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영웅 6·25 참전용사-<3> 한국 보훈 당국 대책은] 미주 파견 직원 전문성 부족 국립묘지 안장 심의 거쳐야
지난 17일 포레스트론 할리우드 힐스에서 열린 고 정규상 6·25 참전 유공자의 장례식장 모습. 뒤편에 대통령 근조기가 보인다. [최만규 육군협회 회장 제공]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던 참전 용사들을 정작 후세들은 지키지 않고 있다.
특히 LA 등 해외에 사는 한국전 참전 용사에 대한 처우와 보훈 시스템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먼저 LA 총영사관의 경우, 보훈 업무를 담당하는 영사는 대부분 한국 보훈부 소속이 아니다. 주로 경기도청 또는 주요 도시 시청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 파견돼 보훈 업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주로 2~3년마다 교체되고 있어 현장에 대한 이해도와 보훈 업무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6·25 참전유공자회 미서부지회(회장 이재학·이하 유공자회) 측은 “(LA 총영사관의 경우) 보훈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담당 영사도 2~3년마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교체가 잦다”며 “보훈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만 반복될 뿐, 장기적 정책은 실종됐다”고 전했다.
일례로 LA에서 참전 용사가 사망할 경우, 한국 정부의 장례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한국전 참전 용사 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LA 총영사관은 참전 용사 장례 시 관포 태극기를 장례식에 직접 전달하지 않고, 관련 단체에 태극기 등을 미리 배포만 해둔 상태다. 즉, 장례 지원에 ‘예우’가 빠져 있는 셈이다. 유공자회 측에 따르면 현재 사용 중인 관포 태극기도 LA 총영사관으로부터 10여 년 전 받아 둔 것이다. 대통령 명의로 된 근조기 역시 한 개를 여러 장례식에 돌려 쓰고 있다.
이는 미군 참전 용사가 사망할 경우, 미 국방부 측 관계자가 국기를 유족에게 정성스럽고 경건하게 전달하며 예우를 표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최만규 육군협회 회장은 “유공자들의 장례식장에 정부 관계자가 직접 태극기를 들고 와서 건네주는 건 참전 용사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고 예우”라며 “LA 지역의 경우 영사가 직접 와서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LA 총영사관 문정희 보훈 담당 영사는 “유족이나 개인이 따로 신청하면 영사관 방문 수령도 가능하다”고만 답했다.
결국 총영사관은 보훈 정책 안내, 참전 명예수당 지급 절차 지원 등 최소한의 행정만 담당할 뿐, 사실상 관련 단체 지원과 유공자 예우 등 실질적인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
유공자들은 대부분 노령이라 운전도 힘들다. 25일(오늘) LA 총영사관이 풀러턴 힐크레스트 공원에서 주최하는 6·25 행사에 참석하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유공자회 측 한 관계자는 “총영사관에 차량 지원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며 “이동 수단이 없는 유공자들도 많아 행사에는 단 6명만 참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국 시민권자라도 참전 유공자라면 한국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유공자가 많고, 절차가 까다롭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미국 시민권자인 유공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려면 대상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심의 기준은 ‘불가피한 사유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와 ‘국가에 현저히 공헌한 경우’다. 불가피한 사유로 외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도 국제화 시대의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습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징병제와 모병제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참전용사에 대한 월 지원금도 차이가 크다. 미군 참전용사 펜션은 월 1000~2000달러인 데 반해, 한국은 월 45만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해외에 살면 보훈 병원의 의료 혜택은 물론,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추가 지원 등도 받을 수 없다.
미주 지역의 한인 참전 유공자들은 지금 보훈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을 지키는 이도 없어 잊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