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바람이 불었다 / 우리는 그 문을 바람의 문이라 불렀다 / 바람의 문은 여느 문과 달리 손잡이가 없다 / 어느 누구도 손잡이가 없음을 불평하지 않았다 // 그가 떠나고 바람이 불어왔다 / 바람은 따뜻했지만 견고했다 / 문은 한 방향으로 열려 있었고 / 바람은 속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 햇살에 과일이 제맛을 내고 / 휘어진 가지마다 /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어 낼 때 // 그가 떠나고 바람이 불었다 /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익어갈 / 과일 같은 시들이 매달려 온다 // 보이지 않는 그의 발이 / 바람의 문을 연다
[신호철]
여름 내내 햇볕은 따가웠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비는 밤새 세차게 내렸고, 아침이 되면 멈추곤 하였다. 그 사이에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언어들을 깊은 내면에서 찾아내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 바람이 불어오듯 열린 방 안 가득 열기로 채워졌다. 서로에게 놀라워하였고, 서로를 향하여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잃어버린 나의 내면을 다시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한 번도 쓰지 못한 시를 여러 편씩 쓰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목소리로 본인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한 번도 꿈꾸어 보지 못했던 시 창작이 가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갈 즈음 우리는 짧은 시간에 시 한 편을 꽃 피우듯 피워내기도 하였다.
지난 한 달간 제2회 시카고 시 창작 아카데미가 이창봉 교수(중앙대 대학원)의 지도하에 37명의 수강생이 모여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밭을 일구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지난해 여름 시 창작 캠프에 모인 인원만큼만 모이면 성공이라 생각했던 염려는 우리의 기우였다. 딱 두 배로 모였다. 어렵게 시작했던 만큼 보람도 컸다. 서로를 가르치기보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화합과 사랑으로 서로 나누며 지낸 한 달이 살같이 지나갔다. 시카고 문인협회와 예지 문학회 회원들을 제외하고도 반이 넘는 새로운 인원들이 등록을 했다. 시카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문학도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생각되었다. 시작반, 입문반, 창작반 이렇게 세 반을 통해 각자 원하는 반을 택해 스스로 소속 멤버가 되었다. 어떤 이는 창작반을 피해 입문반을 택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여러 모양으로 반을 심사숙고한 결과 조화롭게 반 편성이 되었다. 각 반은 주중에 따로 모임을 가졌다. 각반은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개별 모임을 통하여 시를 발표하고 시를 나누고 각자 살아온 삶을 나누었다. 1박2일의 시 캠프가 미시간 호수가 보이는 리트릿 센터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밤하늘 별을 노래하고 새벽의 일출을 보며 미시간 호수를 마음에 담기도 하였다.
시 창작 아카데미의 말미엔 이창봉 교수, 지향 시인, 그리고 신호철 저자 세 명의 삼인 삼색 시집 〈선물〉의 북 콘서트가 한인 문화원 비스코 홀에서 열렸다. 홀을 가득 메운 시를 사랑하는 시카고 교민들은 함께 모여 시가 있는 축제의 한마당을 이루어내었다. 이 열기는 조용하게 시카고를 문학의 장으로 이끌어줄 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피어날 꽃보다 아름다운 얼굴들이 가을의 문턱에서 손짓하고 있다. 붉게 익어갈 시 한 편, 한 편이 주렁주렁 매달릴 가을 속으로 조심스런 걸음을 옮긴다.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