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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살랑살랑 만나는 행복한 맛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 너머로 정담을 나누고, 각자의 취향대로 익힌 고기와 채소를 건져 먹는 풍경. ‘샤부샤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식 경험을 상징한다.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는 일본어다. 의태어로 살짝살짝, 찰랑찰랑을 의미한다. 얇게 썬 고기를 살랑살랑 가볍게 흔들어 먹는 소리가 음식의 이름이 됐다. 이 일본 요리는 LA 한인 사회에서도 외식 문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리틀도쿄의 터줏대감, ‘샤부샤부 하우스’가 있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인 노주인이 지키던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예약은 사치였고,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오픈런’과 기나긴 기다림은 최고의 고기를 맛보기 위한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고기 한 점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은 고객들의 자존심을 기꺼이 내려놓게 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연로한 주인이 가게 문을 닫았을 때, 많은 이들이 그 맛을 그리워 했다. 그리고 1년여의 공백 끝에, 옆집에서 한국식 핫도그로 명성을 떨친 ‘투핸즈’의 한인 사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한인타운에서 ‘이씨화로’를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전설적인 공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성업 중이다.   샤부샤부 하우스의 기다림에 지친 이들의 대안이었던 곳은 혼다 플라자의 ‘카가야(Kagaya)’, 현재의 ‘텐쇼(Tensho) 샤부샤부’다. 이곳 역시 긴 줄을 감수해야 하는 명소지만, 프리미엄급 고기를 질 좋은 사케나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련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친절한 서비스와 식사 후 제공되는 일품 아이스크림은 이곳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다.   한인타운 샤부샤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웨스턴 길의 ‘웨스턴 샤부샤부’를 빼놓을 수 없다. 한인타운 1호점 격인 이곳은 훗날 ‘복가’, ‘무봉리’로 주인이 바뀌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 ‘샤부샤부 하우스’를 벤치마킹해 야심 차게 문을 열었던 ‘칸 샤부샤부’ 역시 원조의 폐업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으며 그 운명을 같이했다.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명동돈까스 사장이 버몬트와 7가에 잠시 선보였던 ‘샤부미’, 한국 브랜드로 윌셔와 웨스턴에 문을 열었으나 건물 재개발로 사라진 ‘샤부향’ 등은 한인타운 샤부샤부 시장의 부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인들의 입맛에 맞춰 독창적인 메뉴를 탄생시킨 사례도 있다. ‘서울회관’ 1대 사장이 개발한 ‘칭기즈칸’이 바로 그것이다. 맹물이나 단순한 다시 국물을 쓰는 일본식과 달리, 깊은 맛의 육수를 사용하고 프리미엄 등심을 육각으로 정형해 얇게 썰어내는 방식은 샤부샤부의 한국적 재해석이라 할 만했다. 80년대 한국에서 초빙된 주방장이었던 1대 사장의 손맛은 이제 건물을 인수한 2대 사장에게로 이어져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Hot Pot)’의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사천식 매운 육수를 비롯한 다채로운 육수를 선택할 수 있는 ‘하이디라오(Haidilao)’는 이제 딘타이펑과 함께 미국 주류사회에 가장 널리 알려진 중식 브랜드가 되었다. 수타면 장인이 춤을 추듯 면을 뽑아내는 퍼포먼스는 식사의 즐거움을 더한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 한인타운의 샤부샤부 지형도를 완전히 바꾼 게임체인저, ‘샤부야(Shabuya)’가 등장했다. 윌셔와 윌튼의 옛 노래방 자리에 1호점을 연 ‘샤부야’는 ‘무제한 샤부샤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건물 재개발로 올림픽 길로 이전한 후에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며, 라미라다, 파운틴밸리, 라스베이거스,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샤부야’의 성공은 옛 별대포 자리에 문을 열었다가 윌셔 길로 이전한 ‘본샤부(Bon Shabu)’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두 식당은 한인타운 무제한 샤부샤부의 ‘2강 체제’를 구축했다. 이 열기는 부에나파크, 세리토스 등지로 확산하며 각 지역 상권의 강자들을 탄생시켰다.   리틀도쿄 장인의 뚝심에서 시작해 한국식 칭기즈칸의 탄생, 중국식 훠궈의 가세, 그리고 무제한 샤부샤부의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LA의 샤부샤부 지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해왔다.     이 역사는 단순히 ‘음식 트렌드’라고만 한정하기 어렵다. 일본 장인의 가게를 한인 청년 사업가가 계승하고,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메뉴가 수십 년간 사랑받으며, 한인 브랜드가 주류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이 모든 과정은 한인 커뮤니티의 역동성과 적응력, 그리고 성공의 연대기를 담고 있다.   오늘 저녁, 가족 혹은 가까운 이들과 함께 보글거리는 육수 앞에 둘러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 얇은 고기 한 점을 살랑살랑 흔들어 입에 넣는 순간, 깨닫는다.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진리를.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행복 한인타운 샤부샤부 웨스턴 샤부샤부 샤부샤부 하우스

2025.08.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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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행복을 그리는 그림 일기

구글에서 찾아보니 ‘취미’는 즐거움을 위한 활동이고, ‘특기’는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이나 재능을 의미한다고 써있다. 이 두 단어가 인생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지, 경험을 나누려한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둥지를 떠난 후, 우리 부부만 남은 집은 너무 적막했다. 하루는 길었고,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미술 도구조차 없어 그림 그릴 엄두도 못 냈던 기억 때문일까. 망설임 없이 수채화 물감, 붓, 스케치북, 이젤까지 샀다. 그 순간의 뿌듯함과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집 발코니에 가득 피어있던 붉은 베고니아 화분을 처음 그렸다. 명암도 원근도 무시한 서툰 그림이었지만, 거실 벽에 기대어 세워둔 그 그림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격과 행복감에 온 마음이 베고니아로 가득 찼다. 손님들이 그림을 칭찬하며 “누가 그렸느냐”고 물으면, “취미로 시작했고,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라고 답하곤 했다. 학창 시절 이론만 배웠던 미술 시간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는 자부심에 취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이주한 후, 손녀의 아트 교실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면서 나도 그림을 다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았다.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주 1회 수업을 결정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다시금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제 정말 ‘그림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고등학교 때 적성 테스트에서 내 공간 지각 능력 점수가 형편없이 낮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리력과 추리력은 만점에 가까웠지만, 예능 감각과 직결되는 공간 지각 능력은 80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림 그리기는 타고난 능력이 부족한 분야였던 것이다. 여행 중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으로는 만족 못 하고 늘 그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 자식들은 나의 그림을 좋아했다. 장미를 뭉개듯 그려도, 해바라기를 들국화처럼 그려도, 어른을 아이처럼 그려도 “엄마 그림이라 좋다”며 너그럽게 봐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인 사위의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미술을 전공했는데, 그분들이 내 그림에서 “아마추어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함이 있다”며 한국에서 그린 제라늄 그림을 부엌 벽에 걸어 두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년은 10학년 손자가 우리 집에서 지냈다. 운동에 특기가 있는 손자는 본인의 실력 향상을 위해 부모형제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전학을 왔다. 공부만 하는 집안에서 운동을 하겠다니,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다. 처음엔 잠시 그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손자는 옆도 뒤도 안 보고 학교생활과 클럽 스케줄에 몰두했다. 몸에 해로운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까지 보였다. 손자는 취미와 특기가 같은 경우였다. 스스로 즐겁게 운동하며 열심히 노력하니 성과 또한 뛰어났다.   이제 손자도 제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1년 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너무 오래 쉬어서 아직 엄두가 나지 않지만, 나는 붓을 놓지 못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나를 잘 아는 동생은 잘하는 일을 하지 왜 그림으로 씨름하느냐고 하지만, 그저 즐거우니까 계속하게 된다고 말한다. 오롯이 즐거움을 위한 취미 생활이 되어야 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영희 / 수필가이아침에 행복 그림 아마추어 그림 제라늄 그림 엄마 그림

2025.07.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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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행복한 사람’ 조동진, LA에 남긴 노래

대한민국 60년 포크 음악사에서 어쿠스틱 기타에 본인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여 활동한 포크 1세대 싱어송라이터들은 서유석,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동진,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 이필원, 백영규, 정태춘, 방의경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80년대부터 2000년대 포크 팝 음악의 중심에는 언제나 조동진이 수장으로 포크 음악계를 이끌었다.   조동진은 계절과 사람, 자연을 배경으로 노래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라 할 수 있다. 한 편의 서정시를 읊조리듯 나지막한 목소리와 노랫말, 잔잔한 선율은 그 당시 시대의 유감을 노래에 담아 표현한 가수들과는 달랐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노래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작은 배’, ‘배 떠나가네’ 등 60여 곡에서는 한결같이 높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찾아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함동균은 “미국에 노벨문학상 수상 가수 밥 딜런이 있다면 한국에는 조동진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동진 음악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의 음악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후배 뮤지션 들도 여럿이 있다. 시인과 촌장, 한동준, 유희열, 김광석, 김현철, 김광진, 조동익, 장필순, 이규호, 고찬영 등인데 그들은 지금도 추모 음악회를 통해 조동진의 음악을 기리고 음악적 유산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동진과 LA한인들의 첫 만남은 언제였을까. 1985년 3가와 라브레아 코너에 가수 이장희가 운영하던 붉은벽돌 카페 ‘로즈가든’ 콘서트가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86년 추억의 열기로 가득 찬 헐리트론 포크 페스티벌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 무대에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이종용, 양희은과 함께 무대에서 노래했다. 또 1994년 그가 음악 총감독으로 기획, 연출해 ‘제2의 대학 가요제’라 불린 ‘아남 델타 가요제’ 미주 예선 대회도 있었다.     그 이후 7080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조동진 단독 콘서트를 여러 번 기획하고 섭외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제주도 생활이 장기화되면서였다. 결국 LA 단독 콘서트의 꿈은 이루지 못한 채 그는 나뭇잎 사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올해는 조동진이 세상을 떠난 지 8주년이다. LA에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뮤지션들과 팬들이 많다. 그리고 조동진과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대광고등학교 18회 동기동창들도 2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돌아오는 9월, 가을이 스밀 때 소규모라도 아름다운 추모 음악회를 마련해 보고 싶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조동진 행복 조동진 음악 이장희 조동진 포크 음악사

2025.06.2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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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마라톤에서 얻는 행복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처럼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꽃’은 다른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관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이 지나쳐 집착으로 변하면 더 피곤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항상 기운이 없고, 쉽게 피곤해지고, 짜증도 많아졌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것도 망설였다. 스스로는 ‘늙어 가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증상들에 대해 우울증, ‘번아웃(burnout)’, 또는 스트레스나 갱년기(menopause)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 이런 단어들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그렇게 단정 지어버린다.   그렇게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예 회피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약물이나 술 등에 의존하는 경우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도피일 뿐, 진정한 도움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중독이라는 더 심각한 병을 만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육체적 피곤함에 의미를 부여해 버리기 전에 자신을 다잡기로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여성 건강, 특히 중년 여성 건강에 대해 많은 전문가의 다양한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조언은 야채 위주의 건강 식단, 꾸준한 운동과 숙면, 그리고 명상(meditation)을 통해 정신 건강을 챙기라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한 시간 동안 성경을 읽고 명상을 한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내려놓는 것, 나에 대한 의미와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한 시간을 달렸다.   마라톤 동호인 모임에 처음 참석한 것은 2017년이었다. ‘마라톤 완주’가 버킷리스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LA마라톤을 완주했고, 마라톤은 그것으로 마지막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달리고 있다.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보스턴 마라톤 참가 자격을 따는 것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동호인 모임이 열리는 주말이 기다려지고, 삶이 더 건강해졌다. 지금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기에 토요일 새벽이면 패서디나의 로즈보울로 부랴부랴 향한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순간이 행복하다. 뛰는 동안 나에게 집중하게 되고, 마음은 맑아지고, 스트레스는 흘러가듯 사라진다.   얼마 전, 지니 라이스라는 한인 여성 마라토너의 기사를 보았다. 77세의 나이에 25세 여성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이다. 지난해 런던 마라톤을 3시간 35분에 완주했다.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이 우리 동호인 모임(여성드림러닝팀·WDRT) 초청으로 이번 주 토요일(28일) 패서디나 로즈보울 브룩사이드 공원에서 강연을 하신다니 정말 기대가 크다.   뛰면 건강해진다.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삶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이윤정 / 간호 실무 박사(DNP)이아침에 마라톤 행복 마라톤 동호인 마라톤 완주 보스턴 마라톤

2025.06.2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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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앵커 재정보험] "안전하고 행복한 은퇴, 지금 시작하세요"

어뉴이티 롱텀케어 전문 에이전시 '블루앵커 재정보험'에서 오는 31일(토) 오전 10시에 버뱅크에 위치한 버뱅크 호텔에서 은퇴 재정 세미나를 개최한다.     지난 3월과 4월에 있었던 두 번의 은퇴 세미나가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에서 개최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 세미나는 엘에이 북쪽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고려해 버뱅크 지역에서 진행된다.     '은퇴 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은퇴 재정 세미나를 통해 블루앵커 재정보험은 현재의 어려운 투자환경을 극복하고 보다 편안하게 은퇴를 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특별히 은퇴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평생 받을 수 있는 연금과 롱텀케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안내하는 등 복잡한 재정 계획의 쉽고 확실한 방법을 공개한다. 나아가 투자 손실 걱정 없는 안전한 은퇴 자산 관리, 소셜 연금처럼 평생 나오는 편안한 연금 플랜, 401K 롤오버로 똑똑하게 자산 운용하는 법, 가족과 나를 위한 현명한 롱텀케어 준비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다.     블루앵커 재정보험 측은 "전문가와 함께 쉽고 확실한 은퇴 자산 관리 방법을 배워볼 수 있는 기회"라며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고 있기에 지금 바로 신청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문의 및 세미나 신청은 전화로 할 수 있다.     ▶문의 : (213)887-6200   ▶주소: 호텔 버뱅크(Hotel Burbank, 150 E. Angeleno Ave. Burbank)블루앵커 재정보험 안전 행복 은퇴 세미나 은퇴 자산 은퇴 재정

2025.05.23.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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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행복과 불행

이름은 마리아. 맨해튼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며 바지와 재킷 수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주문을 받고 자기소개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을 끄집어냈다. 며칠 전 아니면 몇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 하고 측은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25년 전 이야기라고 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제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심각했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니까 다음 주에 찾으러 오겠다고 나갔다.     그녀는 간호사로 남편은 투자은행에서 일했고 맨해튼 고급 빌라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과로로 쓰러졌다. 치료를 받고 건강한 상태로 일했는데 일이 과중해 주말도 평일에도 늦게까지 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남편도 일을 즐기며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일을 줄이고 휴식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산소통을 끼고 살았는데 마리아도 간호사를 그만두고 남편 간호에 모든 정성을 다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깐 나간 사이에 남편이 침대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 뒤로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며 심한 우울증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마리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스트레스 상황을 겪고 난 후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그때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하고 자신에게서 불행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가 잘못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생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이 없는 질문을 반복하며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자책감과 죄책감에 빠졌다. 우울증이 우리 뇌에 부정적인 것만 유난히 잘 보이도록 만들어졌는가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평생 연구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에 의하면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고 불행의 이유는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좋게 나왔을 때 행복한 사람은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적 향상을 위해서 일정 부분 자기반성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반성을 넘어선 자책을 하므로 우울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인생에서 겪는 대부분의 일은 나로 인해 생기기보다 외부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처럼 불행에 대해 자신 내부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일은 지진 피해를 보고 나를 탓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문제를 찾는 것을 태생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어디에 두고 바라볼지는 내 결정에 달렸다. 물론 남 탓을 많이 하자는 말은 아니다. 지나친 남 탓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행복한 일만큼 불행한 일이 넘치며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지 밖에서 찾을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다. 행복한 일은 나에게서 불행한 일은 외부에서 찾는 습관이 행복한 삶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법륜 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행복해지는 데는 이렇게 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만족하면 바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스님의 말처럼 이 순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지금 바로 행복의 계단을 올라타고 올라갈 수도 불행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 마리아가 올 때마다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우리 남편 죽었다고 했던 가로 큰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싫어 오렌지를 내밀면서 맛있다고 내가 그녀의 말을 막아 버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불행 남편 간호 우리 남편 휴식 시간

2025.05.12. 22:29

[이아침에] 가장 행복한 날

몇 해째 이어지던 소송에 지쳐 있을 때였다. 삶은 고달프고 하루하루는 메말랐다. 오로지 견뎌내야 한다는 일념에 매달려 안간힘을 쏟을 뿐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여 단골 레스토랑에서 나누던 브런치도 어느새 먼 기억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면, 그때 가서 다시 시작하리라 막연히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모시고 늘 가던 맥도널드 대신 새로 문을 연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신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물으셨다. “언제 이런 멋진 곳을 알아두었니?”     어머니 얼굴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가 내 마음결에 밀려들어와 속삭이듯 일깨웠다. 어떤 형편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가족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기로.   어머니는 초록의 새순을 피워내는 봄 나무 같으셨다. 인고의 겨울을 잠잠히 견디며,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나를 감싸주셨다. 사소한 일에도 ‘고맙다’시며  밝은 미소를 지으셨고, 말끝에 머무는 미소는 봄 햇살처럼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그 미소를, 나는 너무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주말,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머니, 두 아들, 며느리, 손주들, 그리고 나. 온 식구가 둘러앉아 나누는 식사는 묵혀 두었던 단란함을  모처럼  맛보게 했다. 식탁 위로 흐르는  웃음소리가 마치 오래된 악보 위에 새롭게 얹히는 기쁨의 선율 같았다. 우리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을 ‘가족이 함께하는 날’로 정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가족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야.”     그러곤 가는 길에 99센트 스토어에 들르자고 하셨다. 하얀 플라스틱 공을  집어들고  “이거 사도 될까”. 머뭇거리듯 한 어머니의 물음 속에, 그나마도 주저하는 애틋한 염려가 묻어 나왔다. 목이 메었다. “갖고 싶은 건 다 사세요”라 툭 던지듯 말했지만, 목울대 너머로 울컥함이 밀려와 시선을 돌렸다.   다음날, 어머니 집 장식장 한켠에 놓인 하얀 공을 보았다. ‘별것 아닌 걸…’하는 표정을 짓자,  어머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공으로 놀면 운동도 되고, 저기 두고 바라보는 재미도 있어”. 그렇게 보니 조명 아래 은은한 형광 빛을 머금은 공이 둥근 달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 달 후, 두 번째 가족 브런치를 앞두고 어머니는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장식장 한가운데 놓인 공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버리려다 문득 공 한쪽에 적힌 글귀를 발견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우리 가족 함께하는 날. 나의 가장 행복한 날.’ 그 곁에는 정성스럽게 그려진 한 다발의 꽃.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어머니에게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함께하는 날이었다. 어머니의 행복이 너무 소박해서, 그래서 더 가슴이 메어졌다.   지금, 그 공은 내 장식장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옆에는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니의 사진이 자리한다. 미소 너머로 어머니가 남기신 말들 속에 심겨 있던 행복을 되새겨 본다. 어머니가 일상의 삶으로 보여주신 행복을 지켜가고 싶다. 작은 행복이지만, 가장 큰 행복이다. 이영신 / 수필가이아침에 행복 어머니 얼굴 가족 브런치 다음날 어머니

2025.05.0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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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나는 행복한 호랑나비

그날, 오후가 내려앉던 풀숲에 눈길을 끄는 움직임이 있었다.   처음엔 누군가 색종이를 오려서 숲으로 날려 보냈나 했다. 오후의 아지랑이가 여러 가닥으로 옅어지자,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온몸을 노랑과 검은색으로 휘감은 호랑나비 두 마리였다.     화사한 의상으로 단장한 그들 한 쌍의 호랑나비는 그러나 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몸놀림은 수줍었다. 날개를 조금씩 털며 작은 나뭇가지에 나붓이 앉아 있었다. 현란한 색의 의상을 휘날리며 하늘하늘 비상을 계속해야 십상인데 의외였다.   그들은 몇 시간 전에 부화해서 허물을 벗고 막 그물망을 벗어난 어린 호랑나비들이었다. 아직 몸이 덜 말라서 날갯짓을 할 기력이 부족하다. 힘을 비축해 창공 높이 날아오를 꿈을 꾸며 햇볕에 몸을 말리는 중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날개를 움직여 삽시간에 건너편 숲으로 사라졌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후배 P의 집 뒤뜰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건 태평양과 대서양의 거리만큼 아득한 느낌의 허탈함이었다.     후배 P의 집을 방문했던 그날, 그녀는 우리를 뒤뜰로 안내해서 천으로 덮어 놓은 그물망을 보여줬다. 거기엔 어른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초록색 나무 막대 같은 생물이 여럿 있었다. 호랑나비 애벌레라는데 곧 탈피해서 날아오를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 장관을 보여주겠노라 했다.   코로나 델마에 있는 로저스 가든에서 밀크 위드(Milk Weed) 화분 두 개를 샀다. 하루 정도 베란다에 화분을 놓아두었다. 이틀 후에 보니 깨알 같은 흰점이 화분마다 두어 개씩 흙 위에 돋아나 있었다. 어느 틈에 호랑나비가 찾아와 성은을 내려준 것이다. 미리 짜둔 넓은 그물망 안에 화분째 넣어 주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에 그 알들은 가느스름한 까만 점으로 변했다. 알들이 제대로 자라고 있었다. 두 주일 후부터 알들이 고물고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밀크위드 여기저기에 구멍이 났다. 알들이 잎사귀를 파먹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쪽은 머리로, 다른 쪽은 꼬리로 짐작되었고 몸통에는 가느다랗게 노랑 줄과 검정 줄이 세로로 희미하게 그어져 있었다.   2주가 지나 3주에 접어들자 왕성한 식욕이 없어지고 하루 종일 기어다니기만 했다. 고치가 되려고 먹이는 안 먹고 헤매던 그들은 어느 순간 천정을 찾아 올라갔다. 몸에서 끈적끈적한 하얀 액체를 분비해서 거기에 몸통을 걸고 매달렸다.     그때까지도 노랑과 검정 몸통이던 그들은 하루 정도 지나자, 몸을 비틀어 허물을 털어내고 어른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쭉한 초록색 물체로 변했다. 그렇게 열흘 내지 2주 정도 매달려 있다가 그들은 차례대로 몸을 비틀어 허물을 벗어 던졌다. 초록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며 몸이 갈라지다가 어느 순간 호랑나비의 형체를 갖췄다.   몸이 덜 말라서 아직 날 수 없는 그들은 조용히 그물망 안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게 될 때를 기다린다. 보통 서너 시간 후면 날개를 대충 말리고 성급한 순서대로 한 마리씩 그물망에서 탈출한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그새 날개 근육이 퇴화해서 날지 못할 수도 있다.     망을 활짝 열고 가느다란 젓가락을 몸에 갖다 대어주면 기꺼이 그것을 의지해서 날아간다. 그들이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최적의 시간은 오전 열한 시에서 오후 세 시 사이다. 새벽에 모이를 충분히 먹은 새들의 움직임이 뜸한 시간이다. 어릿어릿한 나비들이 노련한 새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새들의 먹이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는 오후 4시 이후의 시간도 피해야 한다.   그물망을 빠져나오면 몸을 충분히 말리기 위해 그들은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나뭇가지를 찾아가 앉는다. 마치 마지막으로 나를 즐기세요! 하는 듯한 몸짓이다. 두엇쯤 모여서 날개가 다 마르면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둘이서 ‘파 드 두(pas de deux·남녀 둘이 추는 춤)’를 추면 머지 않아 뒤늦게 부화한 새내기들이 선임들과 합류해서 함께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군무)’를 펼친다. 인근 숲이 나비들의 춤사위로, 노랑과 검정의 축제로 무르익는다. 지난 두 달여간의 노고와 기다림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다음 해에 아들과 딸은 각기 가정을 이루고 곧 아이들이 태어났다. 첫 손자가 태어나고 2주 후에 외손자가 태어났다. 두 아이는 키도 체중도 늘 고만고만하게 자랐지만 성격은 판이했다.     친손자는 음표로 표현하면 스타카토로 통통 튀는 매력이 있고 외손자는 신중하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녀석이다. 할아버지의 품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관심과 사랑을 배나 더 주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그들의 일상은 때론 벅차기도 했다.   두 아이의 각급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날은 자주 겹쳤다.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날은 물론이고 학우들과의 관계에서 적잖은 상처를 받은 날, 콩쿠르에서 기대했던 순위에 들지 못한 날 등, 열여덟 해에 걸친 그들 성장의 고비마다, 성공과 좌절의 순간마다 내게 부딪히는 임팩트는 늘 두 배였다.     할머니는 동시에 기쁨과 근심을 표현하고 두 개의 금일봉을 준비하고 두 곳의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친구 문제로 의논해 올 때 피드백을 주고 공감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두 아이의 친구들 이름과 그 부모들 원래의 고국도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토트넘 손흥민 선수 동료들의 등번호와 출신 국가명을 숙지할 때처럼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따로 수첩에 적어서 들고다녔다.   두 아이가 올해 나란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저녁마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여러 대학 이름과 순위, 그리고 입학허가서를 제출하는 시기와 에세이를 작성하는 방법 등, 여러 얘기들이 화두에 오른다.     저들의 부모가 대학에 진학하던 당시에도 그 과정을 거쳤고 내가 유학 올 때도 밟은 절차이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녀석의 진학 드라마는 다채롭다. 각 대학마다 다른 입학 사정 과정과 또 지원자들에게 합격과 불합격을 통보하는 방법과 시점 등을 매일매일 거의 시간 단위로 듣고 있다.     하입슴(HYPSM) 학교들 가운데 S와 M은 아이비가 아닌 스탠포드와 MIT의 머리글자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얼마 후면 그들은 덜 여문 깃털을 팔랑거리며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꽃은 피어 있지만 위험한 새들은 없는 길이었으면 한다. 아늑한 그물망을 벗어나 낯선 도시의 상아탑에서 그들의 날개는 단단해지고 지식과 지혜가 쌓이리라.   여기 한적한 바닷가에서 먼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하고 지식과 지혜의 만선(滿船)을 타고 오는 나비들을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어린 나비들이 있어 나는 행복한 호랑나비다. 유니스 박 / 수필가문예마당 호랑나비 행복 순간 호랑나비 마리씩 그물망 후면 날개

2025.04.17. 18:30

[이 아침에] 리사에게, 다시 행복하기로 약속할게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돌아올 마음이 없다면 애초에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는 것이 힘들 때, 고독의 그림자가 발목을 잡을 때. 주름진 생의 고비마다 떠나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허무와 방랑의 끝자락에서 그래도 돌아가야 할, 지켜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행복인가.   리사가 마지막 내게 남긴 편지 접어 가방에 넣고 여행길에 오른다. 리사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믿기 어렵지만 리사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은 태양이 지고 뜨는 것처럼 확실하게 아프다.     리사는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순수하고 착한 천사였다. 퍼즐과 레고 게임 천재고 유머가 가득한 멘트로 가족들과 이웃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사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탈없이 건강하던 리사가 응급실에 실려가기 5일 전에 쓴 편지다.     ‘엄마는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 엄마는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모두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마워요. 리사가(Mom you deserve to be happy. You are a very special person. Be happy all the time. Everybody loves you. You deserve happiness always. Thank you, Lisa.).’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가 너무 기특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더니 리사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것이 리사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됐다. 나를 두고 홀로 떠나는 자신의 죽음을 리사는 감지하고 있었을까.     인생의 길은 수만 갈래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어 가야할 길이 어딘지 알지 못한다. 꿈꾸고 염원하는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길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 연날리기 할 때 연실을 한없이 풀어내야 하는데 기술 부족으로 내 연은 잘 끊어 먹히거나 땅바닥에 내 동대기 치기 예사였다. 그래도 찔레꽃 넝쿨 앞에 앉아 어질어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취해 졸음을 참던 순간은 따스하고 행복했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살면 살아진다. 청춘은 늙지 않는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바보짓이라도 하늘 끝까지 치솟는 연 따라 창공을 나르고 아지랑이 품에 안고 사랑하는 날들은 감미로웠다.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에 집착했지만 다섯 번째 천하 순행 때 길 위에서 49세로 죽는다. 절인 생선을 마차에 실어 그의 죽음을 은폐했는데 시황제의 최후는 냄새 나는 생선과 함께 썩어갔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살아왔던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간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열정과 노력, 나는 그냥 살아왔을 뿐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리사의 마지막날들을 사랑으로 지켜준 딸과 아들에게 감사 이메일을 보낸다. 리사를 보내고 힘들었던 시간을 내려놓고 리사가 남긴 편지의 약속처럼 살기로 한다.     ‘저는 이번 생애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뒤로하고 새롭게 시작할 거에요(I am going to leave the pain and suffering behind on this trip and start anew).’   길 위에서 다시 행복하기로 했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이 아침에 행복 약속 마지막 편지 everybody loves special person

2025.03.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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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행복하세요

친구는 멀어도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고       당신은 갔어도   마음속에   사랑으로 남고       첫사랑은 떠났어도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고       디아스포라 고달파도   마음속에   미래로 남고       옆에 있는 너는   마음속에   행복으로 남는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이강민 / 뉴저지글마당 행복

2025.03.06. 17:29

[문예마당] 네 속이 행복이면

음식은 행복이 아냐   아무리 많이 먹어도   행복해지는 게 아냐       물건은 행복이 아냐   아무리 많이 가져도   행복해지는 게 아냐       저 감나무에 달린 감을 봐   감은 행복이야   감이 밖에서 와서   나무에 달라 붙어있는 게 아냐   감나무 속에서 생겨난 거야       행복도 그래   너의 속에서 나오는 거야       네 속이 행복이면     너는 행복이야 조성내 / 시인·의사문예마당 행복

2025.01.30. 19:05

[글마당] 네 속이 행복이면

음식은 행복이 아냐   아무리 많이 먹어도   행복해지는 게 아냐       물건은 행복이 아냐   아무리 많이 가져도   행복해지는 게 아냐       저 감나무에 달린 감을 봐   감은 행복이야   감이 밖에서 와서   나무에 달라 붙어있는 게 아냐   감나무 속에서 생겨난 거야       행복도 그래   너의 속에서 나오는 거야       네 속이 행복이면   너는 행복이야 중도 / 시인·의사글마당 행복

2025.01.23. 17:55

[독자 마당]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

독일말에는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심리를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한다. 손해를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라는 뜻을 담은 ‘프로이데(freude)’를 합성한 단어다.  동료보다 뛰어나고 더 나은 결과를 내고 싶어하는 바람에서부터 유발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부심이 낮은 개인들이 샤덴프로이데를 더 자주 그리고 더 강하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특별한 말 같지만 실은 아주 보편적인 말이다.   세계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에 따라 4~5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왕정 체제에서는 왕이 바뀔 때마다 피를 흘리지만 민주 정치는 피를 보지 않고도 정권 이양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제도에서도 피해는 막심한 것이어서 국민이 둘로 쪼개지고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은 승자의 승리를 축하해주는 대신에 온갖 비열한 수단을 써 승패를 뒤집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았다. 패자의 아픔이 승자의 기쁨보다 큰 것이다.     모든 운동경기는 승패로 끝난다. 즉,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이 되는 것이다.   86세인 나는 한해 한해 지날 때마다 지금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해보니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어떤 사람을 불행하게 한 경우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로 인해 불행해진 사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혹시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또는 내가 행복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불행이 덜어지지는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지금 자기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남의 불행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는 내가 혹시라도 남을 불행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서효원·LA 거주독자 마당 행복 불행 불행 때문 대통령 선거 대통령 제도

2024.12.10. 20:09

[살며 생각하며] 장막을 걷어라, 행복의 나라로

곱슬머리 간호사가 생년월일을 묻는다. 어느 쪽 눈인지 물으면서 왼쪽 눈 위에 테이프를 붙인다. 눈을 헷갈릴 염려는 없다. 의사의 실수로 환자의 성한 쪽 신장을 떼어냈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혈압을 재니 평소보다 많이 올라가 있다.   “이 수술을 왜 하세요?” 간호사가 물었다. 나는 전에 한 백내장 수술이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망막에 이상이 왔다고 답했다.     “처음 수술을 누가 했어요? 닥터 A가요?” “아뇨, 다른 닥터였어요.” “닥터 A는 수술 잘해요. 의사 집안이에요. 아버지도 여동생도 안과 의사예요.”     수술 5분 전, 세상에서 제일 듣고 싶은 말이 간호사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담요를 어깨에 감싼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키가 훤칠한 닥터 A가 다가왔다. 빨리 수술을 받게 돼서 운이 좋다고 말한다. 얼굴에 커버가 쓰이고 눈 하나만 노출된 듯했다. 드디어 정신이 몽롱해 온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용어를 해독하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P5, HPT 24 and 25 등등.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는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흠’하는 닥터의 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왜지? 뭐가 어려움에 부닥쳤나? 다시 의사의 톤이 빨라졌다. 어쩌고저쩌고… 나는 다시 의식 밑으로 떨어졌다.     “OK. It‘s all done!” 닥터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다. 한 20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수술이 꼬박 한 시간 걸렸다고 말해준다.     발단은 몇 년 전 백내장 수술로 거슬러 간다. 수술하던 중에 갈아 끼운 렌즈 뒤 표면에 점액질이 달라붙었다. 거기다가 렌즈가 눈동자 살짝 옆으로 비켜서 박혔다. 시간이 지나자 말라붙은 점액질이 눈에 장막을 드리웠다. 빗나가서 박힌 렌즈는 세상을 이중으로 보이게 했다. 마치 물속에서 사물을 보는 듯이 눈이 어른거렸다. 나는 내 눈이 답답함을 감지 못하도록 더 어둡게 만들었다. 항상 선글라스를 꼈다. 어둠에 익숙한 두더지 같은 눈을 가지고 다른 쪽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무엇을 응시하는 것이 피곤했다. 흐린 시야에 갇힌 나는 기분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외롭고 믿지 못할 세상이었다. 닥터 A는 이런 눈으로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음날 체크 업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했다. 눈이 환해지니 마음도 환해졌다. 곱슬머리 간호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는 수술받는 동안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실력 있는’ 닥터라는 말에 혈압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 세상은 분명 엉터리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동시에 책임감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는 닥터 A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돌아간다고 믿고 싶다. 그들의 진실하고 선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나도 따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길쭉한 버터 넛 스쿼시를 수술 전에 사 두었다. 노란 주홍빛이 감도는 호박 수프가 눈에 좋을 것 같아서다. 당근, 셀러리 등 채소를 듬뿍 넣고 넉넉하게 끓였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냄비 가득 찬 수프를 보고 있자니, 앞집 젊은 엄마가 생각났다. 최근에 아이가 아파서 마음고생이 심하다. 그 집 문 앞에 놓고 나오는데, 소파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강아지가 신나게 꼬리를 흔든다.     나의 흐릿했던 세상에 장막이 걷혔다. 이중으로 보이던 나무도 소파도 깨끗한 단선이 되었다. 나는 소경이 눈을 뜬 듯 행복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12월의 끝자락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장막 행복 백내장 수술 곱슬머리 간호사 닥터 a가요

2024.12.09. 22:21

[이 아침에] 건강과 행복

목요일, 학교를 오가는 시간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다. 미사여구도 없고 에둘러 애매한 표현도 없는 명쾌한 답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낀다.     지난주에는 건강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년쯤 되면 누구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다.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찾아 먹고, 건강에 좋다는 운동도 한다. 과연 ‘건강’이란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가.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나 같은 장애인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누구도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법륜스님은 아프지 않은 상태가 건강이라고 했다. 몸은 이상이 생기면 크고 작은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프지 않다면 건강한 것이 맞다. 장애나 노쇠는 낡고 찌그러진 상태일 뿐,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차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려나. 아무리 아끼고 곱게 써도 새 차는 조금씩 긁히고 찌그러지기 시작하며 오래된 차일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은 아니니 타고 다니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행복은 어떤가? 물론 사람들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높은 지위나 명성 같은 세상적인 성공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집이나 좋은 차 같은 부의 축적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가정의 평화나 자식의 성취를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님은 행복이란 걱정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물론 무엇이 걱정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걱정은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만한 그런 걱정을 말한다. 스님의 기준으로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60년쯤 산 독자라면 걱정에 대한 스님의 말에 다소 공감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걱정도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지 않던가. 첫사랑과의 이별, 대학시험 낙방,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의 죽음, 노스리지 지진이나 4·29 폭동이 그러하지 않던가.     행복에는 무언가 근사하고 좋은 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살다 보면 분명 멋지고 근사한 일은 생긴다.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주는 즐거운 시간은 너무 짧다는 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매사에 너무 크게 기뻐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밤이 되면 어둠이 찾아오고, 아침이 되면 날이 밝듯이, 좋은 일 뒤에는 힘든 일, 낙담 뒤에는 희망이 줄지어서 우리 곁을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 걱정이 없으면, 그것이 행복이다.     집에 와 아내에게 낮에 들은 이야기를 해주니, 빙그레 웃으며 자기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근데 왜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지?     독자들 중에도 아내와 같은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좋은 이야기라고 나누는 것이니 양해해 주세요. 걱정할 일은 아니니 행복하시죠?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건강 행복 오늘 걱정 인생사 새옹지마 죽음 노스리지

2024.10.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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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에서 31년, 행복했어요”

LA한인교계를 대표하는 대형교회중 하나인 충현선교교회(담임목사 국윤권)에서 사무직으로 31년간 근속해온 한인숙(사진) 집사가 은퇴했다.   충현선교교회는 지난 9월 교회 월간소식지인 충현뉴스를 통해 “1993년 11월15일 근무를 시작한 한인숙 집사가 지난 2024년 8월31일로 정든 교회 사무실을 떠났다”고 전했다.   한 집사는 1대 정상우 목사, 2대 민종기 목사, 3대 국윤권 목사에 이르는 동안 충현선교교회를 섬겨 교회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렸다.   한인숙 집사는 “정든 직장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앞을 가렸다”면서 “인품 좋은 목사님들 덕분에 너무 행복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교회임에 틀림없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고 은퇴 소회를 전했다.   충현선교교회에 따르면 그는 늘 명랑하고 유쾌한 성품과 빠른 손으로 교회의 많은 업무들을 소리없이 척척 처리했던 일꾼이다. 한 집사는 30년 넘는 세월동안 교회의 변천사에 따라 그동안 여러 차례 교회 장소를 옮길 때마다 한마음으로 함께했다.   그는 “처음에는 글렌데일 경찰서 앞 사무실에서, 이사벨 건물 사무실에서, 이글락 건물 사무실에서 현재 이곳에 교회건물을 구입해서 이사 올 때, 전 성도들이 감격하여 울면서 입당식을 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32세에 첫 근무를 시작할 때 1살과 6살이었던 어린 두 아들은 장성해 지금은 두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됐다.     그는 “이제는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부족한 사람을 사랑으로 지금까지 인도해 주시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게 해 주신 교회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인사의 말을 전했다. 충현선교교회 이혜경 편집인행복 교회 교회 사무실 차례 교회 세월동안 교회

2024.09.16. 18:14

[발언대] 행복한 말년을 원한다면

나는 은퇴촌에 살고 있다. 이웃들 모두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인생의 말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문제없는 가정이 없다 할 정도로 여러 문제로 고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삶은 과거보다 끝이 어떤가에 따라 성공 여부가 판단된다. 그러기에 인생 말년에 아픔이 있다면 과거의 모든 성취는 소용이 없게 된다.     가족 간 불화의 가장 흔한 이유는 아마 재산 문제일 것이다. 만약 가족 간의 화목과 재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우 어떤 것이 남는 선택인지  스스로 계산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형제는 7남매다. 그중에 특별히 출세한 사람도,부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수십 년째 격월로 합동 생일잔치를 갖는 등 주변에서 우애좋은 집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비결을 물으면 물려받은 유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지혜를 일찍 터득하신 부모님께 늘 감사한다. 아버지는 시골 의사였다. 과거 주변 사람들로부터 땅을 사 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재산이 형제간 우애를 깨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진 분들이었다. 늘 우리에게 유산은 대학교육까지라며 물질적 유산은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유산을 한 푼이라도 물려받은 자식이 없다.     심지어 어머님은 본인의 장례식 조의금이 남으면 전액 멕시코 선교에 헌금하라는 유언까지 하셨다. 돈으로 인한 형제간 불화를 염두에 두셨던 듯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돈 자체는 좋고 필요한 것이다. 그 존재 목적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사랑’할 경우 문제가 된다는 성경 말씀을 실천에 옮기셨던 것 같다.       유산으로 인한 형제간 불화의 원인은 액수보다 형평성이 원인일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형제간 차등 상속으로 인한 불만에, 평소 부모에게 관심도 없던 자식이 고생하며 무모를 모셨던 자식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생각 등으로 인한 것이다. 또 며느리, 사위 등의 개입으로 문제가 복잡해지는 사례도 본다.       유산 문제로 인한 자녀 간 갈등을 예방할 방법은 있다. 먼저 가진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이다. 부모를 모셨거나 가족들에 도움을 많이 준 자식에게는 좀 더 물려주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유산이 자식들 간 불화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보이면 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좋다. 무엇이든 ‘포기’에는 손실이 따르게 된다. ‘물질’ 과 ‘가족 우애’ 둘 중 어느 것을 지키고 어느 것을 포기할 것인지 지혜로운 결정이 ‘행복한 말년’의 비결일 것이다.   김홍식 / 은퇴의사발언대 행복 말년 인생 말년 유산 문제 물질적 유산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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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까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너의 가족 모두 건강하니? 노파심에서…”   친구에게 온 이메일이다. 갑자기 조심스러운 이야기라니? 전에 없던 안부 인사지만, 워낙에 길고 감칠맛 나게 글 쓰는 친구가 아니라 별생각 없이 요즈음 나의 근황을 답장했다.   “실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걱정 많이 했다. 별일 없다니 다행이다.”   되돌아온 이메일에 뜨악했지만, 자세한 내용과 누가 이상한 소리를 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살면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우리 집안 소문에 나 자신도 놀란 적이 서너 번 있다.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친구 부부가 문 앞에 서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엉망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달려왔어. 괜찮은 거야?”   남편에게 맞아 사경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잠에 빠져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말이다. 자다가 일어나 술상을 차리고 밤새도록 애매한 술만 들이켰다.   남편이 잠시 서울에서 강의하느라 1년 나가 있었다.   “네 남편이 이혼하고 서울로 떠났다며? 괜찮은 거야?”   “이혼?”   “잉꼬부부였던 너희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리 듣고 설마 해서 전화한 거야. 정말 이혼했어?”   사람들은 내가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사경을 헤매다 이혼당하기를 원하나?     나 자신도 너무 놀라 의심이 들었던 소문 중의 하나는 서울에서 전화한 지인의 질문이었다.   “혹시 친정엄마 죽음이 자살이었나요?”   너무도 황당해 말문이 막혔다.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다.   내 소문이 사실과 다르기에 남의 소문도 믿지 않다가 혼쭐났다. 점잖은 모임에서 만난 지인에게 물었다.   “사모님은? 함께 오시지 않았나요?”     지인이 화가 몹시 난다는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그 사람 이야기를 왜 내게 해요?”   오랜 세월 참았던 고름이 터지듯 갑자기 폭발하는 그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돌아볼 정도였다.     다음날 그가 나에게 전화해서 사과했다.     “미안해요. 사실은 오래전 이혼했는데 말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듣지 못한 그의 긴 사연을 들어야 했다. 그 이후론 모임에 혼자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남편이나 부인의 안부를 절대 묻지 않는다. 안 보는 사이에 이혼이라도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인이 부인과 헤어지고 내가 몇 번 본적이 있는 사람과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말 못 할 사연이 있어 이혼하고 좋은 사람 만나 즐겁게 지낸다니 다행이다. 본인 입으로 말을 꺼내면 모를까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지루하고 힘든 삶 속에 가뜩이나 심심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에게 나의 헛소문이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며 소문의 근원을 찾으려고 열 올리는 일은 생략하며 산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불행 행복 친구 부부 사람 이야기 친정엄마 죽음

2024.09.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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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행복은 정말 어려워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믿는다. 악기도 배우고 싶고, 그림 그리기나 붓글씨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고, 노래 부르기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우선 공부하고픈 것은 행복학과 죽음학이다. 물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말을 타고 질주하다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기다린다고 한다. 뒤처진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단한 지혜다. 나도 이런 지혜를 배워, 차분하게 기다려 마음을 다독여 빈자리를 만들어놓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   느닷없이 무슨 행복이요, 죽음이냐는 질문이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행복과 죽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답게 잘 죽는 것이 결국은 인간의 마지막이며 가장 큰 행복이고,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행복한 죽음!   행복 같은 거야 살면서 저절로 얻어지는 생활의 지혜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데, 골치 아프게 학문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목은 경제학도, 정치학도 아닌 ‘행복학’으로, 재학생의 5분의 1이 수강할 정도라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갈구하지만, 실제로 행복해지는 길이나 방법을 배워주는 곳은 마땅하게 없다는 이야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도 ‘리더십과 행복’이라는 이름의 행복학 강의가 인기라는데, 목적은 ‘행복을 모르는 경영인은, 행복을 관리할 줄 모르는 경영인은 결코 성공적인 기업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미래의 기업을 이끌 지도자에게는 기업 경영에 관한 지식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정서적인 웰빙, 즉 행복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행복학 과정도 학생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방향을 잡기 위해 먼저 자료를 찾아본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언이 이렇게나 많고, 책도 이렇게도 많다니….   “성공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지름길이다.”(알베르트 슈바이처)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올라갈 데도 없고, 더 채울 것도 없는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다”(마틴 셀리그먼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행복을 우연한 결과물, 유전적 결과물로, 생활 환경의 결과물로만 여기는 것은 단견이다. 행복은 가족, 친구, 의미 있는 직업, 신념 또는 인생관이라는 4가지 문제를 지속해서 보살피는 일과 가까운 개념이다.”(아서 브룩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그럼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한 해답도 차고 넘친다. 예를 들면, 스스로 만족하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돈 많이 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마라, 좋은 친구를 만들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지라, 긍정적 마음을 가지라, 웃어라, 집착하지 마라,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라, 베풀라, 용서하라, 사랑하라, 등등….   아이구! 골 아파라! 행복해지는 공부가 이렇게 골치 아프고 행복하지 않다니. 에이, 그냥 열심히 살면 되겠네. 단, 윤동주 시인의 말씀처럼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행복 행복학 과정 행복학 강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2024.08.0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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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의 마주보기] 행복의 새로운 Q 공식

행복이란 무엇일까? 잠깐 동안 순진한 아기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나는 행복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처럼 순간순간 짧게 느끼는 아주 깨끗한 감정 상태라고 본다. 조금 더 나아가 극도의 행복감 또는 희열의 감정은 ‘유포리아(euphoria)’ 상태이며, 인간은 때때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쾌락의 절정’을 보다 오랫동안 지연시키고자 과욕(!)을 부리기도 한다. 문제는 행복을 소유할 수 없기에, 삶의 과정 내내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고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 조사나 인터뷰들에 따르면 (극도의) 행복이란 그다지 대단한 데에 있지 않다. 행복에는 딱히 우열이 없고 물질적 소유가 절대적으로 좌우하지도 않으며, 마법적인 신비스러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인간사에 기분 나쁜 일들과 불행은 다반사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란, 한마디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침에 단잠을 자고 깨면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점심에 아주 달달한 딸기쉐이크를 한잔 마셨더니 더위가 싹 가셨다. 저녁에 아주 희극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보고 맘껏 웃어 제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사소한 것이며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주위의 사물들과 사건들, 사람들을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자. 우리에게 가깝고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서 크고 작은 유포리아적 순간들을 발견하게 된다. 즉 행복의 비법은 일상생활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지적이며 논리적이다. 그래서 행복을 좀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항상 뭔가를 더 요구하고 원한다.     이에 미국의 긍정 심리학의 아버지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제시한 행복의 공식이 도움이 된다. 그의 행복 공식은 ‘H=S+C+V’로서, 행복(Happiness)은 선천적 특성(Set range), 후천적 환경(Circumstances of your life), 자율성(Voluntary control)의 총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행복의 변수 중에서 우리 힘으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자율성에 더 큰 무게, 즉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전반적인 삶과 인생 경로에 있어서, “스스로의 규율과 통제” 즉 ‘자율성’이 천차만별의 변화와 혁신적 발달과 발전을 가져오며, 결국 선천적 특성도 후천적 환경도 경우와 상황에 따라 자유의지를 발휘해야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자율성과 용기, 끈기, 배짱은 행복의 종류와 정도에서도 그 차이가 크고 작게 또는 다양하게 가지를 치며 벌어지게 만든다.     더 나아가서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행복의 Q 공식이 있다. 행복은 세 가지 자질(quality)의 합인 것이다. 즉, ‘H=Q1+Q2+Q3’로서, 이때 자질 Q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 충분히 가변수요, 임의적이다! 우울하고 실망스럽고 괴로울 때면, 자기 자신만의 세 가지 자질, 특징을 생각해보거나 노트에 적어보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잘 웃고, 잘 먹고, 매사에 긍정적이야!” 혹은 “나는 라면을 아주 잘 끓이고, 화분을 잘 가꾸며, 친구가 많아!”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이렇게 우리 자신에게 낙관적으로 ‘향기로운 정서’를 끊임없이 불어넣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세상은 때때로 또는 언제라도 험하고 매우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아주 쉽게 빨리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유명한 긍정 심리학자인 탈 벤 샤하르(Tal Ben-Shahar)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실의와 낙담을 허락하지 마라. 대신 무엇을 해야 더 기분이 좋아질지 자문해야 한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마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되새김질하자. “오늘도 행복하게 신나게 아름답게 멋지게, 그리고 웃으며 살자!”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행복 공식 행복 공식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4.07.0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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