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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아름다운 기대

New York

2025.07.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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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식구들이 여행을 떠나면 딸 집에서 여유로운 나만의 휴가를 즐긴다. 넓은 집에 나 혼자 독차지하고 거리낌 없고 누가 귀찮게 하는 말 한마디 없는 이 귀중한 시간이다.  
 
뜨거웠던 낮과는 달리 저녁 무렵은 선선하다. 손자 방 창문을 열고 커튼을 올려 버리면 길 건너 큰 상수리나무 사이로 별 하나가 반짝인다. 어제도 그 자리에서 반짝이며 나타났겠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잡생각을 하며 누워있는데 보름달이 내 가슴으로 안긴다.  
 
보름달을 정면으로 보면서 불을 끄고 달맞이를 했다. 그 잠깐을 즐기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벨이 울린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받지 않으면 메시지를 남기면서 자기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받으라고 간곡히 애원한다. 우울하고 외로워서 숨이 막힌다고 투덜거린다.  
 
젊었을 때는 센트럴파크에서 달리기도 많이 했고 비즈니스를 아주 잘 운영하여 은퇴 후에도 여유롭게 생활을 하고 있다. 바쁘게 살다 은퇴하고부터 조금씩 이상 증후가 나타났는데 이제는 상태가 많이 진전되어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전화를 받으면 말이 없다가 내가 왜 전화했냐고 물으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새로운 재미있는 이야기 없느냐고 물으면 그냥 매일 똑같지 뭐라고 대답한다. 맛있는 음식 먹었느냐고 아니면 어느 식당에 맛있는 것 있느냐고 물어도 입맛이 없다고 대답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숙한다, 어느 날 우연히 의료 인문학 강좌에서 인상 깊게 들었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웃을 수 있는 질병이 성숙의 계기가 된다고 했다.  
 
아픔의 순간은 늘 고통으로 시작 되지만 아프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위로도 있고 아프지 않았다면 해보지 못했을 생각도 있다.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성숙함과 담담함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오락가락 하면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는 그에게는 내일이란 어떤 의미인 것일까?
 
도심의 불빛을 뚫고 반짝이는 창밖의 별은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에서 떠 있을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때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늘에서 깜박였다.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전화를 내려 놓은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또 전화벨이 울린다. 너무 늦은 시간이다. 많은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다. 갑자기 아프고 갑자기 떠난다. 이미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숙제다. 앞날을 마냥 두려워하는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껏 걱정하다가 맞이한 미래는 잘 되어도 나쁜 상황을 피했다는 안도감을 줄 뿐이다. 오히려 미래를 기대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인간도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마음대로 상상하고 기다려보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기대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맛보는 만큼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그 맛을 찾아내고 알아 가는 것도 또한 세상을 창조한 분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말이 우리의 미래를 제한할 수는 없다.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예외는 끝없이 보고된다. 인간은 바늘구멍으로 책을 보듯 바라볼 뿐이다. 그 책의 다음 페이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뜻하지 않는 미래가 오더라도 별은 여전히 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치 않을 우리의 미래가 아름다운 기대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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