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장로교(PCUSA) 총회 한인목회실 초대 총무를 지낸 김선배 목사가 북미에서 펼친 40년간의 목회 여정을 담은 책 ‘북미주 광야목회 40년 이야기’의 출판 기념 감사예배가 지난 22일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에서 열렸다. 1부 감사예배는 손정훈 담임목사의 환영사로 시작해 계지영 목사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삶’에 대해 설교했다. 저자가 이사장을 맡았고, 현재도 명예이사장으로 활동하는 조지아센추럴대학교(GCU)의 김창환 총장이 축사를 전했다. 김 총장은 “GCU를 대표해 축하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 책은 개인의 회고록이 아닌, 북미의 한인 이민 목회자들의 희생과 눈물을 담은, 한 세대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귀한 사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영일 전 장신대 총장도 “이민교회의 역사를 담은 책”이라며 축사를 전했다. 김선배 목사는 1977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 한인연합장로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하고 1981년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을 언급하며 “고향에 온 것 같이 좋다”며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미국장로교(PCUSA) 산하에 일본계와 중국계가 대부분인 ‘아시안 목회’ 밖에 없었던 시절, ‘코리안 데스크’를 만들기 매우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새로운 이민 목회라는 것을 리더들에게 강조했다”며 최초로 한인목회실 총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단 내 한인목회실이 독립 기구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미 전역의 한인교회와 목회자를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 개척, 목회자 리더십 개발 및 차세대 목회 지원 사업 등을 펼쳤다. 김 목사는 이어서 “광야란 이민목회 현장을 말한다. 개인의 이야기보다 미국 장로교 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책을 쓰면서 우리의 시대가 지나갔구나 느꼈다. 새로운 시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여러분의 목사님을 사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출판기념회 행사는 연합장로교회와 GCU가 후원하고, 미국장로교 한인은퇴목사회가 주관했다. 윤지아 기자출판기념회 이야기 북미주 광야목회 김선배 목사 이민목회 현장
2026.08.24. 14:40
한국어진흥재단은 매년 여름방학 미국 교육행정가 한국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수는 한국학 교수의 역사와 문화 강의로 시작된다. 참석자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라 근대사 정도는 알려줄 필요가 있어서다. 다음날부터는 재단 임원들과 함께 한글 관련 박물관과 주요 사적지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 시작된 활동이다. 특히 올해는 고려인이 세계 최초로 만든 금속활자를 소개해 연수의 의미와 목적을 더 했다. 매년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전쟁기념관과 독립기념관이다. 두 곳에서는 미국 교육행정가들도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전시품과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동판에 새겨진 참전 용사들의 이름도 유심히 살펴본다. 어떤 경우에는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삼촌을 기억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어진흥재단 이사 가운데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하지만 나도 당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어린아이였기에 직접적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리고 전쟁 후 힘든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애국심이 투철한 편이 아니었다. 집안의 장남인 큰오빠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한국 워크숍에 리더 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 ‘간접적인 애국자’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UN의 22개 참전국(의료 지원 6개국 포함)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가 미국이다. 기록에 따르면 누적 파병 미국은 178만9000명으로 외국 참전 용사의 64%를 차지했다.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많은 미군 유해가 한국의 산과 강에 묻혀 있다.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나의 큰오빠도 한국전쟁 전사자라는 개인사를 들려주면, 그들과의 거리감이 더 줄어들곤 했다. 미국의 중고교에서 한국어가 선택 과목으로 만들어진 것은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 덕이 크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라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반 개설에는 숙성기간이 필요했고, 한국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 교육행정가 한국 초청 연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현대언어협회 (MLA) 통계를 보면, 한글은 아메리칸 싸인 랭귀지와 함께 미국에서 대학생 수강생 숫자가 늘고 있는 두 가지 언어 가운데 하나다. 한글을 배우는 대학생은 2016년부터 5년간 약 38% 증가했고, 외국어 중 10번째로 숫자가 많다. 중고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학생이 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문화와 역사, 한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고려인(高麗人)의 문화적 유산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 연수 때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백제 유적지구로 교육 행정가들을 안내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배웠다. 백제 유적지인 충청남도의 공주와 부여, 전라북도 익산 등지에는 삼국통일 후 건국된 고려의 유물도 남아 있는 곳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제 강점기에 공주 고등보통학교 교사를 했던 가루베 지온이라는 인물이 백제 왕릉들을 도굴해 많은 백제 예술품이 일본으로 몰래 유출됐다는 사실이다. 고려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1377년에 나온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본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다.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가리키면 그것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는다’는 의미다. 당시 고려는 이미 종이를 사용하고 있었고, 금속 활자는 불교 경전 내용을 쉽고, 빠르게 인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직지는 1984년 청주에서 택지 개발사업을 하던 중 고려시대 사찰인 흥덕사 절터 발굴 당시 발견됐다고 한다. 고려는 목판으로 팔만대장경을, 금속활자로 직지를 인쇄했고, 고려를 이은 조선은 한글을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고려는 지식을 보존하고 널리 전했으며, 조선은 한글로 모두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문화유산을 받은 것이 고려인(高麗人) 코리안이다. 코리아의 애초 영문 표기는 Korea가 아닌 Corea였다. 내가 갖고 있는 1755년 런던에서 인쇄된 지도에도 동해는 'Gulf Of Corea'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C'든, 'K'든 상관없다다. 우리는 고려인 코리안이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이야기 고려 현재 한국어진흥재단 한국전쟁 당시 교육행정가 한국
2026.08.02. 18:30
일반적으로 모두가 가장 싫어하는 학문이 바로 수학이다. 하지만 수학이 없으면 물리학도 경제학도 심지어는 전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은 학문이라기보다 모든 학문의 바탕을 이루는 아주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도구다. 혹자는 하나님이 수학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할 정도로 삼라만상은 수학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무렇게나 펼쳐진 것 같은 자연 현상에서 일정한 공식을 유도할 수 있었다. 수학은 대수학, 기하학, 그리고 미적분학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대수학이 숫자로 계산을 하는 학문이라면, 기하학은 사물의 모양을 설명하는 학문이고, 미적분학은 삼라만상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우리의 인생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그런 모든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미적분인데 한 때 학생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미적분을 교과 과정에서 빼려는 시도도 있었다. 시쳇말로 미적분이 빠진 수학은 팥이 들어있지 않은 팥빙수인데 말이다. 달에 가는 로켓을 쏘든 대포알의 탄착 지점을 계산하든, 우리에게는 수학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 지표를 구하고 예측하여 여러 계층의 이해가 얽힌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이 나아갈 방향 계산도 수학, 그중에서도 미적분을 해야 한다. 미적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전자 기기에는 양자역학이 응용되어 있듯 수학 계산에는 미적분이 바탕을 이룬다. 마치 기계 공학을 모르는 사람도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듯 미적분을 모르는 사람도 경제 활동을 하여 이익을 챙긴다. 미적분학은 미분과 적분으로 구성되는데 미분이란 글자에서 풍기는 의미처럼 긴 흐름을 미세한 부분으로 나누는 일이고, 적분의 그 반대의 과정을 말한다. 우리는 성 씨가 같은 두 사람의 이름에 돌림자가 있으면 혹시 형제간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 그래서 이름이 비슷한 미분과 적분은 연관된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두 학문은 완전히 별개였을 뿐만 아니라 발달한 곳도 영 달랐다. 이미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후에 들어온 동양에서는 미분과 적분이라는 비슷한 이름을 붙였지만, 서양에서 미분은 differential, 적분은 integral처럼 단어부터 달랐다. 게다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적분이 더 오래된 학문이다. 미적분학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을 거쳐 인도 수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발전하다가 결국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 시대에 와서 본격적인 미적분학으로 그 모양새가 잡혔다.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자연법칙에 사용될 수학 도구로서 미적분을 발전시킨 반면, 라이프니츠는 계산적 용도보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학 기호를 만들면서 똑같은 학문이 서로 멀리 떨어진 대륙과 섬에서 아무런 소통 없이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뉴턴이 일부를 발표한 사이 라이프니츠도 같은 것을 발표하는 바람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격노한 뉴턴은 라이프니츠가 자기 것을 도용했다고 의심했으며 그 이후로 영국과 대륙의 수학자들 사이에는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고 한다. 나중에 두 사람의 연구 과정을 자세히 분석해본 결과, 미적분학이 이 세상에 등장한 데 두 사람의 소통은 전혀 없던 것으로 밝혀져서 공로는 공평하게 돌아갔다. 지금은 미적분학의 시조로 뉴턴과 라이프니츠 두 사람을 함께 꼽는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결과 미적분학 대수학 기하학 인도 수학자들
2026.07.24. 13:38
지구는 그 축이 기운 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그래서 태양 빛을 그만큼 경사지게 받는데 지구의 북반구가 태양에 가까울 때의 하지에는 북반구의 어느 곳은 태양 빛이 수직으로 도달한다. 그런 곳을 이은 가상의 선을 북회귀선(Tropic of Cancer)이라고 하고, 반대로 남반구에는 남회귀선(Tropic of Capricorn)이 있다. 그때 북반구는 여름이고 남반구는 겨울이다. 그 두 선 사이를 열대라고 하며 중간에 적도가 지나간다. 열대는 고온다습하여 커피 농사가 잘되므로 커피 벨트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 두 회귀선의 사이에서만 한낮에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쬐게 되는 곳이 있는데 경사지게 들어오는 햇빛보다 바로 위에서 받는 햇빛이 훨씬 강하다. 더 덥다는 말이다. 회귀선의 영어 표현에는 별자리 이름이 들어가는데 처음에 이름 지을 때 태양이 북회귀선을 지나는 북반구의 하지 때는 황도상에서 태양이 게자리(Cancer)에 오며, 동지 때 태양이 남회귀선 상에 있을 때는 염소자리(Capricorn)에 위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인한 자전축의 변화로 지금은 게자리에서 황소자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관례상 처음 정한 이름을 그대로 쓴다. 회귀선은 영어로 tropic이라고 하는데 회귀선 사이에 걸쳐져 있다는 의미에서 열대 지방도 같은 단어의 복수 형태를 쓴다. 한국은 북회귀선보다 북쪽인 북위 33도에서 43도에 자리하기 때문에 사실 태양 빛을 수직으로 받는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는 북회귀선 북쪽에 있지만, 하와이는 북회귀선 바로 아래 있으므로 한때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마우이섬의 라하이나라는 곳은 정오에 해가 바로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어서 땅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을 때가 있다. 이를 '라하이나의 정오'라고 하며 그림자가 없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부터 2,200년 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을 하던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지에 태양이 남중할 때 시에네(현재 이집트의 아스완댐이 있는 곳으로 북회귀선 상에 있는 도시)에서는 우물 바닥까지 해가 비치는 것, 즉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지구의 크기를 과학적으로 구했다. 참 대단한 일이다. 북회귀선은 북위 약 23.5도의 선이고 남회귀선은 남위 약 23.5도를 질러간다. 이는 지축의 기울기와 같다. 지구가 기운 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어서 태양 빛은 경사진 상태로 지구상에 도달하지만, 지구의 어떤 곳은 일 년 중 어떤 때 태양 빛을 수직으로 받기도 한다. 북회귀선이란 지구의 북반구에서 햇빛이 수직으로 지상에 내리쬐는 곳의 경계선이고 남회귀선은 남반구에서 그런 경계를 잇는 선이다. 햇빛을 수직으로 받으면 경사지게 받는 것보다 열효율이 훨씬 높으므로 한낮에 우리 머리 바로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이 해 질 녘의 햇볕보다 더 뜨겁다. 두 회귀선 사이는 대체로 햇빛이 수직에 가깝게 내리쬐기 때문에 지구상의 다른 곳에 비해 기온이 높다. 지구의 적도를 중심으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는 고온다습하여 열대 밀림이 형성되어 있다. 북회귀선 바로 북쪽은 아열대이고 남쪽은 열대 지방인데 북회귀선에 걸친 나라들로는 대만, 미얀마, 인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리비아 등이 있고 반대로 남회귀선을 지나는 나라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참고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우간다, 케냐 등의 나라는 적도에 걸쳐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남회귀선 사이 북회귀선 북쪽 과학 이야기
2026.07.10. 14:0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이사야 34:16절)라는 말씀처럼 모든 것에는 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퍼즐도 마찬가지고요.” 최선준(77) 새언약교회 목사는 2002년 딸이 사온 1500피스 ‘노아의 방주’ 퍼즐을 시작으로 지난 24년간 퍼즐 80여개를 완성했다. 한인교회협의회 회장, 한인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32년간 목회와 한인 커뮤니티 활동에 힘쓴 그는 믿음과 인내로 퍼즐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퍼즐은 성경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취미활동이자, 가족들과 추억을 나누는 연결고리다. 가족들은 여행을 다녀오면 최 목사를 위한 기념품으로 그 지역의 퍼즐을 사온다. 가장 최근에 맞춘 퍼즐은 파나마시티에서 손주가 사다 준 ‘연못가의 강아지들’이다. 가족들은 유럽과 서울을 배경으로 한 퍼즐을 보며 여행에 대한 추억을 회상한다. 최 목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최후의 만찬’이다. 유일하게 4개를 만들어 자녀들에게도 나눠줬다. 그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끝까지 섬기는 사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현재까지도 목회 활동을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 목사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서울기독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 후 한국에서 20년을 목회했다. 도미 후 엠마뉴엘 침례교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애틀랜타 터커교회의 특별 초청을 받아 1993년 처음 조지아에 왔다. 최 목사는 “1000피스 퍼즐이 처음에는 1달도 걸렸지만, 이제는 1주일이면 끝낸다”며 “젊은이들에게는 도전의식을, 시니어들에게는치매 방지용으로 좋다. 인내심을 키우기에 이만한 활동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새언약교회에서 28일까지(오후2~5시) 전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시회가 끝나고도 100개 작품을 목표로 퍼즐을 맞출 계획이다. 최 목사는 “내가 가더라도 퍼즐이 남을 것이다. 자식들이 퍼즐을 팔아 선교비로 보탤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보람 있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윤지아 기자하나님 이야기 목사 퍼즐 1000피스 퍼즐 새언약교회 목사
2026.06.26. 15:01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뿐이란 말이 있다. 왕조 시절에 왕은 단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무엇을 비교할 때 종종 우리 주변에 있는 불변의 사물에 견준다. 우리 하늘에 태양이 단 하나뿐인 것처럼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다. 우주는 별로 가득차 있는데 별은 항성이라고도 하며 태양처럼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천체를 말한다. 우리가 속한 은하수 은하에는 그런 별이 약 2천억에서 4천억 개나 있다고 한다. 별이 너무 많아서 마치 강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銀河水란 이름이 붙었는데 서양에서는 흐르는 우유 같다고 해서 Milky Way Galaxy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별과 별 사이는 빛의 속도로도 수만 년씩 걸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별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 태양처럼 홀로 빛나는 홑별이 있는가 하면, 우리 눈에는 마치 하나의 작은 별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별 두 개가 마치 하나의 별처럼 빛나는 쌍성(binary star)도 있고, 별 세 개 이상이 모인 다중성도 있다. 그중 우주에 가장 흔한 별은 의외로 쌍성이다. 영국의 위대한 음악가이자 천문학자였던 윌리엄 허셜은 약 800개나 되는 쌍성과 다중성을 발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쌍성은 태양과 같은 별 두 개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상대적으로 더 밝은 별을 주성이라고 하고 어두운 별을 동반성이라고 부른다. 이 두 별은 공통의 질량 중심을 공전하지만, 아주 멀리서 보면 하나의 별로 보인다. 문자적으로는 쌍성부터 다중성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별이 두 개면 쌍성이고, 별이 세 개 모인 3중성부터 다중성이라고 한다. 조만간 초신성 폭발을 할 것으로 예상하는 베텔게우스도 어쩌면 동반성을 가진 쌍성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는데 최근 사진에 푸른 빛의 희끄무레한 동반성처럼 보이는 물체가 함께 찍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현재까지 쌍성계에서도 많은 외계행성이 발견되었지만, 태양과 같은 단일 항성에 비교하면 그 수가 훨씬 적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홑별이 쌍성보다 행성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3중성은 그 이름처럼 별 세 개가 모인 것으로 지구가 속한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센타우루스가 바로 3중성이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라고는 하지만 태양 표면을 떠난 빛이 4년 이상을 날아야 도착하는 먼 곳에 있다. 그런 별들이 약 4천억 개가 모여서 우리 은하를 이루고, 그런 은하가 약 2조 개가 모이면 비로소 관측 가능한 우주가 된다니 우주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A 별과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B 별이 마치 쌍성처럼 존재하고, 훨씬 멀리에 세 번째 항성인 프록시마라는 별이 모여서 3중성을 이룬다. 프록시마 별은 그 이름에서 의미하듯 은하수에서 우리 별인 태양과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북극성은 맨눈에는 별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북극성도 3중성이라고 한다. 우주에 가장 흔한 것은 별 두 개가 모여서 하나의 항성계를 이루는 쌍성이다. 우리는 어쩌다 태양 같은 홑별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에서 살아서 중심성은 당연히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하늘에 태양은 하나라는 고정 관념을 갖고 살지만, 미래 어느 날 우리의 이웃 센타우루스별을 공전하는 행성을 방문하면 그곳에는 세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쌍성과 다중성 쌍성은 태양 과학 이야기
2026.06.26. 14:16
인류는 이미 반세기 전에 지구 바깥 천체인 달을 밟았고, 보이저호는 그만큼의 시간을 날아 막 태양계를 빠져나가 별과 별 사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사는 지구의 북극과 남극을 제대로 탐사하지 못했고 해저 깊은 곳도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과학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발달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극지방 빙판에서 헤매고 심연에서 허우적대는 형편이다. 북극과 남극은 공 모양인 지구의 맨 위쪽 끝과 아래쪽 끝이므로 북극은 북위 90도이고 남극은 남위 90도가 되는 지점이다. 태양 빛을 비스듬히 받는 지역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온이 낮다. 북극은 겨울에는 -40℃ 정도고 여름의 평균 온도는 0℃쯤 되며, 남극의 겨울은 -60℃ 아래로 내려가고 여름에도 -30℃ 정도로 남극이 더 춥다. 두 극지방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북극은 빙산이 떠다니는 바다지만 남극은 육지라는 점이다. 북극은 그린란드, 미국의 알래스카, 러시아, 스칸디나비아반도 같은 육지로 둘러싸여 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빙산이지만 남극은 지구상 육지의 약 9할 정도 되는 대륙 위에 펼쳐진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북극이 바다이기 때문에 물속으로 햇빛이 스며들어와 어느 정도 기온이 올라가지만, 남극은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육지여서 산에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인해 북극보다 더 춥다. 기온 탓인지 모르지만, 남극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조금 덜 추운 북극 지방에는 수백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정착해서 산다. 북극 지역은 여러 국가가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남극은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생존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터를 잡고 사는 민족이 없었는데 점차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여러 나라에서 남극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자 1959년에 국제 조약을 만들어 세계 어떤 나라도 남극 땅에 영유권 주장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은 1988년 남극 근처 서쪽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하여 남극을 탐사하기 시작하였고, 2002년부터 북극에도 다산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 드디어 남극 본 대륙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세워 본격적인 남극 조사에 들어갔다. 학자들에 따라서 화석 연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 기온이 오른다고 경고한다. 그런 지구 온난화 현상이 북극해의 빙산을 녹이게 되면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어 가까운 미래에 해발 고도가 낮은 곳부터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러 국가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지구 온난화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가 지구 곳곳에 쌓여 우리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탄소 배출이든 쓰레기든 우리가 더 신경 쓰고 조심하여 후손에게 덜 더럽혀진 지구를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2005년 한 콜라 회사의 선전에 흰곰과 펭귄이 얼음판 위에 함께 어울려 파티를 즐기는 동영상이 있다. 굳이 광고 작가의 상상력에 시비를 걸려는 것은 아니지만, 북극곰이라고도 불리는 흰곰은 북극에서만 살고 펭귄은 남극에만 서식하는 새여서 동물원이 아닌 자연에서 두 동물은 절대로 만날 수가 없는데도 이 동영상에서는 북극곰과 펭귄이 사이좋게 콜라를 나눠마시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혹시 한창 배우는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 같아 개운치 않다면 나만의 기우일까?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북극과 남극 남극 조사 남극 근처
2026.06.12. 14:38
천문학 역사에서 대논쟁이라고 하면 은하와 우주에 관한 논쟁을 말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제, 문화, 과학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중 과학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은 중대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에드윈 허블이 대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하룻밤 사이에 우주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려 놓은 일이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은하와 우주라는 말은 구별 없이 쓰였는데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가 우주 전체라고 생각할 때였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증명할 수 없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고 그 대표적인 사람이 히버 커티스였다. 커티스는 우리 은하 바깥에도 다른 은하가 있으며 이것을 섬 우주(Island Universe)라고 했다. 섬 우주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처음 썼던 말로 그의 시대를 앞선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1920년 스미소니언 박물관 강당에서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를 섀플리-커티스의 대논쟁이라고 한다. 커티스는 우리 은하 바깥에도 섬 우주처럼 존재하는 은하가 있다고 했지만, 섀플리는 우리의 은하가 바로 우주 전체라고 생각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에드윈 허블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으나 천문학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시카고대학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관측 장비가 좋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캘리포니아주 LA 근교의 윌슨산 천문대에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참전하느라 미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원대로 윌슨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직속 상사가 바로 할로 섀플리였고 그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다투었는데 세상에는 까닭 없이 미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섀플리는 우리 은하 속 태양계의 위치를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빅뱅 이론을 주창한 벨기에의 가톨릭 신부였던 조르주 르메트르의 지도 교수를 했고, 피는 못 속이는지 최근에 그의 아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섀플리는 평화주의자였지만, 허블은 양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으며 영국에서 기껏 몇 년 유학했음에도 영국식 악센트를 썼고 시건방지게 보이는 파이프 담뱃대를 물고 다니면서 사사건건 섀플리와 충돌했다. 직장 상사였던 섀플리는 허블에게 실내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허블은 듣지 않았다. 다행히 2년도 안 돼서 섀플리가 하버드 천문대로 자리를 옮기자 그들의 악연은 끝난 것 같았다. 당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힘들었던 때였는데도 헨리에타 리빗이란 여자가 변광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녀는 변광성의 특징을 이용해서 지구에서부터 그 별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법을 알아냈다. 허블은 이 법칙을 이용해서 당시는 우리 은하에 속했다고 생각하던 안드로메다 성운 속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구했고,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보다 훨씬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몇 번 더 확인한 다음, 지난날 상사였던 섀플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허블의 편지를 본 섀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편지가 내 우주를 깨버렸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허블은 외부 은하의 존재를 밝혔고, 은하끼리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자 시간을 역추적하여 모든 것이 시작했을 때를 상상했다. 바로 빅뱅의 순간이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은하가 우주 외부 은하 우리 은하
2026.06.05. 14:27
변해도 너무 변해 버린 고국의 모습에 홀딱 반했다. 먼저 건널목에서의 경험이다. 파란불 신호등뿐 아니라 발밑에서도 파란불이 반짝거려 나도 모르게 “와” 하는 놀라움의 탄성이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내가 탈 버스 번호가 반짝 거렸고 몇분 후에 도착하는지, 좌석은 몇 개가 남았는지도 알려준다. 버스 정류장 시설도 첨단이다. 추운 겨울에는 의자가 따듯해지고 따뜻했고 여름에는 시원한 선풍기 바람까지 나온다고 한다. 미국에는 없는 시설이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도 친절했다. 초행길에 날도 어두워져 버스 옆자리 학생에게 길을 물었다. “M마트에 가려는데 몇 정거장 남았나 봐줄래요?” 했더니, 그 학생은 버스 천정에 있는 안내판을 보더니 “다섯 정거장 더 가셔야 하는데 제가 내리고 두 정거장 더 가셔서 내리세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당시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터라, 얼마나 고마웠는지. 한번은 바퀴 달린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탔는데 차가 흔들리는 대로 가방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쩔쩔매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 학생이 가방을 무릎 사이로 끌어 드리며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라고 한다. 얼마나 그 학생이 고맙고 예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다소 서운한 점도 있었다. 택시를 타고 남산엘 올라가려는데 택시기사가 “남산엔 왜 가시는데요?”라고 물었다. “케이블카도 타고 팔각정에도 가려고요”라고 답했더니 택시기사는 케이블카가 고장이 나 다 뜯어서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다는 고 말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난처해 하자 택시기사는 “여기서 내려 시티 버스 타고 올라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택시에서 내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케이블카는 멀쩡하게 운행 중이었다. 그때야 그 택시기사가 복잡한 곳에 가기 싫어 거짓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산은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니 말이다. 우리 일행은 결국 다른 택시를 타고 남산에 올랐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자물쇠 울타리에 눈길이 멈췄다. 젊은 연인들이 남긴 수많은 사랑의 흔적들이 놀라웠다. 남산 아래 펼쳐진 서울 시가지를 보며 옛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마침 피어난 꽃들을 만난 기쁨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서울은 연신 “우와”소리를 터트리게 하는 곳이었다. 한 번은 호텔 앞에서 짐수레에 짐을 싣는데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도와 드릴게요” 하면서 짐수레를 호텔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러더니 3000원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홈리스였다. 순간 “또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버스를 탔는데도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 방송, 곳곳에 높이 솟은 아파트 건물도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리고 좁은 파킹랏에서도 거침없이 주차하는 운전 솜씨도 놀라웠다. 엄경춘 시인살며 생각하며 이야기 고국 고국 이야기 버스 정류장 버스 옆자리
2026.05.31. 20:00
밴쿠버 한인 이민 역사는 1953년 UBC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 캐나다에 정착한 이임학 교수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65년 캐나다의 공식 이민 개방과 함께 많은 한인들이 밴쿠버에 자리 잡으며 오늘날의 한인 사회를 일궈왔다. 캐나다 한인 늘푸른 장년회(회장 이원배)는 한인 이민자들의 삶과 정착 과정을 기록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하기 위해 ‘밴쿠버 한인 이민 70년사’ 발간 사업을 추진하며 '나의 삶, 나의 이야기(My Life, My Story)' 원고를 공개 모집한다. 이번 공모는 밴쿠버 한인 이민자들의 진솔한 경험과 삶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마련됐다. 응모 대상은 밴쿠버 지역에 20년 이상 거주한 한인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다. 원고는 레터 용지 기준 10매 이내로 작성해야 하며, MS 워드 본문 11포인트와 줄 간격 1.5를 유지해야 한다. 원고 내용과 관련된 사진이나 서류 등을 함께 첨부할 수 있으며, 추가 자료에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선정된 원고 10편에는 각각 200달러의 원고료가 지급된다. 응모 마감은 2026년 6월 30일까지이며, 당선자는 7월 30일 밴쿠버 지역 언론 매체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시상식 일정은 추후 공지된다. ■밴쿠버 한인 이민 70년사 원고 공모 -주제: 한인 이민자로서 밴쿠버 정착을 위한 진솔한 삶의 기록 -마감: 6월 30일(화) 오후 11:59분 이메일 접수 종료 -대상: 20년 이상 밴쿠버 거주 한인 영주권자 및 시민권자 -규격: 레터 용지 10매 이내, MS Word 11포인트 -상금: 선정된 10편의 원고에 편당 200달러 원고료 -발표: 7월 30일(목) 밴쿠버 지역 언론 -접수: 늘푸른 장년회 이메일 [email protected] 접수 장민재 기자 [email protected]이야기 밴쿠버 밴쿠버 한인 한인 이민자들 밴쿠버 지역
2026.05.15. 18:23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가 종영 이후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팬들과 만난다. 넷플릭스와 맥도날드는 협업을 통해 ‘기묘한 이야기’ 테마의 해피밀을 전 세계에 출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협업은 애니메이션 스핀오프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테일즈 오브 '85 공개에 맞춰 진행된다. 해당 작품은 원작 세계관을 기반으로 1980년대 감성과 새로운 괴물, 미스터리를 담은 작품이다. 새롭게 선보이는 해피밀 세트에는 총 12종의 수집형 장난감과 활동북, QR코드를 통해 접속 가능한 인터랙티브 게임이 포함된다. 이용자들은 게임을 통해 극 중 배경인 ‘호킨스’를 구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해피밀은 다음 주부터 국가별로 순차 출시되며, 미국에서는 5월 5일부터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인기 콘텐츠와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협업이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속보팀맥도날드 이야기 해피밀 출시 해피밀 세트 인기 시리즈
2026.04.25. 7:00
천문학 역사상 유명한 도난 사건이 있는데 그것도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니라 지구의 형제 행성인 해왕성을 통째로 도둑맞은 일이다. 같은 유럽 국가지만 유럽 연합에서 빠진 영국은 예로부터 대륙의 유럽 나라와 경쟁적 관계였다. 맥주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효소를 위에 두고 상온에서 발효시킨 에일(ale)을 마시지만, 대륙의 독일식은 달랐다. 효소를 맨 아래에 놓고 저온 발효시킨 라거(lager)다. 참고로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대체로 라거 맥주다. 미적분학의 시작도 영국에서는 아이작 뉴턴이라고 우기지만 대륙의 독일에서는 라이프니츠라고 한다. 해왕성은 태양계의 최외곽을 도는 여덟 번째 행성인데 그 발견에 엮인 일화를 소개한다. 토성까지는 우리의 맨눈에 보이지만 천왕성부터는 망원경이 있어야만 볼 수 있다. 사실 해왕성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갈릴레이였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개량한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해왕성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해왕성은 역주행하기 직전이어서 정지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행성이면 항상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다면 항성일 것으로 생각해서 그냥 배경별이라고 판단한 갈릴레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고 한다. 관찰한 타이밍이 적절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행성이 공전하다 멈춘 후 거꾸로 돌지는 않지만, 지구에서 볼 때는 그렇게 관찰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태양과 달을 비롯한 모든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생각했었다. 천왕성은 영국의 저명한 작곡가이자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윌리엄 허셜이 발견했는데 공전 궤도에 문제가 있었다. 이유가 그 바깥에 존재할지 모르는 미지의 행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으로 추측한 천문학자들은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는 행성을 수학 계산으로 찾았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된 이 행성 찾기에서 실제로는 영국이 앞섰지만, 진행 과정에서 실수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프랑스에 선수를 뺏겼다.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위르뱅 르베리에는 자신의 계산에서 미지의 천체가 있을 법한 곳을 지목하여 독일의 베를린에 있는 천문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에게 알렸다. 편지를 받은 갈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해왕성을 발견했다. 해왕성의 발견은 계산에서 이루어진 쾌거였고 뉴턴의 만유인력이 다시금 증명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자 영국의 천문학계에서는 자기네가 먼저 발견한 행성을 프랑스가 도둑질해 갔다고 트집을 잡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행성 도난 사건이다. 해왕성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낸 르베리에는 자기가 찾은 행성이어서 제멋대로 그 행성에 자기 이름을 붙이자 천문학계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발견된 행성이 푸른 빛을 띠고 있어서 바다의 신 이름이 붙게 되었다. 바로 넵튠(Neptune)인데 한자권에 사는 나라에서는 그 이름을 의역하여 해왕성이라고 했다. 그 무렵 수성의 근일점이 자꾸 틀려서 그 해결책을 찾던 중 해왕성을 발견해서 자신감이 생긴 르베리에는 어쩌면 태양과 수성 사이에도 우리가 모르는 행성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 미지의 행성에 불칸이란 이름까지 지어놓고 또 한 번의 행성 사냥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크게 헛물을 켜고 말았다. 혜성과 같이 등장한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수성 근일점 문제를 명쾌히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행성 도난 행성 사냥 행성 찾기
2026.04.10. 13:19
천문학 사상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견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요하네스 케플러를 꼽을 수 있다. 그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은 한 천체가 다른 천체를 공전할 때, 정확히 원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타원 궤적을 그린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케플러가 이런 발견을 하게 된 데는 그의 스승이 평생 관측하여 물려준 기록이 큰 역할을 했다. 바로 케플러가 조수로 일했던 튀코 브라헤가 남긴 관측 자료다. 케플러는 스승이 관측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케플러의 법칙을 유도해 냈고 결국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튀코 브라헤는 남다른 시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아주 멀리서도 물체를 선명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가 죽고 얼마 되지 않은 1546년 덴마크에서 출생한 그는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지만, 천문학에 더 관심을 보였고 자신이 지닌 특출한 시력과 간단히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바탕으로 밤하늘의 별을 오랫동안 꼼꼼히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후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천동설을 신봉하여 지구 주위를 태양과 달이 공전한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 일부를 지지했다. 그러면서도 수성, 금성, 화성 등 행성은 그런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을 접목한 좀 엉뚱한 주장을 했다. 망원경이 사용되기 전에 활동했던 그는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했는데 눈이 좋아서 그랬는지 그의 관측 결과는 지금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관측에서는 난다 긴다 하던 그였지만 그 결과를 분석하는 일은 그의 능력으로는 벅찼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해 줄 보조를 구했는데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브라헤와 케플러는 그렇게 인연을 맺긴 했지만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브라헤의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난 어느 날, 스승 브라헤가 어떤 귀족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자주 화장실에 가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소변을 참다가 그만 방광에 이상이 생겨 죽었다. 세상에 불에 타서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고, 과로해서 죽은 사람은 봤어도 오줌 참다가 죽은 사람은 처음이다. 젊은 날 결투를 하다 아차 하는 순간 코끝을 잘린 그는 평생 가짜 코를 붙이고 살았다는데 의수나 의족은 들어봤어도 가짜 코도 금시초문이다. 천체는 원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고 확신했던 케플러는 스승이 남긴 자료 중 화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기록을 여러 번 계산해 봤지만, 약간의 오차가 있었다. 사실 아주 작은 오차여서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만한 차이였지만 케플러는 스승의 관측을 신뢰한 나머지 계산을 반복한 결과 정확한 원이 아니라 아주 조금 찌그러진 원, 그러니까 타원 궤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성을 비롯하여 행성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고작 1년 정도 함께 일한 스승이었지만 케플러는 자신의 확신을 포기할 정도로 스승의 관측 기록을 믿었다. 학문이 세분되기 전 과학과 철학은 같은 범주에 속했다. 그러다 우리가 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의 관찰이 이루어지고 관측되면서 그런 것들은 철학에서 벗어나 과학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관측하여 기록으로 남긴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튀코 브라헤이고, 그의 위대성은 바로 과학의 밑바탕인 관측에 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과 관측 관측 기록 과학 이야기
2026.03.27. 13:23
우주 탐사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특히 고장 났을 때 고치러 갈 수도 없다. 지구를 떠난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면 큰일이므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발사 전에 충분히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구 저궤도를 도는 망원경이어서 그동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주왕복선을 보내서 고칠 수 있었기에 1990년에 발사된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고쳐가며 사용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5년 더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면 그 후에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라그랑주 점에 자리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거기까지 너무 멀어서 고장 나도 수리하려고 갈 수가 없다.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한 번의 우주 탐사 계획에 두 대의 탐사선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면 첫 번째 것은 포기하고 쌍둥이로 만든 것이라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태양계의 안쪽 행성 탐험을 계획하여 금성 탐사 계획을 세웠다. 1962년 마리너 1호가 발사되었는데 지구를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발사체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대비해서 쌍둥이 우주선을 하나 더 만들어 놓은 NASA는 바로 다음 달에 마리너 2호를 발사했고 이번에는 예정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2년 후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서 화성으로 향했다. 마리너 3호는 예정대로 발사되었으나 태양 전지판이 펼쳐지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쌍둥이로 만들어 놓은 마리너 4호가 3주 후에 발사되어 화성을 비행한 첫 번째 우주선이 되었다. 1969년에 화성 탐사를 위해 발사된 마리너 6호와 7호는 두 우주선이 모두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이 성공에 힘입어 1971년에 마리너 8호와 9호를 발사했는데 아쉽게도 마리너 8호는 이륙 직후 이상이 생겨 추락하는 바람에 쌍둥이 우주선인 마리너 9호 혼자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수고 덕분에 화성에 착륙할 수 있게 된 인류는 화성 표면 탐사를 시작했고 2003년에 한 달 사이를 두고 발사된 쌍둥이 탐사차 스피리트 로버와 오퍼튜니티 로버는 예상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임무를 수행하고 지금은 화성 표면에 잠들어 있다. 또한, 태양계 바깥 행성을 탐험하려던 미국 항공 우주국은 마침 176년마다 태양계의 외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던 1977년, 보이저 1호와 쌍둥이 2호를 발사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 때의 대비책이었지만 두 우주선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보이저 2호를 천왕성과 해왕성 쪽으로 향하게 하고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밖 성간으로 보냈다. 〈코스모스〉란 TV 프로그램으로 천문학의 대중화를 이룬 칼 세이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콘택트〉에서 천문학자로 분한 조디 포스터는 베가성에서 수신한 신호를 분석하여 그것이 웜홀을 이용하여 항성 간을 여행할 수 있는 설계도라는 사실을 안다. 기구는 시험 운전 중 광신도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되었는데 한 때 조디 포스터의 연구를 지원한 적이 있는 대부호 과학자가 아무도 몰래 똑같은 쌍둥이 기구를 만들어 놓았고 조디 포스터는 그 기구를 타고 베가성에 가서 죽은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과 만나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쌍둥이 우주선이 왜 필요한지 그 역할을 보여준 영화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쌍둥이 우주선 쌍둥이 탐사차 쌍둥이 기구
2026.03.20. 14:14
192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속한 은하가 우주 전부인 줄 알았다. 물론 아직도 우주와 은하를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시 안드로메다 성운 속의 별을 관찰하던 에드윈 허블은 그 별이 우리 은하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안에 있지 않고 우리 은하 바깥, 그러니까 외부 은하라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우주의 크기를 엄청나게 넓혔다. 우리 우주에는 약 2조 개가 넘는 은하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맨눈에 보이는 은하는 안드로메다은하와 대마젤란은하, 소마젤란은하 등이다. 대략 수천억 개의 별이 모여 은하를 이루지만,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거의 모든 은하는 우리 맨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망원경으로도 초점이 맞지 않은 별처럼 보인다. 지구에서 약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에는 약 1조 개나 되는 별이 모여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속한 은하수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라니 놀랄 뿐이다. 1990년 NASA는 지구의 저궤도를 공전하는 우주망원경을 쏘아 올렸는데 에드윈 허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허블 우주망원경이란 이름을 붙였다. 5년 후 망원경 운영팀은 대체로 별빛이 적은 곳을 골라서 오랜 시간 노출을 주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우주의 빈 곳을 찍어 보았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일반 광학 망원경으로는 볼 수 없었던 은하 집단이 발견되었다. 다음에는 남반구에서 같은 촬영을 했고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그 의미는 우리 우주가 어디를 봐도 균일하다는 것이다. 이 관측을 통해 우리 우주에는 약 2조 개 정도의 은하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했다. 은하는 단 몇 개만 제외하고 우리의 맨눈에 보이지 않지만, 관측 장비가 발달함에 따라 수많은 은하가 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모양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타원은하, 나선은하, 그리고 불규칙은하가 그것으로 타원은하는 그 모양이 찌그러진 원처럼 생긴 은하다. 나선은하란 은하 중심을 기준으로 나선 형태의 여러 꼬리를 가진 은하인데 우리가 속한 은하수 은하가 바로 나선은하다. 은하끼리 서로 영향을 주어 그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은하나 아무렇게나 생긴 모양의 은하를 통틀어서 불규칙은하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앞으로 40억 년 후 은하수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합쳐져서 새로운 은하로 탄생할 것으로 알고 그 은하에 밀코메다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는데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두 은하는 합쳐지지 않고 계속 독립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실험하거나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므로 어떤 이론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관측이 정교해지면서 지난 이론에 모순이 생기거나 반대되는 이론이 자주 등장한다. 우주의 기본 단위는 별이라고 불리는 항성이지만, 그런 별들이 수만 수억 개가 모여서 독립된 은하를 이룬다. 에드윈 허블은 우리 눈에 마치 별처럼 보이는 희끄무레한 물체가 우리 은하수에 속한 성운이 아니라 외부 은하라고 밝혔다. 그런 은하가 수조 개가 모여서 비로소 우주가 된다. 나아가서 허블은 은하가 가만히 있지 않고 서로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 거꾸로 추적했더니 오래 전 한 점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빅뱅의 순간이었다. 여기에 은하의 후퇴 속도를 대입하니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작가) 박종진이야기 박종진 우리 은하수 은하 이야기 타원은하 나선은하
2026.03.06. 13:24
우주에서 빛을 내는 것은 별이다. 과학적으로 말해서 별이 수소 핵융합을 하는 과정에서 빛이 나온다. 우리의 태양도 별이어서 지금 한창 핵융합을 하면서 엄청난 빛과 열을 내는 중이다. 인류는 빛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빛에 관한 생각을 꾸준히 했지만 20세기 초반까지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뉴턴 대에 이르러 빛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뉴턴의 권위에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다. 뉴턴의 이론에 시비 거는 것 자체가 과학자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였던 시절이었다. 연금술에 푹 빠져있던 뉴턴은 평생 금(gold)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는데 간간이 짬을 내서 만유인력이라든가 운동 법칙, 혹은 빛에 관해서 연구하기도 했다. 뉴턴은 프리즘이라는 삼각 막대를 이용해서 백색광을 나누는데 성공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그 굴절률에 따라 모두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었다. 아무런 색이 없다고 생각했던 투명한 빛은 그 속에 일곱 색을 비밀리 품고 있었다. 뉴턴은 무지개와 같은 색의 모임을 스펙트럼이라고 이름 지었다. 스펙트럼은 라틴어로 '눈에 보이는 사물'을 뜻한다고 한다. 뉴턴에 이르러 인류는 드디어 빛의 비밀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개개인 고유의 지문이란 것이 있어서 어떤 범죄 사건이 나면 현장에 남겨진 지문으로 범인을 검거하기도 한다.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원소도 가열했을 때 그 원소 고유의 선 스펙트럼이 나타나는데 이를 거꾸로 이용해서 관찰된 선 스펙트럼으로 해당 원소를 유추할 수 있다. 천체물리학에서는 멀리서 반짝이는 별에서 오는 빛을 분석하여 그 별까지의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온도, 밀도, 질량을 알 수 있고 그 별이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추측할 수 있다. 별이나 그 별이 속한 은하에서 나오는 빛을 분석하여 그런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만약 분광학이란 것이 없었다면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의 정보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천체물리학은 비약적인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빛이 있으므로 사물을 볼 수 있다. 광원에서 출발한 빛이 산란하여 물체에 부딪혀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빛의 성질에 관해서는 오래 전부터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빛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2중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빛에 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을 발전시켰으며 빛을 이용한 분광학의 발달은 천체물리학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빛의 원천은 원자다. 원자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으면 잠깐 그 상태가 변하다가 잠시 후 다시 에너지를 잃으며 일정한 색의 빛을 낸다. 분광학이란 이렇게 빛과 물질이 서로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내는데 착안해서 그 원소가 내는 빛의 스펙트럼이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일정하다는 것을 알고 빛을 분석하여 그 빛을 낸 원소를 역추적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나트륨은 노란색을 내기 때문에 어떤 관찰의 결과에 노란색이 보이면 나트륨이 함유되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헬륨은 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풍부한 원소지만 지구상에는 아주 귀하다. 분광학이 발달하여 천체에서 오는 빛을 연구하던 중 태양 빛을 분석하다가 미지의 원소를 발견하였는데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 이름을 따서 헬륨이라고 명명하였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 이야기 원소 고유 태양신 헬리오스
2026.02.27. 13:04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갈릴레이가 남긴 명언이라고 전해진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과학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인데 요하네스 케플러와는 같은 시대 사람으로 그 당시까지 점성술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던 천문학에 관측과 수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근대 천체물리학을 시작시킨 사람이다. 그때까지의 조악한 망원경을 개량하여 배율을 높여 사회 지도층 인사나 고위 성직자에게 팔았는데 그들은 망원경으로 남의 집 침실을 엿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나마 군대에서는 먼바다를 감시하는 일로 망원경을 활용했다. 정작 갈릴레이는 자신이 개량한 신형 망원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갈릴레이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가톨릭 교단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한때 추기경이던 그의 친구가 교황이 되었다. 그러잖아도 그의 책이 가톨릭 교리에 반한다고 말이 많던 참에 친구가 교황이 되어서 별 일 없을 줄 알았지만, 무리하게 다음 책을 출판하려다 결국 친구였던 교황에게까지 미움을 샀다. 재판에 부쳐진 갈릴레이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가택 연금형을 받았다. 당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바람에 교황청이든 개신교단이든 할 것 없이 갈릴레이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갈릴레이가 재판을 마치고 재판정을 걸어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데 사실은 피고인 출석 없이 판결만 내리는 재판이어서 그가 무어라 뇌까리며 재판정을 걸어 나왔다는 말은 나중에 누군가 지어낸 얘기일 것이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개량하여 성능이 향상된 망원경으로 목성을 공전하는 위성을 발견했다. 자고로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을 믿었던 당시 사람들은 목성을 공전하는 천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놀랐다. 바야흐로 지구 중심설이 깨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갈릴레이는 목성의 위성을 네 개 발견했는데 이들을 갈릴레이 위성이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달은 표면이 반들반들하다고 생각했는데 갈릴레이는 개량된 망원경으로 달 표면도 지구처럼 울퉁불퉁하며 산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이어 갈릴레이는 토성의 고리를 발견했다. 그는 토성의 양옆에 토끼 귀 같은 것을 보았다. 비록 그것이 토성의 고리였지만, 갈릴레이의 망원경으로는 고리 전체가 보이지 않고 그저 툭 튀어나온 귀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고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해왕성도 갈릴레이에 의해서 처음으로 관찰되었지만, 갈릴레이는 해왕성이 배경별인 줄 알고 지나쳤다고 한다. 갈릴레이와 케플러는 서신으로 왕래했다. 일곱 살 많은 갈릴레이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구교도였고 케플러는 개신교를 믿는 독일인이었다. 마음씨 좋은 케플러는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던 갈릴레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갈릴레이는 항상 무례했다고 전해진다. 망원경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안했는데 갈리레이식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사용했고 케플러식은 볼록렌즈만 사용했던 점이 다르다. 지동설에 확고한 신념이 있던 갈릴레이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선구자였다. 우리는 지금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 나아가서는 우리가 속한 은하가 도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데 얼마 전 신문 칼럼에서 은하 전체를 포함하는 우주도 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주가 한 바퀴 도는데 약 5천억 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갈릴레오 갈릴레이 정작 갈릴레이 과학 이야기
2026.02.20. 13:10
제가 오백 번째 글을 쓰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 오백 점 작품과 함께. 2008년 6월 11일, 첫 글 ‘위층에 사는 마리아’를 썼습니다.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 살 때, 같은 건물 4층에 살던 29세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할머니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의 나이를 정확히 물어본 적은 없지만 92세 정도라고 기억합니다. 그녀의 남편 토니는 아침마다 경로 센터에 갈 정도로 4층을 올라다녔습니다. 마리아는 병원에 갈 때 이외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토니가 더 건강한 줄 알았는데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마리아 혼자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녀는 일하고 돈 모으느라 아이도 낳지 않았습니다. 나는 쉽게 상하는 우유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 그녀를 방문해서 1시간 정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토니, 수임이 왔어.” 부르는 마리아는 남편 토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은 듯 행동했습니다. 글을 처음 시작할 당시, 마리아 이야기를 시작으로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에 관한 글을 돌아가며 다 쓰고 더 이상 쓸 것이 없으면 어쩌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중앙일보에 계속 지금까지 쓰고 있다니! 내가 중앙일보에 글과 그림을 보내면서 “감사합니다.” 하면 중앙일보에서도 “잘 받았습니다.”로 이메일 옵니다. 나는 제때 글과 그림을 보내고 중앙일보는 제때 신문에 실어 줍니다. 한번 시작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나는 글과 함께 그림도 보내야 하므로 작업도 거의 매일 붓을 놓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글은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중앙일보가 저에게 준 지면 덕분에 글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또 다른 글 쓰게 하는 동기는 제 남편입니다. 제가 남편에 대한 불평불만을 써도 개의치 않고 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써서 스트레스 풀라고 응원합니다. 처음엔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다가 집안 망신시키는 것이 아닐까? 망설였지만, 뭐 그리 대단한 집안이라고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마구 썼습니다. 내 글을 읽고 남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함이 내 안에 웅크리고 빛 볼 날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늘고 길게 오래가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어렵고 유식한 글 소재가 아닌 눈 뜨면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상을 일기 쓰듯 쓰기 때문에 수도꼭지 물 새듯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님들 그리고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중앙일보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이야기 동안 중앙일보 남편 토니 당시 마리아
2026.02.19. 21:31
"Einmal ist keinmal." "단 한 번의 삶은 없는 것과 같다."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8)'은 사랑 이야기이자, 한 도시의 초상이고, 동시에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질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볍게 사랑하고, 또 얼마나 무겁게 선택하며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붉은 지붕이 이어진 구시가지, 블타바 강 위에 놓인 돌다리, 안개 속에 잠긴 프라하 성의 실루엣. 스크린 속 풍경은 오래 전부터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프라하의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영화가 남긴 질문을 따라가는 시간이었다. ■카를교-사랑과 망설임이 교차하던 돌다리 14세기에 건설된 카를교는 프라하 구시가지와 말라 스트라나를 잇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영화 속에서도 토마시와 테레사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듯 이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등장한다. 새벽녘 관광객이 빠져나간 카를교 위에 서 있으면, 돌바닥 사이로 스며든 시간의 결이 발끝에 전해진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남는 건 선택이었어." 영화의 정서를 닮은 이 문장이 머릿속을 스친다. 프라하의 공기는 묘하게 사람을 솔직하게 만든다. 이 다리 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프라하 성-역사와 개인의 운명이 만나는 언덕 블타바 강 건너 언덕 위에 자리한 프라하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성 단지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첨탑, 황금소로라 불리는 골목, 왕궁의 안뜰은 모두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곳은 체코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선택이 교차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소련군이 진입하던 장면, 혼란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가던 시민들의 모습은 이 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성 안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The heavier the burden, the closer our lives come to the earth, the more real and truthful they become." "짐이 무거울수록 삶은 땅에 가까워지고, 더 진실해진다." ■말라 스트라나-영화의 감정이 가장 짙게 남은 동네 프라하 성 아래 펼쳐진 말라 스트라나는 영화의 감성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좁은 골목, 바로크 양식 건물, 작은 카페와 서점들이 이어진다. 테레사가 사진을 들고 걷던 거리, 토마시가 고민 끝에 선택을 내리던 골목이 바로 이곳이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여행자, 현지인, 연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이 도시를 걷는다. "우리는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구시가지 광장-자유를 꿈꾸던 시민들의 무대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은 중세부터 시민 집회와 축제가 열리던 공간이다. 천문시계가 달린 구시청사, 틴 성모교회의 쌍둥이 첨탑,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영화에서는 시위와 혼란, 젊은이들의 희망이 이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68년 체코인들은 이 곳에서 자유를 외쳤고, 영화는 그 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나는 광장 한편에 서서 당시의 흑백 뉴스 화면을 떠올렸다. ■존 레논 벽-벽 위에 남은 자유의 노래 영화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프라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존 레논 벽이다. 공산 체제 이후 젊은이들이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그림과 글을 남기기 시작한 공간. 지금도 매일 새로운 메시지가 덧입혀진다. 나는 벽 앞에서 영화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로 향하던 두 사람의 모습. 도시를 떠나면서도 결국 사랑을 선택했던 장면은 이 벽이 말하는 자유와 닮아 있었다. ■프라하의 골목-여행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거창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선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Love is a constant interrogation." "사랑은 끝없는 질문이다." 붉은 지붕 사이로 내려앉는 석양, 거리 악사의 바이올린 소리, 오래된 서점의 먼지 냄새. 이 모든 것이 영화의 배경이자 여행자의 기억으로 쌓인다. ■프라하 여행이 남긴 잔상 이 여행은 단순히 영화 촬영지를 따라 걷는 시간이 아니었다. 프라하는 내게 사랑과 선택, 자유와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도시였다. 토마시와 테레사가 그랬듯, 우리 모두는 각자의 프라하를 품고 살아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내게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안고 사는 질문을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프라하의 풍경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깊다. 오래된 돌벽과 붉은 지붕, 느릿한 트램 소리와 강물의 흐름은 여행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서두르지 말라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나는 블타바 강변 벤치에 앉아 한참을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행이란 새로운 곳을 보는 일이 아니라, 익숙했던 나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토마시와 테레사가 결국 선택한 것은 완벽한 자유도, 가벼운 쾌락도 아니었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삶이었다. 프라하 역시 그런 도시였다. 찬란함과 상처, 예술과 정치, 사랑과 상실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곳.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다짐했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더 많은 사진보다 더 깊은 기억을 남기자고. 더 많은 장소보다 더 많은 감정을 품고 돌아오자고. 프라하는 그렇게, 내 인생 여행 목록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가볍게 흘러가지만 오래 남는 문장.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문장. 사랑과 자유, 그리고 선택. 그 모든 질문의 출발점이 되었던 도시, 프라하.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이 도시의 돌길 위를 걸으며, 자신만의 '존재의 무게'를 마주하게 되길 바란다. ■푸른투어와 함께 떠나는 동유럽 영화 여행 프라하를 중심으로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 핵심 도시를 잇는 푸른투어 동유럽 여행은 영화 속 장면 같은 중세 도시와 역사 유적, 그리고 감성적인 골목 산책까지 균형 있게 담아낸 일정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무대 프라하를 직접 걷고 싶다면, 푸른투어의 동유럽 상품을 통해 영화 같은 여정을 시작해 보길 권한다. 사랑과 자유, 그리고 삶의 선택을 따라 걷는 여행. 그 첫 페이지는 프라하에서 열린다. ▶문의: (213) 739-2222 www.prttour.com ━ 박태준 푸른투어 서부본부의 박태준 이사는 25년째 여행 현장을 누비며 가이드, 해외 인솔자, 상품 기획자, 여행컨설턴트로 활동해온 여행 전문가다. 다년간의 현장 경험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여행은 물론 미국 전역과 해외를 아우르는 고품격 여행 서비스를 선도하고 있다. 보헤미안 이야기 프라하 여행 프라하 구시가지 동네 프라하
2026.02.19. 20:39
하늘에 태양보다 더 밝은 것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은하에는 태양보다 수십 수백 배 더 밝은 별이 수두룩한데 태양이 지구와 가까워서 가장 밝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기는 거리와도 큰 상관이 있다. 떨어진 거리와 관계없이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밝기를 별의 '겉보기 밝기'라고 한다면 그 별의 진짜 밝기는 '절대 밝기'라고 구분한다. 20세기 초 하버드 대학 부설 천문대에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천문대장이 최초로 취임하였다. 당시는 천체물리학이 막 태동하던 때여서 그전까지 천문대의 우두머리는 물리학자들의 몫이었다. 그때는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이 주를 이루던 시대여서 남자 천문학자들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천문대에 직장을 얻어 떠나는 바람에 일할 사람이 부족했다. 새로 부임한 천문대장은 관측한 자료를 계산하고 연구할 직원이 필요해서 천문대 직원을 구했지만, 남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자 자기 집 가정부 일을 하는 여자가 평소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던 까닭에 그녀에게 일을 시켜 보았다. 그녀가 기대 이상으로 일을 잘하자 모자란 천문대 직원의 빈 자리에 여자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힘들 때였다. 마침 대학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했지만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하던 헨리에타 리빗이란 여성이 보수가 없어도 좋으니 일을 하고 싶다고 지원했다. 그녀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일을 잘하자 천문대장은 리빗에게 아예 변광성 연구를 맡겼다. 헨리에타 리빗은 혼자서 수천 개가 넘는 변광성을 발견하자 하버드 천문대는 변광성으로 유명해졌다. 변광성이란 빛의 밝기가 변하는 별을 말한다. 우리 태양은 일정한 광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떤 별은 그 밝기가 변했다. 변광성의 종류는 많지만 그중 꼭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세페이드 변광성이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맥동 변광성의 일종인데 맥동이란 뜻은 마치 우리 맥이 뛰듯 광도가 세어졌다 약해지기를 되풀이한다는 의미에서 붙었다. 그중 세페이드 변광성은 맥동 주기가 약 두 달 안에 반복하는 천체로 세페이드 변광성이 중요한 이유는 지구에서 그 별까지, 혹은 그 별이 속한 성단이나 은하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어서다. 헨리에타 리빗은 변광성을 발견하면서 아울러 그 별의 절대 밝기와 변광주기를 이용해서 '리빗 공식'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대체로 1억 광년 정도 떨어진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별빛이 변하는 주기가 별의 질량을 부피로 나눈 것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신임 천문대장은 논문을 발표할 때 그런 모든 일이 연구원인 헨리에타 리빗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문구를 넣어서 공로를 그녀에게 돌리는 배려를 했다. 얼마 후 윌슨산 천문대에서 변광성을 관찰하던 에드윈 허블은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하여 다른 행성까지의 거리를 재던 중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 안에 있지 않고 외부 은하라는 놀라운 발견을 하여 하룻밤 사이에 우주의 크기를 엄청나게 늘렸다. 은하수에서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를 발견한 것이다. 허블의 업적 뒤에는 변광성의 여왕 헨리에타 리빗의 공로가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원래 천문학은 점성술이란 말과 구별 없이 쓰였다. 오랫동안 물리학의 한 부분에 속했던 천문학은 분광 기술이 발달하면서 관측해서 얻은 결과의 물리학적인 연구가 대세가 되자 비로소 현대 천체물리학이 시작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세페이드 변광성 맥동 변광성 변광성 연구
2026.02.06. 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