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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불완전한 사장의 비서 채용

Chicago

2025.09.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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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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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합리적인 인간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가장 옳은 결정을 하는 인간이다. 가격이 올라가면 물건을 적게 사고, 가격이 떨어지면 많이 사는 인간이다. 또한 같은 물건이 조금이라도 싼 곳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물건을 사고, 그곳의 물건이 다 떨어져야만 그 다음으로 싼 곳에 가서 물건을 산다.  
 
이렇게 경제학적으로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을 호모 이코노믹스(Homo-economics)라고 부른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줄여서 이콘(Econ)이라고도 부른다. 이콘은 계산하는 인간이며 완벽한 인간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다르다. 정보는 불완전하고, 소비 결정에는 가격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감정 같은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이렇게 기존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행동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태경제학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휴리스틱(Heuristic), 즉 경험을 통해 얻은 단순한 규칙과 직관에 따라 판단한다고 본다. 얼핏 보면 주먹구구식 같지만, 수많은 실험은 인간이 이런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완벽한 합리적 인간상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인간이 무한한 정보를 계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제한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 만족스러운 선택(Satisficing)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완벽한 이콘(Econ)’이 아닌, 현실의 인간을 설명하는 첫걸음이었다. 이후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휴리스틱의 구체적 유형을 밝혀냈다. 그들의 연구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합리적 계산보다는 직관적인 규칙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카너먼의 유명한 실험은 ‘자동차 보험 가입 실험’이다. 한 그룹에는 “보험료는 연간 200달러”라고 제시했고, 다른 그룹에는 “보험료는 하루 0.55달러”라고 제시했다. 두 금액은 동일하지만, 사람들은 하루 단위로 제시된 조건을 훨씬 저렴하게 인식해 그 쪽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인간의 선택이 숫자와 확률보다 직관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수학자들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재미있는 문제 하나가 있다. 바로 ‘비서 문제(Secretary Problem)’다.  
 
사장은 100명의 지원자를 순차적으로 면접하고, 그 자리에서 채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 번 거절한 지원자는 다시 부를 수 없으며, 마지막 100번째 지원자까지 모두 거절한다면 결국 아무도 뽑지 못한다. 만약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이라면, 사장은 수학자들이 계산한 최적의 전략을 택할 것이다. 즉, 처음 37명은 무조건 거절하고 관찰만 한 후, 그때까지 만난 지원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63명 가운데 처음 37명 중 가장 뛰어났던 사람보다 우수한 지원자가 나오면 즉시 채용하는 것이다. 이 전략을 따르면 가장 우수한 지원자를 뽑을 확률은 37%로 최대가 된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사장은 초반 10명쯤 보고 금방 결정을 내리고, 어떤 사장은 끝까지 기다리다 허둥지둥 채용을 하기도 한다. 사장만의 성격, 경험, 감정 같은 수많은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완벽한 이콘(Econ)이 아니다. 휴리스틱을 통해 내리는 ‘충분히 괜찮은 결정’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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