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K타운 맛따라기] 살랑살랑 만나는 행복한 맛

Los Angeles

2025.08.10 16:5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 너머로 정담을 나누고, 각자의 취향대로 익힌 고기와 채소를 건져 먹는 풍경. ‘샤부샤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식 경험을 상징한다.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는 일본어다. 의태어로 살짝살짝, 찰랑찰랑을 의미한다. 얇게 썬 고기를 살랑살랑 가볍게 흔들어 먹는 소리가 음식의 이름이 됐다. 이 일본 요리는 LA 한인 사회에서도 외식 문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리틀도쿄의 터줏대감, ‘샤부샤부 하우스’가 있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인 노주인이 지키던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예약은 사치였고,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오픈런’과 기나긴 기다림은 최고의 고기를 맛보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고기 한 점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은 고객들의 자존심을 기꺼이 내려놓게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연로한 주인이 가게 문을 닫았을 때, 많은 이들이 그 맛을 그리워 했다. 그리고 1년여의 공백 끝에, 옆집에서 한국식 핫도그로 명성을 떨친 ‘투핸즈’의 한인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한인타운에서 ‘이씨화로’를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전설적인 공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성업 중이다.
 
샤부샤부 하우스의 기다림에 지친 이들의 대안이었던 곳은 혼다 플라자의 ‘카가야(Kagaya)’, 현재의 ‘텐쇼(Tensho) 샤부샤부’다. 이곳 역시 긴 줄을 감수해야 하는 명소지만, 프리미엄급 고기를 질 좋은 사케나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련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친절한 서비스와 식사 후 제공되는 일품 아이스크림은 이곳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다.
 
한인타운 샤부샤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웨스턴 길의 ‘웨스턴 샤부샤부’를 빼놓을 수 없다. 한인타운 1호점 격인 이곳은 훗날 ‘복가’, ‘무봉리’로 주인이 바뀌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 ‘샤부샤부 하우스’를 벤치마킹해 야심 차게 문을 열었던 ‘칸 샤부샤부’ 역시 원조의 폐업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으며 그 운명을 같이했다.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명동돈까스 사장이 버몬트와 7가에 잠시 선보였던 ‘샤부미’, 한국 브랜드로 윌셔와 웨스턴에 문을 열었으나 건물 재개발로 사라진 ‘샤부향’ 등은 한인타운 샤부샤부 시장의 부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인들의 입맛에 맞춰 독창적인 메뉴를 탄생시킨 사례도 있다. ‘서울회관’ 1대 사장이 개발한 ‘칭기즈칸’이 바로 그것이다. 맹물이나 단순한 다시 국물을 쓰는 일본식과 달리, 깊은 맛의 육수를 사용하고 프리미엄 등심을 육각으로 정형해 얇게 썰어내는 방식은 샤부샤부의 한국적 재해석이라 할 만했다. 80년대 한국에서 초빙된 주방장이었던 1대 사장의 손맛은 이제 건물을 인수한 2대 사장에게로 이어져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Hot Pot)’의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사천식 매운 육수를 비롯한 다채로운 육수를 선택할 수 있는 ‘하이디라오(Haidilao)’는 이제 딘타이펑과 함께 미국 주류사회에 가장 널리 알려진 중식 브랜드가 되었다. 수타면 장인이 춤을 추듯 면을 뽑아내는 퍼포먼스는 식사의 즐거움을 더한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 한인타운의 샤부샤부 지형도를 완전히 바꾼 게임체인저, ‘샤부야(Shabuya)’가 등장했다. 윌셔와 윌튼의 옛 노래방 자리에 1호점을 연 ‘샤부야’는 ‘무제한 샤부샤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건물 재개발로 올림픽 길로 이전한 후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며, 라미라다, 파운틴밸리, 라스베이거스,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샤부야’의 성공은 옛 별대포 자리에 문을 열었다가 윌셔 길로 이전한 ‘본샤부(Bon Shabu)’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두 식당은 한인타운 무제한 샤부샤부의 ‘2강 체제’를 구축했다. 이 열기는 부에나파크, 세리토스 등지로 확산하며 각 지역 상권의 강자들을 탄생시켰다.
 
리틀도쿄 장인의 뚝심에서 시작해 한국식 칭기즈칸의 탄생, 중국식 훠궈의 가세, 그리고 무제한 샤부샤부의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LA의 샤부샤부 지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해왔다.  
 
이 역사는 단순히 ‘음식 트렌드’라고만 한정하기 어렵다. 일본 장인의 가게를 한인 청년 사업가가 계승하고,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메뉴가 수십 년간 사랑받으며, 한인 브랜드가 주류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이 모든 과정은 한인 커뮤니티의 역동성과 적응력, 그리고 성공의 연대기를 담고 있다.
 
오늘 저녁, 가족 혹은 가까운 이들과 함께 보글거리는 육수 앞에 둘러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 얇은 고기 한 점을 살랑살랑 흔들어 입에 넣는 순간, 깨닫는다.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진리를.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