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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하나님의 농단

Los Angeles

2025.05.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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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단’이란 말이 다시 자주 등장한다. 원래 농단이란 끊어진 언덕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모든 것을 살피는 자리를 뜻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맹자의 ‘공손추’ 하편에서 욕심 많은 장사꾼을 빗대어, 탐욕스러운 권력의 대명사로 굳어졌다. 만일 성군이 농단에 올랐다면, 그 자리는 당연히 백성을 이롭게 하는 가장 좋은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높은 자리는 책임을 요구한다. 널리 내다보고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를 자리답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자리에 늘 한 사람의 영웅을 세우고 싶어 한다.
 
우리는 독단을 그토록 경계하면서도, 독단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을 때 이를 거국적 결단, 신의 한 수라고 부른다. 더 무서운 것은 독선이다. 독선이란 혼자 선한 것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자신이, 아니 자신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위 “진심인 것이다.”
 
과연 그것이 신의 한 수일까. 우리는 참된 ‘신의 한 수’를 하나님께 다시 배워야 한다. 삼위로 계셔서 독단과 독선이 아닌 연합과 동행, 그리고 사랑을 통해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저 없이 농단의 자리에 서신다. “주께서는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며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굽어살피시는도다.”
 
아무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드러난다. 진정한 신의 한 수는 삼위 하나님의 한 수다. 그분은 그의 백성에게 사랑을 선언하시고, 그 사랑으로 행동하셨다. 자신과 생명을 내어 주셨으며, 백성과 함께하시려고 그들 안에 오셔서 사셨고, 사시며, 다함없이 사실 것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의 유혹이 우리를 흔들 때 말씀을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홀로 남겨진 듯 외로우면 햇볕을 비추어 잎에 생기를 주신다. 모든 것이 답답할 때는 기도로 하늘이 열린 것을 보게 하시고, 나 자신 속으로만 숨어들려 할 때는 활활 타는 사랑을 보여주신다. 이것이 진심이다.
 
우리 마음이 의심과 불신으로 흔들릴 때면 우리의 느낌표가 되어 주시고, 스스로 잘났다고 달리면 쉼표가 되어 주신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을 때는 언약의 따옴표가 되시고, 독단과 독선에 빠지면 물음표로 걸음을 멈추고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인생의 거룩한 마침표가 되어 주신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농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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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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