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리(V O A )’는 미국 정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정책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든 국제방송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 24일에 독일어로 첫 방송을 시작했고 한국어방송은 그해 8월 29일 이승만의 제의로 시작됐다. 나도 청소년 시절에 KBS가 중계해주는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을 열심히 듣던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그런 데 이게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60대에 뒤늦게 미국에 이민 와서 잡은 첫 직장이 ‘미국의 소리’였다.
우리니라가 아직 일제 치하일 때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은 조국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희망의 소리’였다. 1942년 6월 13일, 이승만은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을 통해 조국 독립의 필요성을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리고 일제에 맞서 결사 투쟁할 것을 격려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은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총독부는 ‘외국 단파방송 청취 금지령’을 공포하고 단파방송청취를 금지하던 시기였다. 항일단파방송수신사건’은 경성방송(JODK)에서 근무하던 조선인 직원들이 ‘미국의 소리’ 한국어방송을 몰래 듣고 주변에 알려준 것이 발각된 사건이다. 그 당시 일반인들은 그 방송을 들을 수가 없었지만 , 방송국에 있던 단파 수신기로 또는 단파수신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몰래 수신기를 만들어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일제 경찰 감시망에 걸린 것이 바로 단파수신사건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아나운서, 엔지니어 등 약 40명이 체포되는 등 지방방송국까지 합해 150명의 한국인 방송인들이 검거되고 민간인 150여 명 등 모두 300여 명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과 수난을 당했다.
“나는 이승만입니다”로 시작되는 이 연설은 80여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가슴이 뛴다. 이승만의 단파방송 육성 원본은 현재 천안 소재 독립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연설을 다시 한번 들어본다.
나는 이승만입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해내 해외에 산재한 우리 2천3백만 동포에게 말합니다. 어디서든지 내 말 듣는 이는 자세히 들으시오. 들으면 아시려니와 내가 말한 것은 제일 긴요하고 제일 기쁜 소식입니다. 자세히 들어서 다른 동포에게 일일이 전하시오. 또 다른 동포를 시켜서 모든 동포에게 다 알게 하시오. 나 이승만이 지금 말하는 것은 우리 2천3백만의 생명의 소식이요, 자유의 소식입니다. 저 포악무도한 왜적의 철망, 철사 중에서 호흡을 자유로 못하는 우리 민족에게 이 자유의 소식을 일일이 전하시오. 감옥, 철창에서 백방 악형과 학대를 받는 우리 총애 남녀에게 이 소식을 전하시오. 독립의 소식이니 곧 생명의 소식입니다. 왜적이 저의 멸망을 재촉하느라고 미국의 준비 없는 것을 이용해서 하와이와 필리핀을 일시에 침략하여 여러 천 명의 인명을 살해한 것을 미국 정부와 백성이 잊지 아니하고 보복할 결심입니다. 아직은 미국이 몇 가지 관계로 하여 대병을 동하지 아니하였으매 왜적이 양양자득하여 온 세상이 다 저희 것으로 알지마는, 얼마 아니해서 벼락불이 쏟아질 것이니 일황 히로히토의 멸망이 멀지 아니한 것을 세상이 다 아는 것입니다.
우리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 있어 애국 열사 김구, 이시영, 조완구, 조소앙 제씨가 합심 행정하여 가는 중이며, 우리 광복군은 이청천, 김약산, 유동열, 조성환 여러 장군의 지휘하에서 총사령부를 세우고 각방으로 왜적을 항거하는 중이니, 중국 총사령장 장제스 장군과 그 부인의 원조로 군비·군물을 지배하며 정식으로 승인하여 완전한 독립국 군대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주와 하와이와 멕시코와 쿠바의 각지의 우리 동포가 재정을 연속 부송하는 중이며, 따라서 군비·군물의 거대한 후원을 연속이 보내게 되리니, 우리 광복군의 수효가 날로 늘 것이며, 우리 군대의 용기가 날로 자랄 것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쉽지 아니하나니 37년간을 남의 나라 영지에서 숨겨서 근거를 삼고 얼고 주리며 원수를 대적하던 우리 독립군이 지금은 중국과 영·미국의 당당한 연맹군으로 왜적을 타파할 기회를 가졌으니 우리 군인의 의기와 용맹을 세계에 드러내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천추에 발포할 것이 이 기회에 있다 합니다. 우리 내지와 일본과 만주와 중국과 시베리아 각처에 있는 동포들은 각각 행할 직책이 있으니 왜적의 군기창은 낱낱이 타파하시오. 왜적의 철로는 일일이 타상하시오. 적병의 지날 길은 처처에 끊어 버리시오.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왜적을 없이해야만 될 것입니다.
이순신, 임경업, 김덕령 등 우리 역사의 열렬한 명장, 의사들의 공훈으로 강포·무도한 왜적을 타파하여 저희 섬 속에 몰아넣은 것이 한 역사에 한두 번이 아니었나니 우리 민족의 용기를 발휘하는 날은 지금도 또다시 이와같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지에서는 아직 비밀히 준비하여 숨겨 두었다가 내외의 준비가 다 되는 날에는 우리가 여기서 공포할 터이니 그때는 일시에 일어나서 우리 금수강산에 발붙이고 있는 왜적은 일제히 함몰하고야 말 것입니다. 내가 워싱턴에서 몇몇 동포와 미국 친구·친우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정부와 교섭하는 중이매 우리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을 날이 가까워 옵니다. 승인을 얻는 대로 군비·군물의 후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희망을 가지고 이 소식을 전하니 이것이 즉 자유의 소식입니다.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씨의 선언과 같이 우리의 목적은 왜적을 파한 후에야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백배나 용기를 내어 우리 민족성을 세계에 한 번 표시하기로 결심합시다.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비치나니 일심 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합시다.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 이 말을 잊지 말고 전파하며 준행하시오. 일 후에 또다시 말할 기회가 있으려니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할 것이 이때의 우리의 손에 달렸으니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 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2,300만 동포여!
정치 지도자는 말을 통해 정치를 한다. 연설은 대중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우남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다. 하지만 학생 시민들의 봉기로 권좌에서 쫓겨난 ‘독재자’이기도 하다. 그는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한편에서는 “친일파들을 중용해 민족정기를 흐렸다”고 비난을 한다. 그는 애국자였지만, 좌파로부터는 “미국에 붙어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선 분단의 원흉”으로 지탄받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박사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도 공산화되어 북한처럼 중국 중심의 대륙문명권에 묶였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구한말부터 형성되어 온 문명개화의 꿈을 국가 차원에서 실현한 개혁파 지식인 이승만의 공이다. 작가 복거일은 이승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남은 평생 ‘협박’을 하고 산 사람이었다. 그분은 협박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옳다고 확신한다. 당신이 내 말을 반박해 봐라. 반박 못 하겠으면 선택하라. 나를 꺾기 위해 큰 비용을 치를 것이냐, 나와 협력할 것인가, 나를 밟고 갈 것인가. 그는 미국 사람들에게 잘 통했다. 미국인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계산이 빠른 문화다. 대표적인 예가 반공포로 석방이다.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우남과 타협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자 미군 장성들이 흔들렸다. 그는 타이완의 경우처럼 제주도로 옮기는 척하며 미국을 협박했다. 또 그는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는 질량이 매우 큰 분이었다.”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시비와 포폄(褒貶)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역사에 보기 드문 출중한 인재였으며 우리 민족이 배출한 최초의 세계적 정치가였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의 공과(功過)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장점이나 성과만을 부각시키거나 단점이나 과오만을 부각시켜서도 안 될 것이다. 그는 독선적이고 고집이 센 지도자였끼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의 그러한 성격이 마지막에 실책을 범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과오와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의 장기적인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발전의 기초가’ 되는 비전을 제시한 건국 대통령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4.19혁명 때 나는 대학생 데모대 속에 섞여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경무대(현재의 청와대)앞까지 달려갔다. 그때 바로 옆에 섰던 절친한 친구 하나를 잃었다. 그리고 며칠 후 노정객이 하야하여 하와이로 망명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오늘날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나는 존경한다.
역사는 겸손해지기 위해, 반성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지 분노하고 증오하고 혐오하고 낫으로 찍어내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를, 이승만을 잔혹하며 파탄적인 독재자와 개념 없는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나라에 미래 같은 건 없다. 결국 모든 선택의 책임은 그 스스로에게 돌아간다. 극심한 이념대결과 내부분열로 나라가 어지럽다.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조국의 총체적 위기를 보면서 우남 이승만 같은 큰 리더가 그립다. 현재 한국을 온통 어지럽히고 있는 ‘좀스럽고 지저분한’정상배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세계 6위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치는 왜 이 모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