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지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유의 기쁨은 빈 손일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이다. 모든 걸 다 가지면 갖고 싶은 것들이 사라진다.
어릴 적 헝겊으로 만든 예쁜 인형을 갖고 싶었다.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동네에는 도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예쁜 인형을 가진 애들이 없었다. 인형을 본 적도 없지만 나이든 언니 있는 동무들은 자투리 헝겊으로 인형은 만들었다.
근동에서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지만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인형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동무들이 인형을 업고 다닐 때 베게를 포대기에 싸서 업었다.
옥이언니는 내 유년의 구세주다. 빛나는 환상이다.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참한 아기인형을 만들었다.
부엌에서 타다 남은 장작 부스러기로 둥글게 눈썹을 그리고 숯덩이를 골라 피카소 그림의 여인들 눈처럼 삐딱하게 선을 그린 뒤 비율에 안 맞는 동그라미를 눈동자로 그려넣었다. 머리와 팔다리는 솜을 뭉쳐 만들고 몸통은 쌀이나 나락 찌꺼기를 도톰하게 넣었다. 참꽃이나 장미꽃잎을 으깨 입술을 칠하면 20세기 큐비즘 시대를 알리는 ‘장밋빛 시대’를 우리기 먼저 연 셈이다.
천경자 화백의 ‘길례언니’는 아름다운 꽃모자를 쓰고 긴 손가락으로 턱을 살짝 고이는 우아한 모습인데 비해 나의 옥이 언니는 세상풍파를 헤쳐나가는 씩씩한 선장처럼 늠름하다.
자전소설 찔레꽃에는 남매를 키우는 나의 어머니 ‘해연’과 원조 현풍할매곰탕 창업주 ‘소선’의 슬픈 사연과 아름다운 인연이 담겨 있다. 옥이 언니는 소선할매 딸이다. 가난으로 떠돌던 언니 가족이 언제 마을로 들어와서 동고동락하며 살게 됐는지 기억이 없다. 유년의 추억 속 언니는 잘 익은 감처럼 달달하고 휘영청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나부낀다.
지금은 여장군이지만 어릴 적엔 키가 작고 비실비실 했다. 뇌일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내가 두살 때 돌아가셨다. 딸이 부실한 것이 남편 병구환 하느라고 돌보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해서 나는 엄마나 언니의 등에 업혀 자랐다.
엉덩이를 살짝 흔들며 날 업고 언니가 동네를 한바퀴 돌면 동네 총각들이 일손을 멈추고 흠모의 몸짓을 보내는데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번 공주는 영원한 공주.’ 나무꾼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어도 스스로 공주라 믿으면 영원한 공주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인증샷 무시하고 스스로 붙인 타이틀 갖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 인간(?)답지 않다.
기막힌 떠돌이 생활로 학교 다닌 적이 없어 보이지만 언니는 모르는 것 빼고는 다 안다. 하늘을 우러러 땅이 품는 진리에 익숙해지면 배우지 않아도 깨우침의 경지에 도달한다. 어차피 인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여정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매달지 않으면 가진 것이 없어도 넉넉하게 산다. 죽는 것이 두려우면 살아있는 시간에 감사하면 된다. 지나온 날보다 남은 시간에 몰두하면 지난 날의 추억이 향기로 다가온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건 망설이지 않고, 생각만 하기 보다 실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며, 오늘이 이땅에서 보내는 마지막이라 해도 별을 가슴에 품고 떠날 생각 하면 슬프지 않다.
인생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제 갈 길 걸어가는 여정이다. (Q7 Edition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