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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LA 김밥, 세대교체와 새로운 도전

Los Angeles

2025.07.13 18:48 2025.07.1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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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한인 이민자들에게 김밥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소풍 날의 설렘이고, 낯선 땅에서 쉼 없이 일하던 부모님이 없는 식탁에 자녀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따뜻한 위로였다. 김밥 한 줄에는 고된 이민 생활의 애환과 그리움,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꽉 들어차 있다. LA 한인타운의 김밥 역사는 이민 사회의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타운을 대표하는 김밥집 ‘가주김밥’의 계보는 한인사회의 변화와 그 궤를 같이한다. 가주마켓 앞 우동집에서 시작된 이 김밥집은 마켓 재개발로 윌셔 길로 이전했고, 그 건물마저 지하철 공사 부지로 수용되면서 4가와 웨스턴에 ‘더김밥’이라는 새 이름으로 정착했다. 현재 ‘더김밥’은 한국마켓 내 ‘울엄마 김밥’도 함께 운영 중이다.
 
한편, 재개장한 가주마켓 안에는 새로운 주인이 ‘가주김밥’의 간판을 다시 내걸었고, 9가 로데오 갤러리아에도 ‘가주김밥 로데오점’이 문을 열었다. 이렇게 ‘가주김밥’ 두 곳과 ‘더김밥’, ‘울엄마 김밥’은 한 뿌리에서 나와 각자의 터전에서 같은 레시피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우동과 잔치국수가 유독 깊은 맛을 내는 것은 그 시작이 우동집이었던 역사에 기인한다.
 
타운 김밥업계의 또 다른 강자인 버몬트길의 ‘김밥천국’은 한국의 동명 프랜차이즈와 무관하게 이곳 이민 사회에서 자생한 독자적인 식당이다. 오히려 미국 내 상표권을 확보하며 자신만의 역사를 쌓았다. 작은 분식점으로 시작해 옆 가게 ‘강셰프’가 문을 닫자 그 자리를 인수해 확장하는 모습은, 치열한 한인타운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성장해 온 이민자들의 비즈니스 감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림픽 갤러리아 마켓의 ‘바로김밥’은 한 장인의 화려한 경력을 응축한 곳이다. 그 시작은 전설적인 올림픽 한남체인 내 ‘열차우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생소했던 누드김밥과 각종 일식 롤을 선보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때 처음 맛본 소프트셸 크랩 ‘스파이더롤’의 감동은 여전히 생생하다.
 
‘열차우동’ 매각 후, 사장님은 ‘캘리포니아 롤’ 체인 사업을 성공시키고 ‘옌스시’를 독자 경영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카페 콘체르토’ 등 외식 사업으로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가장 큰 특기인 ‘롤’과 ‘김밥’으로 돌아와 ‘바로김밥’을 열었다. 전통 한국 김밥부터 화려한 일식 롤, 퓨전 유부초밥, 그리고 감동적인 가격의 회덮밥까지. 그의 손끝에서 김밥은 하나의 요리로 승화한다. 최근 부에나팍에 새 지점을 연 것은 그의 내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한다.
 
초기 마켓 김밥은 ‘복떡방’, ‘지화자’ 같은 떡집들이 떡을 납품하며 함께 판매하던 형태였다. 하지만 위생 규정상 상온 진열이 어렵고, 냉장 시 밥이 굳어 맛을 유지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다. 이는 개인이 마켓 내 부스를 임대해 직접 운영하는 현재의 효율적인 방식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마켓 납품 없이 직판만으로 명성을 떨친 전설도 있었다. 버몬트 길의 ‘산수당’은 비싼 가격에도 ‘명품 김밥’으로 불리며 사랑받았으나, ‘지화자’에 인수된 뒤 올림픽 지점으로 이전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근 트레이더 조의 냉동김밥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너도나도 김밥집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미 포화상태인 한인타운 내에서의 경쟁은 무모해 보인다. 오히려 전문화된 메뉴로 주류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트레이더 조나 홀푸드마켓 바로 옆에서 진짜 ‘프리미엄 김밥’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상상을 해본다.
 
이런 흐름 속에서 8가 ‘유부킹’, 피코 ‘킹밥’을 시작한 젊은 사장님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스팸 무수비를 특화해 틈새시장을 개척한 6가 ‘스파무 오키니와 오니기리’ 사장님과,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탐구하며 장인의 자리를 지키는 ‘바로김밥’ 사장님께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상이라도 드리고 싶다.  
 
김밥 한 줄에 담긴 이들의 땀과 열정이 있기에, 우리 이민 사회의 맛과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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