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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행복 추구권

Los Angeles

2025.10.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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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는 행복을 추구하고 이를 만끽하는 것이 세속적이거나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도사리는 경우가 많다. 신앙은 자기희생, 자기부인이란 말들과 더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자기 부인’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좀 다르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이유가 곧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천하를 모두 가진 것보다 귀한 것이 당신의 영혼이고 당신의 생명이라고 설명하신다. 말하자면 자기 부인은 당신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최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세속적이다. 우리는 오히려 너무 적게 행복하다. 우리는 너무 행복을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적게 그리고 가볍게 사랑한다.
 
자신을 가볍게 사랑하기에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하며, 실망하고 작은 비교와 실패에도 흔들린다. 내 환경이나 벌어진 사건이 나에게 값을 매기고 남이 나를 판단한다. 내 환경이나 다른 이들은 나의 가치를 모른다. 그러니 무슨 가격표를 붙이겠는가. 기막힌 일은 내가 나의 가치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르쳐준 가치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예수님짜리’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마치 이 세상에 유일한 사람인 듯 사랑하신다.
 
그런데 나를 모르는 사랑이 있다. 이기적 사랑으로서 자기 사랑이다. 이는 내가 아닌 왜곡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가장 아프고 불행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진실한 가치를 모르고 자신을 더 치장하려고 사랑하니 말이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고 사실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욕심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 살라고 하니 자기 욕심 아닌가? 그럴 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말 속에는 우리가 행복하다는 말이 들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는,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누리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자로 사는 것이다.
 
우리만큼 큰 사랑을 받은 존재가 없으며, 따라서 우리처럼 사랑할 수 있는 존재 역시 없다. 행복을 야무지게 누리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감출 수 없고 감추지 않는다. 등대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다만 빛날 뿐이다. 행복은 다만 빛날 뿐이다. 행복은 우리의 매일 사는 삶이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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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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