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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PC주의에 지친 관객들

Los Angeles

2025.07.20 19:00 2025.07.2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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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훈식 경제부 기자

우훈식 경제부 기자

디즈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드라마 ‘아이언하트’가 지난달 24일 혹평 속에 데뷔했다. 흑인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다룬 이 작품은 방영 전부터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주의에 물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튜브에선 예고편 공개 하루 만에 ‘싫어요’ 30만 개 ‘폭탄’을 받기도 했다.
 
공개 이후에도 이야기의 완성도와 방향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주인공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작품이 비판받는다면 그것은 문제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인종과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디즈니의 방향 감각 상실과 대중의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이언하트는 MIT 출신의 천재 공학도 ‘리리 윌리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마블 팬들에게는 인기 캐릭터 ‘아이언맨’의 정신적 계승자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문제시된 것은 단순한 캐릭터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리리라는 주인공이 정치적 중립성만을 고려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도둑질, 살인 등 주인공의 불법 행위에 대한 서사는 관대하게 다루면서도, 인종과 성별의 다양성을 앞세운 연출은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러한 구성은 결국 정치적 메시지가 스토리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고, 콘텐츠의 진정성과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디즈니는 이미 ‘인어공주’와 ‘백설공주’ 실사판을 통해 유사한 논란을 경험한 바 있다. 2023년 실사판 인어공주에서 아리엘 역할을 맡은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원작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올해 공개된 백설공주 영화에서는 난쟁이 캐릭터들을 CG로 대체하고, 백설공주 역할에 원작처럼 백인이 아닌 라틴계 배우를 기용하면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반감이 퍼졌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단순한 다양성 확대를 넘어서 원작의 정체성과 완성도마저 희생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많은 관객은 이러한 디즈니의 변화를 정치적 의도에 예술이 ‘종속’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디즈니라는 브랜드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연장선에서 최근 디즈니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정책을 조용히 축소하고 있는 움직임은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디즈니는 내부 직원 평가에서 DEI 기여도를 제외하고, 콘텐츠 경고 문구나 캠페인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는 정부의 압박과 정치적 반발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한때 DEI를 앞세워 ‘포용의 상징’이 되고자 했던 기업이, 대중과 보수 진영의 반발 앞에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디즈니는 자신들이 강조해온 가치들을 내부적으로 후퇴시키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PC 콘텐츠를 고집하고 있어, 진정성 없는 메시지와 전략의 혼선이라는 이중적 비판을 받는다.
 
결국 아이언하트의 실패는 단순한 콘텐츠 한 편의 문제를 넘어, 오늘날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기업들이 얼마나 잘못 읽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관객들은 다양성과 포용성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진정성 없이 형식적으로 소비되거나, 기존의 이야기 구조를 왜곡할 정도로 앞세워질 때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이 진정한 포용을 원한다면, 정체성과 메시지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대신, 깊이 있는 서사와 감정적 공감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야 한다. 이제는 콘텐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가치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훈식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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