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시선] 두다멜의 마지막 선물 ‘서울축제’

유이나 / 칼럼니스트
LA필의 실세이던 매니징 디렉터 어니스트 플레이시먼이 당시 31세이던 핀란드 출신 에사-페카 살로넨을 뮤직디렉터로 기용한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전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했음은 물론이고 클래식 음악계는 그야말로 충격 수준, 모든 화제가 LA 필이었다. 살로넨은 당시 34세였지만 그 무렵 전세계 수준있는 오케스트라의 뮤직디렉터 연령층이 60~80세였으니 그 놀라움의 정도가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가능하다.
다행히 젊은 에사-페카 살로넨은 LA 필의 수준을 크게 업그레이드하며 훌륭히 뮤직디렉터 일을 성취해 냈다. 현재 LA 최고 문화 명소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건립도 그 성과 중 하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7년 LA 필이 또 한번 일을 냈다. 이번엔 좀 더 강도가 셌다.
음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26세의 신예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뮤직디렉터로 영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출신 구스타보 두다멜은 이후 ‘파격 기용’의 대명사가 된 LA 필을 등에 업고 훨훨 날았다.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의 늙수그레한 지휘자에 익숙했던 청중은 곱슬 머리에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는 상쾌 발랄 마에스트로에 열광했고 그는 곧 스타가 됐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운이 좋아 하루아침에 별이 된 건 아니다. 17세에 베네수엘라의 유명 교향악단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뮤직 디렉터로 활동한 그는 23세에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 그 실력을 전세계에 알렸다.
열정적이고 대범한 제스처, 작곡가의 특성을 족집게처럼 쏙쏙 집어내 마치 파도처럼 오케스트라를 휘어잡는 정교한 지휘로 전세계 교향악단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20대 중반에 빈 필, 베를린 필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그는 27세엔 지휘자 선정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스웨덴 예테보리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 자리에 떡 자리 잡았다. 그리고 LA 필에 전격 스카우트, 2009~2010 시즌부터 뮤직디렉터로 활동해 온 것이다.
LA 필하모닉에서 그가 이룩한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공적은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을 크게 활성화했다. 특히 어려운 가정에 혜택을 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청소년이 음악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바른 삶의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LA의 별이었던 그가 2025~26 시즌을 마지막으로 LA 필을 떠난다. 그가 새 뮤직디렉터로 옮기는 곳은 뉴욕 필하모닉. 월드 스타를 영입하게 된 뉴욕 필은 벌써 그를 맞을 준비로 들떠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그가 LA 필을 떠나기 전 한인 커뮤니티에 엄청난 선물을 마련했다. ‘서울 페스티벌’이라는 음악 축제가 바로 그 멋진 선물이다.
오는 6월3일부터 10일까지 무려 일주일간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무대에 펼쳐지는 ‘서울 페스티벌’은 한인 뮤지션이 주도하는 음악 축제다. 현대 음악계 큰 별로 불리는 작곡가 진은숙씨 기획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한인 작곡가가 만든 음악이 한인의 지휘와 연주로 LA 필과 함께 소개되는 상당히 수준높은 음악제다.
세계 음악계에서 빛을 내고 있는 한인 뮤지션이 대거 참여한다. 뉴질랜드와 스위스 등지에서 공부한 이안 환이 LA 필 위촉으로 작곡한 ‘봄이 다시 온다(Spring Will Come Again)’가 세계 초연되며 프린스턴대 교수인 서주리 작곡가도 피아노와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들고 온다.
뉴욕필에서 초연, 극찬을 받은 진은숙씨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대한민국 관악의 대표연주자로 불리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의 협연으로 서부 초연되는 것도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이외에도 김택수, 전예은, 배동진, 케이 규림 리 등 현대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작곡가의 곡이 소개되고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비올리스트 이유라, 전위적 연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대금 연주자 유홍도 이번 서울 음악제를 빛낸다.
그동안 한인 연주자에 아낌없이 무대를 제공해 준 LA 필이지만 이번처럼 일주일 내내 한인 음악인을 무대에 세워 한인 작곡가의 곡을 소개하는 뮤직 페스티벌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인 커뮤니티로서는 큰 경사고 기쁨이다. 게다가 이번 축제가 LA필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구스타보 두다멜의 리더십 아래 펼쳐진다는 것도 매우 뜻깊다.
아름다운 계절 6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에 향기롭게 피어날 ‘서울 페스티벌’에 한인 커뮤니티의 큰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유이나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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