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에마 톰슨이 창조한 60대의 에로티시즘

Los Angeles

2022.06.10 20:0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굿럭 투 유, 리오 그란데
(Good Luck to You, Leo Grande)
여배우들의 전라 노출은 배우의 몸매 그 자체에 관심의 포커스가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국 여배우의 자존심 에마 톰슨은 ‘여배우의 누드’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다. [Searchlight Pictures]

여배우들의 전라 노출은 배우의 몸매 그 자체에 관심의 포커스가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국 여배우의 자존심 에마 톰슨은 ‘여배우의 누드’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다. [Searchlight Pictures]

영화 리뷰

영화 리뷰

섹스가 주제인 듯, 아닌 듯한 이 영화에 전라의 모습을 보이는 여배우는 샤론 스톤도, 샬라이즈 테론도 아니다. 남성 에스코트를 호텔로 불러 하룻밤 재미를 즐기려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는 평소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는 배우, 그리고 메릴 스트립과 함께 지성으로 이미지업된 대표적 배우 에마 톰슨이다.  
 
노출과는 전혀 무관한 그녀가, 그것도 60대에 들어 전라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은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톰슨이 거울 속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감미로운 선율의 실내악을 감상한 후의 느낌처럼 유쾌하다.  
 
성장한 두 자녀의 어머니 낸시는 얼마 전 남편을 잃고 평생 종사하던 교사직에서도 은퇴했다. 지성과 분별력, 세련미가 몸에 밴 그녀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욕망하는 한 가지가 있다. 호텔 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곧 젊고 매력적인 용모의 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아도니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이름은 리오 그란데(대릴 맥코맥). 낸시가 시간제로 고용한 남성 에스코트다. 남편과 31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낸시는 죽기 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의 손길을 느껴 보고 싶었다.  
 
62세의 여성과 20대의 남성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이 함께 호흡하는 작은 공간은 에로틱한 분위기로 그득 차온다. 낯선 남자 앞에서의 노출을 수줍어하는 낸시는 본론(?)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장황한 서론으로 시간을 끈다. 리오에게도 그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낸시와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남성 에스코트라는 소재, 섹시한 세팅 때문에 ‘프리티 우먼’ 류의 영화인 듯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섹스 그 자체보다, 한 공간을 공유하는 남녀에게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고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친밀감에 주목한다. 그리고 반전과 굴곡으로 영화를 채워나간다. 어색함으로 시작한 실내악은 궁극적으로 친밀하고 섬세한 앙상블 2중주로 막을 내린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낸시의 며칠 간의 여정을 통해 영화는, 섹스는 어느 세대의 누구에게든 흥분되는 심리적 현상이며 인간은 누구나 성애를 추구하고 있음에 공감하게 한다. 낸시는 노후의 한가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레오와의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대담하고 솔직한 용기로 그동안 부정해왔던 자기 수용과 새로운 자아 발견에 이른다.  
 
톰슨과 맥코믹의 케미 연기는 영화의 에로티시즘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최대의 동력은 에마 톰슨이라는 위대한 배우의 대사력이다. 은퇴한 60대 미망인의 소박한 섹슈얼리티는 어쩌면 그녀만이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인 듯싶다.

김정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