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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엄마가 가셨다

Los Angeles

2025.07.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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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변호사

김지영 변호사

엄마가 돌아 가셨다. 밭은 날숨 그리고…끝. 93년 이생에서의 머무름은 아들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엄마의 일생, 당신의 말씀대로 “손톱으로 바위를 긁는 듯 살아온 세월”이었다.
 
엄마와 아들은 74년 동안 이생에서 같이 걸었다. 엄마는 내내 아들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걱정하셨고, 아들은 틈만 있으면 엄마의 궤도를 벗어나려 했다. 끝내 아들은 먼 나라로 가버렸다. 엄마를 홀로 고향에 남겨두고.
 
엄마의 마지막 열흘, 아들은 엄마 곁에 있는다. 엄마의 마지막 한 시간 아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다. 더 이상 인간의 언어로는 소통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스쳐간다. 사바세계에서 모자의 인연으로 살아온 사연들, 구비 구비에 남아있는 기쁨과 아픔의 기억….
 
중환자실 계기판에 엄마의 혈압이 0으로 떨어진다. 엄마의 손이 차가워진다. 아들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
 
당직 의사가 와서 엄숙하게 선언한다. “정종숙님은 2025년 7월6일 오전 3시13분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 엄마의 ‘마음’은 코끝에 있었을 터이다. 날숨 다음에 들숨…. 일생 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이 순서를 유지하는 일이 그 찰나의 가장 큰 과제. 마음은 그 일에 매달려 있었으리라. 다시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육체의 힘이 소진된 상태. 마음은 그렇게 육체를 떠난다.
 
그 마음은 그냥 사라졌을까? 어디로 갔을까? 엄마의 마음이 마지막 지각한 것은 아들의 마음이었을 터. 아들의 흔적을 품은 그 마음은 한숨 기운이 되어 이생의 경계를 넘어간다. 엄마가 막 떠난 이생 사바 세계는 “참고 견뎌야 하는 땅, 감인토(堪忍土).” 엄마의 다음 생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이기를 빈다.
 
하얀 천으로 얼굴을 덮은 엄마의 주검은 장례예식장으로 옮겨 진다. 삼일장, 만 이틀 동안의 문상. 형제 자매가 아무도 없는, 40여 년을 외국에서 살던 아들이 빈소를 지켰다. 그리 쓸쓸하지 않았다. 오래된 인연들, 공주 지역의 글 쓰는 이들, 그리고 아들의 사촌 형제들이 아들을 위로한다.
 
셋째 날 아침 발인. 엄마는 관속에 누워 나래원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나래원의 의미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4번 화로, 엄마의 관이 보인다. 커튼이 내려진다. 한 시간 반 후에 다시 커튼이 올라간다. 관이 있던 자리가 휑하다. 바닥에 하얀 뼈 조각만.  
 
“곱게 만들어 드릴까요?” 분쇄기를 거쳐서 고운 뼛가루, 진공 포장이 되어 작은 나무 상자 유골함에 담긴다. 하얀 보자기에 쌓인 아직 따듯한 유골함을 아들이 받는다.
 
아들은 69년 전 또 하나의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은 기억을 한다. 군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4년 후에야 유골로 고향에 돌아왔다. 엄마는 아버지를 묻기 전에 유골함을 열어보셨다. 그때 본 아버지는 하얀 뼈 조각이었다.
 
엄마를 대전 국립묘지 현충에 모신다. 먼저 거기에 계신 아버님 곁에 안장. 73년 전 26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90이 넘은 엄마가 그렇게 다시 만난다. 육신을 다 버리고 마음만 만날 테니 나이는 문제가 아니겠지.  
 
아들과 아들의 아들 둘이서 엄마 삼우제를 지낸다. 그날 아들은 미국으로, 아들의 아들은 다른 나라로 떠난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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