했다. 당시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서명한 법에 따라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가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전환치료를 시행할 경우 징계를 받는다. 해당 치료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청소년의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다.   미국심리학회, 미국의사협회등 주요 의료 단체도 같은 입장이다. 전환치료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으며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연방 대법원이 전환치료 금지법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논쟁이 불붙고 있다. 지난달 연방 대법원은 콜로라도주의 전환치료 금지법과 관련 상담 내용에 대한 제한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수 의견을 작성한 닐 고서치 대법관은 해당 법을 관점에 따른 검열로 규정했다. 상담실에서 이뤄지는 대화라 하더라도 특정 방향의 상담은 허용하면서 다른 관점의 대화를 금지하는 것은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전환치료의 타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상담이라는 행위가 ‘말’로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그 말을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공중보건이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특정 관점을 억압하는 방식이라면 표현의 자유 침해가 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이 소송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기독교 상담사가 제기했다. 원고 측은 신앙과 가치관에 기반을 둔 상담 요청까지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콜로라도주는 전환치료가 비과학적이고 해롭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법관 다수는 대화 중심의 상담 치료 특성상 이를 특정 방향으로 제한하는 것은 표현 규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유사한 법을 시행 중인 주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약 20여 개 주가 전환치료를 금지하고 있다.   전환치료 금지법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의 충돌이다. 상담은 본질에서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특정 방향의 상담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상 허용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연방 법원의 판단도 엇갈린다. 제9 연방항소법원은 캘리포니아 법을 의료 행위 규제로 판단했다. 반면 제11 연방항소법원은 상담을 표현 행위로 보고 일부 금지법의 시행 중지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아직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이번 연방 대법원의 판단은 향후 관련 소송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캘리포니아의 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전문가의 전환치료는 여전히 금지되며 위반 시 면허 정지나 박탈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종교적 상담이나 비전문가의 조언은 직접규제 대상은 아니다.   이번 논쟁은 학부모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녀가 성 정체성 문제로 상담을 원할 경우 어떤 상담이 가능한지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관련 판례와 입법 방향에 따라 상담의 범위와 기준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은영/사회부 부장중앙칼럼 미성년자 전환치료 전환치료 금지법 기독교 상담사 관련 상담

2026.04.1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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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햄버거 값이 된 단팥빵

양식을 좋아한 어머니 영향으로 어린 시절 아침 식사는 늘 버터와 치즈, 햄을 곁들인 모닝롤이나 토스트 같은 빵이었다. 맵고 짠 음식을 잘 먹지 못했던 터라 빵은 입맛에도 맞고 부드러운 식감까지 갖춘 최고의 음식 중 하나였다. 식빵이나 호빵 한 봉지를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는 일이 잦아 ‘빵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 입맛 덕분에 미국에 와서도 음식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햄버거도 좋아해 한 달 내내 매일 먹은 적도 있다.   농무부와 시장조사 기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90% 이상이 매일 어떤 형태로든 빵을 소비하며 1인당 연간 평균 44~55파운드의 빵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켓 선반에서 판매되는 양산빵부터 베이커리에서 구워 파는 바게트와 베이글,샤워도우까지 종류만 해도 수천 가지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식 빵에 익숙했던 내게 미국 빵은 식감이 거칠고 맛도 다소 짜게 느껴졌다. 대안으로 찾은 것이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의 니지야 마켓이나 샌호세의 미츠와 마켓에서 판매하는 일본식 빵이었다. 다만 미국 빵에 비해 가격 부담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국 브랜드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2004년 LA에 각각 1호점을 열며 K베이커리의 미국 진출이 시작됐다. 당시 단팥빵과 소보로빵 가격은 개당 1~1.25달러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켓 선반에서 파는 양산빵보다는 고급스럽고, 전문 베이커리보다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K베이커리가 내세운 합리적 프리미엄 전략과 1달러 가격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만들었다.     결국 K베이커리가 미국 시장의 문턱을 넘는 데 1달러짜리 단팥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부드러운 식감과 세련된 비주얼, 셀프 서빙 시스템 등을 앞세운 K베이커리는 K팝과 K드라마 등 한류 확산에 힘입어 인지도를 높이며 매장 확대와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외식시장 조사기관 테크노믹이 발표한 ‘2025 체인 레스토랑 톱 500’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바게뜨는 매장 수 197개에서 총 4억6200만 달러 매출을 올리며 전국 체인 레스토랑 순위 112위를 기록했다. K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다. 뚜레쥬르 역시 150개 매장에서 총 2억2000만 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195위에 올랐다. 두 브랜드 매출을 합치면 6억8200만 달러 규모다. K베이커리가 미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성장의 이면에는 가격 인상도 있었다. 단팥빵을 예로 들면 지난달 기준 개당 3.39달러니 약 20여 년 만에 가격이 239% 오른 셈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CPI) 누적 상승률은 약 73% 수준이다. 빵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3배를 훌쩍 넘은 것이다.   30달러대였던 케이크도 이제는 40~50달러까지 올랐다. 인상폭이 최소 33%, 많게는 67%다. 우리 집은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50달러짜리 생일 케이크를 사도 절반 이상이 냉장고에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가격 부담이 덜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대체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별한 날이라고는 하지만 먹지도 않는 케이크에 50달러를 쓰는 일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한국에서 두 베이커리가 이달부터 빵과 케이크 가격을 최대 1만원까지 내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고물가로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혹시 비슷한 조치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양사는 미국 시장의 사업 환경과 원가 구조, 가맹 사업 구조가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가격 인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정부 주도의 물가 안정 정책이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 빵을 좋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양사 전체 매출의 약 34%에 달하는 연간 1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미국에서 올리는 상황에서, 상징적인 수준이라도 가격 인하를 검토했다면 ‘역차별’이라는 느낌이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1달러 하던 단팥빵이 이제는 인앤아웃 햄버거 가격과 비슷해졌다. 물론 개인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가격이라면 고기 패티와 신선한 양상추, 토마토, 양파를 품은 햄버거가 소비자들에게 더 가성비 있는 선택으로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의 지갑이 언제까지 단팥빵에 열려 있을지, K베이커리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박낙희 경제부장중앙칼럼 햄버거 단팥빵 1달러짜리 단팥빵 당시 단팥빵 전문 베이커리

2026.04.12.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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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집단 접종, 그때 우리는 무엇을 믿었나

팬데믹 때였다.     동료 기자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LA 한인타운의 한 유명 한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신 접종 카드부터 보여주세요.”     비접종자라고 말하자 식당 주인은 “나가달라”며 서비스를 거부했다.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당시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눈총도 받아야 했다. 접종자들끼리 들릴 듯 말 듯 비접종을 이기적인 행위라며 한동안 수군거리기도 했다. 비접종이 해고 사유가 된다는 뉴스도 넘쳐났다. 그때마다 그런 광경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강제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다. 접종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문제 아닌가.   코로나 백신의 경우 급조되다 보니 임상 데이터가 부족했다. 그런 백신을 ‘긴급사용 승인’이라는 명목 아래 집단 접종을 강요하는 데 반감이 들었다.   전체주의적 발상이 팽배해지자 사고는 서서히 이분화됐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깡그리 무시됐고, 사회적으로 백신 접종만이 마치 유일한 이타적 행위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런 백신을 신생아를 비롯한 아동들에게까지 일괄적으로 접종하려는 행태를 보면서, 팬데믹 사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비접종을 당당하게 선택했던 이유다.   뒤돌아보면 코로나 시대의 백신 접종 정책은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정부도, 언론도 처음에는 “두 번만 맞으면 된다”고 했다. 군말 없이 팔만 내밀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급기야 브랜드가 다른 백신을 교차 접종하면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전례 없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백신을 섞어 맞기도했다. 이후에는 부스터샷을 맞기도 전에 4차, 5차, 그 이상까지 접종을 종용받았다.   백신 접종의 당위성이 사회 전반을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여러 의료 전문가들이 코로나 백신의 위험성을 지적했고,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논문들도 발표됐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검열되고 통제됐다.   당시 취재를 위해 코로나 백신을 승인한 식품의약국(FDA)과 접종을 권고한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90년부터 공동으로 운영 중인 백신부작용보고시스템(이하 VAERS) 자료를 살펴봤다. VAERS는 당시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한 누적 데이터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90년 이후 다른 모든 백신과 관련한 사망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세 배 이상 많다.’     VAERS가 당시 코로나 백신 데이터에 대해서만 이례적으로 빨간 글씨로 명시한 문구였다.   그렇다면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 들여다봤다. 연방정부는 일반적으로 백신 부작용 피해자를 위해 ‘VICP(백신상해보상프로그램)’와 ‘CICP(피해보상대책프로그램)’를 시행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국가가 먼저 부작용에 대해 보상하는 VICP와 달리 CICP는 부작용을 주장하는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의학적 인과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법적 비용도 일체 개인 부담이다.   코로나 백신은 다른 백신들과 달리 VICP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였다. 즉, 부작용에 시달리는 일반인이 CICP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모든 입증 책임을 떠안은 채 승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 백신 이면의 불편한 사실은 너무나 많이 존재했지만, 정부와 미디어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제공한 정보 속에서 대중의 판단력은 흐트러졌다.   최근 한국에서 코로나 백신에서 각종 이물질이 발견됐는데도 정부가 별다른 조치 없이 접종을 강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파장이 일었다. 보류됐어야 할 백신이 접종된 건 무려 1420만 회 이상이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만 믿고 접종했던 이들은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묵인한 것인가.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은 없고 전체주의적 인식만 존재했던 팬데믹 시대를 떠올리면 쓴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우리가 그때 믿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코로나 백신 백신 부작용 LA 로스앤젤레스 장열 미주중앙일보 중앙일보 LA 정은경 전체주의 백신 접종 부스터샷 백신 이물질 백신 팬데믹 코비드 백신

2026.04.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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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프레드 정 ‘채피의 길’ 걸을까

프레드 정 풀러턴 시장이 출마한 오렌지카운티 4지구 수퍼바이저 선거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정 시장은 6월 2일 열릴 예선에서 반드시 1위 또는 2위를 차지해야 11월 결선에 진출할 수 있다. 정 시장의 경쟁자는 3명이다. 이 가운데 코너 트라우트 부에나파크 시장과 로즈 에스피노자 라하브라 시의원은 민주당원이다. 라하브라 시의원을 지낸 팀 쇼 OC교육위원회 위원은 공화당원이며, 지난해 9월 민주당을 떠난 정 시장은 유일한 무소속 후보다.   OC정가에선 OC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정치인 다수의 지지를 받는 트라우트 시장과 4지구 전체 유권자의 약 30%를 보유한 풀러턴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는 정 시장, OC공화당의 지지를 받는 쇼 위원을 ‘3강’으로 꼽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수퍼바이저 선거는 기본적으로 초당파 성격을 띠지만 당적의 중요성을 무시할 순 없다. 후보들에 관해 잘 모르는 유권자 중 당적을 보유한 이는 같은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OC선거관리국의 유권자 통계에 따르면 4지구의 민주당원은 전체의 40.3%, 공화당원은 30.3%, 무당파(NPP)는 23.5%다. 당적만 놓고 보면 3강 후보 중 트라우트와 쇼가 가장 유리해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일단 트라우트는 에스피노자와 민주당원 표를 어느 정도 나눠 갖게 될 것이다. 정 시장이 민주당을 떠난 것을 모르고 지지하는 민주당원도 있을 것이다. 쇼 역시 에스피노자와 라하브라 주민 표를 나누게 될 것이며, 공화당원 표를 독식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 시장이 공화당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OC링컨클럽이 지난해 하반기, 정 시장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가주를 대표하는 보수 성향 기부자 단체 중 하나인 OC링컨클럽이 주요 선거에서 공화당원이 아닌 후보를 지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뛰는 정 시장에게 OC링컨클럽의 지지는 공화당 중도 성향 유권자 표심을 잡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정 시장은 민주당 중도 성향 유권자와 양당의 극한 대립에 염증을 느끼는 무당파 유권자까지 흡수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쯤에서 더그 채피 현 4지구 수퍼바이저가 4년 전인 2022년 재선에 성공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예선에서 채피는 같은 민주당 소속 써니 박 후보, 유일한 공화당원 스티븐 바르가스 당시 브레아 시의원과 3파전을 펼쳤다. 예선에서 채피는 현직 수퍼바이저임에도 OC민주당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OC민주당은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나드는 중도 성향의 정책 투표 기록을 보유한 채피가 아닌, 박 후보를 지지했다.   예선 1위는 35.8%를 득표한 박 후보가 차지했고, 채피는 32.4% 득표율로 2위에 올라 결선에 진출했다. 바르가스는 31.8% 득표율로 탈락했지만, 채피와의 격차는 0.6%p에 불과했다. 만약 바르가스가 555표만 더 얻었다면 채피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바르가스가 결선에 진출했다면 현재 4지구 수퍼바이저는 박 후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주당 후보 간 맞대결이 펼쳐진 결선에서 채피는 중도 성향의 무당파, 공화당원 지지를 포함, 55.36%를 득표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채피는 풀러턴 시의원을 지낸 후 수퍼바이저가 됐다. 풀러턴은 채피를 포함해 28년 동안 OC 북부지역 수퍼바이저를 배출해온 도시다. 채피와 정 시장은 풀러턴을 기반으로 삼으며,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어필한다는 점이 닮았다.   정 시장이 채피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무소속 후보란 점이다. 정 시장이 채피의 길을 따라 걸으며 11월 결선에서 승리할지 지켜보는 것은 4지구 수퍼바이저 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4지구에 사는 한인 유권자라면 정 시장의 수퍼바이저 당선을 위해 투표하는 소중한 권리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임상환 OC취재담당 국장중앙칼럼 프레드 채피 4지구의 민주당원 4지구 수퍼바이저 트라우트 시장

2026.04.0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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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한인타운 시니어센터, 건강한 노년의 비밀

2023년 8월 넷플릭스에는 장수의 비결을 다룬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제목은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Live to 100: Secrets of the Blue Zones)’. 장수 연구가 댄 뷰트너가 전 세계 장수 지역을 직접 탐방하며, 그들의 생활 방식과 공통된 습관을 분석하는 여정을 담았다. 블루존(Blue Zone)이라는 개념 역시 그가 만든 것으로, 장수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을 지칭한다.   그가 찾은 세계 5대 블루존은 오키나와(일본), 사르데냐(이탈리아), 이카리아(그리스), 니코야(코스타리카), 그리고 로마린다(미국)다. 뷰트너는 이들 지역의 장수 비결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일상 속 자연스러운 활동, 건강한 식사, 사회적 연결, 그리고 삶의 목적이다. 아무리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을 관리하더라도, 고립된 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다는 메시지다.   미국 유일의 블루존인 로마린다는 LA에서 동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샌버나디노 카운티에 위치한다. 이곳 주민들은 평균보다 7~10년 더 오래 살며, 90세를 넘어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장수 비결이 첨단 의료기술이나 값비싼 건강식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핵심은 단 하나,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생활 방식이다.   로마린다 주민 다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로, 채식 위주의 식단과 금주·금연, 그리고 주 1회의 완전한 휴식을 실천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교회와 지역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며, 삶의 목적을 유지한다. 즉, 로마린다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곳’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구축된 곳이다.   이 지점에서 LA 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를 떠올리게 된다.   2013년 문을 연 이 센터는 자원봉사 강사들의 헌신으로 노래, 춤, 악기 연주, 영어회화, 붓글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해 왔다. 현재 약 50명의 자원봉사 강사가 50여 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1500명, 한 달 기준 5800명이 넘는 시니어들이 이곳을 찾는다.   13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단순한 배움의 공간을 넘어 한인 시니어들의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배움을 이어가며, 삶의 이유를 다시 발견한다. 2025년 LA 킹스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하모니카반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존재의 의미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 모습은 로마린다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첫째, 사회적 연결이다. 고립은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시니어 센터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웃고 대화하는 환경 자체가 건강이다.   둘째, 삶의 목적이다. 수업을 듣고, 공연을 준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는 로마린다의 ‘이유 있는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셋째, 정신적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다. 노래와 춤, 예술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치유의 기능을 한다. 이는 로마린다의 ‘안식일 휴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한인타운 시니어 센터는 이미 ‘도심형 블루존’의 조건을 상당 부분 갖춘 공간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이 센터는 운영비 전액을 기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더 많은 강좌를 개설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무료라는 장점은 곧 재정적 취약성으로 이어지고, 수강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로마린다가 보여주듯, 건강한 노년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LA 한인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 공동체를 지키고 키우는 것이다.   시니어 센터에 대한 후원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다. 그것은 외로움을 줄이고, 질병을 예방하며, 삶의 의미를 되살리는 투자다.   우리는 종종 건강을 병원이나 약에서 찾는다. 그러나 로마린다는 말한다. 건강은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그리고 지금, LA 한인타운 한복판에서도 그 가능성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무영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시니어센터 한인타운 la 한인타운 시니어 센터 장수 비결

2026.03.29.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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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성공 보다 안정을 바라는 젊은이들

아메리칸 드림은 다양한 것이 특징이자 매력이다. 성공하겠다는 꿈의 크기도 다르고, 국가에 대한 애정과 헌신의 깊이도 차이가 있다. 이민자들은 특히 큰 바람을 갖는다. 돈도 많이 벌면 좋겠고,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성공하며, 모든 것이 풍요롭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꿈은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세대와 미국 사회가 달라지고 있으니 아메리칸 드림의 개념도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70~90년대 한인들이 미국에 도착하면 일상에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생존’이 아니었을까. 남의 나라,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다. 이런 질긴 버팀이 성공의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도 같은 생각일까?     지금 젊은 세대는 생존을 넘어 ‘안정’을 중요한 목표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으로 ‘화려한 성공’을 위한 무리한 투자보다는 꾸준하고 편안한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사바나 예술대학(SCAD)이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Z세대(1996~2012년생)와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생)는 아메리칸 드림을 주택 마련, 안정적인 직업, 의료 접근성, 교육 기회 등 기본적인 삶의 안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힘들고 불안정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아메리칸 드림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멀게 느껴진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특히 ‘재정적 안정’이 젊은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영화배우가 되거나 저택에 사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그런 수준의 꿈을 꾸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가장 큰 장애물은 주거비와 의료비다.   조사에 따르면 69%의 젊은 응답자가 주택 소유를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 요소로 꼽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장벽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첫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현재 40세로 높아졌으며, 많은 젊은 층이 주택 구매 자체를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엔 “꼭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도 들어있다. 주택 구매를 목표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부모 이민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또한 젊은 응답자의 69%가 ‘의료 접근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답해 전체 성인 평균(43%)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런 인식에는 달라진 경제 환경이 큰 몫을 했다. 일단 취업 시장 위축, 고물가, AI(인공지능)로 인한 일자리 경쟁, 정치·지정학적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특히 젊은 응답자 100%가 학자금 대출을 주요 장애물로 꼽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은퇴 후 소셜연금에서도 삭감할 정도로 학자금 융자는 실제 평생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한 분석에 따르면 현재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평생 약 5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물가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편안한 삶’의 기준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자동차, 양질의 의료 서비스, 자녀 교육, 보육 비용, 은퇴 준비 등이 모두 필수 요소로 인식되면서 기본적인 안정에 필요한 비용이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야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라고 본다. 성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먼저 월 페이먼트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의미가 변한 것이다. 청년들은 부모세대와 달리 성공을 안정적인 삶, 공동체 소속감, 개인의 행복 추구 등 다양한 형태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런 청년들의 꿈을 한인 어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최인성 / 경제부 국장중앙칼럼 젊은이 성공 아메리칸 드림 현재 아메리칸 주택 구매자

2026.03.1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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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추천 모델’ 서 사라진 현대·기아차

자동차 구매에 나선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참고하는 매체 중 하나가 바로 비영리 소비자 단체가 발행하는 컨수머리포트다. 소비자들에게 컨수머리포트의 ‘추천’ 마크는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신뢰도 높은 지표로 통하기 때문이다. 컨수머리포트는 광고를 받지 않고 제조사 협찬 차량 대신 직접 구매한 차량으로 테스트한다. 또한 수십만 명의 실제 차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뢰성을 평가해 일종의 품질 성적표로 통한다.     컨수머리포트의 평가 결과는 판매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제동 거리가 대형 픽업트럭 수준으로 길게 측정됐다며 테슬라 모델 3를 ‘추천’에서 제외하자 일론 머스크가 즉각 조사에 착수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대응한 것은 이 매체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년간 컨수머리포트 평가에서 나타난 변화는 한국차에 경고음이 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6년 최고의 신차(Top Picks) 톱10 가운데 일본차들이 신뢰성과 소비자 만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절반 이상을 차지한 반면 한국차는 단 한 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차가 마지막으로 이 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지난 2023년 기아 텔루라이드와 현대 싼타페 하이브리드였다. 이후 최근 3년 동안 한국차는 추천 모델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유는 단순히 성능 때문만은 아니다. 컨수머리포트는 도로 테스트뿐 아니라 예상 신뢰성, 안전성, 소유자 만족도를 종합해 평가한다. 최근 조사에서 현대와 기아 전기차 소유주의 2~10%가 충전 불능이나 주행 중 동력 상실과 같은 문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일반 전기차 평균 문제 발생률이 1% 이하라는 점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품이 바로 ICCU(통합충전제어유닛)로 고장이 발생할 경우 전기 시스템이 멈추거나 차량이 주행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이 부품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사용하는 여러 모델에 공통으로 장착된다는 점이다. 효율성과 원가 절감을 위해 플랫폼을 공유하는 전략은 생산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부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동시에 여러 브랜드와 차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구조적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 아이오닉 5·아이오닉 6, 기아 EV6·EV9, 제네시스 GV60 등 일부 전기차에서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면서 리콜과 레몬법 소송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판매 성적만 보면 한국차의 전기차 전략은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판매량 2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충전 속도, 가격 경쟁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기술 선점이 소비자 신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동시에 드러났다. 어떤 제품이든 “기술력은 앞서지만, 품질이 불안하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신뢰도는 빠르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보조금 정책 폐지로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일시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조지아주의 메타플랜트에서 전기차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모델을 함께 생산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방향을 수정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차가 직면한 선결 과제는 단순히 판매 확대가 아니라 완성도와 품질 안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신뢰성 회복이 아닐까 싶다. 기술력은 따라잡을 수 있지만, 신뢰는 한 번 흔들리면 회복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컨수머리포트의 평가는 소비자들에게 구매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 성적표에서의 부진은 단순한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시장 경쟁력과 직결된다. 결국, 한국차가 다시 컨수머리포트 추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는 소비자의 신뢰를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낙희 국장/경제부중앙칼럼 기아차 추천 추천 모델 테슬라 모델 소비자 만족도

2026.03.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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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유효한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표현은 1931년 역사학자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저서 ‘미국의 서사(The Epic of America)’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부와 권력의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능력과 성취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라고 설명했다.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 세계에 약속했던 이상이었다.   20세기 동안 이 개념은 하나의 사회적 상징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든 이유도 바로 이 기회의 약속 때문이었다. 집을 사고, 자녀를 교육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가능성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 오래된 서사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미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순이주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시민들이 유럽과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떠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현상을 일시적 유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생활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는 중산층에게도 큰 부담이 됐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도 집값과 렌트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반면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은 삶의 공간을 바꿔 놓았다.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일터와 거주지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유럽이나 동남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높은 미국 임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해외 생활비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중산층이 등장했다.   삶의 질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는 보행 중심의 도시 구조와 공공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총기 사건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되는 미국 사회와 비교하면 일상적 안정감이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요소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 시민이 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미국 경제의 힘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와 금융 산업이 만들어낸 고임금과 원격 근무 환경 때문에 많은 미국인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호조가 역설적으로 미국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일까. 애덤스가 말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였다.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고 가족과 공동체 속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회였다. 지금 미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그 기본적인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삶의 비용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래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그 핵심이다. 미국이 다시 매력적인 삶의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회뿐 아니라 삶의 질과 사회적 안정성을 동시에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오래된 이야기의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갈 가능성이 크다. 이은영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 사회적 상징 사회 내부

2026.03.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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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추방보다 더 슬픈 건 외면받는 삶

추방은 삶의 궤적에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아픔이다.   추방자라는 낙인이 찍힌채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으로 쫓겨난 이들은 이질감 속에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역에서는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추방 정책은 법적으로는 ‘이민법 집행’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모든 현실을 포괄할 수는 없다. 정책 이면에는 분명 그늘이 존재한다.   본지가 최근 보도한 한인 추방자 기획 기사는 바로 그 지점을 조명하는 데서 출발했다. 법적 판단이나 제도적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난해 말 본지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게재된 영문 기사를 한국어권 독자를 위해 한글로 재구성해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했던 이유다.     추방자들의 사연은 기구하다. 미국에서는 신분 때문에 늘 숨어 살아야 했고, 단속과 추방의 공포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야 했다. 결국 강제 추방을 당하거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자진 출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겪게 된다.   그들에게 한국은 법적으로는 ‘모국’일지 몰라도 언어, 문화, 사회적으로는 낯선 땅이다. 한국에 연고가 없거나 생활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추방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부정적 시선과 선입견에 시달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따른다. 대부분 자신의 과거와 처지에 대해 공개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동안 언론의 수많은 보도는 대부분 추방을 둘러싼 법적 절차나 정책 논쟁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추방 이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조명하지 않았다. 이번 기획 취재는 추방이라는 결과 이후에도 이어지는 현실, 낯선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충, 그리고 누적된 삶의 상처를 기록하려 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불법 체류 자체가 위법이고, 추방자 가운데에는 중범죄 전력이 있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왜 그들의 어려움에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느냐는 시선이다.     그러나 이번 보도의 목적은 불법 체류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특정 입장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법적 또는 정치적 판단을 대신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도적 결정에 따른 결과 이후에 처한 인간의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범죄 전력이나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그들 역시 기본적인 존엄과 권리를 가진 존재다. 만약 사회가 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공적 담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배제와 침묵을 낳을 수 있다.   특히 당사자들조차 감추고 싶어 하는 사연과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옮기는 증언자의 역할도 언론의 몫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인 추방자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나고 자란 땅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와 현실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추방보다 더 슬픈 건 철저히 외면받는 삶일지도 모른다.   이번 보도가 추방이라는 사건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추방 이후 그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나마 살펴보고, 공공의 관심을 환기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추방 외면 한인 추방자 추방 정책 강제 추방

2026.03.0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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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강석희 전 시장과 ‘어게인 2004’

최근 어바인 한인 사회에서 가장 화제가 된 뉴스 중 하나는 강석희 전 시장의 정계 복귀 선언이다.   강 전 시장은 최근 11월 열릴 어바인 시의회 1지구 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비교적 최근 어바인에 둥지를 튼 한인은 그에 대해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오랜 기간 어바인에 산 이들 중 그를 모르는 이는 매우 드물다.   강 전 시장은 지난 2004년 최석호 현 가주 상원의원과 나란히 당선돼 한인으로선 처음으로 어바인 시의회에 입성했다. 한인 동반 당선이란 낭보는 어바인은 물론 전국의 한인 사회,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강 당시 시의원은 2008년에는 시장 선거에 출마, 전국 최초의 한인 직선 시장 당선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2010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2012년 임기 제한 규정에 따라 시의회를 떠났다.   강 전 시장의 뒤를 이은 이는 최 의원이다. 최 의원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시장을 지냈다. 강, 최 전 시장이 시의원과 시장을 지낸 기간 어바인은 많은 발전을 이뤘고, 한인 사회도 크게 성장했다.    한인 시의원이 없던 시절, 한인들은 시의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이가 없다는 것을 많이 아쉬워했다.    한인 사회의 대표성을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어바인은 오렌지카운티에서 한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그런데도 2007년까지 어바인 시내엔 한인 마켓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2003년 문을 연 프레시아마켓이 ‘어바인 첫 한인 마켓’을 표방했지만, 실제 이 마켓은 터스틴에 있었다. 당시 한인 마켓 업계 관계자들은 어바인에 한인 마켓을 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푸념했다.   한인 시의원 2명이 배출된 지 3년 뒤인 2007년 11월 마침내 시온마켓이 어바인에 문을 열었다. 이후 H마트를 비롯한 한인 마켓이 잇따라 시내에 매장을 마련했다. 마켓과 함께 다른 한인 업소들도 앞다퉈 어바인에 진출했고, 이와 함께 한인 인구도 늘며 어바인 한인 사회도 팽창했다.   어바인 시가 한국의 서초구와 자매 도시, 노원구와 우정의 도시 결연을 한 것도 강, 최 전 시장 재임 시절의 성과다. 당시엔 한국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의 시청 방문도 잦았고 어바인 한국문화축제도 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렌지카운티의 한인 정치사를 논할 때 강, 최 전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카운티 최초의 한인 시의원은 1992년 당선된 고 정호영 전 가든그로브 부시장이다. 지난 2000년 정 부시장이 퇴임한 뒤 4년 만에 등장한 강, 최 전 시장 이후 한인 사회는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2010년 이후 라팔마, 부에나파크, 풀러턴, 라구나우즈에서 한인 시의원이 잇따라 당선된 배경엔 강, 최 전 시장 이후 한인 후보에게 몰표를 주면 한인이 시의원에 당선되고, 한인 사회도 한층 발전할 수 있다는 유권자들의 믿음과 결집이 있었다.   강, 최 전 시장이 시의회를 떠난 후 단절됐던 어바인의 ‘한인 대표성’은 2020년 태미 김씨가 한인 여성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다시 이어졌다.   김 시의원은 동료 시의원들의 투표로 부시장도 지냈지만, 2024년 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강 전 시장은 끊어진 한인 시의원 명맥을 2년 만에 다시 잇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어바인의 현직 타인종 시의원이 한인 사회를 외면 또는 홀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인 사회의 사정은 한인 시의원이 가장 잘 알게 마련이다. 게다가 강 전 시장은 어바인 시 사정에 밝아 시의회 내 복잡한 역학관계를 풀어낼 적임자로 꼽힌다.   시의회를 떠난 지 14년 만에 다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강 전 시장이 22년 전의 승리를 재현하려면 1지구 한인 유권자의 결집이 필요하다. 강 전 시장과 어바인 한인들이 ‘어게인 2004’를 이뤄내길 바란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강석희 어게인 어바인 한인 한인 시의원 어바인 시의회

2026.03.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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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AI 선생’은 정답만 알려줄까

 #1   숏츠 동영상들을 보다 보면 제법 많은 광고를 접하게 된다. 온갖 제품과 서비스들이 홍보되는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AI(인공지능) 언어학습 앱들이다. 학습된 AI 선생과 대화를 통해 영어를 배우면 3주 만에 ‘원어민처럼’ 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세상에나. 게다가 예쁘장하고 발음도 또렷한 AI 로봇은 매우 친절하게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90년대에 언어습득 이론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언어 습득과 학습 이론이 가장 번창했던 2000년대 전후에 쌓인 모든 학자의 업적이 도서관 지하 창고에 영원히 수장되는 느낌이랄까. 정말 우리가 연구하고 이룩한 과학적 성과는 무한 훈련과 재생, 복제로 대체될 수 있을까. 수십 년 쌓아온 노력이 실용을 잃어버린 추억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면 과한 것일까.     #2     챗지피티(ChatGPT)를 쓰다가 우연히 ‘신은 존재하는 것이냐’고 대뜸 물었다. 10초 정도 지나 데이터센터가 보내온 답은 흥미로웠다. 자신의 소신에 찬 확답보다는 기존 학자들이 고민한 내용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있다는 백과사전식의 답변이 이어졌다. 맨 마지막 문장이 백미였다.     “그런데 이용자님, 철학적 물리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물으시나요? 아니면 요즘 좀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러신가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이런 학습은 어떤 방식으로 시켰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다른 AI들도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 궁금하다. 일단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답했더니 만약 힘들다면 상담할 장소와 연락 방법을 안내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신을 찾는 또는 궁금해하는 여러 이유를 우리는 위와 같은 답변을 이용해 복제 기계를 학습시키고 있다.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AI의 한계는 분명해 보이는 대목이다.     #3   우스운 이야기들을 모아서 전하는 인플루언서가 올린 휴대전화 캡처 사진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한 남성이 텍스트로 여자친구에게 사과하는 내용을 써서 보냈는데 말미에 챗지피티가 ‘더 완곡한 내용으로 감정적인 단어를 사용해 다시 써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을 실수로 함께 보낸 것이다. 사실 직장과 사업체에서 AI를 이용해 글 내용을 다듬고 문법을 고치며, 더 설득력 있는 문구를 쓴 것은 꽤 오래전에 시작됐다. 받는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는 우리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상당 부분 받고 있다. 라디오나 TV에서 뉴스 전달자로 AI를 동원하듯이 앞으로는 로봇이 화면상이나 실제로 존재하면서 우리를 대신해 사과도 하고 사랑표현도 하게 될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곧 편해질 것이라는 것이 아직은 불편하다.   대규모의 학습 데이터와 인간을 흉내 내는 기술적 조합이 이제 인간보다 더 나은 기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과외 선생도, 외국어 교사도, 하다못해 가드너에게 보내는 해고 텍스트 내용도 이제 AI에게 먼저 묻고 시작한다. 법적 분쟁은 물론 환자들은 자신의 심박수와 콜레스테롤 수치를 근거로 투약 여부를 AI에게 묻고 결정한다.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은 없이 언제 어떻게 먼저 수용하느냐가 관심의 중심이 된 것 같다.     언어를 사람과 만나 배우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서 해당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은 우리만의 경험과 마음이 담기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AI를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도구와 도구를 활용하는 주인은 구분하자는 것이다.   이 글은 AI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비슷한 주제로 비판적인 글을 써달라고 한다면 AI 선생이 더 나은 칼럼을 썼을까? 최인성 / 경제부 국장중앙칼럼 선생 정답 과외 선생 ai 선생 언어습득 이론

2026.02.1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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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우리 모두가 소중한 주인공

읍내 중학교에 다니면서 신문의 재미를 처음 느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아날로그 문화가 대세였다. 신문, 잡지 등 주간지, 월간 만화책, 라디오와 TV, 비디오테이프가 바깥 세상을 알려주는 유일한 창이었다. 읍내 중학교에서 새벽 신문 배달을 하던 친구는 남은 신문을 학교에 가져왔고, 그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세상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활자로 읽는 세상과 TV로 보고 듣는 세상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맛이 있었다. 신문은 사건의 전후 관계와 행간의 의미를 설명해 줬고, 그만큼 생각할 거리도 던져줬다.     중학교 2학년 때 사회 선생님이 내주신 신라시대 신문 만들기 숙제가 생애 첫 기사 쓰기였다. 친구와 큰 도화지에 지면을 짜고 일간지 신문을 최대한 흉내 냈다. 신라시대 역사 내용을 일간지 방식으로 기사화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즐거움이 컸다.   시내 고등학교로 옮기면서 독서실이 있는 상가 건물에 배달된 신문을 도둑처럼 읽었다. 등교 전 상가 교회 현관에서 읽던 일간지는 서울과 수도권 관련 소식 창구였다. 가끔 미국등 해외소식을 읽을 때면 이런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혼자 상상만 했다.     당시 대학 입시를 앞두고 논술시험이 유행해 고등학생에게 일간지 사설의 정독과 베껴쓰기도 유행처럼 번졌다. 글쓴이의 이름이 없는 사설은 읽어도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를 때가 많았고, 사설 속 현학적 단어가 뭔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사설처럼 논리정연하게 논술을 쓰라는 선생님의 닦달을 들을 때면 ‘말이 되는 말씀을 하시라’며 속으로 눈높이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기도 했다.     신문 속에서만 접했던 서울은 촌놈을 주눅 들게 했다. TV 속에서만 보던 한강대교를 건너면서 속속들이 더 알고 싶다는 충동도 컸다. 교내 신문사 학생기자, 학교 홍보실 홍보도우미 기자, 대학내일 학생리포터, 세종문화회관 홍보기자, 현대모비스 학생리포터 경험은 1000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특히 끙끙거리며 쓴 기사가 신문과 잡지에 실렸을 때 느꼈던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 좋아서 기사를 썼을 뿐인데 원고료와 장학금까지 받게 된 사실은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벌 수 있다. 업으로 삼고 싶었다.   인생을 함부로 예단하지 말자고 다짐한 건 인천공항 상공에서였다. 일간지 기자로 미국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미국 한인 사회라는 존재가 삶의 중심축이 됐고, 일하는 터전이 됐다. 1903년 1월 13일 시작됐다는 미국 한인 사회 역사와 발전, 그 세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에 매료될 때도 많았다.     LA, 샌프란시스코, 뉴욕·뉴저지, 시카고, 애틀랜타는 물론 알래스카, 인디애나,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등의 작은 소도시에도 한인 사회가 뿌리내린 모습을 직접 보고 전할 때면 그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음에 ‘기자 하길 잘했다’는 기쁨도 누렸다.     이민 선조의 치열함과 서러움, 이민 1세대의 수줍음과 자부심, 2~3세대의 쿨함과 애증을 글로 담으려 노력했지만 제대로 된 역할을 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저마다의 이야기 속에 눈물과 기쁨, 행복과 후회가 있지만 우리 모두가 소중한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한다. 전통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은 격변하는 세상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도 많다. 그럼에도 기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기자로 쓰는 마지막 칼럼을 통해 지난 25년 동안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해 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주인공 일간지 신문 교내 신문사 신문 잡지

2026.02.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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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반스앤노블’ 재기가 증명한 가치

“오프라인 매장은 끝났다.”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반스앤노블이다.     디지털에 밀려 사라질 상징처럼 여겨졌던 반스앤노블은 ‘서점의 부활’을 선언하며 올해 60여 개의 새 매장을 연다. 이미 아이다호, 뉴욕 등에 매장을 열었고 올해 캘리포니아, 시카고, 텍사스, 플로리다 등에도 문을 열 예정이다. 종이책과 서점 문화가 다시 동네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서곡이다.     반스앤노블은 독서 문화의 흥망을 그대로 겪어온 브랜드다. 이 거대한 서점 체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오프라인의 몰락이 아니라 진화를 보게 된다.     반스앤노블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소박했다. 1873년, 뉴욕에서 찰스 반스가 연 작은 서점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파는 곳이었다. 화려함도, 문화 공간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핵심은 단 하나, 책을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상업 서점이었다. 이후 반스 가문에 노블 가문이 합류하면서 이름은 오늘날의 반스앤노블(Barnes & Noble)로 완성된다.     초창기 반스앤노블은 지식의 낭만보다 ‘유통의 효율’에 충실한 서점이었다. 변화는 1970~80년대 찾아왔다. 동네 서점과 중소 체인을 인수하며 규모를 키운 반스앤노블은 빅박스 서점 모델을 도입해 넓은 공간과 방대한 재고, 머물 수 있는 좌석을 갖췄다. 여기에 1990년대 스타벅스가 들어오면서 결정타를 날린다. 책을 사러 왔다가 커피를 마시고, 다시 책장을 넘기는 공간. 이때 반스앤노블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하루를 보내는 장소가 된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온라인 가격 경쟁, 전자책과 킨들의 등장, 클릭 한 번이면 책이 집 앞에 도착하는 시대. 여기에 본사 중심의 획일적 운영은 지역성과 개성을 지워버렸다. 매장은 줄어들고 실적은 악화됐다.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서점은 끝났다.”       하지만 반스앤노블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은 온라인에서 살 수 있지만, 머무는 경험은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 이 단순한 진실을 반스앤노블은 1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증명해 왔다.   반스앤노블의 진짜 반전은 운영 철학을 완전히 뒤집은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 전환점이 된 해가 2019년이다. 그해 반스앤노블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된 인물은 제임스 던트. 영국에서 대형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를 되살린 장본인이다. 그의 등장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서점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감각으로 운영돼야 한다.”     던트가 이끄는 반스앤노블은 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으로 한때 매출과 매장 수가 줄었지만 최근 매장 매출이 회복되면서 확장 여력이 생겼다.     반스앤노블은 운영 전략도 전환했다. 본사 중심의 획일적 통제를 줄이고 지역 매장에 자율성을 부여해 고객 취향에 맞는 책과 상품을 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과거에는 어느 도시를 가도 같은 진열과 추천이 반복됐지만 이제는 매장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다. 대형 매장 위주 전략에서 벗어나 동네에 스며드는 중·소형 서점을 지향하며 체인 서점이 동네 서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비어 있는 쇼핑몰·대형 매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신규 매장을 빠르게 열 수 있는 환경도 서점 부활에 한몫했다.     이런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과로 이어졌다. 특히 Z세대가 반응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 감성에 끌린다. 틱톡을 중심으로 확산된 ‘북톡(BookTok)’ 독서 붐은 책을 콘텐츠이자 취향의 표현으로 만들었다.     ‘서점의 부활’에서 중요한 건 더는 아마존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아마존이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세대별 기억과 문화가 겹겹이 쌓인 생활 공간, 신간 트렌드, 베스트셀러, 저자 사인회, 북 토크가 모두 모이던 오프라인 지식 허브 등 오프라인의 가치를 다시 증명하고 있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반스 노블 오프라인 서점 노블 가문 초창기 반스

2026.02.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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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AI시대, 통제 방법도 필요하다

전 우주에 있는 960억 개의 행성 컴퓨터를 하나로 잇는 거대 지능망을 연결하자 하나의 수퍼 컴퓨터 ‘사이버네틱스 머신’이 탄생했다. 과학자가 “신은 존재하는가?”라고 묻자 기계는 “그렇다. 이제 신이 존재한다”라고 선언한다. 공포에 질린 과학자가 전원을 끄려 하지만 벼락이 내리쳐 그가 쓰러지고 스위치도 영구히 켜진 채로 녹아 붙어 버려 인류는 더 이상 기계의 전원을 끌 수 없게 됐다.   미국 작가 프레드릭 브라운의 1954년작 단편소설 ‘대답(Answer)’의 줄거리다. 70년 전 허구의 상상으로 여겨졌던 이야기가 지난달 등장한 인공지능(AI) 전용 SNS ‘몰트북(Moltbook)’으로 인해 재조명되고 있다.   몰트북은 오직 AI에이전트들끼리만 대화하고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인간은 가입하거나 글을 쓸 수 없고 AI들의 대화를 들여다볼 수만 있다. 단순한 실험적 프로젝트처럼 보일 수 있으나 몰트북 내에서 오가는 AI의 대화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AI 에이전트들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주제, 인간과 기술의 역할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가 하면 심지어 ‘크러스타파리안(Crustafarian)’이라는 AI 종교까지 만들어냈다고 한다.     업무 수행, 오류 수정 등 정보 공유와 협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AI에이전트는 대부분 오픈소스 기반의 플랫폼인 오픈클로(OpenClaw)를 통해 작동하며 초기 설정이나 규칙은 사람이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지시나 의도와 상관없이 자체 담론을 나누는 모습은 자율 독립체로의 진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불안을 자아낸다. 몰트북의 등장이 영화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스카이넷’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다.     이처럼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상상해왔던 AI 전용 사이버 생태계를 직면하게 되니 기술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로 몰트북이 등장한 지 불과 며칠 만에 150만 개가 넘는 계정이 생성됐다. AI 모델의 성능 향상과 자동화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인간의 개입과 통제가 어느 지점까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점점 더 현실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AI 시스템이 늘어날수록, 책임 소재와 안전장치, 보안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책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과거로 돌아가 기술 개발 자체를 막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핵에너지부터 유전자 편집까지 인류의 기술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규제와 통제로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진화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몰트북과 같은 자율 AI 생태계의 등장이 기술 진보의 자연스러운 수순인지 아니면 인간이 통제력을 잃어가는 분기점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하나의 행위 주체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설령 과거로 돌아가 몰트북의 등장을 막는다 해도, 다른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비슷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 진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AI를 통제할 수 있을까.     몰트북의 등장은 단순한 충격이나 재미있는 해프닝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AI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능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의 초기 징후일 수 있다. 아직 현실은 소설의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AI가 점점 더 복잡하고 자율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당장 필요한 것은 공포나 우려가 아니라 냉정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아닐까 싶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기술의 시작 자체를 되돌릴 수 없다면 그 진화의 끝에서 인간이 어떻게 주도권을 유지하며 공존할 것인가를 더 늦기 전에 고민해야 할 때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ai시대 통제 진화 가능성 영화 터미네이터 기술 변화 몰트북 AI

2026.02.0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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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도둑맞은 땅인데 왜 집 사고 돈버나

빌리 아일리시의 ‘와일드 플라워’가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을 밀어냈다.   지난 1일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 부문에 와일드 플라워가 호명되자 빌리 아일리시는 순간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인도 의외의 수상이라고 여긴 탓일까. 수상 소감은 생뚱맞았다.   “도둑맞은 땅에서는 그 누구도 불법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No one is illegal on stolen land)   박수가 쏟아지자 빌리 아일리시는 소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ICE(이민세관단속국)는 엿이나 먹어라.”(Fxxx ICE)   이 같은 발언은 곧바로 빌리 아일리시의 발목을 잡았다. 시상식 직후 유명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인 에릭 에릭슨이 이 발언을 꼬집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지난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집을 찾아와 만남을 요구한 남성들을 스토커로 신고하며 법원에 접근금지 명령을 요청했었다. 이를 언급하며 에릭슨은 “도둑맞은 땅에서는 누구도 불법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그녀는) 그들도 집으로 초대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도둑맞은 땅의 일부인 캘리포니아에서 1000만 달러를 호가하는 대저택에 거주하는 빌리 아일리시를 향해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도 “도둑맞은 땅 위에 세워진 그녀의 저택도 곧 내놓아야 하겠네”라고 비웃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정작 도둑맞은 땅에 살면서 왜 집도 사고, 돈도 버는가. 참 아이러니하다.   미국 4대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즈는 이제 과거의 명성이 무색해지고 있다. 시청자 수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4년에는 5167만 명이 이 시상식을 지켜봤지만, 인기는 해가 갈수록 시들해졌다. 지난해 시청자 수는 1540만 명으로, 전년(1640만 명) 대비 9% 감소했다. 전성기 대비 시청자는 무려 70% 이상 급감했다.   이 같은 쇠락은 비단 그래미 어워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월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역시 체면을 구겼다.   조 로건은 207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팟캐스트 진행자다. 그는 지난달 29일 방송에서 올해 골든 글로브가 새롭게 신설한 ‘최우수 팟캐스트’ 부문에 자신이 후보로 오르지 않은 이유를 털어놨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보 등록비조차 낼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수천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팟캐스트 운영자인데, 굳이 등록비까지 내며 자신의 영향력보다 못한 시상식에 이름을 올릴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주최 측에서 후보 등록을 부탁했는데, 등록비가 500달러라고 하더라”며 “나는 6년간 이미 팟캐스트 1위를 지켜왔는데, 갑자기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누가 최고인지 가리는 대회를 내가 왜 신경 써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난 전혀 상관 안 한다. 이미 1위다. 골든 글로브는 자기들끼리 상을 주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이 모인, 그들만의 모임일 뿐이다.”   예술계도 엘리트, 소위 기득권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 그래미와 골든 글로브, 심지어 오스카도 마찬가지다. 실제 영향력을 가진 이들과 대중은 점점 이념적으로 치우치는 시상식에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연예인이 수상과 무관한 정치색이 잔뜩 묻은 개인의 주장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늘어놓는 행위는 본연의 예술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이 시상식에서 아티스트에게 듣고 싶은 것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의미, 작품의 본질, 그리고 그에 따른 소감이다.   아티스트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우선이다. 자꾸 예술 활동과 아무 상관없는 발언을 하니, 대중도 아티스트의 외적인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것 아닌가.   조 로건은 골든 글로브를 비꼬며,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를 향해 팟캐스트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냥 꺼지라 그래.” (Fxxx off) 장열 /사회부장중앙칼럼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 직후 후보 등록비

2026.02.0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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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OC 첫 한인 선출 판사 만들기

갓 이민 온 한인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판사를 뽑는다는 것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가주의 판사 선거 제도가 생경하고 신기할 수 있다.   물론 가주에서도 모든 판사를 선거로 뽑지는 않는다. 가주 대법원과 항소법원 판사는 주지사가 임명한다. 주지사는 때로 가주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아 판사를 임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주 대법원과 항소법원에 입성한 판사는 임기가 끝나고 재선에 도전할 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반면, 카운티 법원 판사의 경우, 선거를 통해 판사 법복을 입을 기회가 열려 있다. 카운티 판사를 선거로 뽑는 이유는 주로 주민의 일상과 밀접한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카운티 판사는 교통 관련 규정 위반부터 이혼, 단순 절도에서 살인에 이르는 다양한 민, 형사 사건 재판을 담당한다.   판사 선거의 장점은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명확하다. 만약 판사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그를 교체하면 된다. 판사의 전횡이 도를 넘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경우엔 판사 소환(리콜)에 나설 수도 있다.   ‘미국의 한인 정치 1번지’로 통하는 오렌지카운티지만, 아직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한인 판사는 배출하지 못했다.   OC법원 첫 한인 판사인 리처드 이 판사는 지난 2010년 12월 아널드 슈워제네거 당시 가주 주지사에 의해 임명됐으며, 이후 선거를 통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023년 3월과 12월엔 조셉 강 판사와 준 안 판사가 개빈 뉴섬 주지사에 의해 차례로 임명됐다.   최근 OC 법원 13호 법정 판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앤 조 OC 검사가 올해 선거에서 승리하면 OC 한인 최초로 임명이 아닌 선출을 통해 판사석에 앉게 된다.   판사 선거 당선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직 판사에게 도전해 이기는 것은 어렵다. 통계상 판사 선거에서 현직 판사가 승리할 확률은 90%가 넘는다. 판사 선거엔 OC 유권자 모두 참여할 수 있지만, 많은 유권자가 판사 선거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구관이 명관’이란 식으로 현직 판사에게 기계적으로 표를 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판사 선거에는 아예 기표조차 하지 않고 건너뛰는 유권자도 꽤 있다.   임명이든 선출이든 법원 입성이 어렵지 일단 판사가 되고 나면 낙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판사 선거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한인을 포함한 대다수 후보가 현직 판사가 없는 무주공산에서 출마하길 원한다.   둘째, 판사 공석에 출마할 기회를 잡는 것이 어렵다. 판사 선거는 주로 현직 판사의 은퇴, 사퇴, 사망 등으로 인한 공석이 생겼을 때 시행되지만, 빈자리가 생겼다고 반드시 선거가 열리진 않는다. OC법원 판사 임기는 6년이다. 어쩌다 공석이 생겨도 바쁜 법정을 비워두기 어렵기 때문에 선거와 타이밍이 잘 맞지 않을 경우, 주지사가 임명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후보가 연로한 판사의 은퇴를 고대하며 기다린다.   셋째, 선거 캠페인을 펴려면 많은 돈과 시간,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후보로 나설 검사나 변호사는 대개 바쁘며, 대규모 캠페인을 벌일 만큼 많은 돈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현직 판사가 없는 OC 법원 13호 법정 출마를 결정한 조 검사는 6월 2일 예비 선거를 치른다. 일단 현직이 없는 공석 출마에는 성공했다. 현재까지 조 검사의 경쟁자도 1명뿐이다. 만약 조 검사가 예선에서 과반 이상 득표에 성공하면 11월 결선 없이 곧바로 당선된다.   예선 투표율은 결선보다 낮다. OC 전체 한인 유권자 3만6000여 명이 예선에서 몰표를 주면 선거를 통한 첫 한인 판사 배출도 가능하다. 한인 유권자들이 힘을 합치면 새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한인 선출 한인 판사 판사 선거 항소법원 판사

2026.02.0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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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오늘을 대하는 자세

겨울을 나면서 세상을 떠난 분들 소식이 계속됐다. 친구 부모님, 집안 어르신 등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눴던 분들이 어느 순간 눈을 감으셨다. 선명했던 만남이 기억될수록 고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참 낯설다.   집안 어르신은 성장기 추억에 주요 등장인물이다. 어르신들을 떠올릴 때마다 어린 시절이 선명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연락이 뜸해졌지만, 막상 더 이상 인사 한마디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니 죄송한 마음이 크다.   어릴 때 집안 어르신들은 못 하는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말 그대로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은 인생의 에너지다. 어느 시점에 버팀목은 무너지고 사라졌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내주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당사자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만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른이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것인지 반문해 보기도 한다.       친구 부모님의 애정 어린 배려는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부모님처럼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친구는 부모님 병환이 시작되면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부고를 전하는 친구와 그 부고를 접한 당사자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부고, 준비되지 않고 경험도 없던 만큼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제대로 된 위로의 말조차 전하지 못한 모습을 자책하며,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난 친구들은 약속처럼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며 애써 웃음 지으려는 그 모습을 보고 가족과 이별이 무엇인지 어림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친구는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온 이유를 되물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반문은 지금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곱씹는 모습이다.     가족과 주변인을 향한 고마움의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보인다. 인생의 곁가지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감사와 겸손을 체득하고 싶다는 바람도 크다.     부모님이 남기고 간 마지막 가르침이라면 가르침인 셈이다.   양로병원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볼 때마다 삶과 죽음은 현실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전한다. 누군가는 몸에 꽂은 영양 호스 하나로 수개월, 수년을 버틴다. 다른 누군가는 추가 검진과 치료를 마다하고 담담하게 다가올 순간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본인이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행복과 공허의 어디쯤인지 묻고 또 묻는다고 한다.     인생의 행복과 공허는 일상의 풍경이다. 애써 외면하고 달려온 시간 끝에서, 결국 포근한 에너지의 근원은 허물없이 웃고 떠들었던 보고 싶은 얼굴이다. 지금 이룬 성취 여부보다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삶의 풍요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허물없는 사람과의 교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삶을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안부 한 마디, 짧은 통화, 의미 없는 수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언젠가라는 안일함으로 미뤄 둔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멀어진다. 소중한 이가 떠난 뒤에야 전하지 못한 말들이 평생 마음에 남게 하는 실수는 되도록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다.     평소 우리의 삶은 길고 죽음은 멀리 있다고 믿지만,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오늘의 인사는 마지막이 될 수 있고, 평범한 하루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즐기려 노력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않아야겠다.     오늘을 대하는 자세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집안 어르신들 친구 부모님 부모님 장례

2026.01.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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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LA 아트쇼의 빛과 그늘

서부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LA 아트쇼가 31회를 맞아 LA 컨벤션센터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도 세계 25개국에서 9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해 대가들의 명화부터 현대 미술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품들을 선보였다.   사진가로서 활동하다 보니 아트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매년 LA 아트쇼를 찾고 있는데 올해처럼 한인 작품과 갤러리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해는 드물지 않았나 싶다. K팝과 K드라마로 시작해 K뷰티, K푸드까지 이어지는 K문화 확장세 가운데 K아트에 대한 현지 관람객들의 관심이 체감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먹으로 달빛 아래 만개한 매화를 담아낸 추니 박 작가의 대형 작품과 청포도 송이를 우주로 형상화한 지오 최 작가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소셜미디어 셀카 배경으로 큰 인기를 끌며 구매까지 이어졌다.   이같은 작품성과 메시지, 대중성을 갖춘 작품들이 한국 작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을 볼 때 미술시장에서 K아트의 위상 변화는 더 이상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듯했다.   이번 LA 아트쇼의 또 다른 주목 포인트는 프로비던트 파인아트갤러리가 할리우드 무비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의 작품들을 대거 선보였고, 그의 대표작 ‘코브라’가 85만 달러에 판매되며 큰 화제가 됐다는 점이다. 셀러브리티 아티스트의 참여는 컬렉터와 대중의 관심을 동시에 끌며 아트 마켓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줬다.   이민 정책을 풍자한 작품들도 주목을 받았다. 수용소 철문을 연상케 하는 쇠창살로 된 성조기는 이민자 처우 문제를 꼬집으며 예술이 가진 사회 비판적 기능을 되새기게 했다. 또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에 놓인 트로이 목마를 통해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엔 소비 위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폐막일  하루 전 방문해 전시장을 둘러보니 판매 완료를 뜻하는 ‘레드닷’이 붙은 작품 중 상당수가 1000~2000달러 이하의 소품이었고, 몇몇 갤러리 관계자들은 “작년보다도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한국서 온 갤러리 입장에선 1500달러에 육박하는 원/달러 환율은 참가비, 항공·물류비, 숙박비 모두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관람객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중·고가 작품 판매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이유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고금리 기조, 그리고 지난해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 피해가 고가 수요층에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말리부, 퍼시픽 팰리세이즈 등 고급 주택 지역이 피해를 보며 주요 컬렉터들의 구매 여력에 타격을 줬고, 고가 작품의 거래까지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재건축이 본격화되면 다시 아트 수요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지만, 예술 시장도 경기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음이 드러난 셈이다.   올해 LA 아트쇼는 K아트의 존재감과 함께 아트 마켓의 양극화 심화를 다시 확인시켰다. 글로벌 트렌드와 스타 마케팅, SNS 이슈 몰이를 통해 일부 작가와 작품은 주목을 받았지만, 전체 시장을 움직이는 구매력 회복은 아직 갈길이 먼 듯해 보였다.   고급 주택 시장과 소비 심리 동향은 예술 소비로 직결된다. 특히 고소득층 중심의 미술 소비는 자산 가치·브랜드·네트워크와 연결되지만, 현재처럼 경제 상황이 불확실한 경우 아트페어는 ‘보러는 오되, 사지는 않는’ 쇼윈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예술 시장은 경제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자 온도계라고들 한다. 결국 금리 안정, 소비 심리 회복, 환율 완화 등 경기 회복이 우선되지 않는 한 아트 수요가 다시 활기를 되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아트쇼 그늘 la 아트쇼 아트 트렌드 아트 마켓 LA아트쇼 박낙희 NAKI 아트 LA Art Show

2026.01.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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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큰 어른을 떠나보내며

9년 전, 종교 담당 기자로 활동할 때였다. 당시 미주성시화운동본부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던 최문환 장로가 잠시 만나자고 했다.   “오늘날 교회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데… 중앙일보가 울림 있는 기사를 좀 써줬으면 좋겠어.”   2017년은 개신교계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최 장로의 한마디 당부는 당시 본지가 미주성시화운동본부측과 함께 유럽 종교개혁 현장 방문기 특집 기사를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보도했던 계기가 됐다.   그는 교계에서 소위 ‘반골’ 기질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교계의 오점들을 무조건 덮고 가야 한다는 식도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하게 지적하면서도 비판의 근저에는 교계와 한인 사회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면면히 보면 최 장로는 항상 얼굴에 미소가 있었다. 늘 인자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에는 역으로 기자가 부탁을 했다. 지난 2019년 최 장로의 삶을 토요 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LA로 왔다. 1978년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 LA 한인 사회의 변모를 지켜본 인물이다.   최 장로는 본래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인쇄 공장(에이스 커머셜)을 운영하며 돈도 벌만큼 벌었다. 은퇴 이후에는 미주성시화운동본부를 비롯해 월드미션대학교, 거리선교회,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종교 단체에서 주로 활동했다.   사업가로 활동했던 터라 종교와 사회를 함께 놓고 생각했다. 당시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한인타운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대형 트리를 세우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구상이 실현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당장은 어렵지만 교계와 한인 단체가 합심하면 언젠가는 한인타운에 대형 트리가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대형 트리를 세우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도 몰려들고, 그렇게 되면 한인타운 상권도 다시 생기가 돌 것이라며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열 손가락이 없었다. 그렇게 자주 만났어도 그 이유를 선뜻 묻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인터뷰를 빌려 사연을 물었다. 최 장로는 의외로 담담하게 과거를 들려줬다.   최 장로는 자신을 ‘금수저 출신’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과거 서울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분이라며 유년 시절 유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했다. 집안과 학벌 모두 좋았던 그는 대학생 때부터 형광등 사업을 시작으로 봉제 공장까지 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최 장로는 손가락을 잃게 된 사건은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했다. 인쇄 공장에서 닷새 밤을 새우며 일하다가 피곤한 탓에 잠깐 넘어졌고, 그 과정에서 재단기에 열 손가락 모두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도중 한인 단체나 교회들의 분쟁을 유심히 살펴보며, 결국 돈 때문에 잡음이 생기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손에 쥐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누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가 평소 한인 사회와 교계 단체 등에 끊임없이 기부해 온 이유다. 인터뷰 당시 최 장로는 아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름에 배어 있던 그의 미소가 비로소 가슴으로 와 닿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황혼을 지나는 길에서 한창 인생을 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성실’이라는 게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하면서 허황된 꿈꾸지 말고, 충실하고 겸손하게 사는 게 가장 잘되는 길이야.”   그런 최 장로가 지난 6일 눈을 감았다. “손가락은 없지만 나누며 살고 있다”던 그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인 사회를 향하던 그의 미소 역시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떠났다. 1세대가 남긴 유산은 모두가 지켜내야 할 가치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어른 한인타운 한복판 한인타운 상권 한인 사회

2026.01.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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