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서있는 자리가 있지
서로를 바라보다 떠나게 되는 자리가 있지
누군가의 자리로 걸어오는 저녁
깃털의 날림같이 공기를 밟고 오네
잎사귀 위 흐르는 푸른 핏줄 따라
가지마다 꾹꾹 찍어 쓴 편지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남겨두고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지
호흡은 거칠었지만 향기로와서
저녁 햇살 되어 녹아져 오네
벽 하나 사이 아픈 소리가 되어 오네
손을 스치는 들풀의 이야기
소리내 우는 강
너의 자리에 서면 들리는 노래
물방울처럼 모아지는 그 깊은 울음을
누가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누구나 누운자리가 하나 있지
서로를 부르다 사라지는 자리가 있지
비껴간 그림자는 허공에 달려
저녁이 되면 로즈힐 묘지로 오네
마음 한 구석 걸친 노을마져
떠나간 누이의 뒷 모습 같아서
[신호철]
저녁 노을이 곱게 물든 Ross Hill 묘지에는 정겨운 묘비 세걔가 있다. 시카고에서 10년 전 이곳에 먼져 누우신 어머니의 작은 묘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한국 선산에서 이장해온 아버지의 묘가 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묘는 큰 누이의 묘이다. 누이의 묘는 가장 늦게 한국의 교회묘지에서 이장되어 이곳에 안치되었다. 세개의 작은 묘비가 나란이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한낮의 햇살에 일광욕을 하고 어쩌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옆자리의 정다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으리라. 배고픔도 잊은채 바람에 눕는 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꽃봉오리의 개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들릴 때마다 마음이 참 좋다. 한꺼번에 보고싶은 부모님과 큰누이까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큰누이 묘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누이 얼굴이 바람결에 정겹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꾸 쓰러지셨다. 그때 누이는 고등학생 3학년이었지만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셨다. 약한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아래로 여동생 셋과 남동생 하나를 위해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중압감에 잠못 이루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중 2대 국회 도서관장으로 발탁되셨다. 청렴결백 하셨던 성품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을 사과궤짝 밑바닥에 넣어 청탁 온 사람을 꾸짖어 돌려보냈다 하셨다. 물질에 관심이 없으셨기에 모아둔 돈도 없었고 그저 집 한채 남겨 놓으신 게 다였다. 큰누이는 대전역전에 큰 병원을 운영하시는 큰아버지에게 대학 진학을 상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도와줄 수 없다는 냉냉한 반응이었다. 누이는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되었다. 큰 용기를 내어 찿아간 마지막 희망이 좌절되었다. 누이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없었다. 누이는 힘든 세상에 홀로 내몰려 끝내 피지못하고 스스로 꺾여진 꽃봉오리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이를 먹어 그 때 누이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누이의 소매를 붙잡고서라도 막았을 것이라고. 대전 큰 아버지를 찿아가 눈물로 호소했을 것이라고. 이제 환하게 피어날 나이에 아버지의 부재로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안고 힘든 나날을 보냈으리라. 어느날 짧은 편지 한통을 남기고 스스로 꽃대를 꺾어버리고 말았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얼마나 쓸쓸했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초등학생이 아닌 노년이 되어 스무살 누이를 마주하고 있다. 누이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바람에 풀잎을 흔들었다.누이는 아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처진 어깨를 따뜻이 안아줄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누이의 묘위에 걸친 노을이 천사의 큰 날개가 되어 내게로 온다.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