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마침내 대학교를 졸업했다. 딸아이는 첫 일 년은 기숙사에서 지냈고, 이후 삼 년은 여덟 명의 친구와 함께 방 3개, 그라지를 방으로 개조한 집에서 자취했다. 그들은 생활비를 절약하고자 주로 한 방에 두 명씩 살았다.
당시 아직 어린 십 대의 아이들끼리 한집에 살게 되니 나를 비롯한 다른 학부모들의 걱정이 많았다. 더욱이 한집에 함께 살면서 친구의 물건과 돈을 훔치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허락 없이 먹고, 맞지도 않는 친구의 옷을 양해 없이 입고, 심지어 몸싸움하거나, 아예 청소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쉽게 맘을 놓을 수 없었다.
그동안 집을 두 번 옮겼다. 이사를 할 때마다 하우스 메이트들의 부모들을 만나 아이들이 아무 사고 없이, 특히 마약이나 음주나 그 밖의 좋지 않은 중독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기를 함께 소망하곤 했다. 그 바람이 이루어졌으니,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물론 살다가 의견이 부딪칠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더운 날이면 함께 바닷가로 피크닉을 가고, 생일날이면 서로 축하하고, 졸업여행도 함께 다녀왔다.
졸업식장에는 풋풋함이 넘쳤다. 학과마다 따로 치러진 졸업식은 사흘이나 걸렸다. 딸의 이름이 호명되자, 어디선가 환호성이 터졌다. 친구들이었다. 서로의 졸업식에 찾아가 축하해 주는 넘치는 우정이 보기 좋았다.
졸업식 다음날, 하우스 메이트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여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나 친구 C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딸과 달리, 불안정한 신분인 그는 혹여 불시에 들이닥칠 ICE의 검문으로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광경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C의 집에서 열린 졸업 파티는 ‘낀세녜라(만 15세 생일파티)’를 떠올리게 할 만큼 성대했다. 주름진 이마, 햇볕에 그은 얼굴로, 모데로 맥주 한 병을 든 채 딸을 바라보는 C 아버지의 사진을 봤다. 할 일을 다 한 듯 홀가분해 보였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낸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 딸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이들이 세상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졸업생 대표의 연설처럼, 성공은 일직선이 아니며, 함께 변화에 대응할 때, 더 강해진다. 다음 단계는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려 있다.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것은, 곧 영혼이 깨어 있다는 증거라고. 그리고 영혼이 깨어 있는 곳마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