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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 천둥지기 길

내 안에서 좁아지는 길을 본다 / 길이라는 원형의 두 축 / 사랑과 쉼이면 더 바랄 것 없다 / 바람이 실어다 주는 진심은 /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닦아도 닦아지지 않아서
 
돌담을 쌓고 길을 내는 오늘도 / 한 걸음 두 걸음 거친 숨 몰아쉰다 / 온기로 점점 채워지는 몸 / 소실점으로부터 점점 다가오는 길
 
속마음 모른 척 외면하여도 / 길의 반대편은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 마음에 짚이는 순서대로 양지에 심고 / 그 밑에 산처럼 누워보기로 한다 / 어디선가 까막까치 날아오르고, / 노란 생강나무 꽃 아련히 피어나는데 / 시간에 감겨 태엽처럼 구부러지는 길
 
빠르게 흐르는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 발끝으로 시간을 길게 펴 *적바림하고 / 긴 호흡으로 숲의 위까지 사랑해 본다 / 하루가 아니라 겁으로 이어지는, / 사람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 사람의 걸음이 되고야 마는, /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새겨지고야 마는 / 내 안에 점점 좁아지는 
 
*천둥지기 길, *적바림: 짧게 요지를 적음, *천둥지기: 외딴곳
 
[신호철]

[신호철]

살이 오르는 나무숲을 지나 낮게 드리운 풀섭을 끼고 걷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 이 길 위에 나의 발자국을 얹어 더 선명하게 길을 다지며 간다. 온갖 초록들이 대지로부터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 새삼 신기할 것도 없는 풍경이 오늘은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작은 짐승들이 몸을 피하기 위해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며 애태웠던, 맵새가 날개를 접고 머물렀을 상수리나무 깊은 가지 안에, 보금자리마저 감출 곳이 없이 드러나는 푸른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봄날의 숲정이길을, 하얀 날개를 펴고 접으며 가쁘게 오르는 흰나비의 길을, 봄을 마시며 걷는다.
 
일생을 걸어도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길. 그 길 위에서 생각한다. 내가 길을 선택하는 것인지 길이 걷고 있는 나를 손짓하는 것인지. 두 길이 만나 한 길이 되기도 하고 한 길이 갈라져 두 길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의 가는 길과 다르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 길을 평가해서도, 판단해서도 안 된다. 길이란 다만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 말자. 어쩌면 그 길이 바로 당신이 지금까지 찾고자 했던 것을 만나게 해줄 유일한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의 인생길을 꽃길만 걸으라 말할 수 있는가. 어찌 봄날같이 평탄하고 기쁜 날만 걸으라고 말하겠는가. 때로는 가시밭길을 걸을 때도 있고, 걷기 힘든 진흙탕 길을 걸으며 온몸이 더럽혀질 때도 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길 같지 않은 길을 걸으며 온몸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 않았던가. 길을 걷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고 서로의 길을 위해 떠나는 그를 위해 축복의 손을 들기도 한다. 나의 욕심과 자랑을 내려놓고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그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지기도 한다.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이 없음에도,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우리는 오늘도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 많이 휘어져 길의 끝을 내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어도 결국 사람의 걸음이 되어야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되어야 하는 그 길 위에서 후회 없는 길을 걸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래서 나를 지으신 이의 부름에 뒤돌아보지 않는 후회 없는 발걸음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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