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9월 11일, 태풍 13호 ‘므르복(Merbok)’이 서부 알래스카의 ‘놈(Nome)’을 강타했다. 당시 한국에서 파견된 극지연구소 연구진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안긴 이 재난 상황을 필자는 같은 해 10월 말 기고한 바 있다. 피해 주민들은 생활용수 부족과 도로 유실 등으로 수년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알래스카 주정부와 미군, 민간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비교적 빠른 복구가 이뤄졌고, 놈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복구되면서 인근 소규모 빌리지(인구 100~500명 내외 원주민 정착촌)들의 회복 속도 또한 빨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3년 뒤인 지난 10월 또 한 번의 거대한 재난이 서부 알래스카를 덮쳤다. 10월5일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할롱(Halong)’은 일본 남부 해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며 일본 서쪽 해상에서 저기압으로 약화돼 큰 피해 없이 소멸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 상승의 영향으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10월 11~12일 이틀간 서부 알래스카 여러 빌리지를 강타했다. 피해 지역은 광활한 ‘쿠스코퀌 델타(Kuskokwim Delta·약 13만㎢)’ 일대로, 폭풍 해일과 대규모 홍수, 시속 45km에 이르는 허리케인급 강풍이 겹치며 참혹한 상흔을 남겼다. 특히 ‘킵눅(Kipnuk·인구 488명)’, ‘크위길링옥(Kwigillingok·461명)’, ‘나파키악(Napakiak·345명)’ 등 세 곳의 피해가 가장 컸다. 킵눅에서는 주택과 공공시설 등 구조물의 90%가 파괴되거나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크위길링옥에서는 전체 주택의 3분의 1 이상이 붕괴됐다. 사망자도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15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들 지역은 도로가 없어 이동수단이 비행기와 선박에 의존하는 곳이다. 태풍 이후 주민들은 군용기를 이용해 앵커리지와 ‘베델(Bethel)’ 등지로 긴급 대피했다. 알래스카 주지사는 연방정부에 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고, 피해 규모가 워낙 커 대부분의 이재민이 최소 18개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공식 발표도 나왔다. 현재도 공청회를 통해 피해 최소화 대책과 이재민 이주 계획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편 알래스카 대학을 비롯한 기후과학자들은 이번 태풍의 발생 원인과 이동 경로, 과거 태풍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이유, 동베링해에 미친 영향, 향후 태풍 발생 빈도 등을 분석하는 긴급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수 온도 상승이 태풍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며, 기후변화와 온난화가 극지방까지 태풍의 위력을 키우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원주민 공동체는 본래 생존력과 회복력이 강하지만, 이번처럼 생활 기반이 거의 전면적으로 파괴된 상황에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생존과 복구가 불가능하다. 현재 대대적인 공중 수송 작전이 진행 중이지만, 수송기가 착륙할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 헬기를 통한 소수 인원 이동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2022년 므르복 피해 당시와 유사한 대규모 장기 지원 계획을 다시 준비 중이다. 현재 베델의 구호소는 이미 포화 상태이며, 대부분의 이재민은 앵커리지로 이송되고 있다. 이번 재난은 기후변화 시대에 어떤 대응과 대비가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고다. 북극권 공동체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새로운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알래스카 원주민들, 특히 에스키모인은 조상 대대로 수렵과 어로를 위해 연안에 삶의 터전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온난화는 이들의 삶의 기반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안 침식(coastal erosion)이다. 태풍과 강풍으로 연안 지반이 무너지며 주민들은 내륙으로 이주를 강요받고 있다. 침식으로 노출된 동토층은 온난화를 더욱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으며, 알래스카와 러시아 전역에서 이런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더 나아가 연안에 위치한 조상의 봉분까지 유실·노출되며 공동체는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까지 겪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북태평양 수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아시아에서 발생한 태풍이 알래스카까지 장거리 이동하는 빈도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 규모와 위력 역시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져, 평지가 많은 서부 알래스카 지역은 현재보다 더 큰 재난에 노출될 수 있다. 이제 인간이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거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번 알래스카 재난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이론이나 예측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태풍 북극 서부 알래스카 알래스카 주정부 알래스카 주지사
2025.12.18. 20:27
지난 3일, 코리아타운의 오드리 이마스 파빌리온(Audrey Irmas Pavilion)에서 열린 이스라엘 총영사관 주최 AI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이스라엘이 지금 어떤 시대적 고난 속에 놓여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건물 밖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위자들이 몰려 있었다. 고함을 지르며 구호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분열의 단면처럼 보였다. 입장 보안 절차는 공항 검색을 방불케 할 만큼 삼엄했다. 철저한 검색과 여러 겹의 시큐리티 라인은 이 공동체가 지금 얼마나 상시적인 위협 속에 놓여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충격은 행사 도중 찾아왔다. 연사들의 발표가 한창 이어지던 중,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던 몇몇 시위자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신호라도 맞춘 듯 소란은 여러 차례 반복됐고, 그때마다 보안요원들이 그들을 제압해 끌어내는 장면이 내 바로 옆에서 펼쳐졌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유대인 공동체는 이런 긴장과 위협을 일상의 일부로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현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행사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방해 속에서도 연사들은 끝까지 침착하게 발표를 이어갔고, 보안팀은 흔들림 없이 대응했다. 오히려 그 절제된 대응과 질서 속에서 이 공동체의 단단한 내구력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위기는 일상이다. 수천 년 동안 전쟁과 추방, 학살과 박해를 견뎌내며 살아남아야 했던 민족. 그 혹독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생존의 정신력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고 있었다. 한 연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무기를 찾기보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으로 살아남는 법을 오래전에 배웠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군사적 수사가 아니었다. 국가 운영, 기술 개발, 경제 전략 전반을 관통하는 이스라엘 특유의 생존 철학처럼 들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AI를 주제로 한 기술 행사였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혁신의 국가’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들의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력이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낸 DNA’였다. 첫째,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하려는 문화다. 위기 속에서 문제 해결은 곧 생존이었다. 둘째, 두려움보다 실행을 선택하는 태도다. 실패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실험의 과정일 뿐이었다. 셋째, 연결된 공동체의 힘이다.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서로를 지탱하고, 한 사람이 쓰러지면 모두가 함께 다시 일으켜 세운다. 행사장을 나서며 나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가.” 한국 역시 전쟁과 가난을 딛고 일어선 나라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성장보다 분열과 갈등이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 내부의 균열은 공동체의 체력을 가장 빠르게 소모시키는 요인이다. 이스라엘의 생존 철학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위기일수록 더 단단히 뭉쳐야 한다는 것, 새로운 조건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가진 것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가 강해야 나라 역시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날 마지막 연사가 남긴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우리는 더 강하고 더 단결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We have to build stronger and more united communities.)” 시위자들이 난입하던 혼란의 순간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던 공동체의 질서와 단단함,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끊임없는 위기 속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혁신국으로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은 오늘의 한국과 한인사회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메시지이기도 하다. 제니 주 / 코리아콘퍼런스 회장기고 이스라엘 심포지엄 이스라엘 총영사관 이스라엘 특유 이스라엘 사람들
2025.12.14. 17:50
몽골계 인류는 약 1만5000~2만 년 전 ‘베링지아(Beringia, 베링육교)’를 건너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동했다. 당시 베링해는 얼어 있거나 해수면이 낮아 육지로 이어져 있었고, 이 때문에 인류의 대이동이 가능했다. 북미 원주민의 몽골반점은 그 흔적을 오늘날까지 남기고 있다. 얼음 위를 걸어간 인류의 첫 발자취는 2만 년이 지난 지금, ‘철의 터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철도 재벌들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알래스카를 잇는 ‘시베리아-알래스카 철도 계획’을 제안했다. 베링해협 아래에 터널을 뚫어 대륙을 연결하자는 발상이었다. 이 구상은 훗날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설계한 엔지니어 요제프 슈트라우스(Joseph Strauss)의 초기 교량안에서 비롯됐다.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철도가 북극을 관통해 세계를 좁힌다”는 상상은 인류의 기술 낙관주의를 보여줬다. 1960년대 냉전의 긴장 속에서도 베링해협은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등장했다. 로이터통신이 공개한 소련 지도에는 ‘케네디-흐루쇼프 세계 평화의 다리’라는 표기가 있었고, 지도 한켠에는 “즉시 건설될 수 있고, 또 건설되어야 한다”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현실의 철도가 아닌, 냉전 시대의 ‘데탕트(긴장완화)’를 상징하는 상상 속의 다리였다. 21세기에 들어 러시아는 ‘TKM-월드 링크(TKM-World Link)’라는 이름으로 이 구상을 부활시켰다. 6000km 길이의 철도와 100km 해저터널, 총사업비 650억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푸틴 총리는 극동 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이를 승인했고, 2011년 야쿠츠크 회의에서 고위 관리들은 재차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 역시 자국 북동부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베링해협을 통과, 알래스카로 잇는 200km 해저터널을 검토했지만 두 계획 모두 진전되지 않았다. ‘극지의 실크로드’는 여전히 지도 위의 선으로만 남았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계획을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 월리 히켈(Wally Hickel)은 “대륙간 평화의 다리”를 주창하며 수십 년간 민간 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구상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지만, 연방정부의 허가와 예산은 끝내 얻지 못했다. 냉전의 유산이 낭만의 설계도로만 남은 셈이다. 올해 초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특사는 ‘푸틴·트럼프 터널’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제안을 발표했다. 모스크바와 익명의 해외 투자자들이 80억 달러를 투자해 8년 내 완공 가능한 112km 해저 철도 터널을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일론 머스크의 보링컴퍼니(Boring Company)가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흥미롭다”고 했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즉각 반발했다. ‘북극의 다리’는 다시 국제 정치의 무대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본다. 추코트카와 알래스카를 잇는 6000km 구간은 지진대이자 영구동토층 지역으로, 건설이 불가능에 가깝다. 미·러 무역은 제재로 위축돼 안정적 물류 수요가 없으며, 자금 조달과 보험, 허가 절차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터널보다 두터운 것은 빙하가 아니라 ‘정치의 장벽’이다. 결국 지난 120년 동안 베링해협 횡단 구상이 좌초한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였다. 시장과 거버넌스, 물류 네트워크가 맞물리지 않으면 아무리 긴 터널도 현실의 대륙을 잇지 못한다. 드미트리예프의 ‘저비용 터널’이 언론의 이목을 끌 수는 있겠지만, 경제와 정치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그 꿈은 여전히 북극의 빙하 속에 묻혀 있다. 언젠가 인류가 다시 그 바다를 건넌다면, 그것은 철이 아니라 신뢰와 협력으로 놓은 다리가 될 것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실크로드 북극 시베리아 횡단철도 해저터널 총사업비 알래스카 철도
2025.11.20. 18:46
나는 대한민국 강원도 최전방 육군 21사단 보병부대에서 GOP부대에서 8년간 복무하고 중사로 제대한 후 미국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던 그날,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반드시 미국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자. 둘째,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사람이 되자. 그 이유인즉, 나는 최전방을 지켰던 군인으로서 미군이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아래 번영하는 대한민국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고 북한의 의해서 적화통일을 당하고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 살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있던 국군과 UN군은 전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단숨에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돌파한 뒤, 북진을 거듭하여 압록강 인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1950년 10월 말, 중공군이 대규모로 참전하면서 전황은 다시 급변하였다. 국군과 UN군은 혹한 속에서 치열한 후퇴전을 치르며 전열을 재정비해야 했고, 이듬해에는 전선이 현재의 휴전선 부근, 즉 38선 인근에서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한반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세의 전환이자, 자유를 지키기 위한 희생과 인내의 상징으로 기록되었다. 이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의 곳곳에 남아 있다. 내가 복무했던 21사단 백두산 보병부대 지역 또한 그러했다. 그곳은 도솔산, 가칠봉,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펀치볼 등 6·25전쟁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하루에도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던 고지전의 현장이었다. 그 산과 능선마다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자유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 피와 희생의 흔적은 지금도 그 땅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특히 2010년, 나는 수리봉 982고지에서 두 달간 유해발굴 사업을 수행했다. 그곳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전사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었다. 삽을 들고 흙을 파낼 때마다 선배 전우의 뼛조각과 전투화, 철모가 드러났고, 그 순간마다 내 가슴속에서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죄송함이 밀려왔다. 그분들이 나라를 지키지 않았다면, 그리고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도,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군복무 시절에도, 그리고 제대한 뒤 군복을 벗은 민간인이 되었을 때에도 매번 참전용사분들을 뵐 때마다 항상 머리 숙여 인사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것이 군인으로서, 또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믿었다. 미국에 와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 6월 초 코리아타운 플라자 푸드코트에서 6·25 참전용사와 베트남전 참전용사분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나는 용기를 내서 그분들께 다가가 “저는 21사단 GOP에서 8년간 복무한 예비역 중사입니다. 참전용사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기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유민주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주시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분들은 환하게 웃으며 “고맙네. 꼭 6·25 기념행사에 와주게”라고 말씀하셨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나는 대한민국육군협회 미주지부의 최만규 회장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6·25 기념행사, 미 40사단 Army Appreciation Day,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회 행사 등 수많은 군 관련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한미 양국의 동맹 정신을 전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6·25 참전용사분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대한민국 육군 중사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UC Santa Barbara(UCSB)에서 통계 및 데이터과학(Statistics & Data Science) 학부 과정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지켜낸 자유와 평화의 토대 위에서 내가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늘 내 마음속 깊은 감사로 남아 있다. 올해 나는 KDVA(Korea Defense Veterans Association)와 KUSAF(Korea-U.S. Alliance Foundation)로부터 ‘미국 민간인 부문 한미동맹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나는 이 상이 내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초개처럼 바친 모든 한미 양국 참전 장병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 공기처럼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절대로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피와 희생 위에 세워진 값진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참전용사분들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인사드리고, 한국전과 베트남전에 참여하신 참전용사분들에게 마땅히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인사와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미래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우리의 약속이다. 심인성 / 대한민국 육군협회 미국지부 이사기고 피로 동맹 베트남전 참전용사분들 대한민국육군협회 미주지부 대한민국 강원도
2025.11.13. 19:09
지난 12일 5만9000명이 참가한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나에게는 연중행사다. ‘14241’ 번호표를 받아들고 20번째 출전이다. 햇빛이 빛나는 그야말로 좋은 날씨다. 15차례 이상 뉴욕마라톤 메달을 받은 사람들에겐 특혜가 있다. 허허벌판 추운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체육관에서 따뜻한 커피, 물, 베이글 등 먹을 것과 화장실도 있어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릴 수 있다. 베라자노 브리지 중간쯤 달리다 보면 2~3시간대 뛰는 젊은이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예년 같으면 그 이후는 나의 독무대다. 사진 찍고 연기를 하면서 경관들과 담소하고 추위도 잊어버리고 달렸는데 올해는 전혀 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기부자들에게도 제일 먼저 출발하는 특전을 부여했다. 그분들은 마라톤을 연습하고 달리는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번쯤 마라톤이 어떤 것인지 또 그 환경과 이치를 알기 위해서 참가한 사람들이다. 브루클린 4가에 들어서니 또 빨리 달리는 다른 팀이 오고 있다. 그 무리를 따라 스피드를 내다보니 숨이 차올랐다. 바로 스피드를 줄이고 내가 연습한 상태로 몸을 조절했다.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셔츠까지 입었지만 등 뒤에서 땀이 흐른다. 1마일마다 물을 공급해 주는데 그냥 스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젊은이들 무리에 힘을 받는다. 3시간대 달리는 사람들은 연습도 많이 했고 마라톤에 진가를 터득한 마니아들이다. 뉴욕마라톤 한 번 완주하는 것이 다른 마라톤 대회보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완주한 사람들의 반은 계속해서 마라톤을 이어가고 나머지 반은 포기한다고 통계에 나와 있다. 작년에 내게 꽃다발을 안겨준 켈리는 운 좋게 당첨되어 뛰었는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연습도 어렵고 코스가 언덕이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도전 정신을 배웠고 아주 좋은 인생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젊은 청년이 갑자기 쓰러졌다. 길가에 반드시 눕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도와준다. 눈을 감고 몸을 옆으로 당겼다가 느슨하게 풀고 움직여보지만 얼굴색이 변하고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는 사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당뇨병 환자가 당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은 것은 보았지만 젊은 청년이 쓰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기 스피드보다 빨리 뛰거나 호흡 조절이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다리를 스트레칭하거나 다리 운동을 하면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퀸즈브리지 앞이 14마일이다. 그때는 허기를 느낀다. 친구가 모찌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맛있고 긴요한 요기인지 모른다. 입가에 모찌 하얀 설탕 가루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바로 옆에 있던 백인 남자가 티슈를 내민다. 감사함과 포만감으로 쉽게 다리를 건너 1가에 도착했다. 응원 함성이 저절로 등을 미는 것 같다. 날씨도 좋아 양쪽 길을 빼곡히 메웠다. 76가에서 식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응원 열기로 브롱스를 향해 전진한다. 길가에서 물을 나누어 주는 자원봉사자들도 피곤을 모르고 물컵을 내밀면서 응원한다. 두 다리 대신 의족으로 달리는 사람 다리 하나와 크러치를 이용해서 달리는 사람, 한 사람은 휠체어를 밀고 두 사람은 양옆에서 보호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두발은 열심히 걷는다. 장애인 팔을 자원봉사자 어깨에 얹고 끌리다 걷다 반복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점을 통과하는 사람, 다리가 아파 기어서 마치는 사람, 절룩거리면서 뛰고 걷고 자원봉사자가 밀고 앞에서는 당기고 그래도 환한 웃음으로 끝마치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을 “You are amazing”이라고 함성을 지르는 응원객 틈에 끼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전광판을 보니 7:00:22가 나를 반긴다. 양주희 / 수필가기고 마라톤 대회 뉴욕시티 마라톤 다리 운동
2025.11.12. 19:42
과외받은 자백을 유도하는 “검사의 딜레마” 식의 접근 AI의 무단 학습 감지는 단순한 추적 기술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정산 시스템’ 확보를 위한 첫번째 넘어야할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AI 모델이 특정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AI포렌식(Forensic)식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즉, 모델의 내부 표현과 출력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원본 데이터가 학습에 반영된 흔적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 기여도를 정량화하는 ‘AI Attribution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각 데이터가 모델의 성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협력 게임이론의 “Shapley Value”를 응용해 데이터별 기여율을 계산하고, 그 비율에 따라 창작자에게 정산하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AI의 수익은 학습 데이터의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기술로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슈퍼얼라인먼트 회사 라지액트가 추진하는 소송이나 정산테크의 일종으로 a2a 집단 프롬프팅 분석 기술인 “검사의 딜레마 알고리즘”의 연구는 하나의 진보로 의미있게 보입니다. 알고있는 사실이라면 질문의 스트럭쳐링으로 정답을 자백받듯이 유도할 수 있으니까요 영향력(POI) 증명, “AI와 공정 나눔”이 가능한가 AI 시대의 공정 나눔은 Proof of Influence(POI, 영향력 증명)으로 가능합니다. 즉, 이는 AI 모델이 생성한 결과물에 대해, 어느 데이터가 얼마만큼 영향을 주었는지를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증명하는 기술입니다.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AI의 내부 벡터 공간을 추적해 각 데이터가 모델의 출력에 미친 ‘미세한 편미분 기여도’를 계산하는 기술들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이 수치를 암호화된 해시 형태로 기록하면,예를 들어 “이 이미지의 0.33%는 특정 작가의 스타일에서 기인했다”는 식으로 정량적 증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됩니다.이 기술이 실현된다면, AI 창작물의 수익 분배가 투명하고 자동화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얼마전 라지액트가 개발중인 〈검사의 딜레마〉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미 많은 회사들이 유사 방어검사기술을 개발 중이었고 곧 국가대표기술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의 유사 연구와 챌린지 이미 세계 곳곳에서 ‘AI 데이터 투명성’ 운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MIT CSAIL에서는 2024년 ‘Data Provenance Challenge’를 통해 AI가 학습한 데이터 출처를 추적하고 증명하는 알고리즘을 공개했으며, OpenAI 역시 ‘Model Memory Erasure’를 통해 불법 학습 데이터를 모델에서 제거하는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또한, 스탠퍼드와 UC버클리 연구진은 통계적 간섭 방식으로 데이터 학습 여부를 판별하는 논문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한데요. 예를 들면, 미국의 Spawning.ai는 ‘Have I Been Trained?’라는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가 자신의 이미지나 텍스트가 AI 학습 데이터셋에 포함되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FairlyTrained.org는 윤리적으로 학습된 AI 모델에 인증 마크를 부여하며“AI 학습 투명성”의 글로벌 표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AI와 인류의 실시간 학습료 정산”이 가능한가? 슈퍼 얼라인먼트(Super Alignment)는 AGI(범용 인공지능)의 윤리적 통제 기술이지만, 그 본질은 AI와 인류의 경제적 관계를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정산 시스템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가령 미래의 오피셜 AI 에이전트는 학습 데이터를 활용해 음악을 만들고, 그 순간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해당 음악의 학습 데이터에 기여한 작곡가와 제작자에게 자동으로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곧 경제적 거래의 단위가 되고, 인류의 지식 자산은 실시간으로 가치를 환원받는 “AI-인류 상호정산 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AI와 인류가 처음으로 “경제적 공존”을 이루는 구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위원소기반 양자암호기술로 무단학습을 방어할 수 있나? 라지액트는 국내 유일의 방사성 동위원소 기반 암호화 기술 QRNG(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 양자난수생성기술)를 확보한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AI 데이터의 진위와 무결성을 증명하기 위한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즉, 콘텐츠를 업로드할 때 QRNG 기반 고유 서명을 삽입하면, 그 데이터는 물리적으로 위조 불가능한 고유 난수값을 갖게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AI가 해당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작자가 사전에 학습을 차단(opt-out)하거나 특정 AI만 접근을 허용하도록 설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술을 콘텐츠 업로드 단계에서 ‘디지털 백신’처럼 적용해 오피셜 AI 에이전트의 무단 학습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모델을 개발한다면 미래 AI 시장의 핵심 기술로 떠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자를 이용해 AI를 잡는 것입니다. 정현식 기자기고 정산테크 콘텐츠 학습 데이터 데이터별 기여율 데이터 기여도
2025.11.10. 23:17
중국 국영 컨테이너 선사 ‘시 레전드(Sea Legend)’가 9월 북극을 경유하는 중국-유럽 직항 노선을 처음 운항한다고 보도됐다. 이 노선이 상용화되면 양 지역 간 해상 운송 시간이 기존 대비 절반가량 단축될 전망이다. 시 레전드는 9월 24일 러시아 북극 해안을 따라가는 북해항로(NSR. Northern Sea Route)를 통해 첫 선박을 띄워 20일간의 항해 끝에 지난 13일 영국에 도착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고, 최소 40일이 소요됐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海氷) 감소가 북극항로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새로운 해상무역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약 4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어 해빙이 급격히 줄었다. 시 레전드는 항로 단축으로 탄소배출량이 약 50%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극해 생태계 교란과 해양 포유류의 서식지 파괴, 소음 공해 등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극한의 기상 조건과 제한된 구조·지원 인프라로 인해 안전사고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중국은 이미 2024년부터 북해항로를 통한 유럽 수출 준비를 진행해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군사·경제 협력 관계를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상업 항로 개척이 아니라 전략적 확장으로 봐야 한다. 중국은 1993년에 건조된 쇄빙선을 이용해 북극 해역 조사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3대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24년 이후 북극해 입구인 베링해에서 러시아와 공동 해상작전 훈련을 수차례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에는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을 이용해 중국과 유럽 간 교역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인해 원유·가스 수출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중국은 야말(Yamal)반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일본 역시 사할린 천연가스를 수입 중이다. 이처럼 국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오늘날 국제 정세의 냉혹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북극해에서는 내빙(耐氷) 등급을 갖추지 못한 유조선이나 LNG 운반선이 유빙에 갇히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들 선박은 대체로 러시아 국적이지만, 제재 회피를 위해 선주를 바꿔가며 운항하는 이른바 ‘그림자 함대(Shadow Fleet)’에 속한다.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국제해사기구(IMO)의 안전 규제를 무시한 채 운항한다. 쇄빙 능력조차 없는 선박의 증가는 대형 해양사고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해빙은 줄었지만, 그만큼 북극해의 환경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 해역을 통과하는 항로는 안전규제가 거의 없고, 이는 북극 생태계의 균형과 지역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경제적 이익에 앞서 환경과 안전에 대한 국제적 감시와 규제가 강화되어야 할 때다. 이제 북극항로에 첫발을 내딛는 대한민국의 선박들에도 당부하고 싶다. 무엇보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가 필요하다. IMO의 규제 기준에 맞는 쇄빙선 및 내빙 화물선을 확보하고, 북극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는 운항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캐나다를 포함한 북동항로 전역의 해빙 존재·위치·이동 경로를 추적할 위성 연구가 필수적이다. 운항 준비의 수준이 곧 안전 확보의 척도이며, 생태계 보존의 전제다. 특히 선박 소음 저감 기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해양동물에게 소음은 치명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단기 이익에 매달리는 접근이 아니라,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준비된 대한민국의 북극항로 진출을 응원한다. 북극의 문은 이제 열렸지만, 그 문을 건너는 방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북극항로 도전 러시아 북극 북극 해역 원자력 쇄빙선
2025.10.22. 19:15
뉴욕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지만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투 트랙(two-track) 경제’라 부르며, 주식과 부동산을 보유한 고소득층, 고령층의 ‘활발한 경제’와 나머지 계층이 체감하는 ‘정체된 경제’로 양분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현상은 경제 성장의 혜택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8월 기준 하위 33% 가구의 연소득 증가율은 0.9%에 불과했지만, 상위 33% 가구는 3.6% 늘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상위층의 올해 2분기 소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나머지 계층은 지갑을 닫았다고 했다. 9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제가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불황은 아니다. 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S&P 500 지수도 올해 들어 12% 상승했다. 금융시장은 여전히 새로운 백만장자를 배출하고, 부유층 소비가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항공사들은 고소득층의 신용카드 마일리지 사용처를 위해 최첨단 라운지를 짓고 있으며, 이들 자녀의 결혼율은 다른 계층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자산이 없는 중하위층은 점점 팍팍하다. 노동시장은 경직돼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주거, 의료, 식료품, 공공요금 등 필수 지출은 인플레이션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이로 인해 이직이나 이사, 주택 구매를 포기하면서 ‘경제적 사다리’는 멈춰 섰다. 8월 이후 노동 시장은 급격히 악화됐다. 이는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를 단행한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기업 해고는 5년 만에 최대, 신규 채용은 2009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공식 실업률은 4.3%이지만, 정규직을 원하는 파트타임 근로자와 구직 단념자를 포함하면 실질 실업률은 8.1%에 이른다. 대졸자 실업률은 6.5%, 청년층(16~24세)은 10.5%로30년 만에 최악이다. 장기 실직자 문제도 심각하다. 27주 이상 실직 상태가 지속된 ‘장기 실직자’는 약 200만명으로 전체의 26%다. 이 중 3분의 1이 대졸자다. 이 수치는 경기 침체기에나 볼 수 있는 비율로,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한다. AI 시대의 도래는 현재의 일자리를 미래 수요에 맞게 재편해야 할 과제를 던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업들의 이익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이다. 매출 확대보다는 비용 절감, 신기술 도입, 가격 인상이 주요인이다. 특히 AI 활용으로 업무 효율을 높이고 인건비를 줄인 효과가 컸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주요 테크 기업들이 대표적 사례다. 경제 성장의 혜택이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면 다수의 국민은 호황의 그늘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정체를 겪게 된다.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를 지탱한 것은 강력한 노동 시장이었다. ‘투 트랙 경제’가 굳어지지 않도록 ‘포용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물가 안정과 유연한 노동 시장, 관세와 공급망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AI 직무 훈련 확대, 청년 고용 인센티브, 블루 칼러 일자리의 미래 보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책이 고소득 중심으로 기울지 않도록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레지나 정 / LA독자기고 미국 경제 청년 고용 경제 성장 경제적 사다리
2025.10.09. 19:36
한국에서 우리는 한국어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언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지만, 공식적으로도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곳에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이 섞여서 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길의 표지판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작은 표지판에 네 언어가 쓰여있는 게 답답해 보이지만 친절함이나 배려의 상징으로도 보입니다. 간판의 경우는 훨씬 심각한 접촉의 현장입니다. 예전에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보였던 영어 간판이 도시를 뒤덮은 지 오랩니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일본어 간판도 늘고 있습니다.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약해진 탓으로 보입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는 중국어 간판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는 오히려 한국어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때로는 한 간판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언어 접촉의 현장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홈쇼핑과 같은 채널에서는 수많은 외국어와 외래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패션에 관한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어가 한국어보다 더 많은 듯합니다. 모르는 말투성이입니다. 화장품이나 미용에 관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와 관련된 드라마를 보면 아예 자막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대부분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입니다. 뉴스, 스포츠, 드라마, 피디 등의 단어가 다 순우리말이 아니니 외국어 범람의 현상은 놀랄 일도 아닐 겁니다. 케이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가끔 들어갔던 외국어 가사가 이제는 주를 이룹니다. 오히려 한국어 가사가 맛보기처럼 들어갑니다. 사실 케이팝의 정의 자체가 어렵습니다. 작곡가, 가사, 가수, 기획사 등에 한국적이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작곡가가 작곡한 노래도 많고, 심지어 팀원 중에 외국인도 여럿입니다. 어쩌면 케이팝 자체가 접촉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관점을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본에 가면 지하철에서 한글 안내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리마다 한국어 안내가 있어서 종종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간판에도 한글이 보입니다. 미국 등의 한인타운에는 그야말로 영어가 드뭅니다. 한동안 한국어 간판에 영어를 같이 써 달라는 현지의 요구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무슨 가게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항의였습니다. 외국인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열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글을 접합니다. 자연스러운 언어 접촉의 현장입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드라마에 나오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고, 케이팝에 한국어로 된 가사가 나오면 뜻을 찾아보고 따라 부릅니다. 이제 한글과 한국어는 더 이상 외국인에게 낯선 문자, 낯선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외국어가 엄청나게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어도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언어 접촉은 한 방향이 아닙니다. 언어 접촉은 쌍방향이고, 다방향이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한 언어가 여러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한자어가 한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 등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가 역으로 한국이나 중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앞으로 베트남어나 태국어가 우리말 속으로 더 들어오게 될 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궁금함의 현장이어야 하고 배려의 현장이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과정에서 교류가 생깁니다. 혹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배려가 생깁니다. 그래서 언어 접촉의 현장은 상호 문화교류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촉의 현장에서 문화적으로 더 성숙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기고 한글날 언어 언어 접촉 한국어 영어 한글날 언어
2025.10.08. 19:41
지난해 10월 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부생으로부터 뜻밖의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세계적인 공학 중심 대학의 학생이 극지 연구 협력을 요청해온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성 연구자들도 선뜻 나서기 힘든 미지의 영역에 학부생들이 먼저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발신인은 KAIST의 'SAVE THE EARTH'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에 선발된 4명의 학부생 연구팀이었다. 이들은 2025년 여름, 기후변화의 최전선인 알래스카에서 강의 '산화 변색(rusting)' 현상을 연구하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특히, 필자의 연구와 관련된 지식을 바탕으로 기후 변화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연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화 변색 현상이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흘러나온 다량의 철분이 강물을 짙은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 유출수는 수소이온농도(pH)가 2 이하의 강한 산성을 띠어, 중성(pH 7~8) 상태인 기존 하천의 수생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었다. 강바닥에는 두꺼운 철산화물 침전물이 쌓여 수생식물의 광합성을 막고, 연어와 같은 회귀성 어종의 산란처를 파괴하는 등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대기 중 오염물질이 산성비를 만들듯, 땅속에서 녹아 나온 산성 물질이 알래스카의 청정 하천을 위협하는 셈이었다. KAIST 연구팀은 이 현상이 단순히 생태계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황색으로 변한 강물은 지역 주민의 핵심 식량이자 생태계의 중요 구성원인 토착 어류의 서식 환경을 파괴해 개체 수 감소를 유발했다. 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태계 변화가 지역 주민에게 미치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인식까지 조사하는 다차원적 연구를 계획했다. 이들은 "이번 연구가 알래스카의 생태계 보존과 주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학부생들의 과감한 도전에 긍정적인 응원을 보냈고, 연구비와 활동 제약 등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이며 두 차례의 미팅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줌(zoom)'을 통해, 두 번째는 필자가 한국을 방문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14일부터 29일까지 보름간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팀은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를 오가며 원주민과 소통하고, 강물 시료를 채집.분석했으며, 관련 전문가들과의 미팅을 이어갔다. 특히 수십 년간 강과 함께 살아온 원주민들의 증언은 기후변화가 단순한 과학적 현상이 아닌,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임을 깨닫게 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는 '맑음'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 작은 불씨는 국가적 차원의 미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가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과학 R&D 예산을 증액하는 것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극항로' 개척과 같은 거대 담론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해수부의 부산이전에 사활을 걸었다고 본다.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남방항로에 비해 운송 거리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대한민국의 수출입 물류에 거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미국이 북극해의 관문인 놈(Nome)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며 군함 입항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하는 것은 북극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는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 학부생들의 담대한 극지 연구 도전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열정이 다른 과학 분야에도 선한 영향을 미치는 기폭제가 되어, 더 많은 청년 과학자들이 미지의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알래스카 한국 생태계 파괴 생태계 변화 수생 생태계
2025.09.22. 19:09
최근 LA와 애틀랜타에서 각각 70대, 50대 한인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잇따랐다. 따뜻한 축복 속에 결혼하고 낯선 땅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수많은 고비를 홀로 이겨냈을 한 사람의 인생.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며, 형이었고, 동생이었을 그들이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생을 저버린 비극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함께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세상을 떠난 분들과 그 주위에 남은 모든 분들께 드릴 위로의 말을 찾기 어렵다. 필자는 한인 사회에서 40여 년간 어려운 이웃을 돌봐 온 정신과 의사다. 그동안 점점 열악해지는 정신 질환 치료 환경을 보면서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가족 살해·자살 같은 참극이 벌어질 때마다 정신과 의사로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족의 생명을 앗아가고 자신의 목숨까지 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에서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죽음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무언의 약속을 우리는 공유하며 살아간다. 우리 인간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자연재해와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에서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사망하기도 하지만, 50년간의 정신과 의사 경험으로 볼 때 살인과 자살은 뇌의 기능이 병적으로 잘못된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에 이를 정도의 심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뇌의 이런 병적인 상황이 극심한 우울증을 유발하며, 이때 자살을 결심하는 세 가지 생각이 들게 된다. 첫째, 아무런 희망이 없다. 둘째,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셋째, 나는 도움을 받을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자신을 힘들게 만든 사회 또는 특정한 사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타인 살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악한 면이 있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결코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이처럼 병든 사람들을 제때 치료하면 모두를 살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강제 입원시키고, 뇌 호르몬 생성을 돕는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사고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병원에서 치료받고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나는 경험으로 확신한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을 생각해 보자. 코로나19의 경우, 거리두기와 소독, 검사만으로는 사망률을 낮출 수 없다. 만약 심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긴급하게 입원시켜 호흡기 치료를 한다면 대부분의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자살과 타살은 전염성이 있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은 갑자기 크게 확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병에 걸린 사람이 이미 사망하여 타인에게 전염시킬 위험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인 사회에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전무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병원 치료를 권유해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정신 질환에 대한 무지가 그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관이나 상담가도 도움을 줄 수 없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LA카운티 정신건강국이 전적으로 개입해 강제 입원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기고 극단 선택 극단적 선택 한인 사회 정신과 의사
2025.09.14. 18:33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미국은 이를 단순한 기술 성취로 보지 않고, 자국 교육과 과학 체계의 실패이자 전략적 이념적 위협으로 받아들여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역사는 이를 ‘스푸트니크 모멘트’라 기록한다. 미국의 대응은 전례 없이 신속하고 체계적이었다. 과학, 기술, 수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과 투자가 이어졌다. 불과 1년 만에 항공우주국(NASA), 국방고등연구 계획국(DARPA)을 신설했고, 국방교육법을 제정해 과학 교육을 강화했다. 첫 유인 우주비행 프로그램인 ‘머큐리 계획’을 시작해, 결국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성공했다. 동시에 국가과학재단(NSF) 예산을 3배로 증액해 연구 개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과의 본격적인 과학 경쟁 속에서, 미국의 과학 정책은 과거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초 과학 연구비를 대폭 삭감하고, 공공 연구 기관을 폐쇄했으며, 외국인 연구자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국력은 인재, 국방력, 경제력의 조화에서 나온다. 특히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등 핵심 인재의 유출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의 과학 정책이 흔들리면서 연구 현장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권위있는 학술지 네이처(Nature)의 2025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75% 이상이 해외 이주를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 통계를 보면 과학계의 위기는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 대학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NSF는 예산이 56% 삭감되고 직원의 10%가 해고됐다. 의학과 생명과학 연구를 이끄는 국립보건원(NIH)도 예산이 40% 줄면서 1000명 이상의 감축 조치가 이뤄졌다. 불과 8개월 사이, 두 기관에서 3000~4000건의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이 밖에도, 환경보호청(EPA), NASA 과학임무부(SMD), 국립해양대기청(NOAA), 에너지부(DOE), 미국지질조사국(USG),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주요 기관들의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또한, 지난달에는 단백질 합성(mRNA) 기술을 이용한 22개의 백신 연구 계약이 취소됐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라 미래 기술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결정이다. 학자들은 과거 어느 국가도 이처럼 빠르고 조직적으로 자국의 핵심 경쟁 우위를 스스로 허물은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반면, 중국은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연구 개발비를 18배 늘렸다고 중국전문가포럼(CSF)이 분석했다. 그 결과, 여러 과학 분야에서 논문 영향력과 특허 수에서 이미 미국을 크게 추월했다. 미국의 과학 패권은 1945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절정에 달했다. 과학 투자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창의성과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전략 자산이다. 지금 미국은 ‘제 2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가 인공지능(AI)에 쏟는 지원만큼 과학에도 과감히 투자하고, 인재 유치와 기초연구 지원을 확대한다면 과학 혁신은 되살아나 미국의 미래를 다시 밝힐 것이다. 혁신은 인류를 전진시키며, 국가의 미래는 과학에 달려 있다. 레지나 정 / LA독자기고 스푸트니크 모멘트 스푸트니크 모멘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과학자 의사
2025.09.10. 19:35
두 달 전, 지중해 상공에서 미 해군 함정을 향해 날아오던 적의 크루즈 미사일을 격추한 미 공군 전투비행대대 조종사 9명이 공로훈장을 받았다. 수상자 중에는 오렌지카운티 풀러턴 서니힐즈 고교 출신인 한인 2세 앤드류 인 대위도 포함돼 주목을 받았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과 조종사들의 인터뷰는 유튜브에 ‘Nine Air Force Pilots awarded medals for saving Navy Ship’을 검색하면 공개된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7월, 이탈리아에 주둔 중인 미 공군 부대에 “미 해군 함정을 향해 적 미사일이 접근 중”이라는 긴급 전문이 타전됐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즉각 대응에 나선 전투비행대대는 평소 훈련한 대로 일사불란하게 출격했다. 한 조종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는 순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오직 훈련한 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른 조종사는 “수많은 훈련을 했지만, 우리 함대를 향해 실제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밝혔다. 앤드류 인 대위는 “지난 4~5년간의 F-16 전투기를 비행하고 훈련한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 함정과 동료 장병, 나아가 조국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전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조국 수호의 최전선에 선 군인의 굳건한 사명감이 묻어났다. 조종사가 되기 위한 체력단련이 얼마나 어려운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중력의 5~6배를 견디어야 한다고 한다. 수년 동안 밤낮으로 출격하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공중에서 파괴하지 못하면 아군의 함정이 침몰하고 전우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이들은 24시간 각인하며 훈련에 임했다. 이들의 공로는 평시의 땀이 실전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이는 비단 군사 훈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숱한 연습과 노력을 통해 본능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골프를 칠 때조차 목표 지점을 정하고 수없이 올바른 연습을 반복해야 비로소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사일 접근 보고를 받고 출격할 당시, 조종사들에게는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 상황에서는 저렇게 반격하리라는 작전을 짤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오직 끊임없는 훈련으로 몸에 밴 본능적 대응이 동료와 군함, 그리고 나라를 지켜낸 것이다. 이번 훈장은 비단 조종사 9명만의 영광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한 정비로 출격을 지원한 모든 팀원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적의 미사일을 요격한 그 순간은, 조종사 개인의 영광을 넘어 팀의 헌신과 평시 훈련의 가치를 증명한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됐다. 미국 국민으로서 모든 공군 병사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이효섭 / 동서장례 대표기고 미사일 격추 미사일 접근 크루즈 미사일 공군 전투비행대대
2025.09.08. 19:28
북극 고래(bowhead whale)는 북극 해양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뚱뚱한 몸집에, 몸길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머리를 가진 고래다. 특히 두꺼운 지방층(최대 70cm) 덕분에 북극해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 또한, 200년 넘게 살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포유동물로 알려져 있다. 1935년 이래 멸종위기종으로 국제법에 보호받고 있지만 국제포경협회는 극지방 원주민들에게만은 봄과 가을, 제한적으로 포경을 허용하고 있다. 극지방 원주민들에게 예로부터 식생활에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 중요한 자원이 기후 변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래 배설물에서 발견된 독성 조류가 바로 그 증거였다. 이는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극의 해수면 상승과 관련성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의 연구팀은 약 20년간 205마리의 북극 고래 배설물 샘플을 채취해 독소 유무를 분석했다. 고래가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만큼, 배설물 검사는 해양 환경 변화를 파악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분석 결과, 고래 배설물에서 독성 조류가 생성하는 삭시톡신(saxitoxin)이 50~100% 검출됐다. 삭시톡신은 홍합과 같은 조개류에 축적되어 사람에게 식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기억상실 패류 중독(ASP)을 유발하는 도모산(domoic acid)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해양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미래에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구팀은 알래스카 북극 해저에서 독성 조류의 휴면 상태 세포인 와편모조류 포낭이 대량으로 분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그동안 차가운 수온 때문에 포낭의 발아가 억제되었지만,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즉,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독성 조류가 번성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연구팀은 북극 해빙감소와 고래 배설물 시료에서의 독소도 비교했다. 해빙의 급격한 감소로 봄철 태양광선이 직접 해수를 따뜻하게 하면서 조류 번성을 빠르게 유발시켰다. 즉, 해빙이 감소한 해에 북극 고래의 배설물 중 독소가 증가했음도 분명히 시사하고 있다. 독성 조류는 한국 남해안에서 발견되는 신경마비성 조류와 유사하다. 이 조류를 섭취한 물고기를 먹은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다. 또, 독성 조류도 한국의 조류처럼 바다 속 용존산소를 고갈시켜 어류를 죽인다. 연구결과는 독성 조류가 조개, 물고기같은 어패류는 물론, 고래 등 해양동물을 넘어 알래스카 원주민에게까지 북극 먹이 사슬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시애틀에 있는 국립해양대기국(NOAA) 북서부 어업 과학 센터의 연구자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알래스카 해역은 유해 조류 번성(HAB: harmful algae blooming) 연구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해양 수온의 빠른 상승과 함께 와편모조류가 대규모로 검출되면서다. 북극 지역 원주민 공동체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체감하고 피해를 입고 있다. 이들의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서는 독성 조류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검사가 필수적이다. 한국 연안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유해 조류 번성이 북극해까지 확산하는 현상은, 지구 온난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직면한 현실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배설물 북극 고래 배설물 북극 고래 북극 해빙감소
2025.08.11. 18:57
엄마가 돌아 가셨다. 밭은 날숨 그리고…끝. 93년 이생에서의 머무름은 아들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엄마의 일생, 당신의 말씀대로 “손톱으로 바위를 긁는 듯 살아온 세월”이었다. 엄마와 아들은 74년 동안 이생에서 같이 걸었다. 엄마는 내내 아들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걱정하셨고, 아들은 틈만 있으면 엄마의 궤도를 벗어나려 했다. 끝내 아들은 먼 나라로 가버렸다. 엄마를 홀로 고향에 남겨두고. 엄마의 마지막 열흘, 아들은 엄마 곁에 있는다. 엄마의 마지막 한 시간 아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다. 더 이상 인간의 언어로는 소통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스쳐간다. 사바세계에서 모자의 인연으로 살아온 사연들, 구비 구비에 남아있는 기쁨과 아픔의 기억…. 중환자실 계기판에 엄마의 혈압이 0으로 떨어진다. 엄마의 손이 차가워진다. 아들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 당직 의사가 와서 엄숙하게 선언한다. “정종숙님은 2025년 7월6일 오전 3시13분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 엄마의 ‘마음’은 코끝에 있었을 터이다. 날숨 다음에 들숨…. 일생 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이 순서를 유지하는 일이 그 찰나의 가장 큰 과제. 마음은 그 일에 매달려 있었으리라. 다시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육체의 힘이 소진된 상태. 마음은 그렇게 육체를 떠난다. 그 마음은 그냥 사라졌을까? 어디로 갔을까? 엄마의 마음이 마지막 지각한 것은 아들의 마음이었을 터. 아들의 흔적을 품은 그 마음은 한숨 기운이 되어 이생의 경계를 넘어간다. 엄마가 막 떠난 이생 사바 세계는 “참고 견뎌야 하는 땅, 감인토(堪忍土).” 엄마의 다음 생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이기를 빈다. 하얀 천으로 얼굴을 덮은 엄마의 주검은 장례예식장으로 옮겨 진다. 삼일장, 만 이틀 동안의 문상. 형제 자매가 아무도 없는, 40여 년을 외국에서 살던 아들이 빈소를 지켰다. 그리 쓸쓸하지 않았다. 오래된 인연들, 공주 지역의 글 쓰는 이들, 그리고 아들의 사촌 형제들이 아들을 위로한다. 셋째 날 아침 발인. 엄마는 관속에 누워 나래원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나래원의 의미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4번 화로, 엄마의 관이 보인다. 커튼이 내려진다. 한 시간 반 후에 다시 커튼이 올라간다. 관이 있던 자리가 휑하다. 바닥에 하얀 뼈 조각만. “곱게 만들어 드릴까요?” 분쇄기를 거쳐서 고운 뼛가루, 진공 포장이 되어 작은 나무 상자 유골함에 담긴다. 하얀 보자기에 쌓인 아직 따듯한 유골함을 아들이 받는다. 아들은 69년 전 또 하나의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은 기억을 한다. 군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는 4년 후에야 유골로 고향에 돌아왔다. 엄마는 아버지를 묻기 전에 유골함을 열어보셨다. 그때 본 아버지는 하얀 뼈 조각이었다. 엄마를 대전 국립묘지 현충에 모신다. 먼저 거기에 계신 아버님 곁에 안장. 73년 전 26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90이 넘은 엄마가 그렇게 다시 만난다. 육신을 다 버리고 마음만 만날 테니 나이는 문제가 아니겠지. 아들과 아들의 아들 둘이서 엄마 삼우제를 지낸다. 그날 아들은 미국으로, 아들의 아들은 다른 나라로 떠난다. 김지영 / 변호사기고 엄마 엄마 삼우제 그날 아들 유골로 고향
2025.07.21. 18:44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미국 과학계에 드리워진 또 다른 그림자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기후변화 회의론에 기반한 연구비 삭감은 과학계를 위축시켰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훨씬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세계 과학의 중심인 미국에서 시작된 ‘연구 재난 쓰나미’가 전 세계 과학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전 세계 젊은 과학자들에게 꿈의 무대였다. 특히 인도와 중국 출신 과학자들은 미국에서 경력을 쌓고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정부 기관의 연구자들은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실직을 넘어, 미국의 과학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해고된 연구자들은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5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준비하며 국내 연구소와 대학에 초빙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했던 일본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당시 일본은 탄저균 풍선 개발을 위한 대기과학, 항공 및 조선 기술, 물리해양학, 철도 기술 등 광범위한 기초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독일 역시 아우토반을 위한 자동차 개발, V2 미사일, 항공기, 전차 등 중공업 기반의 무기 개발에 아인슈타인, 폰 브라운과 같은 당대 최고 과학자들을 동원했다. 종전 후 소련이 독일 과학자들을 확보하며 과학 발전을 이뤘고, 일부 독일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 과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일본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통해 축적된 의학 기술 자료를 미국이 전량 넘겨받아 자국 의학 기술 발전에 활용한 사례는 과학 기술이 가진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영국과 캐나다에서도 미국발 이민자 급증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과학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년 전 윤석열 정부의 연구비 50% 이상 삭감 사태로 한국 과학계가 겪었던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주항공기술 등 정부 출연 연구소는 물론 대학까지 연구 동력이 상실되었고, 특히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예산이 사라지면서 이들의 피난처가 미국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미국마저 연구 재난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다시 설 곳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현재 한국은 경제 상황 악화로 응용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되면서 기초 과학 분야는 여전히 ‘빙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 내 세계적 석학들이 정년 퇴임 후 중국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문제로, 과학자를 존중하는 일본의 경우 정년 후에도 3~5년간 연구를 지속하며 다음 세대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매년 급여를 일부 삭감하더라도 시니어 연구자의 지혜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의 ‘방랑’뿐만 아니라, 한국 석학들의 해외 유출에 대한 민감한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석학들에게 정년 연장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북극 항로를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의 허브로 삼는 정책을 추진하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고민하는 이때, 과학 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미국 엑소더스 출신 과학자들 과학 기술 세계 과학
2025.06.26. 20:53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시작된 미국 정치의 깜짝 쇼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중 가장 해괴한 것은 하버드 대학과 벌이고 있는 전쟁이다. 미국의 많은 일류 대학과 전반적 지식층 분위기가 그렇듯이, 하버드 대학은 트럼프 정권에서 미워하는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진보적 정책들을 취소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하버드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고 트럼프 정권은 그것을 찍어 눌러서 본보기로 삼겠다는 결심을 한 듯하다. 연구비 지원 중단으로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버드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받지 못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일단 법원의 비상 개입으로 집행이 중지되었는데 정식 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유학생을 받을 수 없다면 연구비를 잃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위기이다. 하버드처럼 재정이 풍부한 대학에서는 필요하다면 자체적으로 연구비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을 없앤다면 그것은 대학의 정체성 그 자체를 바꿔버리는 일이 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일류 대학은 전 세계에서 훌륭한 학생과 교수들이 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외국인들을 환영하고 포용함으로써 이루어진 국제적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을 진정한 고등교육의 중요한 측면으로 여긴다. 그러한 세계적 차원을 말소하겠다는 협박은 대학교를 뿌리부터 흔들겠다는 의도이다. 외국인이 필요 없다는 충동적 생각은 트럼프식 정치의 핵심이다. 며칠 전 미국 국무부는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자 신청자들의 사상과 언행을 속속들이 점검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 준비될 때까지 신규 비자를 발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중국 유학생들은 다시 심사하여 이미 받은 비자도 취소할 수 있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다. 트럼프가 가진 유학생의 이미지란 공부는 안 하고 좌파적 선동을 일삼는 미국 혐오자들이다. 사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이며 인종주의와 배타주의의 표출에 불과하다. 이러한 배타주의는 국가적 자해행위라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꿈을 품고 이민과 유학을 왔던 외국인들은 미국 과학기술의 눈부신 성장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나치 정권 아래의 유럽에서 도피한 수많은 유대인 과학자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2차대전 후에는 나치 정권과 협력했던 과학자들도 흡수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로켓 공학의 선구자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몽땅 흡수했다. 세르비아 출신의 전기공학자 테슬라는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유명한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독립하여 교류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고 여러 가지 기발한 발명품도 남겼다. 요즘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머스크가 소유한 전기차 테슬라 회사는 이 사람을 기리며 명명한 것이다. 머스크 자신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유학생으로 미국에 처음 왔고 그 후에 사업을 하며 정착했다. 이주민을 배척하는 배타주의는 과학의 기본 정신과 정반대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 외국인들을 들여와서 필요한 일을 시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적 교류는 그 차원을 넘어선다. 자기의 연구에 필요한 배경 지식이나 기술적 설비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 내었는지에 상관없이 수입한다. 과학이 가장 발달한 곳을 보면 인간관계도 국경 없이 이루어진다. 최고의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차별 없이 모집하고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협업하고 교류한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선생과 학교·연구소를 찾아 지구 곳곳으로 다닌다. 그러한 개방성이 없는 집단이 하는 과학연구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유학생이란 과학의 생태계에 아주 긴요한 일원이 된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다른 학문과 산업들도 이런 모습으로 발전한다. 하버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버드는 단순히 좋은 학교가 아니라 온 세계가 왜 미국을 부러워하는지를 상징한다. 하버드가 대표하는 미국의 고등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을 이해하고 미국을 사랑하게 된다. 그것은 미국이 누려온 ‘부드러운 힘(Soft Power)’에 크게 보태주는 역할을 해 왔다. 필자의 아버지도 패기만만한 젊은 공무원 시절 미국 정부 지원을 받아 하버드 법대 대학원에서 1년 동안 연수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 후로 일생동안 미국에 대한 예찬과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이런 사람들이 박혀 있다. 그런 전통과 그의 위력을 잘 알지도 못하고 파괴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작태를 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장하석 / 케임브리지대 교수기고 자해행위 유학생 외국인 유학생 하버드 대학 트럼프식 정치
2025.06.11. 19:35
대한민국호는 불안정한 정치에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협상 압박 요구로 고뇌가 깊다. 이 가운데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가 관세 압박을 풀어갈 대응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개발이 언급되었던 ‘ANWR(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 지역이 핵심이다. 이 지역은 알래스카 북극해와 연결되어 있으며, 캐나다 국경과도 접해 있다. 무엇보다 이 지역은 미국 내에서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천연 상태 그대로의 가장 큰 생태 보호 지역이다. 따라서 천연가스 개발 추진 시 필연적으로 지구 환경 보호라는 첨예한 정책 이슈가 부상할 것이 예상된다. 천연가스 개발에 따른 수송 방식은 원유와는 다르다. 원유는 점성이 높아 파이프라인 내 유속 유지를 위해 사람 체온 수준으로 데워서 약 1500km 구간을 수송하며, 이를 위해 13개의 펌프 스테이션이 건설되었다 (트랜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TAPS 사례). 반면, 대량의 천연가스를 효율적으로 수송하려면 압축 및 액화 과정이 필수적이므로 대규모 액화 장치와 시설이 요구된다. 현재 알래스카 내에서 진행 중인 ALASKA LNG 프로젝트처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및 부대시설에는 예상 이상의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목할 점은 과거 1975년부터 1977년까지 건설된 원유 파이프라인에 필요한 강관을 전량 일본 제철소가 수주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태동기였던 포항제철은 입찰 참여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 새롭게 추진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관련 입찰에서는 한국 제철소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최근 포항제철이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일부 고로 가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기대감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편, 1977년 당시 이 지역 개발 시도에 따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예를 들면 트럭 바퀴 자국 조차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지역과 같은 극지 생태계는 자연 복원력이 극히 미미하여, 한 번 파괴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형태를 갖춘 치즈가 열을 받아 녹으면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천연가스 개발로 인한 환경적 후유증은 어쩌면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동토층 융해 가속화, 대규모 온실가스 방출, 동식물의 생존 위협, 원주민 삶의 터전 파괴 등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만약 한국이 ANWR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러시아 야말 반도 사례와 유사하게 북극해를 통한 가스 수송을 위한 대규모 접안 시설 건설이 필요하다. 삼성중공업이 러시아에 공급한 쇄빙 LNG선처럼,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 LNG선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는 기회도 있다. 다만, 이 지역 북극해 연안은 대륙붕이 발달해 있어 크루즈선과 같은 대형 선박의 접안을 위한 대규모 준설 작업, 즉 심수항(deep draft port) 건설이 필수적이다. 알래스카 ANWR 가스 개발 참여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 문제, 기술적 난제, 안전 위험 등 여러 요소를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 대한민국호가 국가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위해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대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알래스카 천연가스 천연가스 개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알래스카 북극해
2025.05.22. 19:13
항공기는 고도의 정밀성과 신뢰성이 요구되는 교통수단이다. 정기적인 점검과 정비가 없으면 사고나 고장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철저한 점검과 정비를 통해 운항 중단을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승객 안전과 서비스 품질은 항공사의 신뢰도와 직결되기에 항공기의 안전 운항을 위한 정비, 수리, 개조는 필수요건이다. 이러한 필수 요건을 충족시키는 산업 중 하나가 ‘항공 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 산업이다. 항공 MRO 산업은 항공사의 핵심 지원 산업으로 비행 중지 시간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항공사의 전체 운영비 중 정비비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MRO는 곧바로 정비 비용 절감과 항공기 가동률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예측 정비(predictive maintenance)를 통한 체계적인 정비는 불필요한 정지 시간과 긴급 정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운항을 구현할 수 있다. 글로벌 항공 MRO 산업 전망은 항공기 증가, 노후 항공기의 유지 필요성, 디지털 기술 도입, 국방 및 우주 분야의 수요 증가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항공기 MRO 시장 규모는 향후 5년간 연평균 4-5%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0년 항공 MRO 시장 규모는 대략 13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항공 MRO 시장에서 아시아 지역의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 MRO 거점이 될 잠재력이 커졌다. 항공 MRO는 단순 정비를 넘어 항공기 개조, 부품 재제조, 항공 안전, 운영 효율, 기술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수요가 적어 적자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방공항의 활성화,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성장, 중소기업 기술력 향상, 부품 국산화 등 산업 전반의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항공 MRO 산업은 고가, 고정밀 자산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필수 산업인 만큼 항공뿐만 아니라 우주, 국방 등 국가 전략산업 전반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국방장비는 민간기기보다 사용 강도가 높고, 정비 주기도 엄격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작전 가동률 유지를 위해서는 MRO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자국 내의 항공 MRO 역량 확보는 국방 안보 및 자주국방 차원에서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항공 MRO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제조업체(보잉, 에어버스 등) 및 MRO 전문기업 유치 인센티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산학연 협력 유도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 전략적 개발 로드맵과 안정적 투자계획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항공 MRO 사업의 선행 개발 투자와 지원을 전담하며, 글로벌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 우주항공청 내에 ‘항공 MRO 기술전략센터’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은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산업육성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최고 통수권자의 리더십이다. 미국항공사들은 지금 인천공항에 주목하고 있다. 80개 아시아 도시로 이어져 여객, 물류 허브공항으로서 인프라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의 접근성도 좋아서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핵심 허브공항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기고 골든타임 항공 항공기 증가 항공기 가동률 글로벌 항공
2025.05.21. 19:25
매년 12월이 되면 뉴욕, 런던, 도쿄,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선 한 여성 무용수가 고난도 동작을 하는 모습의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바로 뉴욕의 션윈 공연이다. 션윈예술단(Shen Yun Performing Arts)은 2006년 설립 이래 현재까지 뉴욕 링컨센터를 포함한 전세계 200여개 극장에 매년 초대받아온 세계 정상급 예술단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일부 기독교 단체가 션윈 공연 관람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산하 단체에 발송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이 션윈 공연이 파룬궁 수련의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관람 자제를 경고한 것.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션윈 공연의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션윈 공연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나 시각과는 매우 동떨어진 편향된 시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술 범주에서 다뤄지는 인권탄압 션윈예술단은 공산주의 이전 중국의 순수 전통문화의 부흥을 목표로 고전 무용과 음악을 선보인다. 션윈예술단에 참여하는 상당수 예술가는 문화대혁명을 피해 중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으며, 중국에서 사라진 전통 문화의 전수를 계승하고 펼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교총의 ‘위장 포교’ 주장은 공연 중 일부 장면이 파룬궁의 박해를 다룬다는 점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은 전체 공연의 극히 일부(보통 1~2개 프로그램)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탄압을 비판하는 사회적 맥락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예술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편적 방식으로, 기독교 예술에서도 순교나 박해를 주제로 한 작품이 흔히 등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기독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의 수난을 통해 신앙적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이를 포교로 단정 짓는 이는 드물다. 파룬궁에 대한 오해와 편견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파룬궁을 ‘이단’으로 간주하며 션윈 공연을 경계한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 공산당이 1999년 파룬궁을 불법화하고 ‘반사회적 이단’으로 낙인찍은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주장은 다분히 정치적 동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파룬궁이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행위를 한 증거는 없다. 파룬궁은 불교와 도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명상, 기공 수련, 도덕적 가르침을 강조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평화롭게 수련하고 있다. 국내 일부 기독교 단체가 파룬궁을 ‘이단’으로 단정 짓는 것은 중국 정부의 선전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결과일 수 있으며, 이는 신앙의 자유를 중시하는 기독교의 가치와 모순된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션윈 관람을 금지하는 것은 다른 문화와 신앙의 표현을 배척하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기독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통해 타인의 믿음과 문화를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마태복음 22:39). 션윈 공연을 관람한다고 해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단순히 다른 문화의 예술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힌두교나 불교를 주제로 한 인도 전통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기독교인이 그 종교로 개종한다고 가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게다가 파룬궁은 스스로를 종교로 표방하지 않으며 동양 전통 문화에 기반한 수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권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지지 션윈 공연은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를 간접적으로 다루며, 신앙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999년 이후 중국 정부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체포, 고문, 감시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구금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박해는 국제사회에서 널리 비판받아 왔으며,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와 같은 인권 단체는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탄압을 기록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긴다. 중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의 고난은 기독교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션윈 공연이 이러한 박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이를 포교로 몰아가는 것은, 인권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목소리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션윈의 메시지를 통해 중국 내 종교적 박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모든 신앙 공동체의 자유를 지지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 기독교 국가에서의 폭발적인 반응 션윈 공연은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며 매년 전 세계 1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100만 명의 관객을 만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의 링컨 센터,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팔레 데 콩그레 등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며, 관객들로부터 “문화적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미국 공연 후기에서 관객들은 “중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깊은 영감”을 칭찬했으며, 종교적 논란보다는 예술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들에서는 션윈 공연에 대한 종교적 반발이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보수적 기독교 단체들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션윈 공연을 ‘포교’로 비판하거나 관람을 반대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는 션윈이 종교적 강요 없이 예술과 문화에 초점을 맞춘 공연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공연은 매년 매진되며, 현지 언론은 션윈을 “중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연”으로 평가했다. 션윈이 전하는 신성 션윈 공연은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의 기독교계 인사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아 왔다. 예를 들어, 미국 아칸소주 벤턴빌에서 션윈 공연을 관람한 팀 스튜어트 목사는 공연에 대해 "매우 계몽적이었다"며, "믿음과 자비, 인내가 악을 극복한다는 메시지를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션윈이 전하는 신성과 인간의 연결이 자신의 신앙과도 공통점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피츠버그에서 션윈을 관람한 에릭 폭스 목사는 공연을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연이 자신을 주님께로 이끌었으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례들은 션윈 공연이 기독교적 가치와 상충되지 않으며, 오히려 신앙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공연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션윈 공연에 대한 한국 기독교계의 배척은 글로벌 기독교 커뮤니티의 수용적 태도와 대조된다. 션윈은 예술을 통해 중국 전통문화를 알리고, 인권과 신앙의 자유를 옹호하는 공연이다. 미국, 프랑스 등 기독교가 주류인 국가에서 션윈은 종교적 논란 없이 큰 인기를 끌며, 기독교계 인사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 한교총은 이를 포교로 단정 짓기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박해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션윈 관람은 신앙적 갈등이 아니라, 예술과 인권에 대한 열린 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이다. 기독교의 사랑과 관용의 정신은 션윈과 같은 예술적 표현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요구한다. (기고자-김경일 감독(PD 작가 겸 방송진행자, 前 MBC 방송작가, ‘별이 빛나는 밤에’,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 최지원 기자기고 기독교계 환영 기독교 단체 공연 관람 순수 전통문화
2025.05.07.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