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역설적 이야기
텃밭에 심은 복초이가 배추만큼 커졌다. 올해는 왜 이토록 실하게 자라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른 봄에 닭똥과 소똥을 주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오는 계란 껍질과 커피 찌꺼기도 썩혀서 같이 주었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배설물과 썩은 물질에서 생명이 쑥쑥 자란다는 말이 된다.‘오물에서 생명이 자란다.’ 그런데 이 모순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배설물에서 인간이 자란다는 블랙 코메디를 쓴 작가가 있다. 정보라 작가의 『머리』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친구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반박했다. “소재가 신선하잖아. 본업은 작가고 취미가 시위하러 가는 거래.” “그래서 글이 그 모양이구나.” 친구의 혹평은 끝이 없었다. 작가는 시간 강사로 십 년을 일했던 자신의 모교를 고소했다. 이유는 부당 노동 착취다. 약자가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랜 법적 투쟁을벌여서 승소했다.
지금 친구와 논쟁하고 있는 이야기는 나도 처음 읽고 나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용인즉슨, 변기에서 매일 버린 오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변기에서 자라는 머리 비슷한 오물을 보고 기겁한다. 그 머리처럼 생긴 것은 가끔 변기 속에 나타나더니, 몇십 년 동안 자라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다 자란 오물은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자는 질색한다. “내가 왜 너의 어머니냐? 나는 너 같은 것을 낳은 적이 없다.”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몸에서 나온 것을 매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의 어머니입니다.” 형상을 갖춘 오물이 어느 날 변기에서 걸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여자의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가늘어진 머리칼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며 늙음을 한탄하는데, 자신의 젊은 모습이 변기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매일 내놓은 오물을 먹고 자란 여자는 아름답다. ‘젊은 여자’는 발버둥 치는 늙은 여자를 변기에 밀어 놓고, 변기 물을 내리고 뚜껑을 닫는다. 늙은 여자의 옷을 대신 입고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정보라 작가가 대학에 다닐 1990년대 한국 사회는 괴담이 많이 떠돌았다. 어느 백화점 지하 화장실에 가면 여자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는 귀신은 마당 구석에 있는 변소에서 나온다고 했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시커먼 마당을 가로질러 변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머리털이 곤두서곤 했었다. 그때는 변소 밑에서 손이 나타나서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집에 출몰하던 여자 귀신이 현대 사회로 진화한 다음에는 공공장소인 백화점으로 옮겨갔나 보다. 한국인의 무속 및 민담은 시대가 지나도 본질은 여전히 같다는 점이다. 작가의 ‘저주토끼’라는 단편집은 2022년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3년에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져서 국내에서 뒤늦게 인정을 받은 경우다.
우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가는 몇십 년 동안 먹고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고, 자식은 고심하여 선택한 식당에서 부모님을 대접한다. 일상과 경사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어디로 가는가. 다음 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혼자 처리한다.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음식의 후처리 과정에서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는 젊은 시절을 대충 살고 나서는 순식간에 젊음이 사라졌다고 허무해 한다. 그녀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빠져나간 오물 사이로 소비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타난 생명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불평하면 남편은 반대로 말한다. “올해는 대박 날거야.” 하면서 비를 귀한 손님처럼 반긴다. 비가 닭똥과 소똥을 땅속으로 깊이 넣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텃밭의 복초이는 배설물과 썩은 것을 먹고 오늘도 쑥쑥 자란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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