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선우용여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매일 아침 벤츠차를 직접 운전해 호텔로 가서 조식 뷔페를 먹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그녀의 나이는 81세다.
그녀는 “돈 아끼면 뭐해. 집에서 혼자 궁상맞게 있는 것보다 아침 먹으러 가면서 화장도 하고 옷도 차려 입고 나서면 스스로 힐링이 된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아침 식사로 호텔 조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남편이 있을 땐 가족들 밥을 해줘야 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애들은 다 시집 장가 가고,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내 몸을 위한 돈을 아끼면 뭐 하나. 남은 돈, 이고 지고 가나? 그래서 나를 위해 투자를 한다”고 했다.
요즘 나를 위해 지갑을 여는 중장년층이 늘어난다고 한다. 인생 2막을 당당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 세태에 맞춰 ‘액티브 시니어’ 산업이 뜨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란 빠른 고령화와 함께 건강하고 활동적인 중장년층을 칭한다.
액티브 시니어 세대는 이전 부모 세대와는 마음 가짐 자체가 다르다. ‘아끼면 뭐해, 즐겁게 살자’ 이런 마인드로 바뀌고 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커피 한 잔이라도 내가 즐겁게 마신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노년에 돈은 많이 벌어 놨지만 건강을 잃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다면 인생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평생 안 먹고 안 쓰며 모은 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 가.
내 대학 동기 중에는 젊어서 미국 와, 부부가 열심히 일한 덕에 쇼핑 몰을 몇 개나 갖고 있고 여러 개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비즈니스에 매여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일만 했다. 집 안의 소파와 안락의자는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구일 뿐, 평소에는 그것들이 닳지 않도록 커버를 씌워 놓았다가 손님이 와야만 벗겼다.
은퇴 후 좋아하는 골프도 치며 인생을 즐기려던 차에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됐다. 나중에는 병원 침대에 누어서 오랜 세월 남편과 간호하는 분의 도움이 없이는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다가 세상을 떴다.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돈을 버는 이유가 삶을 즐기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그걸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가다니. 쇼핑몰이 여러 개인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 가.
최근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한 권을 읽었다. 미국의 투자자 빌 퍼킨스가 쓴 책으로 원제는 ‘Die With Zero’ 인데 한글 제목은 ‘역전하는 법’이다. 이 책의 핵심은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의 총합이다.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을 위해 죽을 때 통장의 잔고가 제로가 되게 하라’로 요약된다. 즉 ‘가진 돈을 다 쓰고 죽어라’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과 추억을 통해 찾아라. 그러기 위해 ‘다 쓰고 죽기’를 목표로 삼으라. 평생 하고 싶었지만 생업에 매여 못했던 것들을 생전에 원없이 해보라고 권한다.
“그럼 자식들은요” “그렇게 살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요”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 쓰고 죽으라는 말은 자녀들에게 남겨줄 돈 한푼 없이 전부 쓰고, 빈털터리로 죽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 쓰고 죽기를 위한 계획에는 자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전에 자녀 몫으로 떼어 놓고 당신이 가진 돈을 죽기 전에 전부 쓰라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일도, 기부도 살아생전에 해서 그 감동을 맛볼 것을 작가는 조언한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오직 특정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늙어서 할 수 없는 경험들이 많다. 돈 낭비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인생이 헐값 된다. 돈이 아까워서 끌어안고 있다가 죽음을 맞는 어리석음을 피하라고 한다.
요즘 세대와 달리 우리 때는 결혼 전에 돈에 대해서 너무 순진했다. 결혼 전에 오빠가 남편의 가족 사항 등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너희들은 연애하며 셰익스피어만 얘기하니?”라고 핀잔을 줬다.
당시 아버님은 경제 활동이 없으셨고 남편은 말단 기자였다. 게다가 부모님에, 여동생 넷, 남동생 하나, 미국에 계신 손위 누님이 맡긴 조카까지 대가족의 맏아들이었다. 오빠가 보기에 결혼 후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들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장로님이신 아버님께서 걱정말라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성경 책을 펼쳐 놓으시고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아버님의 말씀처럼, 또 ‘사람은 다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맏며느리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해 주셨다. 지금은 그때의 힘들었던 상황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산다.
석인성시(惜吝成屎)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끼고 아끼다가 똥이 된다는 말이다. 돈이 아무리 중요해도 돈은 써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써야 한다.
젊은 시절, 미국 와서 주위 여자들과 예쁘고 값비싼 그릇 모으기에 열을 올렸다. 너무 아까워서 나중에 귀한 손님이 올 때 쓰려고 진열장에 넣어두고 평소에는 저렴한 그릇만 썼다. 나이 먹어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하나 그런 그릇 불편해서 거저 줘도 싫다고 한다.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때 그때 즐겨야 한다. “나중에, 나중에”하다 보면 그 나중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누리지 못한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잘 산 삶은 은행잔고가 아니라 경험이 결정한다. 심리학 연구를 통해 ‘물질에 돈을 쓸 때보다 경험에 돈을 쓸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경험은 추억을 남긴다. 사람은 인생에서 은퇴하면 추억을 연금처럼 받게 된다. 다른 것들은 대체할 수 있지만 추억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더 늦기 전에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많이 해봐야겠다.
우리는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의 간극, 그 틈은 때때로 전 생애를 갈라 놓기도 한다. 돈 버는 것 못지않게 지혜롭게 잘 쓰는 걸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계산 그만하고 가진 돈을 최대한 잘 쓸 계획을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