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 필요한 건 자제와 대화
LA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에 반발하는 시위가 지난 주말인 6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평화롭게 시작한 시위는 점차 대립과 충돌로 변질하면서, 급기야 수천 명의 군 병력까지 투입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다행히 LA지역 시위는 닷새째인 10일부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뉴욕 등 타주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번 시위는 6일 촉발됐다. LA다운타운 자바시장을 비롯한 시 전역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동시다발적 기습 단속을 벌이면서다. 이 과정에서 한인 업소에서도 직원 십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초반 시위는 수십 명이 구호를 외치는 통상적인 집회 성격이었지만 주말을 거치면서 격화됐다. 차량이 불타고, 고무탄과 최루탄이 발포됐으며, 체포자는 150여 명으로 불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반역 폭도’로 규정하며 군 병력을 투입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주방위군 2000명에 이어 해병대 700명, 또다시 주방위군 2000명 등 총 4700명을 배치했다.
이번 소요 사태가 심히 우려되는 점은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는 양측의 폭력이다. 특히 일부 시위대의 기물 파손과 방화, 약탈, 폭력 행위로 거리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한 시위자는 프리웨이 다리 위에서 아래의 경찰차들을 향해 돌을 떨어트리는 ‘테러’까지 자행했다. 반드시 추적해 끝까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권력의 과잉 대응 역시 용납될 수 없다. 시위대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고무탄과 최루탄을 난사하는 행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특히 취재 중인 기자에게 고무탄을 쏜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다.
이 위태로운 불판에 기름을 붓는 것은 선동의 언어다. 특히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은 섬뜩하다. 1992년 LA 폭동 당시 건물 옥상에서 총을 들고 있는 한인 사진에 ‘루프탑 코리안스 그레이트 어게인(Rooftop Koreans Great Again)’이라는 글을 덧붙였다. 당시 한인들이 총을 든 이유는 폭도들에 대한 방어책이기도 했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경찰들 때문이기도 했다. 수천 명의 군병력이 투입돼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지금과는 다르다. 왜 한인들을 엮는가. 총을 들고 시위대와 맞서 싸우라는 것인가. 그의 글은 극도로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하다. 인종 갈등의 아픈 역사를 소환해 분열을 조장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번 시위 현장의 총 든 군인들의 사진에서는 끔찍한 비극의 그림자도 떠오른다. 지난해 5월 경찰에게 총격 살해당한 고 양용씨다. 당시 공권력의 과잉 대응과 오판이 그의 생명을 앗아갔다. 수 천명의 군병력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2의 양용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시위 진압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오발, 오판이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정치인들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는커녕, 소송과 체포 위협을 주고받으며 대립각만 세우고 있다. 뉴섬 주지사는 군대 배치가 불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주지사를 체포할 수 있다는 발언을 지지했다. 이는 시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권력 투쟁일 뿐이다. 지도자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정쟁을 멈추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사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시위는 주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토요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이자 육군 창설 250주년 열병식 행사에 맞춰 ‘노 킹스(No Kings·트럼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는 뜻)’ 시위가 전국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LA에서는 불체 단속의 주요 타깃이 된 라틴계 커뮤니티의 분노가 지난 주말 시위보다 한층 더 격화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라티노는 ‘주류’다. 전체 인구의 40%, 1600여 만 명에 달한다. 갈등이 고조되면 더 많은 이들이 시위 현장에 모여들 것은 뻔하다.
유혈사태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시위대는 평화를, 경찰은 자제를, 정치인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LA의 거리가 더 이상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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