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마운트 위트니
수필
맹수가 하늘을 따고 있다. 들쥐가 기와를 뜯고 있다. 흡혈귀가 목살을 떼고 있다. 꿈이다. 마운트 위트니 중턱 기슭의 캠프장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띠륵띠륵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텐트 밖으로 나가니 마운트 위트니의 정상은 하얀 눈으로 치장되어 사람 얼굴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건너편 파란 하늘에선 밤새 달구어진 해가 금빛 조명을 발하며 위트니의 위용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밤늦게 도착하여 어제는 볼 수 없었던 경관이다.
4421m로 미국 대륙에서 가장 높다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산이다. 한라산, 백두산보다도 높다. 캠핑객들,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 공기가 무척 신선하고 상쾌하다. 캠프장을 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자, 세차게 내리붓는 맑은 물줄기가 문명을 누비다 들어온 나의 부르튼 발목을 끌어안고 정신없이 흐느낀다. 빌딩의 숲에서 순리인 양 착각하고 살던 나의 실체를 깨우는 순간이다. 동쪽으로는 해저 86m까지 내려가는 메마른 땅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Death Valley)가 펼쳐져 있어 위트니의 위상은 더 높게 느껴진다.
아무리 뒤꿈치를 들어도 신장이 3m가 되지 않는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 빚어진 높은 산들을 찾아 오르기를 즐긴다. 남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보는 데에 큰 의미를 두는 이들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은 8848m의 마운트 에베레스트(Mount Everest). 순조롭지 않은 기상 조건으로 인해 정상까지 오르기엔 어려움이 많은 산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산의 정상에 서보고자 목숨을 걸었고 또 목숨을 잃었던가. 쉽지 않은 그 세계 최고의 산 등반에 도전하여 성공적으로 정상에 올라 우뚝 서는 분들에게 나는 항상 큰 박수를 보낸다.
오래전 뉴욕 맨해튼에 갔을 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 1931년에 지어진 후 4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102층, 381m로 위세를 떨친 건축물이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서 많은 시선을 얻었으나, 그 후 더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빛을 잃게 되었다. 현존하는 인간 축조의 가장 높은 건축물은 두바이에 있는 무려 828m에 달하는 버지 칼리파(Burj Khalifa) 빌딩이다. 비록 에베레스트 산 높이의 10분의 1도 안되지만, 3m도 되지 않는 작은 인간들이 지능을 모으고 기술을 닦아서 세워 올리게 된 건축물로서는 칭송할 만하다.
고대 역사에 신이 내린 홍수의 재앙을 겪은 후 쌓기 시작했다는 바벨탑은 과연 높이가 얼마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시대에나 지금이나 건축물을 높이 세우고 높이 올라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100년 남짓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갖은 꿈과 노력을 펼친다.
아이들에겐 커서 한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인 대통령이 되라고 하기도 하고, 요즈음은 세계 만국을 주재하는 높은 직책인 유엔사무총장이 되라고도 한다. 학업에서도 1류 명문 학교에 가서 1등 하라고 하고, 스포츠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챔피언이 되라고 하고, 연예에서도 최고의 인기인이 되라고 한다.
어른들은 직장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사업에서도 남들보다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리려 한다. 돈도 가장 높은 액수를 벌고자 하고, 행복도 가장 높은 수준에서 누리고자 한다.
어떤 이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높임 받는 교주가 되기도 한다. 숱한 부부 갈등도 서로 위가 되려는 데서 빚어지기도 한다. 그 바람에 오늘도 세상엔 갖가지 몸부림이, 부딪김이, 칼부림이 끊임없다.
남보다 높아지려는 꿈을 가슴에 품은 수많은 인간들이 공같이 둥근 지구 표면에 중력 받아 발 딛고 매달려서, 뭔가에 부산히 오르려 한다. 80억 넘는 몸체들이 오늘도 시시각각 서고 걷고 흔들고 달리고 소리도 내며 쉬임 없이 움직이고 있다. 얼굴에도 가지가지 표정을 만들며. 울고 웃고 붉히고 퍼레지고 환해지고 어두워지고….
어느덧 마운트 위트니는, 문명으로 불리는 삶의 틀을 벗어나 산속 깊숙이 들어와 하루를 보내며 평소와는 다른 사고와 인식의 세계를 날아 보던 나의 생체를 어둠의 천으로 한 겹 두 겹 염하듯이 두른다.
하늘에선 맑고 밝은 별무리들이 은하수 캔버스에 폭죽의 향연을 펼친다. 아름다움, 그 자체다. 거저 얻은 한 줌의 흙으로 수십 년 빚어온 욕망덩이는 세월을 무르는 그윽한 계곡의 물소리에 최면이 걸려, 인성의 맥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첫 인간’의 눈물로 가슴을 채운다. 피를 토하듯 쏟아낸 부질없는 행적들을 길길이 태우던 캠프장 모닥불의 불길이 수그러들고 있다. 잠자리에 누울 시간이다.
누군가가 “누워서 자는 것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한 적이 있다. 어떤 노인들은 그러한 연습이 실제가 되는 밤을 복으로 바라기도 한다. 지금도 시계의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이 세상에는 4명 이상의 사람이 태어난다고 한다. 갓 태어난 이들은 얼마간은 혼자서 일어나지 못하겠지만 머지않아 그들은 두발 딛고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높은 곳을 마음껏 목표로 삼고 힘껏 오르며 평생을 살 것이다.
매초당 2명 가까이의 사람이 죽는다고도 한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영원한 곳에 돌아간다. 우리말의 ‘돌아가셨다’는 표현처럼. 생명의 근원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움직임도 다시 일어섬도 없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믿는 부활이 없다면, 윤회가 없다면….
불쑥 다가온 큰 구름 덩이가 하늘의 별들을 거침없이 쓸어 담음에 마운트 위트니의 밤은 칠흑에 잠겨 든다.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에 몸을 맞대고 온도를 나누며 밤을 다듬는 마운트 위트니의 신음은 어린 시절 나를 잠들게 하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꿈길을 토닥인다.
박시걸 / 캘스테이트 샌버나디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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