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해파리 이불
흥부전에 보면 흥부는 가난한 데다 애들이 많아 2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은 오막살이로 밤이면 방에 앉아서도 별을 볼 수 있고 비가 오면 천정에서 물이 새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각자의 이불을 만들어 줄 수 없어 멍석에 25개의 구멍을 뚫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 구멍으로 머리만 내밀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불 속에서는 냄새는 좀 났겠지만 따뜻한 형제애가 푸근하게 익어 갔을 것입니다.캐나다의 아브라로드라는 원주민의 집에도 이런 이불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이불에 구멍을 뚫어 목을 내밀고 여럿이 들어가 앉아 있으면 서로의 체온 때문에 따뜻하고 서로 마주치는 스킨십으로 사랑의 열기가 무르익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캐나다의 아브라로드 주민은 유대감이 강하고 단결이 잘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카톡으로 온 글에 옛날 방에 펴져 있던 검은 무명이불이라는 이야기가 났고 많은 댓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옛날 단칸 온돌방에 불을 때면 방바닥이 식을까 봐 이불을 펴 놓았고 이 이불에 식구들이 모두 다리를 넣고 앉아 낮에 듣거나 있었던 이야기며 애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었던 추억의 이야기였습니다. 더욱이 어머니가 고구마라도 몇 개 삶아 오면 그걸 먹으며 지냈던 밤의 추억이 눈물 나게 그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옛날 우리가 살던 집은 방이 두 개나 많아야 세 개였고 식구들은 적어야 5명 많으면 10명이 넘었습니다. 우리 집도 식구가 6명에 방이 두 개였습니다. 안방에는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막내 여동생이 잤고 윗방에서는 형님, 나 그리고 동생이 잤습니다. 형님은 요와 이불이 있었지만 동생과 나는 같은 요와 한 이불에서 서로 살을 부딪치며 잤습니다. 이런 생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가정교사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변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나면서부터 자기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웬만한 아파트에는 방이 3~4개가 있고 어린애들이 방이 전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독립성을 가지고 생활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어린애들은 누가 자기 방에 들어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물론 친구가 와서 같이 들어가는 것을 말고는….
지금의 어린애들은 어려서부터 Privacy를 가지고 이를 침범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가끔 한국 드라마에서 여자애가 “엄마, 오빠가 내 책상에 XX를 건드렸어”하고 일러바치는 장면을 봅니다. 어려서부터 나의 영역을 침범받아서는 안 된다는 독립성이 있어 좋기는 하지만 이기적인 인성을 길러준다는 요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탁에 앉아서도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취업 초년생들이 모두 자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용은 다른 내용입니다.
이제는 해파리 이불 속에 들어가 가족이 모두 한 제목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즐기는 현상이 없습니다. 지금의 MZ 세대나 알파 세대는 이기적입니다. 방만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도 혼자의 것이고 스마트폰도 혼자의 것입니다. 가족들과는 별개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자기가 속한 학교의 동아리들 모두 독립적이고 비밀입니다. 그러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보수인데 아버지, 어머니는 진보이고 젊은 세대들은 바람에 불리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상적인 경향보다는 삶을 즐기려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에게 사탕을 쥐여주는 정치인들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세대를 보며 우리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는 늙은이의 걱정일까요.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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