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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질병이다

Los Angeles

2025.09.14 18:33 2025.09.1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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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최근 LA와 애틀랜타에서 각각 70대, 50대 한인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잇따랐다.
 
따뜻한 축복 속에 결혼하고 낯선 땅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수많은 고비를 홀로 이겨냈을 한 사람의 인생.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며, 형이었고, 동생이었을 그들이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생을 저버린 비극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함께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세상을 떠난 분들과 그 주위에 남은 모든 분들께 드릴 위로의 말을 찾기 어렵다.
 
필자는 한인 사회에서 40여 년간 어려운 이웃을 돌봐 온 정신과 의사다. 그동안 점점 열악해지는 정신 질환 치료 환경을 보면서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가족 살해·자살 같은 참극이 벌어질 때마다 정신과 의사로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족의 생명을 앗아가고 자신의 목숨까지 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에서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죽음이 해답이 될 수 없다는 무언의 약속을 우리는 공유하며 살아간다.  
 
우리 인간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자연재해와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에서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사망하기도 하지만, 50년간의 정신과 의사 경험으로 볼 때 살인과 자살은 뇌의 기능이 병적으로 잘못된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에 이를 정도의 심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뇌의 이런 병적인 상황이 극심한 우울증을 유발하며, 이때 자살을 결심하는 세 가지 생각이 들게 된다. 첫째, 아무런 희망이 없다. 둘째,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셋째, 나는 도움을 받을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자신을 힘들게 만든 사회 또는 특정한 사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타인 살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악한 면이 있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결코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이처럼 병든 사람들을 제때 치료하면 모두를 살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강제 입원시키고, 뇌 호르몬 생성을 돕는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사고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병원에서 치료받고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나는 경험으로 확신한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을 생각해 보자. 코로나19의 경우, 거리두기와 소독, 검사만으로는 사망률을 낮출 수 없다. 만약 심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긴급하게 입원시켜 호흡기 치료를 한다면 대부분의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자살과 타살은 전염성이 있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은 갑자기 크게 확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병에 걸린 사람이 이미 사망하여 타인에게 전염시킬 위험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인 사회에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전무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병원 치료를 권유해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정신 질환에 대한 무지가 그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관이나 상담가도 도움을 줄 수 없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LA카운티 정신건강국이 전적으로 개입해 강제 입원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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