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시 내슈빌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멕시코는 자국 이민자 인구가 많은 이곳에서 일방적 응원을 등에 업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밖의 붉은 물결과 함성이 기대 이상의 경기를 만들어 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9일 테네시주 내슈빌의 지오디스 파크에서 열린 난적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당초 500여명이 운집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경기장에는 1500여명의 한인이 자리를 채웠다. 애틀랜타·내슈빌·테네시 한인회 등 동남부 한인단체가 판매한 단체 응원 입장권만 경기장 4개 섹션 내 1078석이다. 이날 전체 관중수가 2만7604명이었음을 고려하면 멕시코와 한국이 17대 1에 이르는 수적 열세였지만 실제 관중석 분위기는 달랐다. 한인회가 원정 응원단의 이동을 돕기 위해 조지아주 둘루스에서 50인승 단체버스 두 대를 운행해 팬들을 실어나르고, 단체 제작한 응원복을 손태극기와 함께 배포하는 등 조직적인 응원을 보여줬다.
응원단이 북과 드럼을 치며 팬들을 선도하고 있다.
응원단장을 맡은 내슈빌의 류승한(38)씨는 “애틀랜타 뿐만 아니라 앨라배마주, 인디애나주 등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모였다”며 “10년째 미국에서 살면서 목놓아 대한민국을 외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준 덕에 신명나게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공식 응원단 ‘붉은악마’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한인 다섯명이 북과 징을 치며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를 선창했다. 이들은 경기를 앞두고 3번의 연습을 거쳐 합을 맞췄다. 밤 10시쯤 경기가 끝나고도 팬들은 퇴근하는 선수들의 버스를 자정까지 기다려 배웅했다.
한인 응원단 공식 후원사로 나선 한국타이어 테네시공장의 윤정록 고문은 자사 및 협력사 직원 15여명과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늘 현지화 전략에 관심이 많은데, 축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미국과 멕시코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면서 내년 대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한국에서 뉴욕을 거쳐 이번 경기를 보러왔다는 이종명씨는 “17시간 비행을 거친 힘든 여정이었지만, 대표팀이 이전보다 한층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줘 만족을 느꼈다”며 “다가올 월드컵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것 같다”고 기대했다.
손흥민이 경기 뒤 믹스드존에서 취재진과 만나 소감을 말하고 있다.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난 손흥민은 “강팀과 맞붙는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다. 한국, 일본, 유럽에서 (미국으로) 온 친구들이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팀을 위해 하나로 뭉쳤다”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경기였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 또한 기자회견에서 “경기뿐 아니라 환경과 잔디, 날씨 등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고 월드컵 준비를 위한 현지 적응 중요성을 높게 평가했다.
권오석 조지아대한체육회장은 “이번 응원전 준비 경험을 발판삼아 내년 6월 애틀랜타에서 열릴 월드컵도 흥행시키겠다”고 했다.