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30주년 '토이 스토리'] 세계 첫 컴퓨터그래픽 장편 애니메이션 보편적·깊이 있는 이야기로 관객층 확장 앤디의 방, 인간 실존과 성장의 축소판
'토이 스토리'의 영향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은 2001년 애니메이션 장편상을 신설했다. '토이 스토리3'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후보로 올랐다. [Disney/Pixar]
‘토이 스토리(Toy Story)’는 우리에게 인생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처음에는 장난감들이 펼치는 모험 이야기, 아이들을 위한 영화로 시작했지만, 성인이 된 우리에게 오늘까지도 여전히 의미 있는 영화로 남아 있다. 인간의 정체성, 자유, 성장, 상실, 죽음, 사랑과 같은 보편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개봉,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토이 스토리’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이상의 영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세계 최초로 전편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제작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3D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실사 영화에도 큰 영향을 주어,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CG 활용도가 급증했다.
픽사(Pixar)는 이 영화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부상한다. 이후 디즈니와 픽사와의 협업이 강화됐고 2006년 마침내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다. ‘토이 스토리’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에 진출하는 길을 열었고, 2001년 아카데미가 애니메이션 장편 상을 신설하기에 이른다.
감동과 유머가 조화를 이루며 삶에 관한 존재론적 주제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방식이 높이 평가됐다. 장난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설정과 장난감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풍부한 감정을 주입하여 성인까지 관객층을 확장했다.
‘토이 스토리’ 이후 발표된 3편의 속편들은 단순한 후속작이 아니라, 원작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며 애니메이션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데 기여했다. 주요 캐릭터들과 주제는 속편이 발표될 때마다 더 깊은 감정적 울림과 철학적 탐구로 발전해 갔다.
1999년 발표된 ‘토이 스토리 2’는 오리지널보다 훨씬 정교한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발전을 보이며 픽사는 이 분야 최강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또한 주제 면에서도 장난감의 운명,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소속감과 정체성, 성장과 희생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속편임에도 독립된 서사를 구축, 원작에 비견되는 모범적 속편 사례로 꼽힌다. 이 작품은 일부 평론가들 사이에서 원작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이 스토리3’는 원작의 팬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시기인 2010년에 발표된다. 이별, 성숙, 인생의 전환을 다룬 주제와 보다 진일보한 기술적 발전은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애니메이션 이상의 작품으로 평가됐다. ‘토이 스토리 3’는 1편에서 시작된 ‘장난감과 아이의 관계’를 매듭짓는 ‘완벽한 결말’로 인정을 받았다.
주인 없는 장난감들. 그들은 목적 없이도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자각하며 자기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주인공 우디와 버즈. [Disney/Pixar]
‘토이 스토리 4’(2019)는 우디를 중심으로 자아 발견과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더는 아이에게 소속되기보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길을 택한다. 우리는 4편에서 만나는 우디를 통해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존재로서의 장난감이라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3편을 완결편으로 인식했던 일부 팬들은 4편 발표 후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캐릭터와 서사의 측면에서보다 깊이를 더한 마무리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었다. 앞의 세 작품에 비해 가장 호불호가 엇갈린 작품이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장난감들의 시각에서 인간사를 들여다본다. 다분히 철학적 해석이 동원된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본 우디가 그 대표적이다. ‘토이 스토리’는 시리즈를 더하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자유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확장된다. 4명의 메인 캐릭터는 각자의 위치에서 관객들에게 각기 구별되는 철학적 메타포를 던지고 있다.
우디는 처음에는 ‘앤디의 장난감’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스스로의 존재 의미와 자유의지를 찾아가는 캐릭터로 성장한다. 그는 쓰레기에서 장난감으로 다시 태어난 포기와의 대화에서 “쓸모없어진 나는 쓰레기인가”라는 질문으로 장난감에서 쓰레기로 퇴화한 듯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우디는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실존을 획득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쓸모없음이 곧 존재의 무가치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목적 없이도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 자체가 자유의 증거라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식의 논증이다.
충성심, 리더십, 정체성의 캐릭터 우디는 1편에서 버즈의 등장으로 질투심과 자신감 상실을 드러내 보이다가 협력과 우정의 캐릭터로 바뀌어 간다. 2편에서는 영원히 보존될 장난감인가, 아니면 아이의 친구이냐는 문제로 고민한다. 3편은 그를 희생을 감수한 리더로, 그리고 4편은 주인 없는 삶을 선택, 자아를 찾아가는 실존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주어진 역할이 아닌, 스스로 존재의 목적을 만들어야 하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체현하는 캐릭터다.
또 다른 주인공 버즈 라이트이어는 변화, 경쟁, 우정, 그리고 꿈과 현실의 조화를 상징한다. 그의 서사는 자아 인식, 현실 수용의 과정이다. 1편에서 우주의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자신이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과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현실을 자각하고 모두의 좋은 친구로 성장한다. 자신의 ‘역할’에 갇혀 있다가 진짜 자기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 ‘플라톤의 동굴’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동굴 속 그림자만 보던 인간이 바깥 세상(진실)을 마주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아 발견의 경이로움. 버즈도 자기 환상에서 깨어난다.
제시는 상처와 회복의 캐릭터다. 주인에게 버림받았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신뢰 회복의 여정을 걸어간다. 친구들이 보여준 신뢰와 사랑을 통해 그는 상처를 치유하고 자아를 회복해 간다. 니체의 영원회귀와 상처의 초월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상처는 더 강해지기 위한 조건이다. 제시는 고통을 반복하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삶을 긍정한다.
앤디의 방은 장난감들의 세상이다. 앤디는 장난감들과 관계를 맺으며 어린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한다. 장난감에 대한 그의 애착은 장난감들에 존재 이유를 부여한다. 3편 장난감과 이별하는 장면은 성장 과정의 통과의례를 뜻한다. 한편 장난감들이 새로운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앤디를 통해 장난감들의 세상은 곧 인간의 성장과 이별을 투영한 메타포였음을 알게 된다.
‘토이 스토리’의 결론은 하이데거의 시간성과 유한성의 존재론과 연관성을 지닌다. 장난감들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 존재 목적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와 겹치는 지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