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되돌이표가 없다. 물에 섞여 물과 함께 물처럼 흘러간다. 세월은 날강도처럼 눈 깜박할 사이 휘리릭 날아간다. 과거는 나홀로 그린 그림이다.
무대가 바뀌고 등장인물이 달라져도 주인공은 바뀌지 않는다. 공연이 실패하던 성공하던 막이 내릴 때까지 슬픔의 강 따라 인생은 흘러간다.
범선이나 돛단배는 돛을 달아 바람의 힘으로 항해한다. 노를 사용하지 않고 돛을 달아 풍력을 이용해 운행한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은 오래 전부터 강을 건널 때 동력기를 달지 않고 돛을 설치한 돛단배를 타고 낙동강과 마산만을 건너다녔다. 당시 육로가 개설되지 못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돛단배는 중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다. 낙동강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나루터가 있어서 북면과 대산면 사람들이 돛단배를 많이 이용했다.
‘마지막 석양 빛을 깃폭에 걸고 /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 아~ 어데로 가는 배냐 /어데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이미자 노래 ‘황포돛대’ 중에서
창원시 귀산동은 마산만과 맞닿아 있어 오랫동안 돛단배를 이용했는데 흰 광목을 누런 황색으로 염색해 질기고 튼튼한 돛을 달았다. ‘황포돛대’는 석양을 등지고 강을 건너는 애절한 서민의 영감을 살린 노래가락으로 손색이 없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크고 작은 배에 몸을 싣고 하염없이 떠내려 간다. 노를 저어 길을 찿기도 하고 풍랑에 배가 뒤집혀 지기도 한다.
1959년 개봉한 영화 벤허는 고전 명작으로 불멸의 걸작이다. 작품 중 나오는 9분 분량의 전차 경주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으로 꼽힌다. 벤허는 단순한 고대 시대의 복수극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서사극이다.
‘삶의 노력에는 속임수가 있을 수 없다’는 영화 속 메시지처럼 노력은 반드시 상응하는 결실을 맺는다는 진리를 벤허의 삶은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운명은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생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
벤허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 장면은 수없이 많은 노예들의 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노를 저으며 마케도니아 해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승리하던 패배하던 노예들은 몰살당한다.
유대귀족이였던 벤허는 갤리선의 노예로 전락해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젖는다. 아리우스는 벤허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간파하고 쇠사슬을 풀어준다. 해적과의 전투 직전 교전이 진행되던 중 벤허는 동료 노예들의 결박을 풀어주고 해적과 싸우다가 바다에 빠진 아리우스를 구해낸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리우스는 죽은 친아들 대신 벤허를 입양, 자신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상속할 권리를 주지만 벤허는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고향 유대로 돌아간다.
배가 파산되고 난파선에 매달려도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삶에는 되돌이표가 없다. 되돌아 갈 수 없다 해도 생의 물줄기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물줄기를 바꾸는 것은 선택이고 투쟁이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고, 바람과 물을 다스리는 지혜와 용기가 있으면 원하는 쪽으로 강을 건널 수 있다. (Q7 Edition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