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부생으로부터 뜻밖의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세계적인 공학 중심 대학의 학생이 극지 연구 협력을 요청해온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성 연구자들도 선뜻 나서기 힘든 미지의 영역에 학부생들이 먼저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발신인은 KAIST의 'SAVE THE EARTH'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에 선발된 4명의 학부생 연구팀이었다. 이들은 2025년 여름, 기후변화의 최전선인 알래스카에서 강의 '산화 변색(rusting)' 현상을 연구하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특히, 필자의 연구와 관련된 지식을 바탕으로 기후 변화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연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화 변색 현상이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흘러나온 다량의 철분이 강물을 짙은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 유출수는 수소이온농도(pH)가 2 이하의 강한 산성을 띠어, 중성(pH 7~8) 상태인 기존 하천의 수생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었다. 강바닥에는 두꺼운 철산화물 침전물이 쌓여 수생식물의 광합성을 막고, 연어와 같은 회귀성 어종의 산란처를 파괴하는 등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었다.
대기 중 오염물질이 산성비를 만들듯, 땅속에서 녹아 나온 산성 물질이 알래스카의 청정 하천을 위협하는 셈이었다.
KAIST 연구팀은 이 현상이 단순히 생태계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황색으로 변한 강물은 지역 주민의 핵심 식량이자 생태계의 중요 구성원인 토착 어류의 서식 환경을 파괴해 개체 수 감소를 유발했다.
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태계 변화가 지역 주민에게 미치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인식까지 조사하는 다차원적 연구를 계획했다. 이들은 "이번 연구가 알래스카의 생태계 보존과 주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학부생들의 과감한 도전에 긍정적인 응원을 보냈고, 연구비와 활동 제약 등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이며 두 차례의 미팅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줌(zoom)'을 통해, 두 번째는 필자가 한국을 방문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14일부터 29일까지 보름간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팀은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를 오가며 원주민과 소통하고, 강물 시료를 채집.분석했으며, 관련 전문가들과의 미팅을 이어갔다. 특히 수십 년간 강과 함께 살아온 원주민들의 증언은 기후변화가 단순한 과학적 현상이 아닌,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임을 깨닫게 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는 '맑음'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 작은 불씨는 국가적 차원의 미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가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과학 R&D 예산을 증액하는 것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극항로' 개척과 같은 거대 담론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해수부의 부산이전에 사활을 걸었다고 본다.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남방항로에 비해 운송 거리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대한민국의 수출입 물류에 거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미국이 북극해의 관문인 놈(Nome)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며 군함 입항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하는 것은 북극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는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 학부생들의 담대한 극지 연구 도전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열정이 다른 과학 분야에도 선한 영향을 미치는 기폭제가 되어, 더 많은 청년 과학자들이 미지의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가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