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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살이] 잘한다는 것, 절제의 미학

연주를 하다 보면 가끔 300에서 360bpm에 이르는 고속의 프레이즈를 연주해야 할 때가 있다. 60bpm이 1초에 하나의 음을 연주하는 속도라면, 360bpm은 1초 안에 여섯 개의 음을 정확히 눌러야 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움직임을 하지 않아야 한다. 손가락 하나라도 헛되이 흔들리는 순간, 다음 음은 이미 늦는다. 그래서 고속 연주는 단순히 ‘빠른 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낭비가 없는 몸을 요구한다.   잘 연주되는 빠른 프레이즈를 가까이서 보면 묘하게도 화려하지 않다. 손가락은 최소한의 궤적만을 그리고, 손목은 불필요한 각도를 만들지 않으며, 몸 전체가 조용하다. 마치 이미 그 길이 몸에 새겨진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고도 정확히 도착한다. 빠른 연주는 결국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어떤 하나의 일을 오래 한 사람의 몸짓에는 공통점이 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손짓 하나, 시선 하나에 의미가 있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 모습은 기술을 넘어 하나의 절제미처럼 보인다.     아들을 재우고 아내와 함께 늦은 밤 흑백 요리사의 이번 시즌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리 명장들이 칼을 쥐고 채소를 썰고, 웍을 흔들며 불 앞에 서 있는 모습에는 긴 설명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칼질은 빠르지만 요란하지 않고, 웍은 거칠게 흔들리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다. 거기에는 힘을 주는 대신 힘을 아끼는 법을 배운 몸이 있다.   우리는 흔히 ‘잘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많이 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용하다. 말수가 적고, 몸짓이 작고, 움직임이 짧다. 그들은 에너지를 쓰기보다 에너지를 남긴다.   새해가 되면서 여기저기에서 적지 않은 오퍼를 받게 되었다. 5년째 살아온 오리건의 숲에서 긴 밤을 품은 겨울을 보내다 보면, 괜스레 이곳의 삶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고, LA나 한국에서 다시 시작해 보면 어땠을까 하는 요망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보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업이 얼마나 더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겁이 나기도 한다.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살자는 다짐조차,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이 글은 그런 나, 그리고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다잡기 위해 쓰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기회와 방향을 모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발전은 언제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과 능력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살다 보면 가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지치고, 더 재밌어 보이는 다른 일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오래 가는 사람들의 비밀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을 덜 흔들고, 덜 낭비하며, 더 깊게 하는 법에 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 비어 있기 때문에 흔들릴 때마다 소리가 난다. 반대로 꽉 찬 수레는 조용하다. 무게가 있어서 쉽게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니 소리도 나지 않는다. 좋은 연주도, 장인의 칼질도, 오래가는 삶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낭비의 문제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덜 새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     요란한 선택보다, 조용한 반복이 사람을 깊게 만든다. 한 번의 큰 결심보다, 매일의 작은 절제가 결국 방향을 바꾼다. 눈에 띄는 변화보다, 눈에 띄지 않는 축적이 삶을 멀리 데려간다.   타향에서 살아가는 삶에는 각자의 드라마가 있고, 지금 처한 내 상황이 유난히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아마 우리가 오래 붙잡아야 할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얼마나 조용하게 가고 있는가?”  이유건 / 회계사오리건 살이 절제 미학 고속 연주 작고 움직임 흑백 요리사

2026.01.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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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트렌드] ‘킥(Kick)’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최근 흑백 요리사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시즌 1을 너무 재밌게 보아서 다시 시청하고 있다. 그중에 인상적인 대사는 임성재 심사위원의 “맛은 있는데 킥(Kick)이 없다”는 말이다. 흑백 요리사에 참가하는 셰프들은 이미 유명한 분들이다. 그렇다 보니 맛은 다 좋다. 그러나 그 셰프의 철학과 의도가 담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또 다른 경지다. 시즌 1에서 그 경지를 이룬 분이 에드워드 리 셰프다. 최종 2등을 했지만 그분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 담긴 요리는 그의 요리 철학을 잘 나타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표현이 더 이상 요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개인, 학생, 기업, 심지어 교회까지 모든 존재에 대해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kick이 있는가”.     평균은 안전하지 않다. ‘잘함’이 무력해지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평균 이상”이면 충분했다. 성실한 학생, 무난한 기업, 문제없는 교회는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요즘 AI의 등장으로 대학 졸업생들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기존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에도 학부모들은 아직도 아이비리그 목표로 아이들을 교육한다. 이제는 시스템에서 지식 습득하여 좋은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자신만의 kick이 있어야 한다. 인생의 스토리에서 무엇을 실패했고 어떤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의 비전이 ‘킥’이 되어야 한다. 부모의 치맛바람으로는 부족하다.   심지어 대학 진학도 ‘킥’이 없는 학생들은 아무리 성적이 좋고 엑스트라 커리큘럼 활동을 많이 해도 불리하다. 비슷한 스펙, 비슷한 활동, 비슷한 자기소개서, 비슷한 말투와 생각, 문제는 성적이 아니다. 문제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킥’이 있는 학생은 이런 특징을 가진다. 특정 주제에 대한 집요함, 말할 때 살아나는 눈빛, 남들이 안 묻는 질문, 결과보다 과정에서 드러나는 태도이다. ‘킥’은 재능보다 관점에서 나온다. 그리고 관점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왜?”를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었는가에서 만들어진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은 기술적으로 훌륭하다. 문제는 시장에 비슷한 훌륭함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격 경쟁은 끝이 없고 기능은 금세 복제되며 브랜드는 말은 많은데 기억하긴 어렵다. ‘킥’ 없는 기업의 특징은 명확하다. “우리는 고객 중심입니다”, “최고의 품질을 제공합니다”, “신뢰와 혁신을 추구합니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기업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킥’이 있는 기업은 다르다.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하며 선택받지 못해도 이유가 명확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말씀 중심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르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렇게 말한다. ‘킥’이 있는 교회는 규모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존재 이유가 선명하다. 세상과 다른 질문을 던지고 불편한 진실을 피하지 않으며 대신 정직한 교회, 살아 있는 신앙, 그리고 “여기에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이 느껴야 한다. ‘킥’은 자극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email protected] 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kick 흑백 요리사 학생 기업 생각 문제

2025.1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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