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블랙홀은 그저 상상 속의 천체였으며 특수상대성이론 후 10년 만에 내놓은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그 존재를 예측했던 아인슈타인조차도 처음에는 블랙홀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학 계산으로는 존재하지만, 빛을 흡수해 버려서 당시 과학 기재로서는 관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블랙홀의 여러 특징뿐만 아니라 은하 중심부마다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블랙홀은 별의 재료인 수소가 떨어져 가면서 핵융합이 줄어들어 그동안 중력과 균형을 이루던 복사압이 약해지면서 항성을 이루는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더 커진 중력에 의해 그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인데 그러다 중력이 너무 강해지면 블랙홀 근처 어느 곳부터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한다. 사건의 지평선 속의 블랙홀의 한복판에 이르면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 나오는데 상식적이거나 정상적이지 않고 우리의 물리학 법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초월적인 곳이다. 특이점이란 말은 여러 분야에서 쓰이지만, 천체물리학에서의 특이점은 블랙홀의 중심을 지칭하는 말로 부피는 없지만, 밀도가 무한대인 곳으로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어서 관측은 되지 않지만 엄청난 질량을 가지고 있다.
블랙홀은 주변의 물질이나 천체를 흡수하여 몸집을 키우는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물질과 정보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그냥 사라진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모든 것이 다시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지 않았을까에 대해 의심하기도 한다. 지금 정설로 여겨지는 빅뱅 이론은 갑자기 어느 한 점이 팽창하여 오늘날의 우주가 되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우리 우주가 만들어진 재료는 혹시 지난번 우주에서 블랙홀이 먹어치운 물질과 정보가 아닌가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서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서서히 커지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자신이 속한 은하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 다음 우주에 산재한 은하들마저 하나 둘 그 블랙홀에 흡수당해 결국 우주 전체가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고 가정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블랙홀이 그동안 집어삼켰던 것을 뱉어내어 새 우주가 시작한다면, 이 이야기의 후반부는 우리 우주의 시작인 빅뱅을 상당히 닮았다. 물론 상상이지만, 혹자는 우리 우주가 그런 큰 블랙홀 속에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한다. 이를 ‘블랙홀 우주론’이라고 하는데 억지 논리가 있어서 논쟁의 소지가 많은 가설 중 하나다. 꼭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 같지만, 적어도 빅뱅 시에 갑작스럽게 생겨난 우리 우주의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설명되므로 무에서 유가 생겼다는 이론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이기는 하다.
추측임을 전제로, 빅뱅의 시작 점은 어쩌면 지난번 우주를 삼킨 블랙홀의 특이점이었는지 모른다. 상상도 이 정도면 소설 감이지만 과학 발달의 여정은 우리 인간의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했다.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대포알을 타고 달에 가는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책이 출판된 지 고작 백 년 만에 인류는 비슷한 원리로 나는 로켓을 타고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우주를 더 정교하게 관측할수록 빅뱅 이론은 그 일부든 전부든 큰 도전을 받는 형편이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