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미국 과학계에 드리워진 또 다른 그림자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기후변화 회의론에 기반한 연구비 삭감은 과학계를 위축시켰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훨씬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세계 과학의 중심인 미국에서 시작된 ‘연구 재난 쓰나미’가 전 세계 과학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전 세계 젊은 과학자들에게 꿈의 무대였다. 특히 인도와 중국 출신 과학자들은 미국에서 경력을 쌓고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정부 기관의 연구자들은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실직을 넘어, 미국의 과학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해고된 연구자들은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5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준비하며 국내 연구소와 대학에 초빙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수행했던 일본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당시 일본은 탄저균 풍선 개발을 위한 대기과학, 항공 및 조선 기술, 물리해양학, 철도 기술 등 광범위한 기초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독일 역시 아우토반을 위한 자동차 개발, V2 미사일, 항공기, 전차 등 중공업 기반의 무기 개발에 아인슈타인, 폰 브라운과 같은 당대 최고 과학자들을 동원했다. 종전 후 소련이 독일 과학자들을 확보하며 과학 발전을 이뤘고, 일부 독일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 과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일본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통해 축적된 의학 기술 자료를 미국이 전량 넘겨받아 자국 의학 기술 발전에 활용한 사례는 과학 기술이 가진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영국과 캐나다에서도 미국발 이민자 급증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과학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년 전 윤석열 정부의 연구비 50% 이상 삭감 사태로 한국 과학계가 겪었던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주항공기술 등 정부 출연 연구소는 물론 대학까지 연구 동력이 상실되었고, 특히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예산이 사라지면서 이들의 피난처가 미국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미국마저 연구 재난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다시 설 곳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현재 한국은 경제 상황 악화로 응용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되면서 기초 과학 분야는 여전히 ‘빙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한국 내 세계적 석학들이 정년 퇴임 후 중국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문제로, 과학자를 존중하는 일본의 경우 정년 후에도 3~5년간 연구를 지속하며 다음 세대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매년 급여를 일부 삭감하더라도 시니어 연구자의 지혜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의 ‘방랑’뿐만 아니라, 한국 석학들의 해외 유출에 대한 민감한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의 과학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석학들에게 정년 연장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북극 항로를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의 허브로 삼는 정책을 추진하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고민하는 이때, 과학 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