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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삼중고에 갇힌 주택 시장

Los Angeles

2025.09.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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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경제부 부장

이은영 경제부 부장

주택시장이 심각한 불안정에 빠져 있다. 팬데믹 이후 급등한 주택가격과 고금리, 기후위기발 보험료 폭탄이 삼중고로 겹치면서 시장이 교착 상태로 얼어붙고 있다.
 
거래는 급감했지만 매물은 줄지 않고 셀러들은 가격 인하 대신 아예 매물을 거둬들이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 건설사들은 인센티브 경쟁에 몰두하며 단기 처방에 나서고 있다. 또, 주택소유주들은 폭등한 보험료를 감당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플랜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주택시장은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상실한 채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거래되지 않은 매물을 시장에서 아예 거둬들이는 ‘디스리스팅(dislisting)’은 올해 들어 38%나 증가했다. 전년 대비 무려 48% 늘어났다. 이는 셀러들이 “이 가격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마이애미의 경우 매물 100건 당 59건이 철회되는 극단적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역 경제와 주택 수요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자 단기적인 버티기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집은 결국 시장 교착을 심화시킬 뿐이고 수요자와 공급자의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더욱 벌어지게 한다.
 
신규 주택 건설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형 주택건설 업체 레나는 주택가격의 13% 이상을 인센티브로 제공했고 KB홈과 디알호튼 역시 비슷한 혜택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수요 위축을 가린 시간 벌기 전략에 불과하다. 가격 인하와 혜택 경쟁은 단기적 매출 유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건설사의 체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을 낳는다.
 
보험료 문제는 주택시장을 뒤흔드는 또 다른 변수다. 평균 주택보험료는 연간 30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네브래스카는 8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토네이도, 산불, 가뭄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위험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대형 보험사들은 아예 주택보험 시장에서 철수했고 많은 주택소유주가 고가의 공적 보험 대체상품인 페어플랜에 의존하고 있다. 집 소유가 더는 안전한 자산이 아니라 잠재적 재앙의 책임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주택시장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혼란 속에 트럼프 행정부는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국가 주택 비상사태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 몇 주 내로 주택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시행할 것임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기준금리를 1% 수준으로 낮출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공급 확대를 위해 인허가 절차 간소화와 표준화도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조치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금리 인하가 단기적으로 거래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공급 부족과 가격 왜곡, 보험료 폭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6.56%로 하락해 10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여전히 높은 집값 탓에 구매 여력은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지금의 주택시장은 셀러, 건설사, 보험사 모두 각자의 이해를 지키며 버티기에 몰두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교착은 내 집 장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단순한 금리가 아니다. 팬데믹 시기에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집값과 집값은 반드시 오른다는 착시가 시장 전반을 왜곡시켰다. 이제는 가격 현실화, 규제 개혁, 보험 시스템 재설계 없이는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주택시장은 주택가격을 고수하는 셀러, 무리한 인센티브 경쟁에 내몰린 건설사, 그리고 보험료 폭탄에 신음하는 주택소유주라는 삼중고에 빠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강수를 두더라도 근본적 해결책은 구조적 개혁과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집값 불패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주택시장의 불안정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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