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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극항로 시대의 도전과 경고

Los Angeles

2025.10.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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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

김용원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

중국 국영 컨테이너 선사 ‘시 레전드(Sea Legend)’가 9월 북극을 경유하는 중국-유럽 직항 노선을 처음 운항한다고 보도됐다. 이 노선이 상용화되면 양 지역 간 해상 운송 시간이 기존 대비 절반가량 단축될 전망이다. 시 레전드는 9월 24일 러시아 북극 해안을 따라가는 북해항로(NSR. Northern Sea Route)를 통해 첫 선박을 띄워 20일간의 항해 끝에 지난 13일 영국에 도착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고, 최소 40일이 소요됐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海氷) 감소가 북극항로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새로운 해상무역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약 4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되어 해빙이 급격히 줄었다. 시 레전드는 항로 단축으로 탄소배출량이 약 50%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극해 생태계 교란과 해양 포유류의 서식지 파괴, 소음 공해 등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극한의 기상 조건과 제한된 구조·지원 인프라로 인해 안전사고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중국은 이미 2024년부터 북해항로를 통한 유럽 수출 준비를 진행해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군사·경제 협력 관계를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상업 항로 개척이 아니라 전략적 확장으로 봐야 한다.
 
중국은 1993년에 건조된 쇄빙선을 이용해 북극 해역 조사를 시작했으며, 현재는 3대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24년 이후 북극해 입구인 베링해에서 러시아와 공동 해상작전 훈련을 수차례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에는 러시아의 원자력 쇄빙선을 이용해 중국과 유럽 간 교역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인해 원유·가스 수출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중국은 야말(Yamal)반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일본 역시 사할린 천연가스를 수입 중이다. 이처럼 국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오늘날 국제 정세의 냉혹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북극해에서는 내빙(耐氷) 등급을 갖추지 못한 유조선이나 LNG 운반선이 유빙에 갇히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들 선박은 대체로 러시아 국적이지만, 제재 회피를 위해 선주를 바꿔가며 운항하는 이른바 ‘그림자 함대(Shadow Fleet)’에 속한다.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국제해사기구(IMO)의 안전 규제를 무시한 채 운항한다. 쇄빙 능력조차 없는 선박의 증가는 대형 해양사고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해빙은 줄었지만, 그만큼 북극해의 환경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 해역을 통과하는 항로는 안전규제가 거의 없고, 이는 북극 생태계의 균형과 지역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한다. 경제적 이익에 앞서 환경과 안전에 대한 국제적 감시와 규제가 강화되어야 할 때다.
 
이제 북극항로에 첫발을 내딛는 대한민국의 선박들에도 당부하고 싶다. 무엇보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준비가 필요하다. IMO의 규제 기준에 맞는 쇄빙선 및 내빙 화물선을 확보하고, 북극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는 운항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캐나다를 포함한 북동항로 전역의 해빙 존재·위치·이동 경로를 추적할 위성 연구가 필수적이다. 운항 준비의 수준이 곧 안전 확보의 척도이며, 생태계 보존의 전제다. 특히 선박 소음 저감 기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해양동물에게 소음은 치명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단기 이익에 매달리는 접근이 아니라,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준비된 대한민국의 북극항로 진출을 응원한다. 북극의 문은 이제 열렸지만, 그 문을 건너는 방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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