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갸륵한 봄날

그래요 / 당신은 맘껏 이뻐도 됩니다 / 오늘은 발길 닿는 대로 걸었어요 / 갈림길에선 주저 없이 / 바위고개 진달래 꽃무덤 가로 / 개나리 펄펄 날리는 언덕 너머로 / 그리움 묻어나는 어느 봄날 노래하며 / 지워도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그리며 / 진달래 붉게 핀 아픈 언덕 넘었어요
 
그럼요 / 당신은 맘껏 뽐내도 됩니다 / 온 땅이 살아나는 생명으로 가득해요 / 새순이 아기 손처럼 꼬물거려요 / 붉어진 꽃망울은 또 얼마나 서글픈지요 / 눈물방울이 막 떨어지려 해요 / 저만 그런가요 / 지난 일들이 봄날의 책장을 넘겨요 / 잊혀진 얼굴들이 꽃처럼 피어나요 / 목련이 지면 어머니 무덤가로 갈 거예요 / 파릇하게 솟아난 잔디에 누워 / 어린 누이 손에 봉숭아 붉은빛 손톱에 물들이던 / 갸륵한 봄날 베개 삼아 잠들 거예요
[신호철]

[신호철]

 
봄기운이 뒤란에 찾아들면 즐겁고 행복해진다. 무채색의 정원이 연두와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다. 어느 사이 한 움큼씩 자라나는 싹들을 보기 위해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느 구석, 어느 틈엔가 손톱만큼씩 자라나는 잎들의 키재기와 단단하게 맺혀있는 꽃봉오리들이 힘을 빼고 꽃을 피우려나 궁금해진다. 커피를 내리고 김이 나는 커피잔을 들고 뒤란의 꽃들과 눈인사를 한다. 이슬에 젖은 눈망울엔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또르르 굴릴 것 같은, 떨굴 것 같은 아이리스. 밤새 부쩍 자란 잎들을 쓰다듬으면 바람에 흔들리며 반가워하는 나뭇가지들을 보듬어준다. 눈길 가는 곳마다 어제보다 더 넓고 높게 살아나는 것들로 가득한 뒤란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보금자리로 한 작은 수목원이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는 뒤란의 새벽은 고요하고 그윽하기만 하다. 가까운 곳에서, 저만치 나무 틈 사이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나무와 작은 묘목들의 잠을 깨운다. 그렇게 정원에서의 하루는 어제와 다름없이 시작되고 있다. 한여름 늦게 피는 게으른 꽃들도 있고 봄의 전령처럼 이른 봄에 피었다 지는 서글픈 꽃 생도 있다. 이르면 이른 기대로 늦으면 오랜 기다림으로 바라봐 주면 된다.
 
Chicago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4월에도 눈이 내린다. 한국에서는 꽃이 만발하여 꽃구경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만, 이곳 시카고에는 이제야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때론 오월에도 서리가 내려 막 피어난 꽃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움츠린 모든 것들이 허리를 세우는 봄날의 풍경은 겨우내 위축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너도 할 수 있어. 허리를 펴! 나를 따라 깊게 숨을 들이마셔야지. 꿈꾸지 않으면 그 꿈은 네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꿈과 현실은 가깝지도 않지만 그다지 멀지도 않아. 중요한 건 꿈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매일 눈을 뜨면 생각하고 걷고 그 꿈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꽃들과의 대화는 깊어만 간다.
 
나의 정원에 대한 꿈은 이 집에 이사 오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오랜 기간 정원을 가꾸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너무 부지런히 움직여도 안 되고 너무 게으름을 피워도 안 된다는 진리 같지 않은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도 때가 있듯이 정원을 가꾸는 일에도 그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할 일을 급한 마음에 먼저 하면 후에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몇 배의 수고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먼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되면 그 시기를 놓치게 되어 하고 싶어도 손을 놓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 정원을 가꾸는 일조차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내면에 기쁨과 고요를 가꾸는 일이 정원의 묘목과 꽃밭을 가꾸는 일과 매우 닮아 있다. 며칠만 무관심하면 어디서 자라났는지 잡초가 쑥쑥 올라온다.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도 매일 내 안에 자라는 잡초를 뽑아주고 묘목을 심고 꽃씨를 뿌리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도 정원을 가꾸며 나를 가꾸는 작은 행복,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