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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미국 땅에 남은 무명의 애국지사들

New York

2025.08.1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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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80주년 특별기획]
마운트올리벳 묘지 안장 100여명 무명 독립운동가
장철우 목사 사망 이후 묘소 찾기 답보 상태
고인 명부 확인 어려워 이름도 새기지 못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황기환 지사의 묘소가 발견된 뉴욕 퀸즈 마운트올리벳 묘지. 이곳에 무명의 한인 독립운동가 100여명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황기환 지사의 묘소가 발견된 뉴욕 퀸즈 마운트올리벳 묘지. 이곳에 무명의 한인 독립운동가 100여명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 없는 애국자 1명을 찾는 것이 바다의 진주를 찾는 것보다 더 귀한 일”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실제 모델로 언급된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의 묘소를 뉴욕 마운트올리벳묘지에서 찾아낸 고 장철우 목사가 지난해 뉴욕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전한 말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곳 뉴욕에는 조국의 독립을 돕다가 타지에서 숨진 무명의 애국지사들 묘지가 여전히 방치된 채로 외면받고 있다.
 
황기환 지사 이장, 그 후
 
머나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황기환 지사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100년이 걸렸다. 2000년대 초, 뉴욕한인교회 청년들과 함께 무연고 한인 묘를 찾던 장 목사는 교회 명부를 확인하다 황 지사의 마운트올리벳묘지 안장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사설 묘지에서 유족이 아닌 외부인이 유해 이전을 요청하려면 법적·행정적 절차 승인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황 지사의 유해는 발견 후 15년이 지난 2023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운트올리벳묘지에는 황 지사의 유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 목사는 “묘지 명부를 조사해보니 황 지사를 포함해 100여 명의 한인 애국지사가 묻혀 있었다”고 전했다.
 
잃어버린 리스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무명의 애국지사  
 
“힘들게 얻어낸 고인들의 명부를 잃어버린 것이 천추의 한이다”
 
장 목사가 황 지사의 묘를 찾아낸 2000년대 초반, 그는 묘지 사무실을 방문해 1920~1950년대 안장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확인했다. 그는 한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이름과 정보를 옮겨 적었고, 이때 장 목사가 정리한 리스트에 따르면 당시 묘지에는 황 지사를 포함해 100여명의 한인이 묻힌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무연고 상태로, 묘비에는 이름 대신 번호만 새겨져 있었다.
 
장 목사는 “이들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름 없는 애국지사들”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한인교회 60년사·70년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 뉴욕에서 노동하던 한인들의 유일한 소원은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피땀흘려 노동하며 모은 돈을 이승만·안창호 박사가 뉴욕한인교회를 방문했을 당시 독립운동 자금으로 건넸고, 이 자금은 상해임시정부 운영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장 목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했던 리스트를 잃어버리고 만다. 다시 묘지 측에 명부 확인을 요청했으나, 법적 절차 등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묻힌 이름을 하나라도 더 발굴해서 조국의 품에 뼛가루라도 안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던 장 목사.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그는 올해 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답보 상태에 빠진 독립운동가 묘소 찾기
 
황 지사 유해가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된 후, 대한민국 보훈부는 해외 독립유공자 발굴 및 유해 봉환 사업의 일환으로 장철우 목사를 ‘국외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미주지역 전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장 목사는 당시 뉴욕한인회와 협력해 묘지에 묻힌 무명 한인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알아내고, 그 자리에 애국자 기념비를 세우고자 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김광석 전 뉴욕한인회장은 “묘지 관할지역 주하원의원과 교섭을 통해 명단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 목사와 함께 계획을 추진하던 김 전 회장의 임기는 올해 초 종료됐고,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비슷한 시기에 장 목사 역시 사망하며 마운트올리벳 묘지에 묻힌 한인들을 찾아내 발굴하는 작업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미 동부 독립유공자 묘소 발굴은 사실상 중단
 
'독립유공자의 묘소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웹사이트에 명시된 문구다. 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카자흐스탄 및 유럽 3개국에 추모 유적지를 답사하는 청년 답사단을 보냈지만, 미국에는 파견하지 않았다.  
 
미국 내 한인 독립운동 유산을 보존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관리하는 비영리단체 ‘대한국민회기념재단’은 지난 5월 순국선열 묘역 조사 및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서부 쪽 묘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다.  
 
즉 장 목사 사망 이후, 미국 동부 쪽에서 독립유공자의 흔적을 찾는 조사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생전 장 목사는 "황기환 지사 묘소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수 있었던 것은 뉴욕 한인사회와 한국 정부, 동포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이라며 “남은 애국지사들도 이름을 되찾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뉴욕총영사관 측은 "장 목사 사망 이후 현재 공관 차원에서 진행 중인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묘지에 묻힌 독립운동가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뉴욕중앙일보 취재진이 마운트올리벳묘지 사무실을 찾았지만, "명부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됐다.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뉴욕시의원, 주 상·하원의원, 연방하원의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으나, 누구에게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글·사진=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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