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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오래된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

Chicago

2025.08.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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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이기희

인생에 명품은 없다. 진짜가 있을 뿐이다. 명품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진짜라고 다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짜는 시간이 지나면 들통 나기 마련이지만 진짜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 명품 인생은 진주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빛깔로 광택이 난다.
 
세상살이 남의 인생 흉내 내서 사는 것만큼 피곤 한 건 없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한국식 근대화의 격동 속에 살아온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그린 천명관의 장편소설이다. 어릴 적부터 이소룡을 추종한 삼촌은 중국집 배달원을 하다가 사기 당해 빈털터리 되고 이소룡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충무로에서 ‘으악’ 하고 죽어나가는 단역배우 ‘으악새’가 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다.
 
모방과 아류, 표절과 이미테이션, 짝퉁 인생에 머물게 되는 한 남자의 기구한 삶이 산업화와 민주화혁명, 자본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삼촌 마음 속 이소룡은 그가 혼신을 다해 갈구하고 꿈꾸던 생의 처절한 희망이다. 비록 그의 삶이 상처 나고 찢어지고 실패했다 해도 누가 감히 짝퉁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개 같은 인생, 개처럼 살다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개처럼 살게 된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흉내내기나 짝퉁과 모방을 반복한다. 지금은 짝퉁 인생을 살지만 언젠가는 진품이 되고 명품이 될지 모른다는 로망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로망은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꿈꾸는 이상이다.
 
옷장에 숨겨논 보물처럼 닦고 광를 내도 짝퉁은 진품이 안된다. 가짜란 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내가 그 비밀을 알기 때문에 짝퉁을 진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를 속이기는 힘들다.
 
“유럽 여행 가서 선물로 명품 가방 하나 사 와라.” 내 친구가 친구에게 말했다. ‘국회의원 뱃지 달고 명품 하나 없는 사람 나 뿐이다. 뭔지는 모르겠고 베토벤 얼굴 비슷하게 로고 찍힌 거’라고 해서 동창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베토벤이 아니고 베르사체(?) 명품 가방 사오란 말이다. 정직힌 발언은 헛소리도 귀하게 들린다.
 
물건이 짝퉁이면 버리거나 교체할 수 있지만 인생이 짝퉁이면 대체가 불가능하다. 명품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뛰어난 품질과 내구성으로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계승하는 장인의 혼이 담겨 있다.
 
‘명품’과 ‘짝퉁’이라는 단어는 제품의 가격이나 진위 여부를 넘어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제품뿐만 아니라 사람 삶의 태도와 성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물건은 가짜가 진품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 유행이 지난 옷은 올트레이션을 거쳐 재활용되거나 변신을 꾀할 수 있지만 인간은 하루 아침에 가짜가 명품이 되는 역전의 용사가 되기 힘들다.
 
20년이 넘도록 매주 하루도 빠짐없이 미주 중앙일보에 칼럼을 썼다. 40여년 전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돌았지만 모음과 자음을 숙명처럼 붙잡고 살았다. 새로 맞닥뜨리는 세상에서 짝퉁 인간이 아닌 진품으로 살아 남기 위해 모국어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나를 강인하게 했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도 명품은 오래된 정원에서 한 떨기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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