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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 한마디가 나를 춤추게 했다

Los Angeles

2025.07.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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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 수필가

이선경 수필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거대한 고래조차도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물 위로 솟구친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는 살아오며 그 말을 종종 실감하곤 했다.
 
몇 해 전, 나는 용기를 내어 찬양대에 들어갔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 목소리는 튼튼하거나 강한 편이 아니었고, 특히나 소프라노 파트에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 무렵, 어느 주일 아침에 바로 앞자리에 계시던 한 권사님이 살며시 뒤돌아보시더니 내게 말했다.
 
“자매님 목소리 너무 좋네요. 역시 젊은 분의 목소리라 우리 찬양에 힘을 더해줘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올라왔다. 단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마치 “너, 이 찬양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확신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찬양대의 자리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그 감동을 품고, 더 열심히 노래하고 싶어졌다. 지금 나는 2년 넘게 찬양대를 섬기고 있다. 피곤할 때도 있고, 늦잠 자고 싶은 날도 있지만, 그 칭찬 한마디가 여전히 내 마음을 따뜻하게 붙잡아 준다. 그 시간은 내게 은혜의 시간이고, 감사의 시간이다.
 
나는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칭찬은 곧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어는 생각보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어려운 언어다. 집에서 부모와 한국어로 자주 대화하는 아이들도 막상 글로 표현하려 하면 자주 틀린다.
 
그중에서도 받아쓰기는 가장 까다로운 활동 중 하나다. 말로는 자연스럽게 구사하던 단어들도, 글로 옮기려 하면 헷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이’와 ‘꼬치’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앉다’의 받침 ‘ㄴㅈ’을 빠뜨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만큼 한국어는 소리와 글 사이의 차이가 큰 언어다.
 
그래서 받아쓰기를 시켜보면 100점을 맞는 아이는 드물다. 대부분 한두 개는 틀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때 “이거 왜 틀렸어?”, “좀 더 잘해야지”라며 지적부터 하면, 아이들의 눈빛은 금세 작아지고 자신감을 잃는다. 반면, “잘했어!”, “정말 많이 발전했네!”, “이번엔 여기까지 맞았구나!”
 
그렇게 칭찬으로 말을 열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고 다음주 수업을 기대하게 된다. 받아쓰기 하나가 아이의 마음에 자라는 씨앗이 되고, 1년 동안의 수업을 기쁨으로 이끈다.
 
그런데 가끔은 한국인의 정서 속 깊이 자리한 ‘칭찬은 독이 된다’는 사고방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릴 적 우리는 종종 “너 잘하면 교만해진다”, “지금 칭찬하면 자만할 수 있어” 같은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조금 잘해도 “그 정도에 안주하면 안 돼. 더 분발해”라며 채찍을 먼저 들고 당근은 아껴두었다.
 
칭찬을 받으면 나태해질까 봐, 칭찬을 하면 버릇 나빠질까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칭찬을 두려워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진심에서 나온 칭찬은 사람을 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일으키고, 변화시키고, 스스로 더 나아지게 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특히 칭찬은 단순한 기분전환을 넘어, 사람의 삶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물론 그 권사님의 칭찬은 어떤 이들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인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내겐 달랐다. 나는 그 말이 진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그 한마디가 나를 춤추게 했다. 어쩌면 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용기를 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단순히 “잘했어”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바라봐주고, 인정해주고, 기대해주는 그 따뜻한 시선이 사람을 자라게 한다. 그리고 그 칭찬은 말한 사람은 잊었을지 몰라도, 들은 사람의 마음엔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이제 안다. 누군가에게 건넨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울림이 될 수 있는지를. 그래서 나도 이제 누군가를 춤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 참 잘하고 있어요.” “당신 덕분에 힘이 나요.” 그런 한마디가 누군가의 걸음을 바꾸고, 삶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선경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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