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들어가면 안성맞춤인 작은 야외 풀장에서 동양계 부부가 선글라스를 쓰고 와인잔을 맞부딪치며 한마디 외친다. 확실하게 들리지 않아서 긴가민가했다. 그 부부를 자세히 훑어봤다. 한인 같기는 한데 말 걸기 쉽지 않은 터프한 인상이다.
크루즈에서 보름이 지나도 한인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아시안은 차이니스다. 배 탄 지 20일이 지난 후 와인잔을 부딪치던 부부가 중국인처럼 생긴 다른 부부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한국말이다.
“저 사람들 한국 사람이야. 인사할까?”
“말 걸지 마. 조용히 있다가 배에서 내리자고.”
남편 말에 나는 한인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떨쳐버리고 그들에게 눈인사만 했다.
한 달 후 배에서 내려 비행장에서 그들과 맞닥뜨렸다. 눈인사했다. 비행기를 탔다. 와! 바로 옆자리에 그 부부가 앉았다. 참다못한 나는 아는 척하려는데 남편이 내 옆구리를 쳤다. 그러든지 말든지 더는 죄짓고는 못 살겠다는 심정으로 이실직고했다.
“안녕하세요. 배 내리기 전에 어떤 한국분과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어요.”
“아 그러세요.”
남자분이 벌떡 일어나 내 남편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내 남편도 마지못해 악수했다.
“어디로 가세요?” 남자가 물었다.
남편이 “뉴욕”이라고 대답하자
“우리는 플로리다로.”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약속이라도 하듯 네 명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조용했다. 긴 비행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짐을 내리며 작별 인사했다.
뭔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찜찜한 갑갑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한인이 별로 없던 예전 같으면 반가워서 이미 친구가 됐을 텐데. 한인이 많아지자 누구나가 슬그머니 피하는 데야. 나도 그들의 편안함을 위해 남편 말대로 입 꾹 다물고 있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나의 이실직고가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