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웠던 새벽, 가든그로브의 한 주차장. 경비 카메라에 찍힌 차는 잠시 흔들리더니 갑자기 두 번의 불빛이 안에서 번쩍였다. 기자는 2005년 4월 30일 당시 모 일간지 전·현직 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한 끔찍한 총격 사건을 감시 카메라로 확인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을 갚으라며 종용하다 방아쇠를 당겼고, 자신에게도 총을 쐈다. 20년이 지나도 당시의 충격과 고통은 오감으로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떠나지 않고 있다.
한인 사회의 총격 사망 사건은 ‘잊을만하면’ 다시 벌어지곤 한다. 지난 5일 발생한 텍사스 한인타운 총격 사건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일단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 매번 놀라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렇게 평범한 한인 이민자들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고, 그 총으로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을 하는구나”가 아닐까. 실제 총기를 가진 한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인종별 총기 구매 통계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꽤 많은 한인이 총기 소유자라는 것이 기자의 경험치다. 물론 어렵게 가족의 동의도 얻었을 테고 합법적인 경로를 통했을 것이다.
한인들이 총을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 1992년 LA 폭동 전후다. 무장 자체가 범죄 억제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일터에 누군가 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섭기도 하지만,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기 때문에 모두가 묵인했을 것이다. 지난해 집에 떼도둑이 들었던 한 분은 갖고 있던 권총이 도난당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을 봤다. 도난당한 총이 또 다른 범죄에 이용되면 매우 복잡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총기 소지와 구매가 허락되지 않은 문화에서 살던 한인들이 자기 무장의 권리가 보장되는 미국에 와서 현지 적응(?)을 해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을 보호할 수단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번 텍사스 사건의 경우처럼 무기는 방어 목적보다는 오히려 공격의 수단이 되는 경우도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숨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총기 사고(자살, 살인, 사고, 공권력 총격)로 숨진 사람이 무려 4만4000여 명에 달한다. 총은 아이와 어른, 성별, 국적을 따지지 않고 피해자를 만든다. 특히 집에서 방치된 총기를 갖고 놀다 오발 사고가 나거나, 학교에 가져가 친구를 위협하는 경우는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가장 후진적인 사고형태가 아닌가 싶다. 이는 온전히 어른들의 책임이며 곧 시스템의 문제다.
만약 범죄자들이 이런 극단의 폭력 수단을 소유할 수 없었다면 피해자 대부분은 아직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래서 연방과 주 정부들은 총기 구매자들의 범죄 기록도 조회하고, 정신적으로 온전한 사람인지도 꼼꼼히 본다. 하지만 사고는 항상 일어난다. 꼭 수정헌법 2조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자기 무장’을 신성한 권리로 간주한다. 국가가 안전을 제공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 또는 방어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권리라는 것이다.
총을 살 수 있고, 감정적 억제가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겹친다면 텍사스 사건 같은 범죄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헌법적 권리를 보장할수록 우리 사회는 총기 관련 사건·사고로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무고한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