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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 비비며 사는 곳이 나의 지표

새 봄이 진짜 왔다. 무섭도록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반짝이는 햇살이 따스하다. 조석으로 앙칼진 싸늘한 기운이 돌지만 햇볕은 단단한 모든 것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천둥 치고 폭설이 내리던 추위에도 모질게 견뎌낸 나무와 풀잎들은 작은 손을 내밀고 기지개를 켠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것들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들은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꽃잎은 서로 얼굴을 비비고 가지는 작은 잎을 손 끝에 매달고 여린 악수를 한다. 아마 작은 휘파람 소리로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바람은 휘몰아 치며 무섭게 소리 지른다. 꽃잎을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나뭇가지 꺾어 내동댕이 친다. 산들바람은 그대 창가에 기웃거리다가 장난끼가 발동하면 분홍빛 새아씨의 두 볼을 툭툭 치며 달아나기도 한다.   온 동네가 왁자지껄 하다. 적막강산이던 이웃들이 야단 법석이다. 아이들이 타는 롤러스케이트와 스쿠터 밟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모처럼, 사람 사는 동네에 사람사는 소리가 넘쳐난다. 제일 시끄러운 건 잔디 깎는 소리다. 가스 넣어 자체 잔디 깎는 기계를 사용했는데 새로 이사 온 집은 뒷마당이 넓어서 Riding lawn mower를 구입했다.   잦은 소낙비로 잔디를 못 깎다가 주말에 햇빛만 나면 온 동네가 잔디 깎는 소리로 귀가 아플 정도다. 옆집 아저씨는 귀마개 끼고 멋진 선글라스 쓰고 황야의 무법자처럼 긴 부츠를 신고 작업에 몰두한다. 키 작은 우리집 정원사 아저씨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요리 조리 운전을 잘 해서 순식간에 해치운다.   30년이 넘게 살던 옛집은 처음에는 동네 애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대학 졸업하고 결혼 하고부터 일년에 몇 차례 공휴일 때만 귀향(?)해서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됐다. 할로윈 때는 백명 가까운 아이들이 별의별 변장을 하고 축제를 벌여 뒷마당 잔디밭을 쑥대밭으로 망가트렸는데 그 때가 정말 그립다.   상큼한 풀 냄새가 진동하는 새 동네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현관 문을 닫아도 아이들 웃음소리, 앞집 꼬마가 타는 세발 자전거 페달 소리, 담장에 골대 쳐 놓고 두 아들에게 풋볼 연습시키며 땀 뻘뻘 흘리는 뒷집 남자 팔뚝은 싱싱한 활어처럼 듬직하다. 옆집의 귀염동이 하얗고 반짝이는 멋진 털을 뽐내는 그레이스 양은 백수로 왔다 갔다 하는 날 꼬시려고 프리스비(frisbee)를 물고 와서 같이 놀자고 꼬리 흔든다. 완벽하고 멋진 봄날! 즐거운 비명 소리가 동네에서 터져 나온다.   죽은 것, 생명 없는 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한 체 황급히 길을 떠난다. 밤이면 또 다시 다가올 어둠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별이 쏟아지는 연못가 언덕에서 그리움 담은 엽서를 띄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중략)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항해(航海, navigation)나 위치 찾기(orientation)는 목표를 향하여 이동하는 상태나 능력, 그런 과정이다. 개미는 특정 냄새가 나는 페로몬을 길 위에 분비해 다른 개미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길을 찿는다. 철새는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자 단백질인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을 뇌와 망막에 가지고 있어 이동주기를 결정하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동물도 끼리끼리 모여 산다. 새들은 군단을 이루며 난다. 봄 향기와 사람 냄새에 취해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나의 지표라는 생각을 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뒷마당 잔디밭 아이들 웃음소리 휘파람 소리

2025.05.0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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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휘파람새 봄을 안고 오다

고마운 봄의 단비가 내리더니 흰색 아이리스를 시작으로 꽃들이 뜰을 장식한다. 죽어가던 과일 나무들도 두어 해 음식찌꺼기를 묻고 물 좀 주며 돌보아주었더니 꽃들이 피었다. 어릴 적 부르던 ‘고향의 봄’ 노래 가사처럼 작은 꽃 대궐이다.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자주 만나는 작은 새들 중에 ‘휘파람새’가 좋다. 참새과로 영어로는 하우스핀치(house finch)라고 한다. 수놈은 노래를 부르는데 잿빛 깃털에 머리와 가슴 목 둘레가 불그스레하다. 노랫소리를 크게 들으려고 패티오 유리문을 활짝 열어둔다.   수십 년 이 집에 와서 처마 밑에 못을 치고 상자를 받쳐주자 새들은 둥지 만들었고 그 후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나 둥지에서 날아갔다.     상쾌한 휘파람 소리는 친정아버지와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한다. 지금으로 치면 상대 같은 학교를 나와 주판을 잘 놓으셨다고 들었다. 막내딸인 내가 태어난 서석동의 아담한 집을 처음으로 마련하셨다. 창의적으로 손수 설계도 하셨지만 실내도 많이 꾸미셨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며 늘 휘파람을 불던 아버지. 찔레꽃 피던 담에는 흰색 분필로 “아름다운 꽃을 꺾지 말고 바라보자”라고 쓰셨다. 부엌의 벽에는 “소중한 싸래기(부서진 쌀알)를 밟지 말라”고도 적으셨다.   집안 벽에는 밀레의 ‘저녁 종’ 명화부터 여러 그림과 방 한구석에는 일본 여배우 사진까지 걸어놓으셨던 예술적인 분이셨다. 이모가 내 수필집을 읽으시며 “너는 아버지를 닮았구나”하고 말한 이유다.   아버지는 젊은 날 성격이 급하시고 화도 잘 내셨다. 초등학교 때였다. 한번은 어머니랑 영화구경 하시고는 돌아오실 때 따로 들어오신 적이 있다. 어머니께 여쭈니 길에서 놀던 아이들이 실수로 아버지의 구두를 밟았는데, 마구 소리를 치다가 창피해지셨는지 먼저 휙 들어와 버리셨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뇌출혈로 쓰려져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는 기가 죽어 순한 양처럼 변하셨다. 늘 어머니한테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대학 재학시절 가정교사를 하며 힘들게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에 집에 가니 아버지께서 밥상에서 날 보며 “누구냐”고 어머니한테 물어보셨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삶을 곱게 마무리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시신이 든 관에 못이 박혀버린 뒤에야 도착했다. 죄송함은 평생 가슴에 남았다.     아버지는 돈 욕심도 없었다. 도둑질하고 불량하게 사는 걸 제일 싫어하셨기에 월급쟁이 가장은 여기저기 이동하시며 힘들게 사셨다. 그런 와중에서도 부모님은 늘 올바른 사람이 되는 정신적인 교육을 하셨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남에게 손 내밀지 않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면서 남에게 베풀며 살기를 노력한다.     지금 살아계시면 113세가 되실 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세대 어른들이 고생하여 세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너도 나도 힘들어 살맛도 나지 않으니 요즘은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휘파람새를 바라보면서 제발 나의 답답한 가슴 좀 뚫어 달라고 하소연해본다. 최미자 / 수필가이아침에 휘파람새 휘파람새 봄 휘파람 소리 흰색 아이리스

2025.04.2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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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대서양의 잔칫날

유난히도 따스했던 겨울   뭇 사람들이 그리웠던 대서양   바다는 모른 체 했다       가고 싶다 엽서 한장   겨울바람에 띄었다   되돌아온 풍랑의 외침   외롭고 거친 휘파람 소리만 들렸다       보고 싶다 겨울 바다   해 오름 찬란한   부서진 물꽃 천사들   흔적도 없는 파란 춤   물 밑의 옛 친구들   무지개 연결 고리에 안부를 묻는다       밤새 조용한 굉음이   밤의 거울을 깨뜨리고   텅 빈 자리 동행을 서두른   뭇 별들이 내려다본다       어느새 수평선 눈썹이 열린다   굶주린 파도의 노숙자   한 상 차려놓고 잔칫상 밑에 바늘을 감춘다       속임수는 그들의 웃음 놀이로 석양에 숨어 갔다 오광운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대서양 잔칫날 겨울 바다 휘파람 소리 수평선 눈썹

2022.04.01. 17:27

[글마당] 대서양의 잔칫날

유난히도 따스했던 겨울   뭇 사람들이 그리웠던 대서양   바다는 모른 체 했다       가고 싶다 엽서 한장   겨울바람에 띄었다   되돌아온 풍랑의 외침   외롭고 거친 휘파람 소리만 들렸다       보고 싶다 겨울 바다   해 오름 찬란한   부서진 물꽃 천사들   흔적도 없는 파란 춤   물 밑의 옛 친구들   무지개 연결 고리에 안부를 묻는다       밤새 조용한 굉음이   밤의 거울을 깨뜨리고   텅 빈 자리 동행을 서두른   뭇 별들이 내려다본다 오광운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대서양 잔칫날 겨울 바다 휘파람 소리 무지개 연결

2022.03.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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