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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마음’ AI에 털어놓아도 될까…이희윤 UGA 교수 ‘AI 리터러시’ 강의

지난 4월 16세 소년이 생성형 인공지능’챗GPT’와 자살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 내 대화와 정서 교류가 단절되면서 AI 챗봇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한인이 늘고 있다. 무분별한 AI 사용이 정신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AI 시대 한인 정신건강’을 주제로 오는 15일 조지아대(UGA) 로렌스빌 캠퍼스에서 세미나가 열린다.   세미나 연사로 나서는 이희윤 UGA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인 심리상담용 AI 챗봇 기술을 개발 중인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와이사(Wysa)와 같은 대화형 AI 정신건강 앱은 벌써 전세계 이용자 수가 1100만명을 넘어갈 정도로 인기”라며 “연구비 15만달러를 지원 받아 이민 1세대와 청소년 세대에 특화된 한국어 상담 앱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인지행동치료(CBT)에 기반한 AI 챗봇 앱은 익명성과 접근성이 뛰어나 경증 우울증이나 불안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AI 한계와 효용을 앎으로써 두려움을 걷어내는 ‘AI 리터러시(Literacy)’를 교육할 방침이다.   이날 P.E.A.C.E., R.I.C.E. 등 6곳 비영리단체는 현장 부스를 마련해 간단한 심리 상담을 진행한다. 행사를 후원한 팬아시안커뮤니티센터(CPACS)의 백지나 코디네이터는 “타국 살이 속 우울감을 호소하는 한인이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소년 자녀의 약물중독 문제도 늘었다. 하지만 사회적 낙인으로 쉽사리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다보니 약물로 자녀를 잃어도 교통사고라고 둘러대는 게 현실”이라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행사는 둘루스의 한인 청소년 비영리단체 ‘크로스 커넥션 인터내셔널'(CCI)이 주최한다. CCI는 탈북고아의 미국 가정 입양을 위해 2012년 설립된 단체다. 한인 2세 청년들의 자살이 늘자 2022년부터 자살 예방 교육을 펼치고 있다. 조이 서 CCI 디렉터는 “정신건강이 조지아 한인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돼 가고 있지만, 관련 사회적 인식이 미흡하다 보니 알코올, 수면제, 진통제 등 약물에 의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치료상담을 적시에 제공해 누구든 홀로 마음의 병을 키우지 않게 힘쓰겠다”고 전했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정신건강 이야기 한인 청소년 한인 심리상담용 세미나 연사

2025.11.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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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탄소 기반

맛있는 된장찌개는 밥도둑이다. 단, 우리 한국인에게만 그렇지 서양 사람들에게는 그 냄새조차 맡기 힘든 음식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흔히 우리가 외계생명체를 찾는 과정에서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일단 그런 외계 행성은 지구와 환경이 유사한 생명체 거주 가능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액체 상태의 물과 대기, 그리고 온도의 범위를 정할 때 지구상의 생명체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드넓은 우주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별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행성과 위성이 산재해 있다.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조차 수백억 년이 걸리는 그 우주에는 우리 물리학을 거스르는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그 흔한 블랙홀조차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편이다.   불과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번개는 하늘이 내리는 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번개(전기)를 만들고 저장하여 컴퓨터, 자동차, 휴대전화 등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천재 아인슈타인까지 유령 현상이라고 부르던 양자얽힘 현상도 조만간 그 실체가 과학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치과 병원에서 간단한 X선 촬영을 할 때도 납으로 만든 두툼한 앞치마로 몸을 가리는데 퀴리 부인 시절에는 방사성 물질이 몸에 좋은 줄 알고 비누와 치약에도 넣고 화장품에도 첨가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방사선에 피폭되었다는 말이다.   탄소는 원소주기율표에 여섯 번째로 등장하는 우주의 기본 원소다. 얼핏 생각하면 산소 없이는 단 몇 분도 생존할 수 없어서 산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사실 지구상 모든 생명을 이루는 성분 중에서 탄소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생명체는 그 기반이 탄소이기 때문이다. 화학에서 탄소와 수소의 결합이 들어가는 화합물을 유기화합물이라고 하는데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화학식 CH₄인 메테인이다. 비루스가 바이러스가 된 것처럼 원래는 메탄이라는 독일식 발음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메테인이라고 미국 발음을 따르고 있다.   탄소는 그 크기와 원자 속의 전자 개수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화합물을 만들고 있다. 건강에 관심이 커진 요사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탄수화물인데 바로 탄소와 수소, 그리고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로 과다섭취로 인한 부작용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탄소를 대체할 수 있는 원소로 같은 탄소족인 규소가 거론되기도 하는데 아직 규소를 기반으로 한 생명체가 없어서 그냥 이론일 뿐이다.   우리는 외계생명체를 찾을 때 당연히 인간처럼 탄소 기반 생명체를 생각한다. 하지만 우주의 규모로 보면 꼭 지구상의 생명체처럼 탄소 기반일 필요는 없다. 물론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영장류처럼 생겼을 것으로 상상하는 것도 틀린 일이다. 지구는 원래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기보다 새로 시작한 생명체가 그런 환경에 적응하여 오랜 기간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그러니 외계 환경이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을까, 대기 조성은 어떤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는지는 결국 우리 측면에서 본 생명체 존재 기준이다. 표면 온도가 수백 도나 되고,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주를 이루고, 황산 비가 내리는 외계 행성에서도 그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한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지구 바깥 생명체는 꼭 탄소 기반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탄소 기반 과학 이야기 생명체 존재

2025.10.3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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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나의 어머니 이야기

행복한 노년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필자는 어머니 이야기를 해드린다.     몇 년 전에 92세로 세상을 떠나신 필자의 어머니는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하니?”를 생의 원칙으로 삼으셨다. 갓 돌이 지난 필자를 품에 안고서 남한으로 피난을 오실 때, 육로는 북한 병사들의 감시가 심해서 바다로 오셔야 했단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작은 배에 오르자, 선주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 애가 울기 시작하면 우리 모두가 죽게 되니, 아이를 바다에 던지시오.”   19세의 어머니가 한 살짜리 내게 어떤 말을 하셨는지, 어떻게 마음의  안정을 주셨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인천에 무사히 도착했다. 피난지 남한에서 아버지가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2년마다 이사 다녔다. 그래도 어머니가 힘드시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다. 오히려 가난 속에서도 양식이 떨어진 먼 친척을 위해서 무거운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서 산동네에 가셔서 도와드렸다는 이야기를 어린 시절에 여러 번 들었었다.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시작한 후, 2학년이 되어 이사 간 목포의 산꼭대기 집에서는 유달산의 진달래 꽃이 잘 보였다. 우리보다 더 위 쪽에 사시던 아주머니는 자주 우리 집에 오셔서, 나랑 동생 인숙이를 돌보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자상하게 도와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단다. 생활에 지쳐 있던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를 따라서라면 세상 끝까지도 가시고 싶었단다. 드디어 그 친절한 아주머니를 따라서 간 곳은 작은 교회당이었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들었던 찬송가의 울림에 큰 감동을 느끼셨다고 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성경, 로마서 8장에 쓰인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구절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으셨다.   남동생이 교통 사고를 당했을 때나, 아버지가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때에도 어머니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선을 이루는 데에 일익을 하리라고 믿으셨다. 필자가 의과 대학 공부로 피곤할 때에도 옆방에서 어머니가 TV를 보시며 웃는 소리가 들리면, 편안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평양에서 멀지 않은 ‘개천’에서, 어머니는 유복녀로 태어나셨다. 외할머니는 남편이 남기고 간 많은 빚을 갚느라 바쁘셔서 홍역에 걸린 막내 딸을 열심히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홍역의 합병증으로 얻은 기관지염과 천식 때문에 어머니는 일생을 고생하셨다. 미국으로 모셔온 후 폐 기능 검사를 한 결과는 심각했다. 정상인의 약 50~60%의 폐기능만이 남아 있었고, 왼쪽 허파의 거의 반은 전혀 기능을 못하는 캄캄한 동굴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어머니는 늘 미소를 지으셨다.   이러한 건강 상태에도 어머니가 총명한 정신을 유지하시며, 구십 이세가 되도록 사셨던 비결을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로 본다.   먼저, 끊임없는 몸의 움직임 또는 활동이다. 딸이 정신대에 끌려갈 것을 두려워하신 할머니가 17세에 서둘러 시킨 결혼, 이듬해에 태어난 필자를 비롯한 네 명의 자녀를 길러내셨다. 까다로운 남편과 육십 여년을 살아가시며, 어머니는 ‘죽으면 썩을 몸’으로 열심히,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셨다. 공무원 생활을 계획 없이 끝낸 후, 실의에 빠져 있던 아버지가  건축업을 시작한 것은 스코필드 박사님의 강력한 권고와 장학금 덕분이었다. 내가 연세대 의과 대학에 입학한 후다. 새집이 팔릴 때마다 어머니는 이사 짐을 싸야 했다. 반년 만에 부모님은 스코필드 박사님의 장학금을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급우가 나 대신 받도록 하였다. 쉬임없이 일하신 어머니의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라는 사명 때문이었으리라.   또 다른 비결은 넓고 아름다운 인간 관계라고 본다. 손자의 친구들이 전화를 하면, 일본 유학을 한 아버지는 당황해서 전화를 어머니에게 건네셨다. 이북에서 6학년 교육을 마치신 어머니는 손자를 대하듯 따뜻한 태도로 그들과 이야기를 하셨다. 그것은 아마 아기가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사랑을 표하는 몸짓이나, 언어였을 것이다. 사랑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문법이나, 새 단어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노인 아파트에서 사시면서 한국인, 외국인에 상관없이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셔서 장례식은 유엔 총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조문객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기도와 명상을 그치지 않으신 것도 비결이다. 카이저 병원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필자는 당직 날 새벽 두세 시에 응급실로 불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마약을 한 젊은이가 정신 이상을 일으켜서 오거나, 조울증 환자가 분노에 휩싸여서 주먹으로 창문을 부수다가 동맥 파열로 응급실로 오는 경우, 애인이 배반했다며 자살을 시도했다가 구급 차로 실려 오는 경우 등등 이런 밤이면, 필자는 어머니의 기도의 힘을 믿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생명을 오래 지켜준  큰 힘은 그녀의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소망이 가득한 삶의 태도였다고, 필자는 믿는다. 저 높은 곳에서 여전히 미소 짓고 계실 어머니에게 깊은 사랑과 존경을 보내 드린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어머니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스코필드 박사님 공무원 생활

2025.10.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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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도둑, 싯다르타, 발레 이야기

한 달 전이었다. 주말 오후, 가족들과 저녁식사 후 쇼핑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 사이, 세 명의 도둑이 내 집에 들어와 모든 걸 훔쳐갔다. 경찰도 오고 CCTV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장갑을 낀 그들은 놀라울 만큼 기민하고 철저했다. 내 옷장, 서랍, 작은 상자들까지다뒤져 오랜 세월 모아온 가방과 결혼예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추억들을 한순간에 쓸어갔다.   도둑맞은 그날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모든 게 귀찮았고,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훔쳐간 도둑들을 원망했고, 미워했고, 화가 났고, 허무했다. 한 달이 지나도록 그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무엇에 그렇게 집착하며 살았던 걸까?’ 문득 법정 스님이 탁상시계를 도둑맞았던 일화가 생각났다. 나도 스님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내려놓는 것과 남의 손에 의해 잃는 것은 전혀 다른 무소유의 개념이다. 그렇지만 그 상실감은 오히려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마침 9월의 독서 모임 책 주제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던 싯다르타는 세속의 풍요를 버리고 깨달음을 찾아 떠난다. 그의 여정 속 뱃사공 바수데바는 말한다. “강은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강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 구절을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이번 일은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강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비워야 한다’는 강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다.     나에게 발레도 그랬다. 몸은 늘 무대 위에 날고 있었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완벽한 자세보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발레는 내 안의 상실과 고통을 품는 예술이며, 그 속에서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도둑맞은 허무한 마음에 여기저기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외로 도둑을 맞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열 명 중 네 명은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상실은 찾아오고, 그때마다 삶은 우리에게 비우는 법을 가르친다. 나는 도둑에게 빼앗기고, 싯다르타에게 배우고, 발레로 다시 일어선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배운다. 잃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의 시작이었다.     강이 흐르듯 내 삶도 흐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바수데바처럼 조용히 웃으며 말하리라. “이 모든 일은 나에게 필요한 배움이었노라.”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이 아침에 싯다르타 이야기 도둑 싯다르타 법정 스님 헤르만 헤세

2025.10.2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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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종교 정치 그리고 성 이야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혼잣말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이야기는 삶을 풍요롭게 하죠. 저는 말 없는 세상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언어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저는 늘 제 직업이 고맙습니다. 모든 말은 제 관심사입니다. 이야기는 물론이고, 혼잣말도 관심사입니다. 말은 물론이고, 글도 관심사입니다. 좋은 말뿐 아니라 욕도 관심사입니다.   이야기는 중요하고 좋은 것인데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종교, 정치, 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칫하면 분위기를 얼어붙게 하고, 싸움을 일으킵니다. 서로 기분이 좋지 않게 된다면 그런 주제는 피해야겠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종교나 정치나 성은 모두가 중요한 주제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피하면 안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겁니다. 교육도 부족하고요.   종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말 그대로 가장 높은 가르침이 종교(宗敎)입니다. 대화를 피할 것이 아니라 더 나누어야 할 이야기죠. 그런데 종교 이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고집과 집착입니다. 그리고 가장 피해야 할 분노입니다. 종교의 목표는 평화인데, 종교가 싸움의 원인이 됩니다.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잘못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깊어집니다. 그런 종교 이야기를 나누기 바랍니다.   저는 가까운 사람과 종교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 기쁘고, 아름다운 시간이 없습니다. 종교 이야기는 더 좋은 가르침을 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마음을 열고 배우기 바랍니다. 저 역시 남은 시간 제일 많이 공부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종교입니다. 배울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 종교만 공부하면 종교 공부가 아닙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겁니다. 서양의 정치와 동양의 정치에 대한 관념이 조금씩 다릅니다. 일단 어원 자체가 다릅니다. 서양의 정치는 말이 강조되어 있는데, 동양의 정치는 힘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정치(政治)의 한자를 가만히 보면 ‘올바름[正]’이 중심에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정치 이야기는 말로 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머리를 맞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는 어렵습니다.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지향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가 망가지는 것은 말을 함부로 하고, 자신만이 올바르다고 우길 때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정치적’이라고 비꼽니다. 저 사람은 정치적이라는 말만큼 기분 나쁜 표현이 없는 겁니다. 진짜 정치 이야기를 합시다. 듣는 귀와 내 마음을 전하는 말을 공부합시다.   성(性)에 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최대의 관심사일 겁니다. 한자 그대로  마음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겁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잘못 이야기를 꺼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성이 유머가 되고 해학이 되지만, 짓궂음이 되고 망신살도 됩니다. 따라서 성은 시간과 장소, 수위의 조절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청자가 듣기 싫어하면 무조건 하면 안 됩니다. 듣는 이가 좋아한다면 문제가 될 게 없겠지요.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인생이 어그러집니다. 저는 좋은 사람끼리 솔직하고 따뜻한 성 이야기는 환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이야기라면 더 좋을 겁니다. 얼어붙은 화제를 즐겁게 돌리는 이야기로 시간과 장소와 분위기만 맞는다면 피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우리 이제 종교와 정치와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즐겁게 나눕시다. 고집과 집착과 분노와 모욕과 무시와 주책없음은 빼고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야기 종교 종교 이야기 정치 이야기 종교 정치

2025.10.19. 19:22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태양의 위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하늘을 쳐다보면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거린다. 공해가 적고 도시 불빛의 방해가 없는 시골에서는 하늘을 꽉 채운 별이 팔만 뻗으면 손에 잡힐 것 같다. 하지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 중에는 별이 아닌 것도 있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같은 지구의 형제 행성도 별처럼 빛나고 있으며, 안드로메다은하 같은 맨눈으로 관측되는 은하 몇 개도 마치 별같이 보인다. 꼬리가 달린 혜성도 별이 아니고 밤하늘을 질러가는 별똥별도 별이 아니다. 그 나머지 밤하늘의 모든 별은 은하수라는 이름의 우리 은하에 속한 별이다. 우리 태양이 속한 은하수 은하에는 대략 2천억 개에서 4천억 개나 되는 별이 바글거린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그래서 큰 수를 표현할 때 '천문학적 숫자'라고 한다.   은하수 은하는 가운데가 볼록한 호떡처럼 생겼다. 은하수의 두께는 평균 약 천 광년 정도 되고 그 지름은 약 10만 광년 정도라고 하는데 그 속에 수천억 개나 되는 별이 들어있고 우리 태양도 그런 별 중 하나다. 만약 우리가 은하수 위에서 은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태양은 은하수의 변두리에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   은하 중심부에는 별끼리의 상호작용이 활발하므로 생명이 시작하여 진화하기가 힘들지만, 태양처럼 멀찌감치 변두리에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별은 서로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인류와 같은 생명체가 발현하여 진화를 거듭할 수 있었다. 현재 인류의 문명은 엄청나게 발달하여 우주의 시작과 끝을 추측할 정도지만, 그런 과학 기술의 성과로 지구를 떠난 우주탐사선이 근 50년을 날아 고작 자신이 속한 별인 태양의 끝자락을 막 빠져나가고 있는 형편이고, 그렇게 계속 날아서 수만 년을 가야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에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대로 은하수 은하에는 태양이나 프록시마 센타우리 같은 별이 수천억 개나 있다. 만약 태양이 은하수의 다른 곳에 자리 잡았다면 지구상의 인류는 결코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하수 은하 속에 태양이 버티고 있는 바로 이 자리야말로 인류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행운일지 모른다. 생명은 그런 우연이 엄청나게 반복되어 생겼다.   달은 27일 걸려서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지구는 365일에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데 태양도 은하수 중심을 기준으로 약 2억2천5백만 년에 한 번씩 일주한다. 태양이란 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덟 개의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데 한가운데서 빛나는 태양이 상대적으로 워낙 크고 밝기 때문에 태양에서 조금만 떨어져서 봐도 빛나는 중심성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태양이란 별을 말할 때 그 주변에 산재한 지구 같은 모든 천체를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태양계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눈에 점 광원으로 빛나는 별, 예를 들어 북극성 같은 별도 가깝게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심에 빛나는 별이 있고 그 주위를 여러 행성이 공전하고 있을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별, 즉 항성은 그 주변에 한 개 이상의 행성을 거느린다. 그런 수천억 개의 별을 품은 은하수 같은 은하가 약 2조 개가 모여 비로소 우주를 이룬다고 하니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태양의 위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만약 태양이 조금만 더 은하 중심에 치우쳤거나 떨어져 있었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태양 주위 우리 태양 은하수 은하

2025.10.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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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마법소녀 이야기 들려주고 싶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윈터송’ 한인 작가

“저와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을 읽고 싶었어요. 저에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미녀와 야수’가 필요했어요.”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오른 영어덜트(YA) 소설 ‘윈터송’(Wintersong) 시리즈를 쓴 한인 소설가 S. 제이-존스( S. Jae-Jones, 한국명 제현·40)가 지난 4일 디케이터 북 페스티벌 초청으로 강연차 조지아주를 찾았다. 그는 ‘자라’, ‘아미’에 이어 판타지 소설 ‘가디언즈 오브 던’(Guardians of Dawn)의 3부작인 ‘율리’를 지난 8월 출판했다. 내년 마지막 작품 ‘수화’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주 LA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 세인트 마틴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2017년 첫 책을 냈다.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거주 중인 존스 작가는 “외동이다 보니 글쓰기는 늘 외로움을 달래는 재미있는 놀이였다”며 “어릴적 어머니가 한국 동화나 신화에 대한 책들도 많이 구해다 주셨다”고 했다.   대표작 ‘윈터 송’ 시리즈는 어린 그가 가장 즐겨 읽었던, 요정과 고블린이 주로 등장하는 서양 판타지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19살 주인공 리슬이 지하감옥 고블린 왕의 신부로 납치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는 내용은 그리스 신화 속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첫 소설이 전세계 10개국으로 번역 출판되는 성공을 거둔 뒤, 그는 동아시아 신화로 눈을 돌렸다. ‘가디언즈 오브 던’은 일본, 티베트, 몽골, 한국 배경을 오가며 마법 재능을 타고난 소녀들이 괴물을 무찌르는 모험담이다. 존스 작사는 “세일러문에서 영감을 받은 마법소녀 이야기지만, 요새 독자들에겐 세일러문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설명하는 게 쉬울 것”이라고 웃었다. 그는 “세상을 구하는 십대 여성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서사와 다른 방식으로 치유, 친절, 성장, 변화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며 “‘케데헌’의 성공 역시, 많은 시청자들이 주변 불의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영어덜트들의 이야기에 굶주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엔 재치 있게 변주한 한국 소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딴 방탄 브라더스는 주인공을 돕는 가디언즈 중 한명이다. 마법 주문인 ‘꽃의 언어’는 한자를 차용했다. 그는 “매년 어머니와 한국을 방문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여전히 동양 신화는 서양의 것보다 다루기 까다롭다고 느낀다”며 “그럼에도 디아스포라의 방식으로, 정교하거나 교육적인 방식을 떠나서 정직한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면 한국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어릴적 접한 한국계 미국인의 책은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표출하거나 이민자로서의 경험, 즉 미국에 처음 온 사람들의 트라우마나 인종차별, 문화적 충돌을 주로 다뤘다”며 “우리 조부모님 역시 평양 출신이라 그 모든 게 우리 역사의 일부임을 알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성장기 열광하며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도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걸 원했다”고 했다.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증만큼이나 신경써 서술한 부분은 십대 청소년의 모습을 가감없이 담는 것이었다. 그는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소녀들이 괴물과 싸우는 장면이 아니라, 그저 함께 앉아 귀여운 남자애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먹는 장면을 쓰는 데서 왔다”고 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죠. 특히 소녀 시절에 가졌던 관계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뻔뻔하고 성실하고, 혼자보다 함께 할 때 더 강해지는 십대들의 모습을 쓰는 것은 제 내면에 아직 살아 있는 14살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마법소녀 이야기 페르세포네 이야기 존스 작가

2025.10.08.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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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지구의 공전과 자전

달리는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모든 것이 기차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지만, 정작 기차에 탄 승객은 그런 움직임을 느끼지 못한다. 기차가 아무리 고속으로 달려도 편안히 앉아서 음식을 먹고 마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지구는 마치 기차 내부처럼 고요할지 몰라도 사실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저 스스로 자전도 한다. 우리는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것, 즉 한 번 자전하는 것을 하루라고 하고 중심성인 태양 주위를 한 번 도는 기간을 1년이라고 정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한 번 공전하는 동안 365.25번 자전하므로 1년은 365일이다. 그런데 소수점 이하 자투리(0.25)가 4번 모이면 하루가 되므로 네 번째 해의 2월 마지막 날에 그 하루를 추가하여 그 해를 윤년이라고 하며, 그러므로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은 2월이 29일까지 하루가 더 있어서 1년이 366일이 된다.     빨리 달리는 기차 안의 승객이 그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지구에 사는 우리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저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변하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지구는 동그란 공 모양이어서 지구상의 위치에 따라 자전하는 속도가 전혀 다르다. 북극점이나 남극점에서는 자전 속도가 0이지만, 가장 불룩한 적도에서는 지구의 회전 속도가 무려 시속 1,600Km를 넘는다. 참고로 마하 1은 시속 1,235km니까 음속으로 나는 전투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돈다는 말이다. 한국이 위치한 중위도 지역에서는 소리의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돈다니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하지만 자전 속도는 공전 속도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공전 속도는 시속 10만km를 웃도는데 이는 소리보다 무려 88배나 빠른 속도다. 그렇게 부지런히 태양 한 바퀴를 날아서 완주하는 것을 1년이라고 한다.   달과 지구, 태양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천체는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의 위성인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태양이란 별의 행성인 지구는 자신의 형제 행성들과 함께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 물론 태양도 자전하며 동시에 자기가 속한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기준으로 공전하는데 태양이 은하수를 한 번 공전하는 기간을 은하년이라고 하며 우리 시간으로 약 2억2천5백만 년 정도 될 것으로 추측한다. 참고로 태양이 은하수 주위를 공전하는 속도는 시속 80만km 정도 된다고 하니 천체 움직임의 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잘 알다시피 태양계에는 지구를 포함하여 총 여덟 개의 행성이 있는데 그 중 금성만 자전 방향이 거꾸로다. 태양계를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할 때 다른 행성들은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는데 유독 금성은 시계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자전한다. 바꿔 말해서 금성에서는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 세상 모든 것에는 청개구리가 있는가 보다.   우주 공간에는 저항이 없어서 천체의 자전과 공전은 멈추지 않고 영원히 계속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 속도가 변하기도 한다. 지구의 형제 행성이라고 불리는 화성의 자전 속도는 아주 조금씩 빨라지고 있으며, 지구는 달의 인력으로 인한 조석력 때문에 자전 속도가 늦어진다고 한다. 물론 아주 미미한 차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관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자전과 공전 지구 태양 공전 속도

2025.10.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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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우주는 얼마나 클까

끝이 없다는 표현이 있다. 만약 이 세상에 정말로 끝이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주일 것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와 아예 관측조차 불가능한 그 바깥의 우주다. 우주를 구성하는 은하는 사방으로 멀어지고 있는데 관측하는 곳에서 멀수록 후퇴하는 속도가 빨라지다가 빛보다 빠른 속도가 되는 곳까지를 관측 가능한 우주라고 부른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보이는 물체에서 떠난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물체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눈에서 멀어진다면 그 물체를 출발한 빛은 아무리 해도 우리 눈에 도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는 있겠지만 볼 수 없으니 없다고 하지 않고 관측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먼 곳의 은하가 빛보다 빨리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면 관측할 수 없는 은하이고 그 경계의 안쪽에 있는 곳까지를 관측 가능한 은하라고 한다. 관측자인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반지름이 465억 광년인 공을 상상하면 그 공의 안쪽이 바로 관측 가능한 우주다.   여기서 빛보다 빠르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은하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은하를 담고 있는 공간이 빛보다 빠르게 팽창한다는 말이다. 물론 관측 가능한 우주와 같은 모습이겠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우리 형편으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지구라는 이름의 행성에서 산다. 지구 주위에는 달이라는 위성이 돌고 있다. 지금부터 56년 전에 우리 인류는 달 위를 걸었다. 지구 같은 행성 여덟 개가 모여서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을 공전하는데 그 전체를 태양계라고 한다. 태양계 같은 별이 약 1천억에서 4천억 개가 모인 것을 은하라고 하는데 우리 별인 태양이 속한 은하를 은하수라고 부른다. 은하수은하를 떠난 빛이 약 250만 년 걸려 도착하는 곳에 이웃인 안드로메다은하가 있다. 은하수은하에는 약 4천억 개의 별이 있는데 우리보다 두 배쯤 큰 안드로메다은하에는 약 1조 개나 되는 별들이 바글거린다. 아까 언급한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은하수나 안드로메다 같은 은하가 어림잡아 2조 개나 있다고 한다. 물론 추측이지만 그래도 과학적 근거로 추산한 숫자다.     허블 망원경의 책임자였던 로버트 윌리엄스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금 엉뚱한 생각을 했다. 허블 망원경은 수많은 천문학자가 순서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단 1초도 여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바쁜 망원경 스케줄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 공간을 며칠씩 촬영한다니 모두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최고 담당자의 자격으로 우겨서 귀중한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로 했다. 우주의 빈 곳을 찍었는데 그 결과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던 공간에서 오는 빛을 열흘 동안 모았더니 약 3천 개의 은하가 찍혔다. 전체 하늘의 약 2,400만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에 존재하는 은하가 그 정도라면 우주 전체에는 얼마나 많은 은하가 퍼져 있을지 짐작하기도 벅차다. '허블 딥 필드' 얘기인데 로버트 윌리엄스의 선구자적 혜안이 놀랍다.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대략 2조 개 정도의 은하가 있다고 하며 각 은하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는데 태양은 그런 별 중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 기준으로 우주는 무한하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우주 공간 과학 이야기 우주 전체

2025.09.2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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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물질파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이 무슨 헛소리인가 생각할지 모른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란 말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러우 전쟁이 한창이고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지경에 웬 뚱딴지 같은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이론이 없으면 러우 전쟁에서 드론이 활약하지 못하고, 동무들의 핵폭탄도 개발될 수 없다. 심지어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 세계에서 직관적으로 볼 때, 마치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 입자와 파동 역시 완전히 다르다. 쉽게 얘기해서 날아가는 야구공은 입자의 대표적인 예고, 호수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는 물결은 파동이다. 알갱이인 입자는 질량이 있고 속도가 있지만, 소리 같은 파동은 파장에 의한 진동수나 진폭이 있다. 그 둘은 서로 어울릴 소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뉴턴 시절 빛은 당연히 입자라고 생각했지만, 빛의 파동적인 성질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뉴턴의 운동 법칙이 아원자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과학계의 큰 문제였고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이란 이론으로 이유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억지를 부렸다.     연이어 발표한 상대성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고 노벨상까지 받은 아인슈타인에게 한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떤 학생의 박사학위 논문인데 지도 교수마저 무시했다며 시간을 내서 꼭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논문을 본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친구가 물리학 발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커튼을 치웠군!'   그는 프랑스의 루이 드브로이였고 물질파로 불리는 이론을 발표했다. 드브로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빛의 이중성이 주류였는데 천재였던 드브로이는 거꾸로 추측했다. 그는 혹시 빛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입자이면서 파동일지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다. 단지 거시세계에서는 입자의 질량이 너무 커서 거기서 발생하는 물질파는 거의 0에 수렴하기 때문에 입자의 성질만 보인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원자 규모의 미시세계에서 전자는 아주 미세하나마 질량은 가지고 있는 입자임에도 파동의 성질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은 양자역학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그동안 원자핵 주위의 전자가 불연속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던 양자역학은 그 첫걸음을 뗀 지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었다. 전자가 어떤 특정 궤도에 있다가 에너지를 얻거나 잃어서 궤도를 옮길 때면 연속적인 운동을 하지 않고 점프 해버리는, 즉 양자 도약을 하는 이유를 몰랐다. 드브로이는 파동의 수미가 서로 연결된 닫힌 궤도를 상상했고 그렇게 닫힌 상태에서는 파동이 정수배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첫 번째나 세 번째 궤도는 존재할지라도 궤도 1.5라든가 궤도 3.14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가 궤도를 도약하는 것처럼 불연속적으로 보였다.   이로써 입자와 파동에 관한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됐다. 사실, 이 우주에는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공식이 있을 수 없지만, 그동안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대립했는데 드브로이의 이론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단 한 가지 공식만 갖게 되었다. 양자역학이 그것이고 양자역학의 부분집합으로 거시세계를 다룬 것이 바로 고전역학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물질파 이론 양자역학 발전 과학 이야기

2025.09.1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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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행성 정렬

우리 태양계에는 모두 8개의 행성이 중심성인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데 저마다 그 공전 궤도와 속도가 다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365일 걸려 태양을 한 바퀴씩 도는 데 비해 바로 바깥쪽 이웃인 화성은 우리 시간으로 687일에 한 번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그러므로 어쩌다 지구와 화성이 서로 가까워질 때도 있는데, 이를 회합이라고 하며 780일마다 두 행성이 근접한다. 나아가서는 태양계의 여덟 행성이 한 줄로 나란히 놓이게 되는 때를 '대정렬'이라고 한다. 마침 2025년 1월 중순에 수성을 제외한 여섯 행성이 지구에서 보았을 때 한 줄로 늘어섰고, 2월 말일에는 일곱 개의 행성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네댓 개의 행성이 동시에 보이는 일은 자주 있지만, 이번처럼 지구를 빼고 나머지 일곱 개의 행성을 한눈에 보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물며 지구까지 포함하여 태양계의 여덟 개 행성이 나란히 정렬되기는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사실 행성이 일직선 위로 정렬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천문학 지식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보통 밤하늘과 똑같다. 하지만 옛날 점성술사의 눈에는 특별한 일로 보였는데 행성이 일직선 위에 나열되면 대체로 나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옛날에는 행성 정렬 현상을 점을 치는 데 사용했지만, 지금은 우주 탐험 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기 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이라지만 우주선의 속도를 올리려면 연료가 필요하며 방향을 바꾸거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감속을 하기 위해서도 연료가 소모된다. 또 탑재된 장비를 구동하기 위한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연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먼 거리를 가려다 보면 충분한 연료를 실을 수 없다. 그래서 중력 도움이란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목표한 방향에 있는 다른 천체의 중력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예를 들어, 토성을 가려는 길에 목성이 있다면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서 토성까지 가는 것이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2호는 목성의 중력 도움으로 토성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토성의 중력 도움으로 방향을 바꿔 천왕성을 향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연료를 절약하여 지금 보이저 2호는 해왕성 탐사까지 마치고 성간에 진입했다.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에서는 1977년이 되면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한 줄로 정렬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때 맞춰 보이저호를 발사했다. 이렇게 태양계의 바깥 4개의 외행성이 정렬되는 것은 175~176년마다 일어나는데 그때 행성 간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지고 다른 행성의 중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태양계가 만들어질 때 원반 모양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도 그 원반 위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행성은 같은 원반 위에서 중심성인 태양을 돌고 있다. 그 원반을 황도면이라고 한다. 다행히 같은 황도면에서 공전하기 때문에 일직선 위의 정렬이 가능하지 만약 각각의 행성이 뒤죽박죽 서로 다른 공전 면을 돈다면 행성 정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이저 1호가 성간에 진입하기 직전 칼 세이건이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서 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행성 정렬 상태는 아니었지만,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떠나려고 황도면을 굽어보며 날고 있어서 그 사진에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여섯 행성이 함께 찍혔기 때문에 태양계의 가족사진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보일 듯 말 듯 작은 점으로 나왔는데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보이저호가 태양계 행성 정렬 사실 행성

2025.09.0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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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하루 이야기

하루라는 단어는 특이한 말입니다. 사실 날짜를 세는 말은 구성이 특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많습니다. 이틀, 사흘, 나흘, 열흘 등에서 ‘-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흘’은 날짜를 나타내는 말로 보입니다. 사흘을 ‘사 일’로 잘못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나흘’은 ‘서너’와 모음 교체된 말입니다. 며칠을 ‘몇 일’로 잘못 쓰는 사람이 있는데, 며칠에는 ‘일(日)’이 아니라 ‘흘’이 들어간 말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며칠의 옛말은 ‘며츨’이었습니다.   오늘은 날짜에 관한 우리말로 시작하였습니다만, 사실은 저의 하루를 보여 드리고자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노후 준비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앞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예비편,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노후 준비는 당연히 노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여야 하는 겁니다. 저의 하루를 보시면 저의 노후가 보일 겁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사전을 봅니다. 주로는 방언 분류 사전을 보고, 일본어로 된 어원사전을 봅니다. 저의 머리를 휙휙 돌리는 시간, 즉 깨어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말을 머릿속에 넣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래야 알고 있는 어휘도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불교대사전이나고어사전을 보기도 합니다. 제 연구실에는 사전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제 손에 남아있을 책은 아마도 사전일 겁니다.   일본어 어원사전을 비롯하여 일본어로 된 책은 주로 아침에 보려고 합니다. 외국어공부는 지적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또한 좋은 외국어 책은 심리적 치유에도 도움이 됩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주로 아침에 외국어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외국어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외국어 교육의 치유기능입니다.   오후에는 주로 옛글을 읽습니다. 요즘엔 번역소학을 봅니다. 1518년에 번역된 소학을 읽으면 옛 우리말의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초기 한글 성경을 읽기도 하고, 초기 한글 불경을 보기도 합니다. 물론 최근의 종교 서적도 읽습니다. 종교는 말 그대로 가장 높은 가르침이고, 나를 깨우는 가르침입니다. 어휘와 사고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녁엔 주로 역사와 문화 책을 읽습니다. 언어에 사고를 더하는 순간입니다     날마다 제자들과 만나는 시간도 귀합니다. 언어를 이야기하고, 교육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합니다. 선생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자가 아니어도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해외에서 온 분이나 멀리서 찾아주는 분도 많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사람이 ‘말하는 동물’이라는 참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매주 한두 편의 글을 쓰고, 격주로 평화방송에서 우리말에 관한 방송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특강을 하고, 매주 수요일 밤에는 두 시간씩 제자들과 연구모임을 같이 합니다. 7개국에서 연구자들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을 합니다. 매년 수십 편의 논문을 함께 씁니다. 책을 쓰는 시간도 집중의 시간입니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와 함께 쓰는 느낌입니다.   일요일에는 국악을 배웁니다. 민요를 배우고, 사물놀이를 배우고, 우리 춤을 배웁니다. 이렇게 배운 국악을 한 달에 한 번씩 요양원에서 국악치유공연을 합니다. 하는 이나 보는 이나 서로에게 치유의 시간입니다. 요즘에는 그동안 썼던 시를 가사로 바꾸어 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제 감정이 여러분에게도 전달되기 바랍니다. 이렇게 보면 엄청 바쁜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공부할 게 많아 즐겁고, 배울 게 많음에도 스승을 찾지 않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루하루가 노후 준비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야기 하루 이야기 시간씩 제자들 외국어 교육

2025.09.0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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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90세 이모의 사랑 이야기

이모는 14세 때인 중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을 겪었다. 온 가족이 군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곳에서 이모에게 홀딱 반한 한 남학생을 만났다. 그도 서울에서 피난 온 중 3년생이었다.     이모가 여고 2학년 때부터 일기 형식으로 된 남학생의 사랑의 메시지가 그의 여동생을 통하여 거의 매일 같이 이모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이모는 관심 밖의 일이었고 다른 학생에 비해 키가 크다는 것, 이외는 아무런 호감이 없었다.     이모가 여고 2학년 때 ‘마의 태자’란 연극을 극장에서 일주일 간 공연했는데 이모가 마의 태자비로 출연하였다. 그 학생은 수업도 거른 채 연극 장면을 사진을 찍어 이모에게 주었지만 이모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동안 받은 러브레터와 사진을 불살라 버렸다.     그 남학생의 이모를 향한 집념은 참으로 집요한 것이었다. 그는 늘 이모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반대되는 성격의 여성과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5남매를 두었는데 남편이 전쟁 중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가 홀로 자식을 키우느라고 성격이 거칠고 사나웠든가 보다.   이모는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가냘픈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는 이모와 10년 내에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굳센 결의를 보였다. 두 사람은 장학생이어서 이모는 E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역사 담당 교사가 되었고 그 청년은 S대 경제학과 재학 중 군 복무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하루는 그가 할 말이 많은데 교외선을 타고 바람 쐬러 가자고 졸라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는데 그 기차는 교외선이 아니라 장항선이었다. 이모를 속인 것이었다. 열차가 삽교역에 정차했을 때 이모는 기차에서 내렸는데 그 청년도 쫓아 내렸다. 인근에 있는 덕산 온천에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거기서 청혼을 수락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모가 단호하게 거절하니까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이모는 기절하여 서산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하루 지나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 당시 일간지 1면에 ‘여고 교사 납치’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다. 형사들이 그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외삼촌과 이모가 경찰서를 찾아가 “우리는 피해 본 것이 없으니 선처를 바란다”고 호소하여 풀려났다. 외삼촌은 이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청년의 가정이 가난한 것이 흠이지만 인간성이 정직하고 진실되며 건전한 사람이니 결혼해라. 만일, 결혼 생활에 하자가 생긴다면 이 오빠가 책임지겠노라”고 타일렀다.     이모를 달래어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 후 이모부는 20대1 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 교육원 교수로 채용되어 경제학을 강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에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의무적으로 등록되어 수강했는데 낙제자는 진급은 물론 자신의 직위가 위태로웠다. 그러다 보니   뇌물이 성행하고 부정비리가 비일비재했다. 이모부의 상관들은 모두 군 장성들이었는데 노골적인 회유와 압력이 가해졌다.     이모부는 청렴하고 강직한 교육 공무원이었다. 그는 부정 청탁에 환멸을 느꼈다. 차라리 미국으로 이민 가서 막노동을 할 망정 교수 생활을 포기한다는 각오로 사직하고 누이의 초청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 온 후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기업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중 그 회사가 멕시코로 사업 진출을 하는 바람에 멕시코 행을 포기하고 이모와 세탁소를 운영했다.     부촌에서 세탁소를 오랫동안 운영하여 부를 쌓게 됐다. 그러던 중 이모부가 날로 수척해지고 엉덩이뼈에 통증이 있어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간암 말기로 판명되었고 암세포가 골수로 전이되어 수습 불가능 단계로 진행되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하지 않던가,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항암치료를 받다가 식도장애가 생겨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영양 주사로 연명해야 했다. 이모부는 이모가 연약하고 여리어 세상 풍파를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같이 죽자고 제의하였다.     이모는 아들이 아직 결혼을 못했으니 5년 후에 결혼 시키고 뒤를 따르겠노라 약조했다. 이모부는 그 5년 만이라도 남자 친구를 사귀어 행복하게 살다가 오라고 했다. 남자 친구를 사귀려면 자동차가 좋아야 한다며 이모를 딜러로 데리고 가 BMW를 사 주었다.   이모는 이모부와 40년 이상을 동고동락했지만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의료진들의 판단으로 딸 집에서 임종을 맞게 되었다. 이모는 의식이 없는 이모부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여보! 사랑해요”라고 애정 어린 말을 연거푸 했다.     이모부는 향년 62세로 이 세상을 마감하였다. 이모는 내년 4월이면 만 90세가 된다. 이모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었단다.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거나 섭섭하게 해 준 것을 뉘우치고 있고 또 용서받았단다. 남편의 시신은 화장하여 이모의 방 유골함에 보관하고 있다. 자신이 사망하면 화장하여 남편과 함께 수목장을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진용 / 수필가문예마당 이야기 이모 이모 주위 마의 태자비 만일 결혼

2025.08.28. 19:54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왜소행성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중 하나인 태양이란 이름의 별 주위에는 지구를 비롯하여 8개의 행성이 공전한다. 각각의 행성 주위에는 위성이 돌고 있기도 하고,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행성도 있으며 혜성과 이런저런 천체가 태양의 중력에 붙들려 있는데 이를 통틀어서 태양계라고 부른다.   태양계의 행성은 태양에서 가까운 순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을 내행성(內行星)이라 하고 그 바깥에서 공전하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외행성(外行星)이라고 구별한다. 그 특징이라면 내행성은 지구처럼 표면이 단단한 암석 행성이고, 외행성은 주로 가스나 액체로 이루어진 가스 행성이다.     외행성과 발음이 비슷한 용어로 왜행성(矮行星)이 있는데 혼동을 막기 위해서 왜소행성(矮小行星 dwarf planet)이라고도 한다. 왜소행성은 2006년 국제천문연맹에서 행성과 소행성의 중간에 있는 천체를 정의하기 위해서 만든 카테고리인데 태양 주위를 공전해야 하고, 구형 모양을 가질 수 있는 질량이 되어야 하며, 자기가 공전하는 궤도에 있는 다른 천체에 영향력이 없어야 한다.   원래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그런 이유로 행성의 지위를 잃고 왜소행성으로 격하되었다. 명왕성을 발견해서 내심 자랑스러워했던 미국인들은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많은 미국 사람들은 명왕성도 태양의 행성이라고 우기고 있다. 어떤 이는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었으니 이름도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명왕성이란 이름은 그대로다.     왜소행성은 명왕성 말고도 세레스, 마케마케, 하우메아, 에리스 등 총 5개가 있다. 세레스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의 천체로 1801년에 발견되었다. 오래 전부터 천문학자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틈이 다른 행성들 사이보다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그곳에도 행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고, 그즈음 만들어진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에 자연수를 차례대로 집어넣으면 신기하게도 태양계의 행성 순서가 되었는데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이상하던 참에, 윌리엄 허셜이 발견한 해왕성 역시 그 공식에 들어맞는 궤도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고무된 천문학자들은 부지런히 화성과 목성 사이를 뒤진 결과 비교적 덩치가 큰 세레스를 비롯하여 엄청난 수의 천체 집단을 발견하여 이를 소행성대라고 명명했다. 세레스는 소행성대 전체 질량의 약 30% 정도나 된다.     2005년 미국의 천문학자 마이클 브라운이 해왕성 너머에서 명왕성보다 살짝 작은 천체와 그 천체를 도는 위성까지 발견했다. 에리스라고 이름 지어진 그 천체가 태양의 열 번째 행성이 되느냐는 논쟁 중 근처에서 계속하여 마케마케와 하우메아도 발견되자 행성의 자격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2006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맹 총회에서는 200년 전에 발견된 세레스의 행성 지위를 논했는데 여러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새로 행성의 자격을 정했다. 거기서 세레스와 함께 애꿎은 명왕성마저 왜소행성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처음으로 미국인이 발견한 행성을 같은 미국인이 번복한 결과가 되자 당사자인 마이클 브라운은 자기가 명왕성을 죽인 사람이라며 자책했다고 한다.   참고로 태양계 행성의 자격은 태양 주위를 공전해야 하고, 충분한 중력이 있어 공 모양이어야 하며, 자기 공전 궤도 상의 작은 천체를 처리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하고 다른 행성의 위성이면 안 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태양계 행성 소행성대 전체 행성과 소행성

2025.08.2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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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양자의 세계

인류는 문명이 시작할 때부터 뉴턴을 지나 아인슈타인에 이를 때까지 시간과 공간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직관적으로 판단하면 당연한 얘기다. 과거가 있고 현재가 존재하지만, 현재는 곧 과거가 되며 현재는 우리의 미래가 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초가 되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이란 것을 내놓고 시간과 공간은 더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산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항상 같은 줄 알았던 시간이 관찰자의 속력에 의해서 달라진다느니, 중력에도 영향을 받아서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은 더디 흐른다고 했다. 게다가 중력은 빛조차 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몇 년 후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잘하던 전통적인 물리학이 아원자 세계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뉴턴에 의해서 완성된 고전물리학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은 물론, 다른 항성과 심지어는 은하와 우주 규모를 망라하여 그 움직임을 계산하여 예측할 수조차 있었는데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원자 속을 들여다볼 정도가 되자 그런 미시세계의 움직임은 뉴턴의 운동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은 아원자 규모의 세계에서는 기존 물리학 법칙이 통용되지 않아서 그런 미시세계만을 다루는 역학을 말한다. 문제는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는데 같은 물리 법칙을 설명하는데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가 틀린 것도 아니니 두 경우를 공동으로 만족시키는 법칙이 있어야 한다.     양자역학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양자 도약, 양자 얽힘, 양자 중첩이 바로 그것인데 고전물리학으로는 전혀 설명이 안 된다.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는 전자는 에너지를 얻거나 잃을 때 다른 층으로 건너뛴다. 시간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과는 달리 불연속적인 이동을 하는데 이를 양자 도약이라고 한다. 또한, 한 입자의 성질이 정해지면 다른 입자의 성질도 동시에 정해지는데 서로 떨어진 거리에 상관 없다. 두 입자가 빛의 속도로 수십만 년 떨어져 있어도 같은 일이 발생한다.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는데도 그렇다. 이를 양자 얽힘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양자 중첩이란 원자핵 주위에 퍼져 있는 전자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즉 중첩 상태이기 때문에 전자구름이라고 표현한다. 슈뢰딩거의 상자 속 고양이는 죽은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상자를 열어서 확인하는 순간 생사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던 이유는 시간에 있다. 사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있다면 양자역학적 모순은 한꺼번에 해결된다. 양자가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어서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만약 한 곳을 A라고 하고 다른 곳을 B라고 했을 때 양자가 A에 나타났다가 B로 갔는데 시간이란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양자를 A와 B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시간이 존재한다는 고정관념 아래서 양자가 도약하는 것처럼 보이고, 얽혀있는 것처럼 보이며, 중첩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애당초 우주에는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시간은 우리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졌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양자역학적 모순 양자 중첩 양자 도약

2025.08.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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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웜홀

멘델레예프에 의한 원소주기율표는 나중에 원자핵 속의 양성자 수에 의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원소주기율표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곳곳에 빈칸이 많았다. 나중에 과학이 발달하면서 그때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원소들이 하나 둘 채워졌다. 표준모형이 만들어진 후 피터 힉스는 빅뱅 시에 입자에 질량을 주었던 무엇인가를 추측했는데 반세기 후 그 입자가 발견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힉스 입자라고 이름 지어졌다.   백 년 전에 아인슈타인이 예견했던 중력파가 최근에 발견되어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일정한 줄 알았지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큰 천체 곁을 지나는 빛은 휘어지고, 만약 중력이 무한대가 되면 빛은 아예 그 천체를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처음에는 이론상 그런 천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블랙홀로 밝혀졌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상상했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증명되었다. 지금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웜홀도 어쩌면 미래 어느 날 찾을지도 모른다. 웜홀이란 두 공간을 잇는 통로를 말하는데 사과에 사는 벌레가 표면의 한 곳에서 다른 곳까지 가려면 사과의 표면을 빙 둘러가야 하지만, 만약 사과 속으로 난 통로를 이용한다면 훨씬 가깝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런 벌레 구멍이란 뜻의 웜홀은 아직은 상상 속의 이야기다.   우주는 너무 광대해서 설사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고 해도 수십만 년 이상을 가야 한다. 그런데 우주에는 빛보다 빠른 것이 없다는 것이 상대적 우주의 절대적 진리다. 어떤 물체의 움직임이 광속에 가깝게 되면 질량이 무한대가 된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이므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광속을 능가하기는 불가능하다. 속도 말고 중력으로 휘어진 공간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바로 웜홀이다.     중력은 공간을 왜곡시킨다. 예를 들어 종이 한 장을 우리의 우주라고 하자. 펼친 종이 위의 한쪽에 점을 찍고 A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15cm 정도 떨어진 다른 쪽에 또 점을 찍고 B라고 했을 때, 점 A에서 점 B까지의 가장 빠른 길은 당연히 두 점을 이은 15cm 직선이다. 그런데 우주는 너무 넓어서 두 점 사이의 거리가 빛의 속도로도 수십만 년 이상이나 걸린다면 고작 100년 정도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여행 불가능한 거리다.   그런데 만약 종이를 반으로 휘게 해서 그 두 점을 바로 위아래에 오게 하고 닿을락 말락 붙인다면 직선거리로 15cm 떨어진 두 점은 1mm도 안 되게 떨어져 있다. 이때 두 점을 잇는 통로를 만들면 먼 거리를 보다 빨리 갈 수 있는데 이런 가상의 통로를 웜홀이라고 한다.     미국의 물리학자 John Wheeler는 블랙홀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인데 웜홀도 그가 만든 이름이다. 블랙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화이트홀이란 것이 있는데 웜홀은 이 두 천체를 연결하는 가상의 통로라고 하는데 지금 당장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화이트홀은 블랙홀과는 반대로 모든 것을 뱉어내기만 한다는 천체다. 그래서 빅뱅이 바로 화이트홀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먼 미래 어느 날 그런 천체를 이용한 원거리 우주여행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멘델레예프가 빈칸으로 남겨 놓은 미지의 원소가 하나씩 발견되듯, 예견된 힉스 입자가 나중에 발견되듯 그런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과학 이야기 원거리 우주여행 힉스 입자

2025.08.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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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메인 앵커 주주 장, 아시안 주도 영어 미디어 플랫폼 절실

  미국의 하루는 한인 앵커에 의해 마무리된다. ABC 나이트라인의 기자이자 공동 메인 앵커로 14년째 뉴스를 전달하는 주주 장(한글명 현주·사진) 앵커는 자신을 ‘스토리텔러’라고 했다. 지난 3일까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2025 아시아계미국인언론인협회(AAJA) 연례 컨벤션’에서 만난 장 앵커는 뉴스 전달을 ‘성스러운 책임’으로 여긴다고 했다. 38년째 방송 저널리즘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그는 방송계에서 신뢰의 상징으로 통한다. 장 앵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언론인이 된 이유와 뉴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앵커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원래 엔지니어가 될 줄 알았다. 실리콘밸리의 서니베일에서 자라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는데, 이공계 수업 성적이 엉망이었다. 반면 정치학 수업에서는 A+를 받고 우수상까지 받았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당시 유명 앵커였던 중국계 코니 정에게 영감을 받아 언론인의 길을 결심했다. 학보사 활동과 지역 방송국 인턴을 거쳐, 대학 졸업 10일 만에 ABC에 입사했다. 그렇게 38년이 흘렀다.”     ‘한인’이라는 정체성이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초반에는 아시아계나 여성으로 분류되는 게 싫어 일부러 남자 기자들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여성, 워킹맘, 한인이라는 내 정체성이 오히려 보도에 깊이를 더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내가 설립에 참여했던 한인커뮤니티재단(KACF)을 통해 한인 사회의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예를 들어 뉴저지 북부 지역 한인 시니어들은 보험이 없거나, 언어 장벽, 빈곤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 경험은 언론인으로서 우리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을 일깨웠다.”   유리천장이나 차별은 없었나. “누군가 대놓고 ‘넌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은 분명히 있었다. 특히 방송계에서 아시아계 임원이 부족한 건 구조적인 문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아시아계는 여전히 너무 적다. 그래서 나는 ABC에서 후배 아시아계 기자들을 멘토링 하며, 그들이 ‘이 공간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것이 내가 유리천장을 깨는 방식이다.”     앵커로서 한인임을 깊이 느꼈던 순간은. “유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방탄소년단(BTS)을 인터뷰했을 때,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통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생생히 느꼈다. BTS가 유엔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춤을 춘 장면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유엔 웹사이트가 다운될 정도였다. 그 순간, 한국 문화의 위상을 직접 체감하며 한인으로서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주류 언론에 한인 언론인들은 충분한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LA처럼 아시아계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조차, 지역 방송국에 한인 기자는커녕 아시아계조차 없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왜 아시안이 운영하는 영어 미디어가 아직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지 고민해야 한다. 아시안이 주도하는 영어 미디어 플랫폼이 절실하다. 미주중앙일보가 그 좋은 예시다.”     주류 언론에 한인이 필요한 이유는.  “대표성은 우리가 이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임을 보여주는 데 있어 핵심 요소다. 우리는 ‘영원한 외국인(perpetual foreigner)’이 아니다. 나는 미국인인데도 ‘영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주류 미디어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얼굴을 통해 한인의 입체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곧 편견을 깨는 힘이다.”     기억에 남는 보도는.  “하나만 꼽긴 어렵다. 50개 주는 물론, 케냐 기린 보호 구역부터 과테말라 난민 문제까지 세계 곳곳을 다녔다. 그래도 한국 관련 보도 중 인상 깊었던 건, 최근 오징어 게임 출연진과 감독 인터뷰, K-뷰티 트렌드 취재가 있다. 또 지난 5월 한국에서 한인 셰프 오스틴 강과 함께 광장시장을 돌고, 유명 댄스 아카데미인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이런 한국 문화 콘텐츠 취재는 내 정체성과 맞닿아 있고, 한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어 특별하게 느껴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오프라 윈프리 등 많은 유명 인물을 인터뷰했지만, 내게 진짜 의미 있는 인터뷰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만난 일반인들과의 대화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쁨의 순간이든, 총기 사고로 아이를 잃은 비극의 한가운데든, 약물 중독으로 병원에 있는 순간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존엄을 담아 전달하는 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다.”     어떤 앵커로 남고 싶나.  “나는 모든 사람을, 모든 이야기를 진심으로 존중했던 기자로 기억되고 싶다. 나와 생각이나 배경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귀하게 대하려 노력해왔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왜곡 없이 전달하는 걸 ‘성스러운 책임’으로 여긴다. 그런 태도를 끝까지 지키는 앵커로 남고 싶다.”   ━       ☞주주 장은   현재 ABC 뉴스 나이트라인 공동 앵커로 지난 2014년부터 11째 진행을 맡고 있다. 그는 굿모닝 아메리카, 20/20, 월드 뉴스 투나잇, 나이트라인 등 주요 프로그램을 이끌며 에미상 등 권위 있는 언론상을 다수 수상해 이제는 미국 방송계에서 신뢰의 상징으로 통한다. 장씨는 지난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왔다.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10일 만에 ABC에 입사했다. 그는 지난 1995년 공영방송 PBS의 지역 방송국 WNET 대표 닐 샤피로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셋을 두고 있다.  시애틀=김경준 기자이야기 존중 한인 앵커 한인 정체성 한인 사회

2025.08.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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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80대 친구들의 인생 이야기

세상 사람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 천태만상이다. 최근 86세 동갑내기 두 명과 84세, 81세 독거 노인 친구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깜짝 놀랐다.   첫 번째 동갑내기 친구는 부산의 큰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잘 살아서인지 집안이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가구도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품격이 있었다. 부친이 물려준 큰 사업체를 경영하던 친구인데 불행하게도 아내의 외도로 이혼하고 사업도 실패해 미국에 혼자 왔다. 예전에 카지노에서 한번 수십만 불을 땄던 기억 때문인지 요즘에도 가끔 카지노를 찾는 게 취미다.     정반대로 어렵게 부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두 번째 동갑내기 친구는 두뇌는 명석한데 집안은 온갖 고물로 가득한 엉망친장이었다.   젊어서 입던 옷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죽 허리띠도 끊어지면 스테이플러나 테이프로 이어서 쓴다. 속옷 역시 해지고 걸레가 될 때까지 입는다. 다행히 연방공무원으로 20년 근무해 연금이 나와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생활비를 아껴서 저축한 돈으로 해외여행 가는 게 취미다. 글 친구로 만나서 가끔 이 친구가 챙겨온 럼주도 한잔 같이 마신다.   세 번째 친구는 나처럼 무역업을 대구에서 크게 하던 친구인데 지금도 사업 재기를 꿈꾸고 있어 그 용기가 가상하다. 이 친구는 외출시 항상 정장을 입고 집안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있어 놀랐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네 번째 친구는 사실 내 동생과 동갑인 다섯 살 아래이지만 ‘객지 벗 10년’이라는 말처럼 허물없이 지낸다. 우체국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정년퇴직 해서 연금으로 산다.   서울에서도 구청 공무원이었다고 하는데 아내와 이혼하고 이곳에 와서 혼자 산다. 한때 술을 즐겼는데 지금은 당뇨가 심해서 술을 입에도 못 댄다고 한다. 이 친구가 최근에 15년 만에 새 TV를 샀는데 조작법을 몰라 도움을 요청해 집에 가봤더니 집안이 어지럽다. 어쩔 수 없이 내친김에 아내와 함께 집 정리를 도와주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실로 천태만상이다.  김영훈 / LA독자 마당 이야기 친구 동갑내기 친구 인생 이야기 입고 집안

2025.08.04. 19:08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밀물과 썰물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는 달이다. 달은 지구의 위성이기는 하지만 그 크기가 마치 지구의 형제 행성처럼 크다. 달이 지구에 이바지한 것은 많지만 그중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존속에도 큰일을 담당하고 있다. 달은 지구에서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수십 억 년 후에는 지구를 영원히 떠날 것으로 추측한다.   달이 지구에 미치는 인력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는 사실은 이제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상식이 되었다. 지구를 붙잡고 있는 태양도 지구에 인력을 행사하지만, 워낙 멀리 있다 보니 달의 절반도 채 안 된다. 비록 달은 태양에 비해 엄청나게 작아도 지구와 아주 가깝게 있어서 달의 인력이 유체인 바닷물을 움직인다. 그것이 바로 밀물과 썰물이다. 그런 바닷물의 움직임이 지구 자전에 영향을 주어 아주 미미하지만,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늦어지게 되고 그 결과 달은 지구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지구가 달을 잃는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시라. 인류의 문명이 아무리 오래간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유지될 수는 없을 정도의 먼 훗날의 얘기니까.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데 지구와 달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부분은 당연히 두 천체의 인력이 가장 세게 작용할 것이다. 만약 달에도 물이 있다면 지구의 인력이 그 물을 끌어당기겠지만 달에는 바다가 없다. 대신 지구 바닷물은 달의 인력이 잡아당겨서 움직이는데, 해안가를 기준으로 달의 인력에 의해서 바닷물이 끌려나가 해수면이 낮아지는 경우를 썰물이라고 하고, 반대로 끌려나갔던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밀물이라고 한다.   그런 달의 움직임 때문에 밀물과 썰물 현상이 생기는데 지구상 위치에 따라 그 차이가 크게 나타나기도 하고 작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 조석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밀물, 썰물 때 해수면 차이가 상당히 큰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아산만은 그 차이가 8m가 넘는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이로 인해서 바닷물의 이동이 심한 곳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께서 해전에서 대승하셨던 이유도 조류의 움직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와서 해수면이 가장 높아진 상태를 만조(滿潮)라고 하고, 반대로 썰물 때 해수면이 가장 낮아지면 간조(干潮)라고 하며 그 두 해수면의 차이를 조차(潮差)라고 한다. 태양-달-지구가 일직선 위에 위치할 때, 그러니까 삭(朔)이나 망(望)일 때는 그 인력이 가장 커서 조차도 가장 커지는데 이때를 특히 사리라고 하며, 반대로 태양과 달의 인력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 다시 말해서 인력이 가장 약해져서 조수 간만의 차이가 가장 작을 때를 조금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조수간만의 차이를 일으키는 힘을 기조력(起潮力)이라고 한다.   달 쪽을 향하고 있는 지구는 달의 인력이 지구의 바닷물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밀물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지구의 정 반대쪽은 지구가 공전하는 원심력 때문에 역시 지구 중심의 바깥쪽으로 바닷물이 쏠리게 되어 밀물 현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밀물이 생기는 이유는 달의 인력이기도 하고 지구의 공전 원심력 때문이기도 하다.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 생기는데 한 번은 달의 인력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지구 공전의 원심력 때문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는 해안선의 모양이나 수중 지형, 그리고 지구의 기상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다. 지중해처럼 사방이 막힌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작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밀물 썰물 밀물 현상 썰물 현상

2025.08.0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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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시간이란?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태양은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사실 태양은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돌고 있어서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시간 역시 변하는 현상을 보고 편의상 만들어 놓은 것이지 실제로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존재한다는데 3차원에 사는 우리에게는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다.   눈앞의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수정체를 통과해서 망막에 상이 맺히면 우리는 본다고 한다. 사진기는 사람의 눈을 모방해서 만든 기구인데 사진을 찍을 때 사진기에는 사람이 거꾸로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직진하는 빛이 마치 알파벳 X자처럼 작은 렌즈 구멍을 통과하기 때문에 사람의 머리 부분은 사진기 아래에, 다리 부분은 위쪽에 상이 맺혀서 그렇다. 사람의 망막에도 사진기처럼 위 아래가 뒤집혀서 상이 맺힌다. 그러나 시신경이 정보를 뇌로 보낼 때 그런 뒤집힘 현상을 바로잡아서 우리는 물체의 위 아래가 바로 돼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     우주에서 단 한 가지 불변인 것은 빛의 속도다. 공중전에서 전방의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사일은 자기 속도에 비행기의 속도를 합한 속도로 날아간다. 그런데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보이저호에 무전을 보내면 보이저호의 속력과 관계없이 전파는 빛의 속도로 날아서 도착한다. 빛(전파)은 어떤 경우에도 그 속도가 일정해서 그렇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애틀랜타까지 시속 50마일로 달리는 자동차로 10시간 걸린다면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500마일이다. 이처럼 속도란 두 곳 사이의 거리를 걸리는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만약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면, 그 대신 걸리는 시간이 변하면 공식은 유지되므로 광속 불변의 우주에서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그동안 시간은 어디서나 일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빛도 더 빠르거나 더 느리게 관측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의 작동원리는 우리의 직관과는 달랐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과거와 현재가 있고 앞으로 미래도 있는 시간의 세상이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는 우주 전체에서 시간은 일정하게 흐른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체의 움직임에 따라 변한다는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쉬운 예를 들면, 빨리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은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에 비해서 늦게 흐른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자면 빛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같은 속도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시간은 물체의 움직임과도 관계가 있지만, 중력도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중력이 큰 곳에서는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블랙홀처럼 극한의 중력을 가진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따라서 아주, 아주 정말로 미세한 차이여서 느끼지 못할 뿐 아파트 20층에 사는 사람보다 지상에 가까운 곳, 그러니까 중력이 조금이라도 큰 곳에 사는 사람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러니 땅 집에서 사는 것이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것보다 낫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일리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아주 정밀한 기구로 측정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그동안 시간 과학 이야기 자기 속도

2025.07.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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