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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살이] 계엄서 대선까지 한국살이 반년

이유건 회계사

이유건 회계사

한국에서 지난 12월 초부터 무려 6개월을 보내고, 저번 주에 오리건으로 돌아왔다.  
 
나와 아내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와중에 계엄 소식을 들었고, 과연 인천에 착륙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좌석에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뉴스를 다시 켰을 때, 계엄은 종료되어 있었고 환율은 무려 100원이 뛰어 있었다.
 
모국의 상황이 좋지 않음에 안타까워해야 했지만, 막상 식당에서 카드를 긁으며 밥값이 싸졌다는 생각에 놀부 마냥 남들 몰래 웃었다.  
 
서울은 그 복잡한 정치상황과는 관계없이 언제나처럼 흘러가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15년 만에 한국의 싱그러운 봄을 만끽하다가 며칠 전 포틀랜드로 돌아왔다. 남들이 보면 그야말로 팔자 좋은 여행 다녀온 셈이다. 심지어 우리 가족이 돌아오는 주에는 마법같이 환율이 다시 100원 떨어져 있었다. 신은 존재한다.
 
이번 한국 여행은 특히나 좋은 기억이 많았는지, 오기 싫은 마음에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짜냈다. 오리건의 과일향 나는 초록 숲으로 돌아오자, 나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여느 때처럼 일상으로 돌아와 교회 성가대에 앉아 노래를 부르니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즐거움은 다시 아득한 추억이요, 나의 즐거움은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의 기억이 시작된 지점이 있다면 강동구 둔촌아파트였던 것 같다. 여름햇살이 매미소리 마냥 비치던 선린 초등학교 운동장 어느 나무 그늘 기억이나, 아버지와 종종 올라가곤 했지만 지금은 다 없어진 매봉산 자락의 약수터처럼, 은둔하고 싶어하는 나의 깊은 욕망의 뿌리는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나는 반장이 되는 걸 즐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괜히 부담스러웠고, 얼추 공부는 했지만 사람들을 이끄는 것보다는 일을 많이 하는 위치에 나를 넣어 놓고는 했었다.  
 
반장선거를 하면 앞에서 친구들에게 약속을 하는 것보다는, 친구들의 표를 모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게 그저 좋았다. 그 시절의 반장선거는 참 재밌었다. 반장후보들은 반을 위해 열심히 공약을 외쳤고, 투표가 끝난 뒤 승자는 패자를 위로했으며, 패자도 박수를 받으며 “그래도 반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무려 50명이나 되는 반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12년 동안 꽤 모범적으로 배워온 셈이다.
 
밥벌이하느라 바빠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점 외골수가 되고,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게 된다. 내 어깨 위에 짊어진 게 많아질수록,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너와 나 사이에는 선이 그어진다. 애초에 내가 보호해야 할 무언가가 없었다면, 남과 다툴 일이 있었을까. “이번엔 내가 양보하지 뭐” 하며 그냥 웃고 넘어가진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신성한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6.25 마냥 이렇게 아프게 좌우가 부딪히는 시기라면, 결과를 떠나 서로 남긴 상처에 대해 한 번쯤은 돌아보는 선거였으면 좋겠다. 50.01%로 승패가 갈렸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또한 민심이리라. 패자는 절규하기보다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승자는 49.99%로 진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배려하는 관용을 보여야 한다.  
 
누군가와 서로 심하게 다투면 그도 많은 피를 흘리지만,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내 몸과 마음도 상처 입게 되어 있다. 내 가족, 내 재산, 내 신념 등 각자 지키고 싶은 것이 달라서 그런 것이리라. 그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의 선거를 통해 또 한 번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면, 누군가는 시골에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도 틀리진 않다. 그래도 나는, 당신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 한다.
 
글을 맺으며,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일부를 다시 떠올려본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합니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합니다.”

이유건 /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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