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퓨필’은 1940년대 전시 이탈리아의 가톨릭 고아원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녀들의 이야기. 연말 연휴에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강추할 만하다. [Disney Plus]
영화 리뷰
이탈리아의 영화계의 신성과도 같은 존재 엘리스 로르와처는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2014년 칸영화제에서 ‘The Wonders’로 심사위원상을, 2018년 ‘해피 애즈라자로’(Happy as Lazzaro)로 각본상을 수상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에는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멕시코의 거장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을 맡고 로르와처가 감독한 37분짜리 단편 ‘더 퓨필’ 역시 지난 5월 칸영화제에 초청, 상영되면서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디즈니+ 채널의 연말 프로그램으로 올라와 있다.
이탈리아어 원제 ‘Le Pupille’는 어린 학생, 문하생이라는 의미 외에 눈동자 또는 동공이란 뜻도 지닌다. 영화 ‘더 퓨필’은 한 단어 안에 담긴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다룬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동심과 탐욕으로 바라보는 가톨릭 고아원 어린 소녀들의 눈동자 또는 동공!
붉은색을 내기 위해 버터밀크, 식초, 코코아를 사용하는 ‘레드 벨벳’은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케이크다. 1940년대 초 전쟁이 한창인 이탈리아. 크리스마스를 맞았지만 풍족하지 못한 이 시기에 케이크 한 조각을 향하는 탐욕은 비단 어린 소녀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레드 벨벳을 중심으로 짓궂고 장난기 많은 고아원 소녀들과 수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일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탁자 위에 커다란 사이즈의 레드 벨벳 케이크가 놓여 있다. 그 매혹적인 물체를 응시하고 있는 소녀들의 동공에는 순수, 탐욕, 환상이 동시에 춤을 춘다. 장난꾸러기 소녀들은 이기적이라 차라리 순수하다. 유혹이 넘친다. 엄격한 사감 수녀의 명령은 소녀들을 부동자세로 멈추게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동공 안에서 무절제하게 움직이는 ‘춤’까지 멈출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고아원에 일대 혼란을 불러온다.
상상력과 예술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 영화는 단편임에도 로르와쳐가 이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감독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감독의 여동생이며 오랜 협력자인 알바 로르와처가 엄격하고 단호한 고아원 사감 수녀를 연기한다. 발레리아 브루니(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언니)가 고아원 소녀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동네 부인으로 잠시 등장한다. 전시였던 40년대 이탈리아를 효과적으로 연상시키기 위해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