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조기 전형 입시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보가 넘치기 때문에 더 힘겨워졌다. 수많은 기사와 통계, 합격 사례가 쏟아지지만, 그것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지 못하면 전략은 흐려진다. 단순히 서둘러 많은 곳에 지원을 하거나 높은 점수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 아이의 방향성을 먼저 세워야 한다. ▶입시의 판도를 바꾸는 ‘사회적 영향력(Community Impact)’ 최근 입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커뮤니티 임팩트에 대한 평가 방식이다. 봉사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그 활동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었는지가 중요해졌다. “우리 아이 봉사시간은 충분한가요?”라는 질문은 이제 핵심을 벗어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 아이는 어떤 문제를 스스로 발견했고, 어떤 해결 노력을 했는가?”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무엇을 실제로 변화시켰는가”를 묻는다. 예를 들어 단순히 푸드뱅크에서 시간을 채우는 것과 지역의 노인 식사 배달 시스템의 비효율을 발견하고 동선을 재설계하는 프로젝트는 완전히 다른 궤적이다. 단순 참여가 아니라 주도성(Initiative)과 지속성이 서사로 연결될 때, 그 경험은 강력한 메시지가 만들어진다. 꾸준히 참여했는가, 책임을 졌는가,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했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활동은 화려한 상장보다 깊은 인상을 오래 남긴다. ▶대학과 사회에서 동시에 요구하는 7가지 역량 대학은 이제 미래 직업 세계를 대비하는 기관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미 역량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구글, 테슬라, 수많은 스타트업이 강조하는 것은 학벌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다. 기업 채용에서도 프로젝트 경험과 실제 기여 사례를 묻는 질문이 늘어나고 있다. 입시 준비와 사회 준비는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판단력, 협업, 실행력, 회복탄력성, 그릿은 대학 입학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평생 자산이다. 지식은 빠르게 업데이트된다. 그러나 역량은 축적된다. 그리고 결국, 축적된 역량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아이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분명하다. 첫째는 판단력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본질인지 가려내는 힘이다. 수많은 뉴스, 데이터, SNS 의견 속에서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단순 암기로 길러지지 않는다. 이는 사고 훈련의 결과다. 둘째는 협업 능력이다. 대학 프로젝트와 기업 환경은 이미 개인 성취가 아니라 팀 기반 성과로 움직인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우리 팀이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를 평가받는 구조다.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힘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셋째는 지적 호기심이다. 성적을 위해 배우는 태도와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스스로 탐구를 시작하게 만들고,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지며, 결국 깊이를 만든다. 넷째는 실행력과 자율적 책임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은 다르다. 대학이 프로젝트 경험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이가 스스로 시작하고, 스스로 수정하며, 결과에 책임을 졌는지를 본다. 다섯째는 사고 과정이다. 결과는 때로 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했고 어떤 논리로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학생의 수준을 명확히 보여준다. 상위 대학이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집요하게 사고 과정을 묻는 이유다. 여섯째는 회복탄력성이다.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연구가 실패했을 때, 대회에서 떨어졌을 때, 포기하는 대신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시 시도하는 학생은 다르다. [blog.udallas] 마지막은 그릿(Grit), 즉 장기 목표를 향한 끈기다. 단기 성과 중심의 활동은 쉽게 구분된다. 1~2년 이상 지속된 탐구와 프로젝트는 깊이를 만든다. 이 일곱 가지 역량은 입시용 구호가 아니다. 대학과 사회에서 동시에 요구하는 실제 경쟁력이다. AI 심사가 도입되었어도, 결국 대학은 여전히 ‘사람’을 뽑는다. ▶문의: (323)938-0300 GLS.school 세라 박 교장 /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에듀 포스팅 입시 정보 사회적 영향력 현대 사회 프로젝트 경험
2026.02.22. 18:30
고대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는 사람이 온전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계 맺음이 확장되어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하며, 나아가 민족과 국가를 이루게 된다. 만약 개인이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불안정 속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에서 홈리스라는 개념은 단순히 주거 공간의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상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담아둘 곳이 없는 상황을 포함한다. 한편,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하며, 개인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또한, 국가가 미약하면 국민의 안전과 생존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는 많은 사람들을 유랑민으로 만들 수 있다. 결국, 국가의 존속과 번영은 강한 사회적 기반에서 비롯되며, 그 출발점은 개개인의 가정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사회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건전한 가정을 이루고 이를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들이 모여 올바른 사회를 형성하고, 이러한 사회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 좋은 강한 국가를 만들어간다. 결국, 국가와 사회의 근본적인 기초는 개인과 그들이 형성하는 가정이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 세대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혼과 출산을 삶의 부담으로 여기면서 비혼자가 증가하고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인구 감소와 국가의 존속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동양 윤리의 근간인 충효 사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적용될 가치이다. 조상과 부모가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며, 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아는 것은 중요한 삶의 덕목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자녀와 후손을 위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역할이다.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할 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 가정 해체, 사회적 불안정과 같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필요성 사회적 불안정 현대 사회 사회 공동체
2025.03.16. 17:32
우리말의 높임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금 더 권위적인 세상에서는 아무래도 더 나누어지고 더 복잡합니다. 조금 더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높임법의 체계도 흩어집니다. 단순히 높임과 낮춤의 두 단계로 변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현대 사회에서는 높임법의 힘이 약해집니다. 민주주의가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민주사회라고 하는 현대 사회에 새로운 높임법의 체계가 생겨난다면 놀라운 일입니다. 현재 우리말의 높임법이 복잡하다면 그것은 상대높임법 때문입니다. 어휘 높임은 많이 사라지고 이미 단순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이름을 나타내는 말은 성함과 존함, 함자 등이 있으나 실제로는 이름과 성함 정도만 쓰입니다. 존함이라는 말을 들어본 지도 오래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도 엄청나게 복잡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인지 남의 아버지인지에 따라서 다르고, 살아계신 아버지인지 돌아가신 아버지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한편 요즘 상대높임법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현대어에서 상대높임법은 여섯 종류가 있다고 이야기하나 실제로는 네 종류 정도만이 쓰입니다. 예를 들어 격식체에서는 ‘하십시오체’와 ‘해라체’, 비격식체에서는 ‘해요체’와 ‘해체’ 정도가 쓰입니다. 하오체나 하게체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쓰입니다. 격식체와 비격식체의 경계도 희미합니다. ‘해요체’를 비격식의 상황에서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 가도 ‘해요체’ 천지입니다. 그런데 상대높임법에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바로 ‘해용체’입니다. 이 높임법의 이름은 제가 만든 것입니다. ‘해용’의 표현은 처음에는 유아의 말투로 보였습니다. 귀여운 말투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먹었어요’를 ‘먹었어용’과 같이 표현하는 말투입니다. ‘예뻐요’를 ‘예뻐용’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해요체보다 더 친근한 비격식의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말투입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오해가 되거나 버릇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말투입니다. 해용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말에 ‘이응’을 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해요체가 해에 요를 넣는 것에 비해 해용은 해요에 이응을 붙이는 것이라고 단순히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이 매우 특이합니다. 특히 감탄사에도 이응이 첨가되는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이런 해용체의 표현이 처음에는 몇몇 사람의 말투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생활 현장에서도 폭넓게 사용됩니다. 카페 등에서 주문을 받을 때도 ‘넹’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메신저에서 준구어의 어투로 사용되었던 해용체의 말투가 실제 구어 상황에서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용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일반화되어 간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입니다. 향후 새로운 상대높임법으로 굳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해용체는 해요체와는 달리 어감 차이의 측면이 큽니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미안해요와 미안해용, 고마워요와 고마워용의 어감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시작은 아동이나 여성의 말투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전 연령층, 남녀의 구별이 없이 쓰이는 하나의 체계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해용체의 즐거운 반란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해요체 현대 사회 구어 상황 존함 함자
2022.11.20. 17:21
판굿은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걸립패나 두레패들이 넓은 마당에서 갖가지 풍물을 갖추고 순서대로 재주를 부리며 노는 풍물놀이’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금 쉽게 이야기하자면 ‘넓은 마당에서 함께 풍물을 갖고 노는 놀이’ 정도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굿이라는 말이 들어간 표현이므로 무속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굿은 판과 굿이 합쳐진 말입니다. ‘굿판’을 거꾸로 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무속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는 판굿이 아니라 굿판입니다. 어휘의 순서가 반대인데,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우선 판은 어떤 일을 하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씨름판이라든가, 난장판이라든가 하는 어휘에서 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판을 벌리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또한 예술과 관련된 용어 중에서는 판소리가 있습니다. 판소리에서 판굿의 의미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판소리의 소리는 주로 노래를 의미합니다. 소리 한 자락이라는 말이 노래를 의미하기도 하는 겁니다. 판소리는 판을 벌이고 노래를 한다는 느낌의 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굿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기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굿은 무당이 마을이나 특정한 개인을 위해서 벌이는 연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당의 연기와 노래, 춤, 연주 등이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의 현장입니다. 물론 종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종교이고 샤머니즘의 발현입니다. 굿이 지금은 미신처럼 취급되지만 사실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제사 형식이었습니다. 또한 축제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행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전부 굿과 관련이 있었을 겁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 우리가 배웠던 제천의식에는 굿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유교 등의 전래와 함께 무속이 힘을 잃어 갔고,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미신의 취급을 받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무속만큼 우리 문화의 집합체는 없는 듯합니다. 특히 굿이 그렇습니다. 굿판은 제천의식, 제사, 염원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축제의 자리였습니다. 굿판에서 흘러나오는 서사는 그대로 서사시이고 서사문학이었습니다. 구비전승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까지 전해지는 민요나 춤, 농악은 무속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속이 기원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굿판과 판굿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굿은 단순히 놀고 재주를 뽐내는 자리만은 아닙니다. 서로의 소원을 기원하기도 하고, 서로의 힘듦을 치유하기도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에너지를 합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즉 기원을 하는 공연이며 모두가 하나가 되는 전통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굿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참여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공연에는 청중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실제로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사람 외에도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공연자와 끊임없이 소통을 합니다. 힘을 북돋아 주는 추임새를 하기도 합니다. 공연의 빈자리에 연주가 들어가는 것은 물론입니다. 빈틈이 없습니다. 무악에서는 빈틈이 생기면 복이 달아난다고 합니다. 끊이지 않는 연주와 음악과 추임새 등에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입니다. 판굿과 굿판에서는 복을 빌고 치유을 원하는 청중의 참여가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의 복, 가족의 복, 마을의 복, 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기에 당연히 참여가 이루어집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아픈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판은 치유의 판입니다. 위로의 판입니다. 공감의 판입니다. 하나가 되는 판입니다. 울고 웃고 묵은 감정을 푸는 해소의 판입니다. 판굿은 모두를 하나로 잇는 치유와 에너지의 공연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제천의식 제사 음악과 추임새 현대 사회
2022.01.09.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