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선물’을 선물하세요
양지가 좋다따뜻한 햇살이 좋다
머문 고요가 좋다
아득한 시간이 좋다
어디에서 가질 수 없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저 누리라고 펼쳐놓은
하늘이 보내준 선물
나뭇가지로 땅에 쓴다
나 말고 다른 이름을
그 이름 부르다
양지에 앉아 운다
‘선물’을 선물하세요
![[신호철]](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20/49494f9e-6db5-4741-83df-69910f65ea5e.jpg)
[신호철]
커피잔이 버거우신가요. 두 손으로 가지런히 들어 마시는 모습. 예식을 치르듯이 향을 마시는군요. 커피는 향으로 마신다고 하더라고요. 향기가 가만가만 퍼져가요. 양지쪽을 바라 보고 있어요. 며칠 전 심은 LOBELIA가 짙은 보라색 꽃들을 잔뜩 피워놓았네요. MIDNIGHT BLUE라고도 불리는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은 몇 해 전 내게 선물처럼 다가왔지요. 제철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모종을 거의 얻다시피 가져와 매일 물을 주고 영양분을 뿌려주며 애지중지 키웠더니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모종은 상태가 좋아지고 원기를 회복했는지 한 아름의 새끼손가락만 한 꽃들을 피워주었지요.
선물이란 아마도 이런 것인가 봅니다.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는 이의 내리사랑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모종은 활짝 꽃을 피워 마음의 깊은 위로와 잔잔한 선물이 되어주었어요. 사람의 상처 난 몸과 마음도 다를 리 없겠지요. 누군가 사랑의 손길과 끊임없는 관심은 죽을 목숨도 살려내고 상한 마음도 회복되어 마음 밭에 꽃들을 피운다 해요. 올해는 싱싱한 LOBELIA 모종을 잔뜩 사다 덱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심어주었지요. 선물은 그런 것이에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양지의 느낌같이 따뜻하게 번져가는 그 무엇 같아요.
나는 지금도 양지가 좋아요. 양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요. 무언가를 만들어가게 하는 모티브를 만들어줘요. 그래요, 우리 모두는 어느 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낯선 간이역에 내려질 거예요. 기차는 떠나고 쓸어내리는 생각에 당황하게 될는지도 몰라요. 철로를 따라 다시 걸어야 하나? 환승할 열차를 기다려야 하나? 많은 사유가 나에게 혼돈을 줄지 몰라요. 이때에도 선물처럼 다가오는 사람과 풍경과 이야기를 내것처럼, 내 시간처럼, 나의 정원처럼 가지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젠 내 몫이 아닌 덤으로 사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거에요. 기적소리는 숲에 묻히고 이제 하늘이 선물처럼 뉘어져 내게로 와요.
3인 3색 시집 〈선물〉이 8일 전 한국의 각 서점에 뿌려졌다는 소식이 출판사 달아실로부터 전해왔어요. 기대하지도, 꿈꾸지도 않았던 시 에세이 부문 주간 베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이 교보문고로부터 전해왔고요. 기쁘다기보다 일 년을 고민하고 6개월을 땀 흘린 시간에 대한 보상 같은 따뜻한 선물이었어요. 다음 주간도 기대가 돼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아요. 이미 나에겐 큰 선물이었어요.
연이어 전해온 선물이 도착했네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가 한 번쯤 꿈꾸어볼 만한 현대시학에서의 원고 청탁계약서가 도착했어요. 아직 원고 마감일이 남아 있어 보내야 할 시를 고민해야겠어요. 선물이 봄비같이 내리고 안개 너머로 오네요.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바람처럼 지나가겠죠. 하지만 선물의 따뜻한 기억은 잊힐 리 없어요. 그간 수고하고 고생한 이창봉 교수, 지향 시인께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어요. 선물 고마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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